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씨네마진국] 윤정희 부고에 다시 본 ‘시’…흐른 세월만큼 빛나는 태도

입력 2023.01.22 (08:0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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영화 ‘시’의 주인공 양미자(사진)는 일상 속에서 시상을 찾으려 노력한다. 출처 IMDB.영화 ‘시’의 주인공 양미자(사진)는 일상 속에서 시상을 찾으려 노력한다. 출처 IMDB.

※일요일 아침, 그 주의 시사 이슈와 관련된 영화를 소개합니다. 영화 내용이 포함돼 있습니다.

포스터만 보면 우아한 노년 여성을 주인공으로 하는 '힐링물' 같지만, 이창동 감독의 '시'는 첫 장면부터 무시무시하다. 시(詩)가 고운 언어로 아름다움을 찬미하는 것이라는 통념과 달리, 커다란 타이틀은 죽은 아이의 시(屍)체 옆에 뜬다. 한 단어가 전하는 두 가지 뜻, 반짝이는 강물에 떠오른 여중생의 시신. 아름다움과 끔찍함이 공존하는 화면을 통해 감독이 말하는 건 간단하다. 세상을 똑바로 볼 것. 영화의 주제와도 무관하지 않은 요구다.

장면이 바뀌면 카메라는 주인공 양미자가 앉아 있는 병원 대기실 TV 화면을 비춘다. 아들을 잃고 절규하는 팔레스타인 여성의 인터뷰가 TV에서 흘러나온다. 이때 미자의 시선은 TV를 향해 있지만, 사실은 보고 있지 않은 거나 마찬가지다. 미자가 듣는 시 수업 선생의 말처럼, 본다는 건 "관심을 갖고, 이해하고 싶어서 보는 것이 진짜로 보는 것"이니까. 눈 앞의 고통을 지나치는 행위는 잠시 뒤 또 반복된다. 진료를 마치고 나가려는데, 완전히 정신이 나간 여자가 미자의 눈에 들어온다. 알고 보니 첫 장면에서 시신으로 발견된 아이의 엄마다. 미자는 수군대는 사람들과 함께 여자를 구경하지만, 가십거리 이상의 관심을 두지 않는다. 슈퍼 사람들에게 한 번, 저녁 밥상에 앉은 손자에게 한 번 물어보는 게 전부다. 걔 이름이 뭐야? 왜 그랬대? 몰라, 내가 어떻게 알아. 미자는 그러려니 넘긴다.

배우 윤정희가 연기하는 양미자(왼쪽)은 딸이 맡긴 손자 종욱(오른쪽)을 혼자 키우며 살아간다. 출처 IMDB.배우 윤정희가 연기하는 양미자(왼쪽)은 딸이 맡긴 손자 종욱(오른쪽)을 혼자 키우며 살아간다. 출처 IMDB.

이혼한 딸 대신 혼자 손자 종욱을 키우는 저소득층 여성 미자는 '속없고 예쁜 할머니'다. 고운 옷과 꽃을 좋아하고, 종종 엉뚱한 소리를 한다. 병원에서 알츠하이머 초기 진단을 들은 뒤에도 실없이 웃는다. 천진난만한 미자의 세계는 그러나 곧 위기에 놓인다. 죽은 아이 희진이 사실은 반 년 동안 학교 남학생 6명에게 집단 성폭행을 당해 왔으며, 아무것도 모른다던 종욱이 그 무리 중 한 명이라는 진실을 알게 되면서다.

믿기 싫은 소식을 접한 미자는 냅다 밖으로 나가 뜬금없이 꽃 구경을 한다. 화단에 핀 맨드라미를 들여다 보며, 시상이 떠오를 때를 대비해 갖고 다니는 수첩도 꺼내 든다. 아름다움이 충격을 완화해 줄 수 있다고 믿는 걸까. 미자의 행동이 도피라는 사실은 맨드라미의 꽃말이 '방패'라는 대사를 통해 더욱 선명히 드러난다. 그러나 방패 뒤에 숨어 보고 싶은 것만 보아서는 수첩에 한 줄도 적을 수 없다. 쓰나 마나 한 상투적 문장만 떠오를 뿐이다. 결국, 미자는 범행이 일어났던 학교 과학실습실을 찾아가고, 희진이 뛰어내린 다리 위로도 가 보고, 그 시체가 떠내려 온 강가에 한참 앉아있다가도 온다.

그러면서 미자는 세상을 다시 본다. 지금까지 자신이 보아 온 세상의 반대편, 전혀 아름답지 않은 나머지 반도 온전히 본 뒤에야 미자의 시는 쓰인다. 제 손자가 죽인 거나 다름없는, 희진의 엄마를 대면하고 나서다. 어떤 고통 앞에선 아름다움을 입에 올리는 것조차 죄라는 걸 간신히 깨달은 미자는 자기 나름의 방식으로 해결을 본다. 가해자의 양육자로서 자신의 책임을 다하고, 사랑하는 손자를 올바른 길로 이끌며, 피해자에게는 최소한의 도리를 다하는 길을 택한다. 영화 속에서 오직 미자만이 그렇게 한다. 학생들 가운데 시를 쓰는 데 성공한 사람도 미자 뿐이다.

13년 만에 이 영화를 다시 본 건 물론 며칠 전 들려온 윤정희 배우의 부고 때문이다. 이창동 감독은 윤정희의 본명을 그대로 가져다 쓸 만큼, 처음부터 윤정희를 생각하며 시나리오를 썼다고 한다. 그래서인지 소녀 같은 미자의 모습 대부분이 자연인 윤정희를 보는 듯 자연스럽지만, 특별히 연기가 빛나는 몇몇 순간이 이번 감상에서 유독 눈에 들어 왔다. 예를 들면 영화 후반 다가온 경찰차를 흘긋 쳐다보는 얼굴 같은 것. 13년 세월이 흐르는 동안 영화 속 미자의 태도는 더더욱 찾아보기 힘든 것이 되었다는 씁쓸함도 함께 느꼈다. 자신의 잘못을 책임지는 사람도, 타인의 고통 앞에 부끄러움을 느낄 줄 아는 이도 점점 줄어들고 있는 건 아닐까. 훌륭한 작품들을 남기고 떠나신 고인의 명복을 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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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씨네마진국] 윤정희 부고에 다시 본 ‘시’…흐른 세월만큼 빛나는 태도
    • 입력 2023-01-22 08:00:18
    씨네마진국
영화 ‘시’의 주인공 양미자(사진)는 일상 속에서 시상을 찾으려 노력한다. 출처 IMDB.
※일요일 아침, 그 주의 시사 이슈와 관련된 영화를 소개합니다. 영화 내용이 포함돼 있습니다.

포스터만 보면 우아한 노년 여성을 주인공으로 하는 '힐링물' 같지만, 이창동 감독의 '시'는 첫 장면부터 무시무시하다. 시(詩)가 고운 언어로 아름다움을 찬미하는 것이라는 통념과 달리, 커다란 타이틀은 죽은 아이의 시(屍)체 옆에 뜬다. 한 단어가 전하는 두 가지 뜻, 반짝이는 강물에 떠오른 여중생의 시신. 아름다움과 끔찍함이 공존하는 화면을 통해 감독이 말하는 건 간단하다. 세상을 똑바로 볼 것. 영화의 주제와도 무관하지 않은 요구다.

장면이 바뀌면 카메라는 주인공 양미자가 앉아 있는 병원 대기실 TV 화면을 비춘다. 아들을 잃고 절규하는 팔레스타인 여성의 인터뷰가 TV에서 흘러나온다. 이때 미자의 시선은 TV를 향해 있지만, 사실은 보고 있지 않은 거나 마찬가지다. 미자가 듣는 시 수업 선생의 말처럼, 본다는 건 "관심을 갖고, 이해하고 싶어서 보는 것이 진짜로 보는 것"이니까. 눈 앞의 고통을 지나치는 행위는 잠시 뒤 또 반복된다. 진료를 마치고 나가려는데, 완전히 정신이 나간 여자가 미자의 눈에 들어온다. 알고 보니 첫 장면에서 시신으로 발견된 아이의 엄마다. 미자는 수군대는 사람들과 함께 여자를 구경하지만, 가십거리 이상의 관심을 두지 않는다. 슈퍼 사람들에게 한 번, 저녁 밥상에 앉은 손자에게 한 번 물어보는 게 전부다. 걔 이름이 뭐야? 왜 그랬대? 몰라, 내가 어떻게 알아. 미자는 그러려니 넘긴다.

배우 윤정희가 연기하는 양미자(왼쪽)은 딸이 맡긴 손자 종욱(오른쪽)을 혼자 키우며 살아간다. 출처 IMDB.
이혼한 딸 대신 혼자 손자 종욱을 키우는 저소득층 여성 미자는 '속없고 예쁜 할머니'다. 고운 옷과 꽃을 좋아하고, 종종 엉뚱한 소리를 한다. 병원에서 알츠하이머 초기 진단을 들은 뒤에도 실없이 웃는다. 천진난만한 미자의 세계는 그러나 곧 위기에 놓인다. 죽은 아이 희진이 사실은 반 년 동안 학교 남학생 6명에게 집단 성폭행을 당해 왔으며, 아무것도 모른다던 종욱이 그 무리 중 한 명이라는 진실을 알게 되면서다.

믿기 싫은 소식을 접한 미자는 냅다 밖으로 나가 뜬금없이 꽃 구경을 한다. 화단에 핀 맨드라미를 들여다 보며, 시상이 떠오를 때를 대비해 갖고 다니는 수첩도 꺼내 든다. 아름다움이 충격을 완화해 줄 수 있다고 믿는 걸까. 미자의 행동이 도피라는 사실은 맨드라미의 꽃말이 '방패'라는 대사를 통해 더욱 선명히 드러난다. 그러나 방패 뒤에 숨어 보고 싶은 것만 보아서는 수첩에 한 줄도 적을 수 없다. 쓰나 마나 한 상투적 문장만 떠오를 뿐이다. 결국, 미자는 범행이 일어났던 학교 과학실습실을 찾아가고, 희진이 뛰어내린 다리 위로도 가 보고, 그 시체가 떠내려 온 강가에 한참 앉아있다가도 온다.

그러면서 미자는 세상을 다시 본다. 지금까지 자신이 보아 온 세상의 반대편, 전혀 아름답지 않은 나머지 반도 온전히 본 뒤에야 미자의 시는 쓰인다. 제 손자가 죽인 거나 다름없는, 희진의 엄마를 대면하고 나서다. 어떤 고통 앞에선 아름다움을 입에 올리는 것조차 죄라는 걸 간신히 깨달은 미자는 자기 나름의 방식으로 해결을 본다. 가해자의 양육자로서 자신의 책임을 다하고, 사랑하는 손자를 올바른 길로 이끌며, 피해자에게는 최소한의 도리를 다하는 길을 택한다. 영화 속에서 오직 미자만이 그렇게 한다. 학생들 가운데 시를 쓰는 데 성공한 사람도 미자 뿐이다.

13년 만에 이 영화를 다시 본 건 물론 며칠 전 들려온 윤정희 배우의 부고 때문이다. 이창동 감독은 윤정희의 본명을 그대로 가져다 쓸 만큼, 처음부터 윤정희를 생각하며 시나리오를 썼다고 한다. 그래서인지 소녀 같은 미자의 모습 대부분이 자연인 윤정희를 보는 듯 자연스럽지만, 특별히 연기가 빛나는 몇몇 순간이 이번 감상에서 유독 눈에 들어 왔다. 예를 들면 영화 후반 다가온 경찰차를 흘긋 쳐다보는 얼굴 같은 것. 13년 세월이 흐르는 동안 영화 속 미자의 태도는 더더욱 찾아보기 힘든 것이 되었다는 씁쓸함도 함께 느꼈다. 자신의 잘못을 책임지는 사람도, 타인의 고통 앞에 부끄러움을 느낄 줄 아는 이도 점점 줄어들고 있는 건 아닐까. 훌륭한 작품들을 남기고 떠나신 고인의 명복을 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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