[경남人] 어민의 삶을 지키다…‘대장장이’ 추일봉

입력 2023.01.17 (19:39) 수정 2023.01.17 (20:0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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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앵커]

불에 달군 무쇠로 농기구와 생활용품을 만드는 대장간, 요즘은 만나기 힘든 공간인데요.

수요가 뜸한 지금도 묵묵히 망치를 두드리며 대장간을 지키는 장인을 경남인에서 만나보시죠.

[리포트]

1,300도로 달군 쇳덩이를 두드려 구부리고 다시 두드리길 반복해 어구의 부품 하나가 나옵니다.

진가를 알고 찾아오는 이들을 위해 추일봉 씨는 50년간 망치를 두드렸습니다.

[추일봉/대장장이 : "이걸 안 만들어주면 어디 가서 만들어 쓰겠어요? 가뜩이나 통영 같은 바닷가에서는 사업이 안 된다 아닙니까?"]

통영 바다에서 갓 올라온 수산물로 활기찬 시장 뒷골목.

세월을 고스란히 간직한 간판 하나가 눈길을 끕니다.

닻과 같은 선박 부품과 어구, 농기구까지 쇠로 못 만드는 게 없는 공작소는 대장간의 또 다른 이름입니다.

바다와 접해 있다 보니 주 고객은 어민이고, 취급 품목도 갯일에 필요한 것들이 많습니다.

[추일봉/대장장이 : "바지락 파고 밭도 매고 김도 매고 하는 거고 호미. 굴 껍데기 구멍 뚫는 것. 이것 역시 성게 잡고 멍게 따고 하는 거고, 이건 해녀들 쓰는 거고…."]

전복 따는 어구에 제철 맞은 굴 칼도 50년 장인의 손끝에서 나온 명품입니다.

[추일봉/대장장이 : "쇠 자체가 굴을 까면 끝이 오그라지고 하는데 이건 그런 게 없다고. 수작업을 하기 때문에 몇 개 안 나와요."]

지름 5센티미터의 쇠가락이 어구로 변신하려면 십여 차례의 공정을 거쳐야 합니다.

[추일봉/대장장이 : "처음에 꺾는 것, 그다음에 앞뒤 네 번, 이것까지 다섯 번. 이게 배에 통발 같은 것 떨어지면 건져 올리는 건데, 이게 네 발짜리도 있고 여섯 발짜리도 있고 그래요."]

바다가 곧 밭인 어민의 필수품, 호미입니다.

뭉툭한 쇠를 두드려 모양을 만든 뒤 다시 불에 달궈 마술처럼 호미로 둔갑시킵니다.

낫 한 자루도 대충 만드는 법이 없는 손이 무쇠보다 더 고집스러운데요.

기계로 찍어낸 제품이나 중국산에 비할 수 없는 강도는 불과 망치질에서 나옵니다.

[추일봉/대장장이 : "원래는 이만큼 이렇게 높은 것이거든요. 그런데 이게 닳아서 그런 겁니다. 얼마나 많이 썼으면 이렇게 닳았을까? 내가 한 것만 해도 50년이 넘었으니까 한 100년 넘어 안 됐을까요? 전에 위 선배들 쓰던 것…."]

망치질에 닳아서 낮아진 작업대. 화롯가에 빼곡한 연장은 그의 수족인데요.

낡은 화로와 연장에선 얼마나 많은 어구가 나왔을까요?

이 자체도 신기한 볼거리입니다.

[이환희/전북 김제시 황산면 : "유튜브로 보는 것보다 기계들이 더 많아서 신기했습니다. 힘들고 엄청 정성이 들어가 있는 느낌..."]

[김덕인/통영 서호시장 상인 : "이렇게 명맥을 유지해 오시고 통영의 명물이에요. 친절하게 잘 해 주시고 인간문화재..."]

근대박물관 같은 대장간에서 유물처럼 자리를 지켜온 장비들은 주인과 같이 나이 들어가는 일꾼입니다.

식기 전에 모양을 잡아야 해서 손은 손대로 발은 발대로 숨 돌릴 틈조차 없는데요.

페달을 밟아 세기를 조절하는 장비마저 없던 시절에 비하면 수월해졌다고 할 만큼 고된 작업입니다.

[추일봉/대장장이 : "이것도 얼마 안 남았어요. 전부 다 기계에다 찍어서 나오니까 찍어서 갈기만 갈면 되는데 우리는 전부 다 수작업을 해야 하니까…."]

일꾼 대여섯 명도 부족할 만큼 주문이 밀리던 시절도 있었지만 어업이 기울면서 일감도 끊어졌습니다.

수십 년 단골도 세상을 떠나고 더는 일을 배울 사람조차 없는 대장간 풍경이 쓸쓸하기만 합니다.

[류태수/사진가 : "이분들 작업 그만두고 나면 누가 이걸 하려고 하겠어요? 기록 잘해서 기록으로라도 후손들에게 남길 수 있도록 단디 찍어가이소."]

찾는 발길이 뜸해도 그는 대장간 문을 닫을 수가 없습니다.

[추일봉/대장장이 : "힘닿는 데까지는 할 건데 그렇게 오래 하겠습니까? 해 줘서 고맙다고 하지 뭐 있어 줘서 고맙고…."]

어민들의 삶을 지킨 고마운 손.

그의 대장간이 특별한 이유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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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수정2023-01-17 20:07:0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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불에 달군 무쇠로 농기구와 생활용품을 만드는 대장간, 요즘은 만나기 힘든 공간인데요.

수요가 뜸한 지금도 묵묵히 망치를 두드리며 대장간을 지키는 장인을 경남인에서 만나보시죠.

[리포트]

1,300도로 달군 쇳덩이를 두드려 구부리고 다시 두드리길 반복해 어구의 부품 하나가 나옵니다.

진가를 알고 찾아오는 이들을 위해 추일봉 씨는 50년간 망치를 두드렸습니다.

[추일봉/대장장이 : "이걸 안 만들어주면 어디 가서 만들어 쓰겠어요? 가뜩이나 통영 같은 바닷가에서는 사업이 안 된다 아닙니까?"]

통영 바다에서 갓 올라온 수산물로 활기찬 시장 뒷골목.

세월을 고스란히 간직한 간판 하나가 눈길을 끕니다.

닻과 같은 선박 부품과 어구, 농기구까지 쇠로 못 만드는 게 없는 공작소는 대장간의 또 다른 이름입니다.

바다와 접해 있다 보니 주 고객은 어민이고, 취급 품목도 갯일에 필요한 것들이 많습니다.

[추일봉/대장장이 : "바지락 파고 밭도 매고 김도 매고 하는 거고 호미. 굴 껍데기 구멍 뚫는 것. 이것 역시 성게 잡고 멍게 따고 하는 거고, 이건 해녀들 쓰는 거고…."]

전복 따는 어구에 제철 맞은 굴 칼도 50년 장인의 손끝에서 나온 명품입니다.

[추일봉/대장장이 : "쇠 자체가 굴을 까면 끝이 오그라지고 하는데 이건 그런 게 없다고. 수작업을 하기 때문에 몇 개 안 나와요."]

지름 5센티미터의 쇠가락이 어구로 변신하려면 십여 차례의 공정을 거쳐야 합니다.

[추일봉/대장장이 : "처음에 꺾는 것, 그다음에 앞뒤 네 번, 이것까지 다섯 번. 이게 배에 통발 같은 것 떨어지면 건져 올리는 건데, 이게 네 발짜리도 있고 여섯 발짜리도 있고 그래요."]

바다가 곧 밭인 어민의 필수품, 호미입니다.

뭉툭한 쇠를 두드려 모양을 만든 뒤 다시 불에 달궈 마술처럼 호미로 둔갑시킵니다.

낫 한 자루도 대충 만드는 법이 없는 손이 무쇠보다 더 고집스러운데요.

기계로 찍어낸 제품이나 중국산에 비할 수 없는 강도는 불과 망치질에서 나옵니다.

[추일봉/대장장이 : "원래는 이만큼 이렇게 높은 것이거든요. 그런데 이게 닳아서 그런 겁니다. 얼마나 많이 썼으면 이렇게 닳았을까? 내가 한 것만 해도 50년이 넘었으니까 한 100년 넘어 안 됐을까요? 전에 위 선배들 쓰던 것…."]

망치질에 닳아서 낮아진 작업대. 화롯가에 빼곡한 연장은 그의 수족인데요.

낡은 화로와 연장에선 얼마나 많은 어구가 나왔을까요?

이 자체도 신기한 볼거리입니다.

[이환희/전북 김제시 황산면 : "유튜브로 보는 것보다 기계들이 더 많아서 신기했습니다. 힘들고 엄청 정성이 들어가 있는 느낌..."]

[김덕인/통영 서호시장 상인 : "이렇게 명맥을 유지해 오시고 통영의 명물이에요. 친절하게 잘 해 주시고 인간문화재..."]

근대박물관 같은 대장간에서 유물처럼 자리를 지켜온 장비들은 주인과 같이 나이 들어가는 일꾼입니다.

식기 전에 모양을 잡아야 해서 손은 손대로 발은 발대로 숨 돌릴 틈조차 없는데요.

페달을 밟아 세기를 조절하는 장비마저 없던 시절에 비하면 수월해졌다고 할 만큼 고된 작업입니다.

[추일봉/대장장이 : "이것도 얼마 안 남았어요. 전부 다 기계에다 찍어서 나오니까 찍어서 갈기만 갈면 되는데 우리는 전부 다 수작업을 해야 하니까…."]

일꾼 대여섯 명도 부족할 만큼 주문이 밀리던 시절도 있었지만 어업이 기울면서 일감도 끊어졌습니다.

수십 년 단골도 세상을 떠나고 더는 일을 배울 사람조차 없는 대장간 풍경이 쓸쓸하기만 합니다.

[류태수/사진가 : "이분들 작업 그만두고 나면 누가 이걸 하려고 하겠어요? 기록 잘해서 기록으로라도 후손들에게 남길 수 있도록 단디 찍어가이소."]

찾는 발길이 뜸해도 그는 대장간 문을 닫을 수가 없습니다.

[추일봉/대장장이 : "힘닿는 데까지는 할 건데 그렇게 오래 하겠습니까? 해 줘서 고맙다고 하지 뭐 있어 줘서 고맙고…."]

어민들의 삶을 지킨 고마운 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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