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년 흑역사’ 선거 개혁…이번에는? 이번에도?

입력 2023.01.23 (08:0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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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계묘년, 정치 개혁 원년 되나?

계묘년(癸卯年), 검은 토끼해가 밝았습니다.

새해를 맞으면 어느 곳에서나 변화와 혁신을 외치며 희망에 들뜨기 마련인데 국회도 예외는 아니었습니다.

화두는 윤석열 대통령과 김진표 국회의장이 동시에 던졌습니다.

"소선거구제는 전부 아니면 전무로 가다 보니 선거가 너무 치열해져 진영이 양극화되고 갈등이 깊어졌다. 중·대선거구제를 통해 대표성을 좀 더 강화하는 방안을 검토해 볼 필요가 있다."

- 윤석열 대통령, 1월 2일 조선일보 인터뷰 中

"정치가 갈등을 해결하기는커녕 갈등을 만들고 있다는 지적을 받고 있다. 승자독식의 선거제도와 정치관계법부터 전면적으로 정비해야 한다."

- 김진표 국회의장, 1월 11일 신년기자 간담회 中

행정부와 입법부 수장이 '정치 개혁' 필요성, 그 중에서도 콕 짚어 '선거제도 개혁'이 필요하다고 동시에 외친 겁니다. 전국 단위 선거가 없는 2023년이 개혁의 적기라는 판단 때문으로 보입니다.

곧바로 국회에선 "중·대선거구제로 개편해야 한다", "지역 사정을 고려해 도농복합제도로 가야 한다", "총선을 앞두고 이뤄지는 정치 쇼에 불과하다"는 등 찬반 논란이 이어지고 있습니다.

하지만 수많은 기대와 압력에도 아직은 '비관론'이 우세해 보입니다. 정파와 진영의 높은 벽, 특히 정작 개혁의 주체인 국회의원들조차 기득권 포기 문제로 속내가 복잡하기 때문입니다.

1988년 소선거구제 도입 이후 '20년 흑역사'를 가진 선거제도 개혁, 이번에도 좌초하게 되는 걸까요?

'초당적 정치개혁 의원모임' 닻 올려…정파 넘은 협력 필요

그러던 와중, 주목할만한 움직임이 나왔습니다.

지난 16일, 국민의힘과 더불어민주당 등 여야 의원 50여 명이 참여하는 '초당적 정치개혁 의원 모임'이 첫 모임을 가졌습니다. 이들은 자발적으로 모인 이유를 "절박하기 때문"이라고 말했습니다.

모임에선 "신뢰와 관용 등 공동체를 지켜 온 가치를 잃었다", "진영 간 적대감으로 서로를 향한 악의적 목소리만 높인다" "'영·호남 지역당’으로 굳어진 거대 양당 구조를 깨야 한다"는 진단이 이어졌습니다.

결국, 우 리 사회의 대립과 반목, 갈등의 원인이 현행 정치·선거제도에 있다는 주장입니다.

"현재 정치제도는 망국적인 제도다. 당리당략을 내려놓고 국민과 미래를 내다보면서 초당적으로 적극적으로 협력해야 한다." (이종배 국민의힘 의원)

"정치가 우리 사회의 갈등을 조정·완화하고 국민을 통합해야 하는 데 반대로 가고 있다. 개인과 정당 정파의 유·불리를 넘어 국민만 생각하며 개혁을 해야 한다." (정성호 더불어민주당 의원)

이 자리에선 21대 총선에 처음 도입됐지만, 실제로는 ‘위성정당’ 출현으로 이어지며 비판받은 '준 연동형 비례대표제'에 대한 반성의 목소리도 나왔습니다.

당리당략에 따라 이뤄진 '눈 가리고 아웅 식' 개혁안에 대한 '자성'이었습니다.

"정치관계법은 항상 여야 합의로 처리해 왔다. 하지만 준연동형 비례대표제는 민주당과 정의당이 단독 강행처리했다. 나쁜 선례를 남겼다. 그 이후 과정도 국민들에게 부끄러운 모습이었다." (김상희 더불어민주당 의원)

"정개특위에서 민주당 간사를 했는데, 우리 정치에 오점이라고 할 수 있는 결론이 났다. 책임을 통감한다." (김종민 더불어민주당 의원)


■ "달라진 분위기 느낄 수 있다"

다만 비판의 목소리만 이어진 것은 아닙니다.

이번에는 상황이 다르기 때문에 '구호'에 그쳤던 앞선 논의들과 다를 것이라는 주장도 나왔습니다.

"여야가 선거법 개정을 초당적으로 논의한 것이 16대 국회 이후로 처음이다. 정치가 사회 갈등을 심화시키면 안 된다는데, 이번만큼은 정치권 내 개혁 의지가 크기 때문에 결실을 맺기 위해 노력해야 한다" (김상희 더불어민주당 의원)

"모임을 시작하며 달라진 분위기 느낄 수 있다. 초당적 국회 모임이 자생적으로 생겼고, 윤석열 대통령이 직접 중·대선거구제 필요성을 언급했다. 수도권에서 압도적 의석을 갖고 있는 야당도 적극적으로 참여하고 있다." (이용호 국민의힘 의원)

흔히들 선거제도 개혁은 개헌보다 더 어렵다고 합니다. 각 정당, 의원 개인의 유·불리 계산이 깔려 있기 때문입니다. 선거제도는 또 '그들만의 리그'로 치부돼 대중의 관심에서 멀어지기도 쉽습니다.

이와 관련, 모임 참가자 중 한 명은 "대한민국이라는 배가 바닷속으로 가라앉고 있는데, 누가 선장을 하고 조타를 잡는지가 무슨 의미가 있냐"라고 말했습니다.

선거제 개편과 선거구 획정의 법정 시한은 22대 총선 꼭 1년 전인, 오는 4월 10일까지입니다.

한국정당학회 회장을 지낸 강원택 서울대 정치외교학부 교수는 서울신문과의 인터뷰에서 "선거제도가 바뀌면 선거의 국면이 달라진다. 새로운 정당이 등장할 수도 있고, 기존의 당이 쪼개질 수도 있다. 의원들이 당장을 보고 유·불리를 따지는 건 의미가 없다. 명분과 안목을 갖고 뭐라도 해야 한다"고 말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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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20년 흑역사’ 선거 개혁…이번에는? 이번에도?
    • 입력 2023-01-23 08:00:25
    취재K

■ 계묘년, 정치 개혁 원년 되나?

계묘년(癸卯年), 검은 토끼해가 밝았습니다.

새해를 맞으면 어느 곳에서나 변화와 혁신을 외치며 희망에 들뜨기 마련인데 국회도 예외는 아니었습니다.

화두는 윤석열 대통령과 김진표 국회의장이 동시에 던졌습니다.

"소선거구제는 전부 아니면 전무로 가다 보니 선거가 너무 치열해져 진영이 양극화되고 갈등이 깊어졌다. 중·대선거구제를 통해 대표성을 좀 더 강화하는 방안을 검토해 볼 필요가 있다."

- 윤석열 대통령, 1월 2일 조선일보 인터뷰 中

"정치가 갈등을 해결하기는커녕 갈등을 만들고 있다는 지적을 받고 있다. 승자독식의 선거제도와 정치관계법부터 전면적으로 정비해야 한다."

- 김진표 국회의장, 1월 11일 신년기자 간담회 中

행정부와 입법부 수장이 '정치 개혁' 필요성, 그 중에서도 콕 짚어 '선거제도 개혁'이 필요하다고 동시에 외친 겁니다. 전국 단위 선거가 없는 2023년이 개혁의 적기라는 판단 때문으로 보입니다.

곧바로 국회에선 "중·대선거구제로 개편해야 한다", "지역 사정을 고려해 도농복합제도로 가야 한다", "총선을 앞두고 이뤄지는 정치 쇼에 불과하다"는 등 찬반 논란이 이어지고 있습니다.

하지만 수많은 기대와 압력에도 아직은 '비관론'이 우세해 보입니다. 정파와 진영의 높은 벽, 특히 정작 개혁의 주체인 국회의원들조차 기득권 포기 문제로 속내가 복잡하기 때문입니다.

1988년 소선거구제 도입 이후 '20년 흑역사'를 가진 선거제도 개혁, 이번에도 좌초하게 되는 걸까요?

'초당적 정치개혁 의원모임' 닻 올려…정파 넘은 협력 필요

그러던 와중, 주목할만한 움직임이 나왔습니다.

지난 16일, 국민의힘과 더불어민주당 등 여야 의원 50여 명이 참여하는 '초당적 정치개혁 의원 모임'이 첫 모임을 가졌습니다. 이들은 자발적으로 모인 이유를 "절박하기 때문"이라고 말했습니다.

모임에선 "신뢰와 관용 등 공동체를 지켜 온 가치를 잃었다", "진영 간 적대감으로 서로를 향한 악의적 목소리만 높인다" "'영·호남 지역당’으로 굳어진 거대 양당 구조를 깨야 한다"는 진단이 이어졌습니다.

결국, 우 리 사회의 대립과 반목, 갈등의 원인이 현행 정치·선거제도에 있다는 주장입니다.

"현재 정치제도는 망국적인 제도다. 당리당략을 내려놓고 국민과 미래를 내다보면서 초당적으로 적극적으로 협력해야 한다." (이종배 국민의힘 의원)

"정치가 우리 사회의 갈등을 조정·완화하고 국민을 통합해야 하는 데 반대로 가고 있다. 개인과 정당 정파의 유·불리를 넘어 국민만 생각하며 개혁을 해야 한다." (정성호 더불어민주당 의원)

이 자리에선 21대 총선에 처음 도입됐지만, 실제로는 ‘위성정당’ 출현으로 이어지며 비판받은 '준 연동형 비례대표제'에 대한 반성의 목소리도 나왔습니다.

당리당략에 따라 이뤄진 '눈 가리고 아웅 식' 개혁안에 대한 '자성'이었습니다.

"정치관계법은 항상 여야 합의로 처리해 왔다. 하지만 준연동형 비례대표제는 민주당과 정의당이 단독 강행처리했다. 나쁜 선례를 남겼다. 그 이후 과정도 국민들에게 부끄러운 모습이었다." (김상희 더불어민주당 의원)

"정개특위에서 민주당 간사를 했는데, 우리 정치에 오점이라고 할 수 있는 결론이 났다. 책임을 통감한다." (김종민 더불어민주당 의원)


■ "달라진 분위기 느낄 수 있다"

다만 비판의 목소리만 이어진 것은 아닙니다.

이번에는 상황이 다르기 때문에 '구호'에 그쳤던 앞선 논의들과 다를 것이라는 주장도 나왔습니다.

"여야가 선거법 개정을 초당적으로 논의한 것이 16대 국회 이후로 처음이다. 정치가 사회 갈등을 심화시키면 안 된다는데, 이번만큼은 정치권 내 개혁 의지가 크기 때문에 결실을 맺기 위해 노력해야 한다" (김상희 더불어민주당 의원)

"모임을 시작하며 달라진 분위기 느낄 수 있다. 초당적 국회 모임이 자생적으로 생겼고, 윤석열 대통령이 직접 중·대선거구제 필요성을 언급했다. 수도권에서 압도적 의석을 갖고 있는 야당도 적극적으로 참여하고 있다." (이용호 국민의힘 의원)

흔히들 선거제도 개혁은 개헌보다 더 어렵다고 합니다. 각 정당, 의원 개인의 유·불리 계산이 깔려 있기 때문입니다. 선거제도는 또 '그들만의 리그'로 치부돼 대중의 관심에서 멀어지기도 쉽습니다.

이와 관련, 모임 참가자 중 한 명은 "대한민국이라는 배가 바닷속으로 가라앉고 있는데, 누가 선장을 하고 조타를 잡는지가 무슨 의미가 있냐"라고 말했습니다.

선거제 개편과 선거구 획정의 법정 시한은 22대 총선 꼭 1년 전인, 오는 4월 10일까지입니다.

한국정당학회 회장을 지낸 강원택 서울대 정치외교학부 교수는 서울신문과의 인터뷰에서 "선거제도가 바뀌면 선거의 국면이 달라진다. 새로운 정당이 등장할 수도 있고, 기존의 당이 쪼개질 수도 있다. 의원들이 당장을 보고 유·불리를 따지는 건 의미가 없다. 명분과 안목을 갖고 뭐라도 해야 한다"고 말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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