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특파원 리포트] 고래 싸움에 대박터진 베트남…권력구도가 요동친다

입력 2023.01.24 (10:00) 수정 2023.01.24 (14:5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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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
초코파이를 한해 1천억 원어치를 소비하고, 롯데리아 매장이 270개나 있는 나라. 20여만 명의 한국인이 살고, 지난해 한국에 가장 많은 무역 흑자를 안겨준 나라. 아시아에서 유일하게 한국이 일본보다 먼저 그리고 광범위하게 시장을 선점한 나라. '베트남'이다. 태국만 해도 방문 외국인 중 한국인 비중이 5위쯤 되는데, 지난해 베트남을 찾은 외국인 중에서는 한국인 비중이 제일 높다. 한국인의 필수 코스 '다낭'은 언젠가부터 '경기도 다낭시'로 불린다.

2.
미·중 갈등이 가속화되면서 세계의 공장들이 베트남으로 몰려든다. 고래 싸움에 대박 났다. 애플마저 5월부터 맥북을 베트남에서 생산한다. DELL과 HP까지 베트남으로 갈 태세다. 상당수 중국 기업들도 (미국 관세장벽을 뚫기 위해) 베트남으로 이동 중이다. 투자가 밀려들고 수출이 늘면서, 베트남 경제가 쑥쑥 자란다. 지난해 또 8%나 성장했고, 근로자 임금은 평균 16%나 급등했다(인사이드 비나/베트남 통계총국 인용).

3.
베트남은 중국을 대신할 글로벌 생산기지로 자리를 잡고 있다. 지난해 12월에는 대미 교역량에서 영국을 제치고 7위로 올라섰다. 전자제품 등을 만들어 수출하려면 반도체나 평판디스플레이에서 센서나 철강 등을 수입해야 하는데, 한국이 이런 거 제일 잘 만든다. 지난해 한국은 베트남에 609억 달러를 수출했다. 한국의 대 미국 수출액(1,098억 달러)의 절반을 넘었고, 대 일본 수출액(306억 달러)의 2배에 달한다.

반면 베트남으로부터 수입할 것은 그렇게 많지 않다 보니 무역수지 흑자 규모가 매우 크다. 지난해 대 베트남 무역의 흑자 규모는 342억 달러, 지난해 한국이 무역으로 가장 돈을 많이 벌어온 나라는 중국이나 미국이 아니고 베트남이다. 지난해 우리는 14년 만에 낯선 무역수지 적자를 경험했는데, 그나마 베트남이 적자를 크게 줄여줬다. (산업부 연간수출입 동향 /잠정)


4.
그런데 베트남의 수출은 사실은 '베트남에 들어와 있는 외국 기업들의 수출'이다. 제조 강국으로 발전 할 수 있을까. 지난 86년 도이머이(쇄신)를 기치로 문을 연 베트남 경제는 이후 40배가량 성장했다. 여전히 사회주의 간판을 달고 있지만, 토지의 소유를 사실상 인정하고 국유기업을 크게 줄였다. 빈(Vin)그룹, 비엣젯(VietJet)같은 토종 대기업들이 쑥쑥 자란다.

하지만 여전히 공산당 1당이 지배하고 민주화는 저 멀리 있다. 직선제라며 국회의원 500명을 국민이 선출하지만, 후보는 사실상 공산당 하부조직이 정해준다. 아직도 헌법에는 '국가가 경제를 주도한다'는 조항이 새겨져 있다(이 조항은 늘 논란이다). 정치 거버넌스가 어떻게 바뀌느냐에 따라 언제든 경제의 무게추가 시장에서 국가로 이동할 수 있다.

5.
그 정점에 있는 최고 권력자 '응우옌 푸 쫑(78)' 당 서기장이 부정부패 척결의 칼을 빼 들었다. 사회주의 국가에서 흔한 권력투쟁이려니 했는데, 사정 칼날이 점점 매서워진다. 급기야 며칠 전에는 2인자인 '응우옌 쑤언 푹' 주석이 갑자기 사임했다. '푹' 주석은 두 달 전까지 '강한 부패 척결 의지'를 보였지만, 자신의 라인으로 알려진 2명의 부총리가 비리에 연루되면서 자신도 결국 부패 척결 대상이 됐다(지난 18일 열린 당 중앙집행위는 '푹' 주석의 해임안을 의결하면서 '혁명 정신이 강한 가정에서 태어나 당의 핵심 간부로 있으면서, 코로나 위기 극복에 중요한 성과를 냈다'며 최소한의 예우를 보여줬다.)

사정 정국의 발단은 '특별입국 비리 수사'에서 시작됐다. 2020년 3월 코로나가 번지자 베트남은 입국을 봉쇄했다. 입국이 간절한 기업인 등 수만 명의 내외국인이 '이상하게 비싼' 비용을 치르고 '특별 입국'했다. 폭리는 곧 비리가 됐고 베트남 공안 당국은 수사를 전방위로 확대했다. 2명의 부총리는 물론 외교부 차관과 전 주일 대사 등 고위직들이 줄줄이 소환됐다. 지난해 6월에는 응우옌 타잉 롱 전 보건부 장관이 구속됐다.

부패 척결은 해마다 베트남 정부의 정책 1순위다. 2019년부터는 처벌도 크게 강화했다. 같은해 통신사의 방송사 부당 인수와 관련해 정보통신부 장관이 종신형을 선고받았다. 부패 공무원에게 사형이 선고되는 경우도 많다.

2인자 '푹' 주석의 사임이후 권력 서열 3위인 '팜 민 찐'총리도 비리 연루설이 이어진다. 권력서열 2, 3위가 낙마하게 되면, 분권형 의사결정 시스템을 갖고 있던 베트남의 권력이 '응우옌 푸 쫑' 서기장에게 집중될 가능성이 높다. 이 부패와의 전쟁을 그래서 쫑 서기장의 권력 집중을 위한 '정적 솎아내기'로 보는 시선도 많다.

온건 중도로 평가받는 '응우옌 푸 쫑' 서기장은 베트남식 사회주의 시장경제를 추구한다. 차근차근 권력을 하나로 모으고 있는 쫑 서기장은 지난해 10월, 역시 권력을 하나로 모은 시진핑 주석을 만나 '중국-베트남 전면적 전략협력 동반자 관계의 강화'에 합의했다(베트남은 지독하게 중국과 관계가 좋지 않았다). 반면 사임한 2인자 '응우옌 쑤언 푹'은 친 시장주의자로 특히 친한파였다.

지난 12월 한국을 방문한 ‘응우옌 쑤언 푹’주석이 윤석열 대통령과 함께 용산 대통령실 청사에서 한국 거주 베트남인들의 환영을 받고 있다.  푹 주석은 이후 지난 1월 17일 갑자기 사임했다. 사진  대통령실 사진기자단지난 12월 한국을 방문한 ‘응우옌 쑤언 푹’주석이 윤석열 대통령과 함께 용산 대통령실 청사에서 한국 거주 베트남인들의 환영을 받고 있다. 푹 주석은 이후 지난 1월 17일 갑자기 사임했다. 사진 대통령실 사진기자단

6.
누구는 베트남이 한국처럼 제조 강국이 될 것이라고 하고, 누구는 인건비만 싼 답답한 독재국가로 남을 것이라고 한다. 베트남에게 혁신과 성장은 가깝게 있고, 민주화와 부패 척결은 멀리 있다. 떠오르는 글로벌 생산 기지의 권력 구도가 요동친다. 우리는 베트남 경제에 잔뜩 투자해놨다. 부패 척결이든 권력 구도 재편이든, 잘못되면 가장 손해 보는 나라는 한국이다.

베트남은 올해 6.2%의 성장이 예상된다(IMF). 한국은 누적 기준 베트남에 대한 외국인 투자에서 건수와 액수 모두에서 1위 국가다. 베트남에는 현재 9천여 개의 우리 기업들이 활동하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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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특파원 리포트] 고래 싸움에 대박터진 베트남…권력구도가 요동친다
    • 입력 2023-01-24 10:00:31
    • 수정2023-01-24 14:53:18
    특파원 리포트

1.
초코파이를 한해 1천억 원어치를 소비하고, 롯데리아 매장이 270개나 있는 나라. 20여만 명의 한국인이 살고, 지난해 한국에 가장 많은 무역 흑자를 안겨준 나라. 아시아에서 유일하게 한국이 일본보다 먼저 그리고 광범위하게 시장을 선점한 나라. '베트남'이다. 태국만 해도 방문 외국인 중 한국인 비중이 5위쯤 되는데, 지난해 베트남을 찾은 외국인 중에서는 한국인 비중이 제일 높다. 한국인의 필수 코스 '다낭'은 언젠가부터 '경기도 다낭시'로 불린다.

2.
미·중 갈등이 가속화되면서 세계의 공장들이 베트남으로 몰려든다. 고래 싸움에 대박 났다. 애플마저 5월부터 맥북을 베트남에서 생산한다. DELL과 HP까지 베트남으로 갈 태세다. 상당수 중국 기업들도 (미국 관세장벽을 뚫기 위해) 베트남으로 이동 중이다. 투자가 밀려들고 수출이 늘면서, 베트남 경제가 쑥쑥 자란다. 지난해 또 8%나 성장했고, 근로자 임금은 평균 16%나 급등했다(인사이드 비나/베트남 통계총국 인용).

3.
베트남은 중국을 대신할 글로벌 생산기지로 자리를 잡고 있다. 지난해 12월에는 대미 교역량에서 영국을 제치고 7위로 올라섰다. 전자제품 등을 만들어 수출하려면 반도체나 평판디스플레이에서 센서나 철강 등을 수입해야 하는데, 한국이 이런 거 제일 잘 만든다. 지난해 한국은 베트남에 609억 달러를 수출했다. 한국의 대 미국 수출액(1,098억 달러)의 절반을 넘었고, 대 일본 수출액(306억 달러)의 2배에 달한다.

반면 베트남으로부터 수입할 것은 그렇게 많지 않다 보니 무역수지 흑자 규모가 매우 크다. 지난해 대 베트남 무역의 흑자 규모는 342억 달러, 지난해 한국이 무역으로 가장 돈을 많이 벌어온 나라는 중국이나 미국이 아니고 베트남이다. 지난해 우리는 14년 만에 낯선 무역수지 적자를 경험했는데, 그나마 베트남이 적자를 크게 줄여줬다. (산업부 연간수출입 동향 /잠정)


4.
그런데 베트남의 수출은 사실은 '베트남에 들어와 있는 외국 기업들의 수출'이다. 제조 강국으로 발전 할 수 있을까. 지난 86년 도이머이(쇄신)를 기치로 문을 연 베트남 경제는 이후 40배가량 성장했다. 여전히 사회주의 간판을 달고 있지만, 토지의 소유를 사실상 인정하고 국유기업을 크게 줄였다. 빈(Vin)그룹, 비엣젯(VietJet)같은 토종 대기업들이 쑥쑥 자란다.

하지만 여전히 공산당 1당이 지배하고 민주화는 저 멀리 있다. 직선제라며 국회의원 500명을 국민이 선출하지만, 후보는 사실상 공산당 하부조직이 정해준다. 아직도 헌법에는 '국가가 경제를 주도한다'는 조항이 새겨져 있다(이 조항은 늘 논란이다). 정치 거버넌스가 어떻게 바뀌느냐에 따라 언제든 경제의 무게추가 시장에서 국가로 이동할 수 있다.

5.
그 정점에 있는 최고 권력자 '응우옌 푸 쫑(78)' 당 서기장이 부정부패 척결의 칼을 빼 들었다. 사회주의 국가에서 흔한 권력투쟁이려니 했는데, 사정 칼날이 점점 매서워진다. 급기야 며칠 전에는 2인자인 '응우옌 쑤언 푹' 주석이 갑자기 사임했다. '푹' 주석은 두 달 전까지 '강한 부패 척결 의지'를 보였지만, 자신의 라인으로 알려진 2명의 부총리가 비리에 연루되면서 자신도 결국 부패 척결 대상이 됐다(지난 18일 열린 당 중앙집행위는 '푹' 주석의 해임안을 의결하면서 '혁명 정신이 강한 가정에서 태어나 당의 핵심 간부로 있으면서, 코로나 위기 극복에 중요한 성과를 냈다'며 최소한의 예우를 보여줬다.)

사정 정국의 발단은 '특별입국 비리 수사'에서 시작됐다. 2020년 3월 코로나가 번지자 베트남은 입국을 봉쇄했다. 입국이 간절한 기업인 등 수만 명의 내외국인이 '이상하게 비싼' 비용을 치르고 '특별 입국'했다. 폭리는 곧 비리가 됐고 베트남 공안 당국은 수사를 전방위로 확대했다. 2명의 부총리는 물론 외교부 차관과 전 주일 대사 등 고위직들이 줄줄이 소환됐다. 지난해 6월에는 응우옌 타잉 롱 전 보건부 장관이 구속됐다.

부패 척결은 해마다 베트남 정부의 정책 1순위다. 2019년부터는 처벌도 크게 강화했다. 같은해 통신사의 방송사 부당 인수와 관련해 정보통신부 장관이 종신형을 선고받았다. 부패 공무원에게 사형이 선고되는 경우도 많다.

2인자 '푹' 주석의 사임이후 권력 서열 3위인 '팜 민 찐'총리도 비리 연루설이 이어진다. 권력서열 2, 3위가 낙마하게 되면, 분권형 의사결정 시스템을 갖고 있던 베트남의 권력이 '응우옌 푸 쫑' 서기장에게 집중될 가능성이 높다. 이 부패와의 전쟁을 그래서 쫑 서기장의 권력 집중을 위한 '정적 솎아내기'로 보는 시선도 많다.

온건 중도로 평가받는 '응우옌 푸 쫑' 서기장은 베트남식 사회주의 시장경제를 추구한다. 차근차근 권력을 하나로 모으고 있는 쫑 서기장은 지난해 10월, 역시 권력을 하나로 모은 시진핑 주석을 만나 '중국-베트남 전면적 전략협력 동반자 관계의 강화'에 합의했다(베트남은 지독하게 중국과 관계가 좋지 않았다). 반면 사임한 2인자 '응우옌 쑤언 푹'은 친 시장주의자로 특히 친한파였다.

지난 12월 한국을 방문한 ‘응우옌 쑤언 푹’주석이 윤석열 대통령과 함께 용산 대통령실 청사에서 한국 거주 베트남인들의 환영을 받고 있다.  푹 주석은 이후 지난 1월 17일 갑자기 사임했다. 사진  대통령실 사진기자단
6.
누구는 베트남이 한국처럼 제조 강국이 될 것이라고 하고, 누구는 인건비만 싼 답답한 독재국가로 남을 것이라고 한다. 베트남에게 혁신과 성장은 가깝게 있고, 민주화와 부패 척결은 멀리 있다. 떠오르는 글로벌 생산 기지의 권력 구도가 요동친다. 우리는 베트남 경제에 잔뜩 투자해놨다. 부패 척결이든 권력 구도 재편이든, 잘못되면 가장 손해 보는 나라는 한국이다.

베트남은 올해 6.2%의 성장이 예상된다(IMF). 한국은 누적 기준 베트남에 대한 외국인 투자에서 건수와 액수 모두에서 1위 국가다. 베트남에는 현재 9천여 개의 우리 기업들이 활동하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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