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참사’, 다음엔 막을까?…‘참사 종합 대책’ 해부

입력 2023.01.27 (15:49) 수정 2023.01.27 (16:1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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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0.29 이태원 참사 종합대책이 나왔습니다. 대책 내용은 대대적인 기자 브리핑을 통해 공개됐습니다. 참사 90일 만입니다.

159명이 목숨을 잃은 참사. 정부는 무엇을 대책으로 내놨을까요? '이런 일, 또 일어나지 않게 해달라'는 유족과 국민의 요구는 과연 반영됐을까요? 종합대책 내용을 점검해 봤습니다.

■ [대책①] '사고 현장' 바로 본다


이태원에서 신고가 시작된 사고 초반, 소방과 경찰이 현장을 한눈에 볼 수 있었으면 어땠을까요? 초기대응에서 큰 성과를 기대해볼 수도 있었을 겁니다.

그래서 CCTV 활용 폭을 넓히겠다고 합니다.

그동안 개인정보 등의 이유로 재난 예방이나 관리에는 CCTV를 활용할 수 없었습니다. 그런데 제도를 손봐서 이 CCTV를 재난 예방과 관리에 활용하기로 했습니다.

골목 골목을 비추고 있는 방범용 CCTV까지 재난 대응에 동원하는 방안이 추진됩니다. 이렇게 하면, 2027년까지 기존 228개 CCTV(지자체와 경찰·소방)가 53만 개까지 재난 대응에 사용할 수 있다는 게 행정안전부의 설명입니다.

여기에 112나 119 영상신고도 활성화해서 '현장 영상'을 경찰이나 소방이 바로 볼 수 있도록 하는 방안도 추진하기로 했습니다.

모두 '참사 초기 대응'에 실패하지 않겠다는 장치로 보입니다.

■ [대책②] 재난도 '예측'하겠다

재난은 예측하기 어렵습니다. 특히 이태원 참사 같은 사회재난은 더 그렇습니다. 재난의 유형은 복잡해지고 다양해지고 있습니다. 그런데 행안부가 이걸 해보겠답니다.

'신종재난 위험요소 발굴센터'를 만들어 그 역할을 맡기로 했습니다. '신종재난 위험요소 발굴센터'는 전문가가 참여해 상시적으로 위험을 분석하게 됩니다. 이곳에서 새로운 위험 요소를 발굴해 제시하면 바로 대응에 들어가겠다는 겁니다.

관계부처합동 「국가안전시스템 개편」 종합대책 (1.27) 갈무리관계부처합동 「국가안전시스템 개편」 종합대책 (1.27) 갈무리

인파 사고에는 첨단 기술도 도입하기로 했습니다.

휴대전화 기지국을 기반으로 한 위치 신호 데이터와 대중교통 데이터를 종합해 밀집도가 높아지면 행안부 상황판에 빨간색으로 '위험' 신호가 자동으로 표출된다고 합니다.

그 다음에는 AI가 나섭니다. AI가 위 데이터를 기반으로 밀집 위험을 감지하고, '위험'하다고 판단하면 경찰과 소방에 자동으로 알리도록 하는 겁니다.

■ [대책③] '인파 사고' 매뉴얼 만든다

사회재난 유형 28종. 노란색은 최근 추가된 3개 재난 유형. 행안부는 여기에 ‘인파사고’를 추가한다.사회재난 유형 28종. 노란색은 최근 추가된 3개 재난 유형. 행안부는 여기에 ‘인파사고’를 추가한다.

행안부는 재난안전법상 재난 유형에 '인파 사고'를 넣기로 했습니다. 지금의 사회재난도 28종으로 분류해 대응하고 있는데 여기에 '인파 사고'를 넣겠다는 것입니다.

참사 직후 국민이 정부에 공분한 말 중 하나가 '매뉴얼이 없어서'였습니다. 이제 이런 변명은 못하게 될 거 같습니다.

'인파 사고'를 정부의 공식 재난 유형에 넣기로 했습니다. 위 표에 나와 있는 것과 같이 현재 사회 재난은 모두 28종인데, 여기에 인파 사고를 추가하겠다는 겁니다. 이제 정부의 공식 사회재난은 29종입니다.

이렇게 되면 정부는 먼저 '인파 사고 재난 매뉴얼'을 만들어 각급 관공서에 배포합니다. 매뉴얼을 받은 각 지자체는 공무원 개개인에게 '인파 사고'가 발생했을 때 역할을 부여합니다.

요즘 수시로 오는 '재난문자'도 받게 됩니다. 인파 사고 위험이 커지면 해당 지역 주변에 있는 사람들에게 '인파 사고 주의' 문자가 발송되는 겁니다.

■ [평가①] 문제는 '현실 가능성'

"재난 사전 예측? 선제적으로 관리되는 재난이 있다면 재난은 존재하지 않을 것"
- 제진주 / 전 서울시립대 소방방재학과 교수 인터뷰 中

전문가들이 가장 먼저 주목한 건 '현실 가능성'입니다.

제진주 전 서울시립대 소방방재학과 교수는 "특히 갑자기 생기는 사회재난을 예방하기 위해 투자하겠다는 게 바람직하지 않다"고 말했습니다. "사고가 생기자마자 어떻게 대응할지, 그 방안을 만드는 게 더 맞는 길"이라고도 했습니다.

DMAT(Disaster Medical Assistance Team)은 초기 의료대응을 맡아 피해를 최소화하는 역할을 맡는다.DMAT(Disaster Medical Assistance Team)은 초기 의료대응을 맡아 피해를 최소화하는 역할을 맡는다.

제 전 교수는 그러면서 '디맷'(재난의료지원팀)에 대한 정부 대책에 날을 세웠습니다.

디맷은 거점병원에서 의료인 3~4명으로 구성된 재난의료지원팀입니다. 이태원 사고 당시 신속한 출동을 놓고 논란이 된 바 있습니다.

그런데 이번 종합대책에서 정부는 디맷과 소방-경찰-지자체가 정기적으로 합동훈련을 하면서 신속한 구조·구급을 실현하겠다고만 했습니다.

구체적으로 디맷을 구축할만한 인원이나 장소는 있는지, 무엇보다도 의사 등 의료진과 거점 병원 대한 인센티브를 어떻게 확보할 건지는 빠져있습니다.

현실적으로 쉽게 해결할 수 없는 대책을 '합동 훈련' 한 단어가 대신하고 있는 셈입니다.

■ [평가②] 사회적 참사의 책임

"유형화된 재난만 대비하겠다는 인식이 문제"
- 함승희 / 서울시립대 소방방재학과 교수 인터뷰 中

전문가들을 인터뷰하며 가장 아팠던 말이 있습니다. '관리 사각지대 참사'의 재발 가능성입니다.

이태원 참사는 사전에 정해진 유형을 벗어난 재난이었습니다. 참사 직후 정부는 '재난 관리 주관 기관'이 없다고 했습니다. 유형에 없는 사고라 '재난 관리 주관 기관'이 없다는 겁니다. 이상민 행안부 장관이 '자신은 책임자가 아니다.'라던 참사 초반의 발언은 그래서 나온 듯도 합니다.

참사가 발생한 이태원 해밀턴호텔 서 측 골목참사가 발생한 이태원 해밀턴호텔 서 측 골목

함승희 서울시립대 소방방재학과 교수는 "새로운 재난의 유형을 제도 안에 추가만 하며 대비하겠다는 것은 여전히 참사 관리 사각지대 영역을 남겨두겠다는 말과 같다"고 지적합니다. "새로운 유형의 참사가 또 날 수밖에 없는 대책"이라고도 비판했습니다.

앞으로 또 다른 참사가 났을 때 "이번 재난은 기존 재난 분류 유형에 없던 재난"이라는 장관의 말을 또다시 들을 수 있는 가능성이 그대로 남아있습니다.

■ 다시, 묻다.

꼭 45일째. 부모님은 오늘도 거리에 서 있습니다.

영하 10도. 거리의 한기가 시렵지 않습니다. 파고드는 칼바람도 아프지 않습니다.

집을 나섰다가 세상에서 갑자기 사라진 내 아들. 내 딸. 그 슬픔에 비하면, 그 억울함에 비하면 이 한파는 시리지도, 아프지도 않습니다.


해가 바뀌었지만, 아무도 책임지지 않았고, 아무것도 변하지 않았습니다. 부모님은 내 아들이, 내 딸이 '왜 죽어야 했는지' 오늘도 거리에서 묻고 있습니다.

참사 전 아무것도 없었던 때와 비교하면, 이번 대책 다행입니다. 그럼에도 유가족에게 작은 위로라도 되기에는 무언가 부족합니다. 적어도 유가족들이 공감할 수 있는 대책이어야 할 겁니다. 정부뿐 아니라 안전을 가볍게 여기는 이들이 모두 고민할 숙제입니다.

다시 묻습니다. 참사, 이제는 막을 수 있습니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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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참사’, 다음엔 막을까?…‘참사 종합 대책’ 해부
    • 입력 2023-01-27 15:49:42
    • 수정2023-01-27 16:10:25
    취재K

10.29 이태원 참사 종합대책이 나왔습니다. 대책 내용은 대대적인 기자 브리핑을 통해 공개됐습니다. 참사 90일 만입니다.

159명이 목숨을 잃은 참사. 정부는 무엇을 대책으로 내놨을까요? '이런 일, 또 일어나지 않게 해달라'는 유족과 국민의 요구는 과연 반영됐을까요? 종합대책 내용을 점검해 봤습니다.

■ [대책①] '사고 현장' 바로 본다


이태원에서 신고가 시작된 사고 초반, 소방과 경찰이 현장을 한눈에 볼 수 있었으면 어땠을까요? 초기대응에서 큰 성과를 기대해볼 수도 있었을 겁니다.

그래서 CCTV 활용 폭을 넓히겠다고 합니다.

그동안 개인정보 등의 이유로 재난 예방이나 관리에는 CCTV를 활용할 수 없었습니다. 그런데 제도를 손봐서 이 CCTV를 재난 예방과 관리에 활용하기로 했습니다.

골목 골목을 비추고 있는 방범용 CCTV까지 재난 대응에 동원하는 방안이 추진됩니다. 이렇게 하면, 2027년까지 기존 228개 CCTV(지자체와 경찰·소방)가 53만 개까지 재난 대응에 사용할 수 있다는 게 행정안전부의 설명입니다.

여기에 112나 119 영상신고도 활성화해서 '현장 영상'을 경찰이나 소방이 바로 볼 수 있도록 하는 방안도 추진하기로 했습니다.

모두 '참사 초기 대응'에 실패하지 않겠다는 장치로 보입니다.

■ [대책②] 재난도 '예측'하겠다

재난은 예측하기 어렵습니다. 특히 이태원 참사 같은 사회재난은 더 그렇습니다. 재난의 유형은 복잡해지고 다양해지고 있습니다. 그런데 행안부가 이걸 해보겠답니다.

'신종재난 위험요소 발굴센터'를 만들어 그 역할을 맡기로 했습니다. '신종재난 위험요소 발굴센터'는 전문가가 참여해 상시적으로 위험을 분석하게 됩니다. 이곳에서 새로운 위험 요소를 발굴해 제시하면 바로 대응에 들어가겠다는 겁니다.

관계부처합동 「국가안전시스템 개편」 종합대책 (1.27) 갈무리
인파 사고에는 첨단 기술도 도입하기로 했습니다.

휴대전화 기지국을 기반으로 한 위치 신호 데이터와 대중교통 데이터를 종합해 밀집도가 높아지면 행안부 상황판에 빨간색으로 '위험' 신호가 자동으로 표출된다고 합니다.

그 다음에는 AI가 나섭니다. AI가 위 데이터를 기반으로 밀집 위험을 감지하고, '위험'하다고 판단하면 경찰과 소방에 자동으로 알리도록 하는 겁니다.

■ [대책③] '인파 사고' 매뉴얼 만든다

사회재난 유형 28종. 노란색은 최근 추가된 3개 재난 유형. 행안부는 여기에 ‘인파사고’를 추가한다.
행안부는 재난안전법상 재난 유형에 '인파 사고'를 넣기로 했습니다. 지금의 사회재난도 28종으로 분류해 대응하고 있는데 여기에 '인파 사고'를 넣겠다는 것입니다.

참사 직후 국민이 정부에 공분한 말 중 하나가 '매뉴얼이 없어서'였습니다. 이제 이런 변명은 못하게 될 거 같습니다.

'인파 사고'를 정부의 공식 재난 유형에 넣기로 했습니다. 위 표에 나와 있는 것과 같이 현재 사회 재난은 모두 28종인데, 여기에 인파 사고를 추가하겠다는 겁니다. 이제 정부의 공식 사회재난은 29종입니다.

이렇게 되면 정부는 먼저 '인파 사고 재난 매뉴얼'을 만들어 각급 관공서에 배포합니다. 매뉴얼을 받은 각 지자체는 공무원 개개인에게 '인파 사고'가 발생했을 때 역할을 부여합니다.

요즘 수시로 오는 '재난문자'도 받게 됩니다. 인파 사고 위험이 커지면 해당 지역 주변에 있는 사람들에게 '인파 사고 주의' 문자가 발송되는 겁니다.

■ [평가①] 문제는 '현실 가능성'

"재난 사전 예측? 선제적으로 관리되는 재난이 있다면 재난은 존재하지 않을 것"
- 제진주 / 전 서울시립대 소방방재학과 교수 인터뷰 中

전문가들이 가장 먼저 주목한 건 '현실 가능성'입니다.

제진주 전 서울시립대 소방방재학과 교수는 "특히 갑자기 생기는 사회재난을 예방하기 위해 투자하겠다는 게 바람직하지 않다"고 말했습니다. "사고가 생기자마자 어떻게 대응할지, 그 방안을 만드는 게 더 맞는 길"이라고도 했습니다.

DMAT(Disaster Medical Assistance Team)은 초기 의료대응을 맡아 피해를 최소화하는 역할을 맡는다.
제 전 교수는 그러면서 '디맷'(재난의료지원팀)에 대한 정부 대책에 날을 세웠습니다.

디맷은 거점병원에서 의료인 3~4명으로 구성된 재난의료지원팀입니다. 이태원 사고 당시 신속한 출동을 놓고 논란이 된 바 있습니다.

그런데 이번 종합대책에서 정부는 디맷과 소방-경찰-지자체가 정기적으로 합동훈련을 하면서 신속한 구조·구급을 실현하겠다고만 했습니다.

구체적으로 디맷을 구축할만한 인원이나 장소는 있는지, 무엇보다도 의사 등 의료진과 거점 병원 대한 인센티브를 어떻게 확보할 건지는 빠져있습니다.

현실적으로 쉽게 해결할 수 없는 대책을 '합동 훈련' 한 단어가 대신하고 있는 셈입니다.

■ [평가②] 사회적 참사의 책임

"유형화된 재난만 대비하겠다는 인식이 문제"
- 함승희 / 서울시립대 소방방재학과 교수 인터뷰 中

전문가들을 인터뷰하며 가장 아팠던 말이 있습니다. '관리 사각지대 참사'의 재발 가능성입니다.

이태원 참사는 사전에 정해진 유형을 벗어난 재난이었습니다. 참사 직후 정부는 '재난 관리 주관 기관'이 없다고 했습니다. 유형에 없는 사고라 '재난 관리 주관 기관'이 없다는 겁니다. 이상민 행안부 장관이 '자신은 책임자가 아니다.'라던 참사 초반의 발언은 그래서 나온 듯도 합니다.

참사가 발생한 이태원 해밀턴호텔 서 측 골목
함승희 서울시립대 소방방재학과 교수는 "새로운 재난의 유형을 제도 안에 추가만 하며 대비하겠다는 것은 여전히 참사 관리 사각지대 영역을 남겨두겠다는 말과 같다"고 지적합니다. "새로운 유형의 참사가 또 날 수밖에 없는 대책"이라고도 비판했습니다.

앞으로 또 다른 참사가 났을 때 "이번 재난은 기존 재난 분류 유형에 없던 재난"이라는 장관의 말을 또다시 들을 수 있는 가능성이 그대로 남아있습니다.

■ 다시, 묻다.

꼭 45일째. 부모님은 오늘도 거리에 서 있습니다.

영하 10도. 거리의 한기가 시렵지 않습니다. 파고드는 칼바람도 아프지 않습니다.

집을 나섰다가 세상에서 갑자기 사라진 내 아들. 내 딸. 그 슬픔에 비하면, 그 억울함에 비하면 이 한파는 시리지도, 아프지도 않습니다.


해가 바뀌었지만, 아무도 책임지지 않았고, 아무것도 변하지 않았습니다. 부모님은 내 아들이, 내 딸이 '왜 죽어야 했는지' 오늘도 거리에서 묻고 있습니다.

참사 전 아무것도 없었던 때와 비교하면, 이번 대책 다행입니다. 그럼에도 유가족에게 작은 위로라도 되기에는 무언가 부족합니다. 적어도 유가족들이 공감할 수 있는 대책이어야 할 겁니다. 정부뿐 아니라 안전을 가볍게 여기는 이들이 모두 고민할 숙제입니다.

다시 묻습니다. 참사, 이제는 막을 수 있습니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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