롯데, CES에서 ‘미래 먹거리’라고 홍보하더니…스타트업 아이디어 도용?

입력 2023.01.18 (15:5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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취재는 KBS 취재진에게 걸려온 한 스타트업 대표의 전화 한 통에서 시작됐습니다.
오는 3월 출시를 목표로 3년 전부터 공 들여 준비해 온 제품을 이번에 롯데 계열사가 '미래 먹거리'라며 홍보한 제품과 매우 유사해 보인다는 겁니다. 해당 스타트업 대표는 망연자실할 수밖에 없었다고 말합니다. 어떻게 된 일일까요?

■CES에서 최초 공개한 롯데헬스케어…아이디어 '유사성' 지적돼

지난 2019년 11월 스타트업 창업에 뛰어든 정지원 대표가 개발한 건 인공지능을 기반으로 개인 맞춤형 영양 관리를 해주는 제품입니다. 기존에 저장된 소비자의 의료 데이터에 당일의 몸 상태를 추가로 체크하면, 영양제 보관용 통이 장착된 기기에서 영양제를 배합해서 내어주는 방식입니다.

정 대표의 회사는 중소기업벤처부에서 주관하는 '아기 유니콘 육성사업'에 선정돼 지원을 받아왔고, 세계 최대 소비자 가전 박람회인 CES에서 2021년부터 3년간 혁신상을 받기도 했습니다.

이달 초 미국에서 열린 CES에 정 씨의 기업도 참여해 K-스타트업관에 전시를 진행했습니다. 그런데 지나가던 관람객들이 '롯데에서 하는 것과 똑같은 게 아니냐?'고 질문했다고 합니다. 무슨 일인지 싶어 롯데헬스케어의 전시관으로 찾아갔습니다. 정 씨가 마주한 건 본인 회사의 제품과 유사하게 생긴 제품들이었습니다.

왼쪽이 롯데헬스케어, 오른쪽이 스타트업 제품왼쪽이 롯데헬스케어, 오른쪽이 스타트업 제품

왼쪽이 롯데헬스케어, 오른쪽이 스타트업 제품왼쪽이 롯데헬스케어, 오른쪽이 스타트업 제품

정 대표는 서비스 소개부터, 기기의 형태와 내부 구조까지 전반적인 사업의 유사성을 지적했습니다.

특히 기기의 상단부를 열면 보이는 여러 개의 영양제 카트리지와 그 카트리지가 해당 영양제의 종류와 유효기간, 남아있는 양 등을 자동으로 인식하는 기술까지 아이디어가 너무나도 같다는 게 정 대표의 주장입니다.

정 대표는 "해외에서도 예전부터 영양제를 내려주는 기기가 있었지만, 이들 기기는 본인의 영양제를 직접 통에다가 부은 뒤 어느 시간에 영양제를 배출해줄지 직접 수동으로 입력하는 형태에 불과하다"고 말합니다. 정 대표 기업에서 개발한 기기는 선례가 없었다는 겁니다.

■"지난 2021년 9월 롯데헬스케어가 투자 제의…구체적 사업 정보 공유"

특히 정 대표가 '유사성'에 대한 의심을 할 수밖에 없었던 건 지난 2021년 9월 롯데헬스케어와의 만남 때문입니다. 당시 롯데벤처스와 함께 투자하겠다며 연락이 왔고, 이후 두 달여간 사업 협력에 대한 논의가 진행됐습니다.

첫 만남 당시부터 롯데헬스케어 관계자는 "절대 따라 할 생각이 없으니 걱정하지 말고 이야기해도 된다"고 정 대표를 안심시켰다고 말합니다. 이후 정 대표는 제품에 대한 구체적인 내용이 담긴 회사소개서도 전달했습니다.

회의 자리에서는 제품의 작동 원리와 구조, 규제 검토 내용, 제품의 특허 등 지식재산권 관련 정보 등 다양한 사업 정보들에 대한 질의응답도 오갔다고 말합니다.

하지만 결국 서로의 조건이 맞지 않아 10월 말 협력 논의는 결렬됐습니다.

그 이후에도 롯데헬스케어 관계자를 추가로 만날 자리가 있었습니다. 정 대표는 이 자리에서도 롯데헬스케어 관계자에게 따라 하지 말 것을 강력히 주장했지만, 관계자는 조금씩 미묘하게 다른 말들을 꺼냈습니다.

"만약에 제가 정 대표님 스타트업을 카피(copy)했다고 생각하시는 거라면은. 뭐 힌트가 아예 없었다고 할 순 없겠죠. 하지만 CES에서 발표하신 내용만으로 충분한 힌트는 될 수 있잖아요."

"저희가 생각하는 디스펜싱 모델은 비슷해요, 대표님 스타트업이 고민하시는 거랑."

"정 대표님도 이해를 해주셔야 될 게, 말씀하시는 사업모델이 제가 몇 년 전에 생각한 거거든요."

당시에는 롯데헬스케어가 어떤 제품을 내놓을지 제품을 직접 본 적도 없었기에 믿고 지나갈 수밖에 없었습니다. 하지만 결국 이번 CES에서 정 대표가 마주한 건 너무나 비슷해 보이는 제품이었습니다. 결국 정 대표는 법적 대응에 나서기로 했습니다. 영업비밀 침해 등의 혐의로 고소하고 공정거래위원회에도 신고할 계획이라고 밝혔습니다.

■롯데헬스케어 "이전부터 신사업 검토… 핵심 아이디어 모방 아냐"

롯데헬스케어 측은 법적으로도, 윤리적으로도 떳떳하다는 입장입니다.

롯데헬스케어에 해당 제품의 개발에 착수한 시점을 물어보니, 해당 스타트업과의 논의가 끝난 이후부터 진행했다고 말했습니다. 또 유사성에 대한 문제가 전혀 없다고 생각했는지에 대한 취재진의 질문에 "오히려 무엇이 같다고 생각하는지를 해당 스타트업에 물어보고 싶다"고 전했습니다.

롯데헬스케어는 지난 2021년 8월 롯데 지주 산하의 신사업팀으로 처음 조직돼 '헬스케어' 산업군 진출에 대해 이전부터 검토를 진행하고 있었다고 설명했습니다. 그리고 이때부터 건강기능식품 소분 판매에 대한 아이디어를 갖고 있었다고 주장했습니다.

핵심 기술인 카트리지 방식에 대해서도 아이디어 차용이 아니라는 입장입니다. 특히 각 카트리지에 담긴 영양제에 대한 정보를 인식하는 기술은 유통업계에서도 흔히 쓰이고 있는 'RFID 스티커'를 활용한 것뿐이라고 해명했습니다.

오히려 해당 스타트업과 투자 논의가 종료된 이후 자체 디스펜서를 제작하는 과정에서, 시중 약국에서 사용하고 있는 기계를 참고해 제작한 것이라고 전해왔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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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롯데, CES에서 ‘미래 먹거리’라고 홍보하더니…스타트업 아이디어 도용?
    • 입력 2023-01-18 15:55:41
    취재K


취재는 KBS 취재진에게 걸려온 한 스타트업 대표의 전화 한 통에서 시작됐습니다.
오는 3월 출시를 목표로 3년 전부터 공 들여 준비해 온 제품을 이번에 롯데 계열사가 '미래 먹거리'라며 홍보한 제품과 매우 유사해 보인다는 겁니다. 해당 스타트업 대표는 망연자실할 수밖에 없었다고 말합니다. 어떻게 된 일일까요?

■CES에서 최초 공개한 롯데헬스케어…아이디어 '유사성' 지적돼

지난 2019년 11월 스타트업 창업에 뛰어든 정지원 대표가 개발한 건 인공지능을 기반으로 개인 맞춤형 영양 관리를 해주는 제품입니다. 기존에 저장된 소비자의 의료 데이터에 당일의 몸 상태를 추가로 체크하면, 영양제 보관용 통이 장착된 기기에서 영양제를 배합해서 내어주는 방식입니다.

정 대표의 회사는 중소기업벤처부에서 주관하는 '아기 유니콘 육성사업'에 선정돼 지원을 받아왔고, 세계 최대 소비자 가전 박람회인 CES에서 2021년부터 3년간 혁신상을 받기도 했습니다.

이달 초 미국에서 열린 CES에 정 씨의 기업도 참여해 K-스타트업관에 전시를 진행했습니다. 그런데 지나가던 관람객들이 '롯데에서 하는 것과 똑같은 게 아니냐?'고 질문했다고 합니다. 무슨 일인지 싶어 롯데헬스케어의 전시관으로 찾아갔습니다. 정 씨가 마주한 건 본인 회사의 제품과 유사하게 생긴 제품들이었습니다.

왼쪽이 롯데헬스케어, 오른쪽이 스타트업 제품
왼쪽이 롯데헬스케어, 오른쪽이 스타트업 제품
정 대표는 서비스 소개부터, 기기의 형태와 내부 구조까지 전반적인 사업의 유사성을 지적했습니다.

특히 기기의 상단부를 열면 보이는 여러 개의 영양제 카트리지와 그 카트리지가 해당 영양제의 종류와 유효기간, 남아있는 양 등을 자동으로 인식하는 기술까지 아이디어가 너무나도 같다는 게 정 대표의 주장입니다.

정 대표는 "해외에서도 예전부터 영양제를 내려주는 기기가 있었지만, 이들 기기는 본인의 영양제를 직접 통에다가 부은 뒤 어느 시간에 영양제를 배출해줄지 직접 수동으로 입력하는 형태에 불과하다"고 말합니다. 정 대표 기업에서 개발한 기기는 선례가 없었다는 겁니다.

■"지난 2021년 9월 롯데헬스케어가 투자 제의…구체적 사업 정보 공유"

특히 정 대표가 '유사성'에 대한 의심을 할 수밖에 없었던 건 지난 2021년 9월 롯데헬스케어와의 만남 때문입니다. 당시 롯데벤처스와 함께 투자하겠다며 연락이 왔고, 이후 두 달여간 사업 협력에 대한 논의가 진행됐습니다.

첫 만남 당시부터 롯데헬스케어 관계자는 "절대 따라 할 생각이 없으니 걱정하지 말고 이야기해도 된다"고 정 대표를 안심시켰다고 말합니다. 이후 정 대표는 제품에 대한 구체적인 내용이 담긴 회사소개서도 전달했습니다.

회의 자리에서는 제품의 작동 원리와 구조, 규제 검토 내용, 제품의 특허 등 지식재산권 관련 정보 등 다양한 사업 정보들에 대한 질의응답도 오갔다고 말합니다.

하지만 결국 서로의 조건이 맞지 않아 10월 말 협력 논의는 결렬됐습니다.

그 이후에도 롯데헬스케어 관계자를 추가로 만날 자리가 있었습니다. 정 대표는 이 자리에서도 롯데헬스케어 관계자에게 따라 하지 말 것을 강력히 주장했지만, 관계자는 조금씩 미묘하게 다른 말들을 꺼냈습니다.

"만약에 제가 정 대표님 스타트업을 카피(copy)했다고 생각하시는 거라면은. 뭐 힌트가 아예 없었다고 할 순 없겠죠. 하지만 CES에서 발표하신 내용만으로 충분한 힌트는 될 수 있잖아요."

"저희가 생각하는 디스펜싱 모델은 비슷해요, 대표님 스타트업이 고민하시는 거랑."

"정 대표님도 이해를 해주셔야 될 게, 말씀하시는 사업모델이 제가 몇 년 전에 생각한 거거든요."

당시에는 롯데헬스케어가 어떤 제품을 내놓을지 제품을 직접 본 적도 없었기에 믿고 지나갈 수밖에 없었습니다. 하지만 결국 이번 CES에서 정 대표가 마주한 건 너무나 비슷해 보이는 제품이었습니다. 결국 정 대표는 법적 대응에 나서기로 했습니다. 영업비밀 침해 등의 혐의로 고소하고 공정거래위원회에도 신고할 계획이라고 밝혔습니다.

■롯데헬스케어 "이전부터 신사업 검토… 핵심 아이디어 모방 아냐"

롯데헬스케어 측은 법적으로도, 윤리적으로도 떳떳하다는 입장입니다.

롯데헬스케어에 해당 제품의 개발에 착수한 시점을 물어보니, 해당 스타트업과의 논의가 끝난 이후부터 진행했다고 말했습니다. 또 유사성에 대한 문제가 전혀 없다고 생각했는지에 대한 취재진의 질문에 "오히려 무엇이 같다고 생각하는지를 해당 스타트업에 물어보고 싶다"고 전했습니다.

롯데헬스케어는 지난 2021년 8월 롯데 지주 산하의 신사업팀으로 처음 조직돼 '헬스케어' 산업군 진출에 대해 이전부터 검토를 진행하고 있었다고 설명했습니다. 그리고 이때부터 건강기능식품 소분 판매에 대한 아이디어를 갖고 있었다고 주장했습니다.

핵심 기술인 카트리지 방식에 대해서도 아이디어 차용이 아니라는 입장입니다. 특히 각 카트리지에 담긴 영양제에 대한 정보를 인식하는 기술은 유통업계에서도 흔히 쓰이고 있는 'RFID 스티커'를 활용한 것뿐이라고 해명했습니다.

오히려 해당 스타트업과 투자 논의가 종료된 이후 자체 디스펜서를 제작하는 과정에서, 시중 약국에서 사용하고 있는 기계를 참고해 제작한 것이라고 전해왔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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