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나경원 저격’ 與 초선 성명…누가 왜 주도했나?

입력 2023.01.18 (17:4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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지난해 7월, 국민의힘 이준석 전 대표로 인한 당 내 갈등이 최고조에 달해 있던 시기.

특히 권성동 당 대표 직무대행 체제를 유지할지 아니면 당을 비대위 체제로 전환할 것인지를 놓고 또 다른 갈등 상황이 연출됐습니다.

이때 결정적인 상황이 벌어집니다. 박수영·배현진 등 친윤계가 주축이 된 초선 의원 32명이 비대위 체제로 전환할 것을 요구하는 '연판장'을 권성동 직무대행에게 전달한 겁니다.

이후 비대위 전환에 부정적이었던 권성동 직무대행의 입장이 바뀌게 됐고, 비록 가처분 인용 사태를 겪긴 했지만 국민의힘은 주호영, 정진석 비대위 체제로 차례로 전환되면서 당내 갈등을 봉합하는 데 비교적 성공했습니다.

돌이켜보면 혼란스럽던 당시 상황에서 팽팽하던 균형을 무너뜨리는 시발점이 됐던 것이 바로 '초선 성명서'라고 해도 과언이 아닙니다.

그런데 그 '초선 성명서'가 차기 당 대표 선출 2개월을 앞두고 또다시 등장했습니다.

국민의힘 나경원 전 의원이 17일 대구 동화사를 방문한 뒤 나오고 있다. 〈연합뉴스〉국민의힘 나경원 전 의원이 17일 대구 동화사를 방문한 뒤 나오고 있다. 〈연합뉴스〉

■ 이번 과녁은 4선 중진 나경원?

나 전 의원의 저출산고령사회위원회 부위원장직 해임을 두고 나 전 의원과 대통령실의 공방이 극에 달하던 시기, 국민의힘 초선 의원 명의의 성명서가 발표됩니다.

제목은 '대통령을 흔들고 당내 분란을 더 이상 야기해서는 안 된다'였습니다.

초선 의원 63명 중 50명(18일 오후 12시 기준)이 참여했는데 무려 80%에 육박하는 수치입니다.

두 장관급 직책에서 동시 해임됐던 나 전 의원이 차기 전당대회 출마를 고심하며 보이고 있는 행보가 옳지 않다고 제동에 나선 겁니다.

"대통령과 참모를 갈라치면서 당내 갈등을 부추기고, 그 갈등을 자신의 전당대회 출마의 명분으로 삼으려는 건 20년 가까이 당에 몸담은 선배 정치인의 모습이라고 믿기 어렵습니다."

"대통령을 위한다면서 대통령을 무능한 리더라고 모욕하는 건 묵과할 수 없는 위선이며 대한민국에서 추방돼야 할 정치적 사기 행위입니다."

'경악', '선배 정치인이라고 보기 어렵다', '정도를 걸어라' 등 표현도 강경했습니다.

자신의 해임을 두고 대통령실과 진실 게임 양상을 보이던 나 전 의원이지만, 초선 의원들의 이 성명서로 균형의 추가 무너지는 느낌마저 들었습니다.

■ 성명서 발표, 누가 왜 주도했나?

원래 이 성명서는 지난 16일쯤 초안이 만들어졌다고 합니다.

지난해 7월과 비슷하게 강민국, 박수영, 배현진 등 친윤계로 분류되는 초선 의원들의 주도로 작성됐는데, 다만 당시에는 '나경원 전 의원의 자중을 바란다' 정도의 부드러운 어조로 작성됐다고 합니다.

실제 발표된 성명서처럼 강하고 거친 어휘들은 포함되지도 않았다는 게 성명서 작성에 관여한 초선 의원의 설명입니다.

하지만 이 초안은 끝내 발표되지 않았습니다.

성명서 작성 사실을 알게 된 또 다른 당권 주자가 성명서 발표로 나 전 의원이 더 부각되고 역효과가 있을 수 있다는 우려를 전달했기 때문입니다.

한 친윤계 재선의원도 "나 전 의원을 굳이 박해받는 순교자 이미지로 만들어 줄 필요가 없다"는 입장을 전달하며 성명서 발표를 말린 것으로 전해졌습니다.

그런데 다음 날(17일) 나 전 의원의 입장문이 공개됩니다.


"국민과 대통령을 이간하는 당대표가 아닌 국민의 뜻을 있는 그대로 전달하고, 일부 참모들의 왜곡된 보고를 시정하는 당대표가 필요합니다."

"대통령을 에워싸서 눈과 귀를 가리는 여당 지도부는, 결국 대통령과 대통령 지지 세력을 서로 멀어지게 할 것입니다."
(나경원 전 의원 페이스북 中)

이른바 '윤핵관' 의원들을 겨냥했다는 이 글이 공개되자 기류가 180도 바뀌었습니다.

초선 의원들 사이에서 "나 전 의원의 글이 과했다"는 지적과 함께 대응이 필요하다는 공감대가 급속히 확산됐다는 겁니다. 이에 나 전 의원의 입장문 발표 반나절 만에 기존 초안 대신 나 전 의원을 직격하는 성명서가 새로 작성돼서 발표됩니다.

워낙 급작스럽게 진행되다 보니 일부 의원들의 경우 "성명서의 취지만 듣고 동의한 뒤 구체적인 내용은 발표를 보고 확인하기도 했다"고 하며, 그러다 보니 "어휘가 조금 강해서 우려스럽다는 생각이 들었다"는 항변이 내부에서 터져 나오기도 했습니다.

■ 초선, 당 대표, 그리고 22대 총선

대통령의 해임 결정 이후에도 공식 행사를 다니고, 동화사 등 지방 일정을 꿋꿋이 소화하면서 전당대회 출마 가능성을 높여나가던 나 전 의원은 '초선 성명서'라는 불의의 일격에 당혹스런 분위기가 역력합니다.

"배경과 파장에 대해 깊이 숙고하겠다"는 언급 이후 특별한 입장을 내놓지 않고 있으며, 오늘(18일) 참석을 예고했던 대전시당 신년 인사회에도 불참하며 잠행을 이어가고 있습니다.

나 전 의원이 더욱 곤혹스러운 건 20년 가까운 정치 경력이 있지만, 지금 자신에게 반감을 보이는 초선 의원들과는 별다른 접점을 찾기 어렵기 때문일겁니다.

보수 지지층이라면 당을 한 번도 떠나지 않고 정통 보수를 지켜온 자신에게 마음의 빚이 있을 거라는 나 전 의원의 자부심이 이들에게는 큰 영향을 끼치지 못하는 것 아니냐는 해석도 나옵니다.

반대로 이런 상황은 일부 보수 지지층과는 달리 초선 의원들로 하여금 '차기 총선 승리'와 '윤석열 정부의 성공'이라는 확실한 목표 아래 나 전 의원을 강력하게 비판하는 성명서를 낼 수 있었던 원동력으로 작용했습니다.

21대 국회 국민의힘 의석 수는 115명. 그 중 초선 의원은 63명으로 전체의 절반(54.8%)이 넘는 비율을 차지하고 있습니다.

당내 '최대그룹'이란 평가 속에 이들은 두 번의 성명서 발표 이전에도 김종인 비대위원장 추대 투표, 21대 첫 원내대표 선출 방식 변경 등을 이끌었고 청와대 릴레이 1인 시위, 필리버스터 참여 등 야당 시절 대여 투쟁에도 한목소리를 내며 앞장서기도 했습니다.

이제 임기가 15개월가량 남짓 남은 국민의힘 초선 의원들.

고비고비마다 당 내부 여론의 향방에 큰 영향을 끼쳐온 이들이 차기 총선 공천권을 가지는 차기 당 대표 선거에서 어떤 영향력을 행사하고 또 이후 어떤 정치적인 미래를 개척해 나갈지 주목할 부분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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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나경원 저격’ 與 초선 성명…누가 왜 주도했나?
    • 입력 2023-01-18 17:42:32
    취재K

지난해 7월, 국민의힘 이준석 전 대표로 인한 당 내 갈등이 최고조에 달해 있던 시기.

특히 권성동 당 대표 직무대행 체제를 유지할지 아니면 당을 비대위 체제로 전환할 것인지를 놓고 또 다른 갈등 상황이 연출됐습니다.

이때 결정적인 상황이 벌어집니다. 박수영·배현진 등 친윤계가 주축이 된 초선 의원 32명이 비대위 체제로 전환할 것을 요구하는 '연판장'을 권성동 직무대행에게 전달한 겁니다.

이후 비대위 전환에 부정적이었던 권성동 직무대행의 입장이 바뀌게 됐고, 비록 가처분 인용 사태를 겪긴 했지만 국민의힘은 주호영, 정진석 비대위 체제로 차례로 전환되면서 당내 갈등을 봉합하는 데 비교적 성공했습니다.

돌이켜보면 혼란스럽던 당시 상황에서 팽팽하던 균형을 무너뜨리는 시발점이 됐던 것이 바로 '초선 성명서'라고 해도 과언이 아닙니다.

그런데 그 '초선 성명서'가 차기 당 대표 선출 2개월을 앞두고 또다시 등장했습니다.

국민의힘 나경원 전 의원이 17일 대구 동화사를 방문한 뒤 나오고 있다. 〈연합뉴스〉
■ 이번 과녁은 4선 중진 나경원?

나 전 의원의 저출산고령사회위원회 부위원장직 해임을 두고 나 전 의원과 대통령실의 공방이 극에 달하던 시기, 국민의힘 초선 의원 명의의 성명서가 발표됩니다.

제목은 '대통령을 흔들고 당내 분란을 더 이상 야기해서는 안 된다'였습니다.

초선 의원 63명 중 50명(18일 오후 12시 기준)이 참여했는데 무려 80%에 육박하는 수치입니다.

두 장관급 직책에서 동시 해임됐던 나 전 의원이 차기 전당대회 출마를 고심하며 보이고 있는 행보가 옳지 않다고 제동에 나선 겁니다.

"대통령과 참모를 갈라치면서 당내 갈등을 부추기고, 그 갈등을 자신의 전당대회 출마의 명분으로 삼으려는 건 20년 가까이 당에 몸담은 선배 정치인의 모습이라고 믿기 어렵습니다."

"대통령을 위한다면서 대통령을 무능한 리더라고 모욕하는 건 묵과할 수 없는 위선이며 대한민국에서 추방돼야 할 정치적 사기 행위입니다."

'경악', '선배 정치인이라고 보기 어렵다', '정도를 걸어라' 등 표현도 강경했습니다.

자신의 해임을 두고 대통령실과 진실 게임 양상을 보이던 나 전 의원이지만, 초선 의원들의 이 성명서로 균형의 추가 무너지는 느낌마저 들었습니다.

■ 성명서 발표, 누가 왜 주도했나?

원래 이 성명서는 지난 16일쯤 초안이 만들어졌다고 합니다.

지난해 7월과 비슷하게 강민국, 박수영, 배현진 등 친윤계로 분류되는 초선 의원들의 주도로 작성됐는데, 다만 당시에는 '나경원 전 의원의 자중을 바란다' 정도의 부드러운 어조로 작성됐다고 합니다.

실제 발표된 성명서처럼 강하고 거친 어휘들은 포함되지도 않았다는 게 성명서 작성에 관여한 초선 의원의 설명입니다.

하지만 이 초안은 끝내 발표되지 않았습니다.

성명서 작성 사실을 알게 된 또 다른 당권 주자가 성명서 발표로 나 전 의원이 더 부각되고 역효과가 있을 수 있다는 우려를 전달했기 때문입니다.

한 친윤계 재선의원도 "나 전 의원을 굳이 박해받는 순교자 이미지로 만들어 줄 필요가 없다"는 입장을 전달하며 성명서 발표를 말린 것으로 전해졌습니다.

그런데 다음 날(17일) 나 전 의원의 입장문이 공개됩니다.


"국민과 대통령을 이간하는 당대표가 아닌 국민의 뜻을 있는 그대로 전달하고, 일부 참모들의 왜곡된 보고를 시정하는 당대표가 필요합니다."

"대통령을 에워싸서 눈과 귀를 가리는 여당 지도부는, 결국 대통령과 대통령 지지 세력을 서로 멀어지게 할 것입니다."
(나경원 전 의원 페이스북 中)

이른바 '윤핵관' 의원들을 겨냥했다는 이 글이 공개되자 기류가 180도 바뀌었습니다.

초선 의원들 사이에서 "나 전 의원의 글이 과했다"는 지적과 함께 대응이 필요하다는 공감대가 급속히 확산됐다는 겁니다. 이에 나 전 의원의 입장문 발표 반나절 만에 기존 초안 대신 나 전 의원을 직격하는 성명서가 새로 작성돼서 발표됩니다.

워낙 급작스럽게 진행되다 보니 일부 의원들의 경우 "성명서의 취지만 듣고 동의한 뒤 구체적인 내용은 발표를 보고 확인하기도 했다"고 하며, 그러다 보니 "어휘가 조금 강해서 우려스럽다는 생각이 들었다"는 항변이 내부에서 터져 나오기도 했습니다.

■ 초선, 당 대표, 그리고 22대 총선

대통령의 해임 결정 이후에도 공식 행사를 다니고, 동화사 등 지방 일정을 꿋꿋이 소화하면서 전당대회 출마 가능성을 높여나가던 나 전 의원은 '초선 성명서'라는 불의의 일격에 당혹스런 분위기가 역력합니다.

"배경과 파장에 대해 깊이 숙고하겠다"는 언급 이후 특별한 입장을 내놓지 않고 있으며, 오늘(18일) 참석을 예고했던 대전시당 신년 인사회에도 불참하며 잠행을 이어가고 있습니다.

나 전 의원이 더욱 곤혹스러운 건 20년 가까운 정치 경력이 있지만, 지금 자신에게 반감을 보이는 초선 의원들과는 별다른 접점을 찾기 어렵기 때문일겁니다.

보수 지지층이라면 당을 한 번도 떠나지 않고 정통 보수를 지켜온 자신에게 마음의 빚이 있을 거라는 나 전 의원의 자부심이 이들에게는 큰 영향을 끼치지 못하는 것 아니냐는 해석도 나옵니다.

반대로 이런 상황은 일부 보수 지지층과는 달리 초선 의원들로 하여금 '차기 총선 승리'와 '윤석열 정부의 성공'이라는 확실한 목표 아래 나 전 의원을 강력하게 비판하는 성명서를 낼 수 있었던 원동력으로 작용했습니다.

21대 국회 국민의힘 의석 수는 115명. 그 중 초선 의원은 63명으로 전체의 절반(54.8%)이 넘는 비율을 차지하고 있습니다.

당내 '최대그룹'이란 평가 속에 이들은 두 번의 성명서 발표 이전에도 김종인 비대위원장 추대 투표, 21대 첫 원내대표 선출 방식 변경 등을 이끌었고 청와대 릴레이 1인 시위, 필리버스터 참여 등 야당 시절 대여 투쟁에도 한목소리를 내며 앞장서기도 했습니다.

이제 임기가 15개월가량 남짓 남은 국민의힘 초선 의원들.

고비고비마다 당 내부 여론의 향방에 큰 영향을 끼쳐온 이들이 차기 총선 공천권을 가지는 차기 당 대표 선거에서 어떤 영향력을 행사하고 또 이후 어떤 정치적인 미래를 개척해 나갈지 주목할 부분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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