은퇴 12일, 무지개 다리 건넌 119구조견 ‘소백이’

입력 2023.01.30 (17:41) 수정 2023.03.10 (15:3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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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22년 2월, 광주 아이파크 붕괴사고 현장  실종자 수색 모습2022년 2월, 광주 아이파크 붕괴사고 현장 실종자 수색 모습

2022년 1월 25일. 광주 신축 아파트 붕괴 15일째.

그날도 실종자 수색은 난항이었습니다. 그런데 오후 4시 3분. 27층에 진입한 119 구조견 '소백이'가 짖기 시작했습니다. 입구부터 벽돌이 무너져 있어 수색이 쉽지 않은 지점이었습니다. 구조대원들은 이날 저녁, 매몰자의 흔적을 찾았습니다.

9살 소백이는 베테랑 구조견이었습니다. 9년 동안 223건의 재난 현장에 출동해 13명의 생명을 구했습니다. 그리고 지난 13일 구조견의 임무를 다하고 은퇴했습니다.

은퇴한 소백이는 일반 가정에 분양됐고, 남은 생을 반려견으로서 보내기로 돼 있었습니다. 그런데 지난 25일, 소백이가 숨졌습니다. 은퇴 12일 만입니다.

■ 은퇴 12일, 하늘로 간 '소백이'


일반 가정으로 간 이튿날부터 소백이의 구토와 기침이 시작됐습니다. 입양 가정에서 소백이를 병원에 데려가 수차례 검사를 했습니다. 그리고 지난 22일 '림프종(혈액암)' 진단을 받았습니다.

재난 현장을 함께 했던 소백이 핸들러 김성환 소방장(영남 119특수구조대)에게도 곧바로 이 소식이 전해졌습니다. 설 연휴였지만 김 소방장은 소백이가 있는 경기 수원으로 달려갔고, 특수구조대에서 소백이를 다시 맡아 관리할 수 있도록 '관리전환' 절차를 밟습니다(사망 후 관리전환 철회).

옛 주인에게 돌아온 소백이는 정밀 검사와 처치를 받았습니다. 상황은 좋지 않았습니다. 소견서상 다발성 림프종 5기로, 이미 여러 장기에 암 세포가 퍼진 상태였습니다. 그리고 사흘 뒤, 소백이는 호흡곤란을 겪다 결국, 다시는 눈을 뜨지 못했습니다.

소백이의 죽음은 너무도 갑작스러웠습니다. 은퇴 전인 지난해 10월 병원 진료도 받았습니다. 기침 증상이 있어 병원을 찾아 각종 검사를 받고 '기도 염증' 진단을 받았을 뿐 다른 특이 소견은 없었습니다.

■ 그들을 위한 최소한의 배려

"그렇게 아픈 줄은 꿈에도 몰랐습니다. 아프지 않았다면 일반 가정에서 더 행복한 노후를 보냈을 텐데…. 갑자기 환경이 바뀌면서 건강상태가 악화된 것 같아 마음이 아픕니다."
- 김성환 영남 119특수구조대 소방장(소백이 前 핸들러)

김 소방장은 소백이를 '최고의 구조견'으로 기억합니다. 소백이는 지난해 1월 광주 아이파크 붕괴사고 현장에서 가장 먼저 실종자 1명을 발견했습니다. 수색 과정에서 무릎 인대를 다치기도 했지만, 소백이의 활약은 계속 됐고, 실종자 6명 가운데 4명을 찾아냈습니다.

일생을 사람의 목숨을 지키기 위해 희생하는 구조견. 지금도 전국에는 35마리의 119구조견들이 생전 소백이처럼 현장에서 누군가의 생명을 구하고 있습니다. 이들의 노후를 위해 바뀌어야 할 건 없는 걸까요?

"소백이가 기침을 해서 병원을 갔다가 '폐렴' 진단을 받았고, 결국 '림프종' 진단까지 받았습니다.
기침하는데도 아이가 아픈 줄 몰랐다는 점이 문제라고 생각합니다."
- 소백이 입양인 (KBS와의 통화)

은퇴한 소백이의 입양인은 KBS와의 통화에서 '관리 소홀' 문제를 지적했습니다. 입양인은 "소백이가 기침을 하는데도 몰랐다면 문제고, 그걸 알면서도 멀쩡하다며 검진 없이 은퇴시켰다면 더 큰 문제"라고 말했습니다.

소백이의 입양인은 2020년에도 119 구조견이었던 세빈이를 입양했습니다. 세빈이는 당시 7살의 나이로, 만성 신부전증과 고관절 이형성증을 앓는 채로 은퇴했습니다.

세빈과 소백을 만나본 입양인은 구조견에 대한 지원이 필요하다고 말합니다. 그는 "구조견 수는 계속 늘지만 아이들을 관리할 인력과 금전적 지원은 여전히 부족해보인다"며 "구조견을 위한 지원이 받쳐줘야 아이들의 건강 상태를 더 잘 관찰하고 관리할 수 있을 것"이라고 했습니다.

또, 은퇴견에 대한 처우도 달라져야 한다고 얘기합니다. 은퇴견은 장기간 활동으로 아픈 경우가 있어 입양을 꺼립니다. 이 경우, 1년에 한 번씩 정기 검진을 해주거나 혹은 정기 검진 할인을 해주는 등 지원이 있어야 입양인의 부담이 줄어들 거란 지적입니다.

2022년 8월, 충남 부여 실종자 수색 활동 당시 소백이 모습2022년 8월, 충남 부여 실종자 수색 활동 당시 소백이 모습

사실 넓은 구조 현장에서 장시간 일하는 구조견들은 매년 정기 검진을 받습니다. 1년마다 관절과 흉부 건강 상태를 보기 위해 엑스레이를 찍고, 혈액 검사와 초음파 검사 등을 받는 건데요. 이외에도 이상 증상을 보일 때마다 병원을 찾아가 수시로 진찰을 받습니다.

하지만 은퇴 뒤 입양을 위한 별도의 검진은 없습니다. 구조견에서 반려견으로 노후를 보내기 위한 최소한의 준비를 받지 못하고 있는 게 현실입니다.

소백이의 죽음 이후, 구조견들을 관리하는 중앙119구조본부는 "앞으로 은퇴 예정인 구조견에 대해 암 검진을 포함한 종합 검진을 실시해 안전한 입양이 될 수 있도록 노력하겠다"고 KBS에 밝혔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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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입력 2023-01-30 17:41:34
    • 수정2023-03-10 15:36:56
    취재K
2022년 2월, 광주 아이파크 붕괴사고 현장  실종자 수색 모습
2022년 1월 25일. 광주 신축 아파트 붕괴 15일째.

그날도 실종자 수색은 난항이었습니다. 그런데 오후 4시 3분. 27층에 진입한 119 구조견 '소백이'가 짖기 시작했습니다. 입구부터 벽돌이 무너져 있어 수색이 쉽지 않은 지점이었습니다. 구조대원들은 이날 저녁, 매몰자의 흔적을 찾았습니다.

9살 소백이는 베테랑 구조견이었습니다. 9년 동안 223건의 재난 현장에 출동해 13명의 생명을 구했습니다. 그리고 지난 13일 구조견의 임무를 다하고 은퇴했습니다.

은퇴한 소백이는 일반 가정에 분양됐고, 남은 생을 반려견으로서 보내기로 돼 있었습니다. 그런데 지난 25일, 소백이가 숨졌습니다. 은퇴 12일 만입니다.

■ 은퇴 12일, 하늘로 간 '소백이'


일반 가정으로 간 이튿날부터 소백이의 구토와 기침이 시작됐습니다. 입양 가정에서 소백이를 병원에 데려가 수차례 검사를 했습니다. 그리고 지난 22일 '림프종(혈액암)' 진단을 받았습니다.

재난 현장을 함께 했던 소백이 핸들러 김성환 소방장(영남 119특수구조대)에게도 곧바로 이 소식이 전해졌습니다. 설 연휴였지만 김 소방장은 소백이가 있는 경기 수원으로 달려갔고, 특수구조대에서 소백이를 다시 맡아 관리할 수 있도록 '관리전환' 절차를 밟습니다(사망 후 관리전환 철회).

옛 주인에게 돌아온 소백이는 정밀 검사와 처치를 받았습니다. 상황은 좋지 않았습니다. 소견서상 다발성 림프종 5기로, 이미 여러 장기에 암 세포가 퍼진 상태였습니다. 그리고 사흘 뒤, 소백이는 호흡곤란을 겪다 결국, 다시는 눈을 뜨지 못했습니다.

소백이의 죽음은 너무도 갑작스러웠습니다. 은퇴 전인 지난해 10월 병원 진료도 받았습니다. 기침 증상이 있어 병원을 찾아 각종 검사를 받고 '기도 염증' 진단을 받았을 뿐 다른 특이 소견은 없었습니다.

■ 그들을 위한 최소한의 배려

"그렇게 아픈 줄은 꿈에도 몰랐습니다. 아프지 않았다면 일반 가정에서 더 행복한 노후를 보냈을 텐데…. 갑자기 환경이 바뀌면서 건강상태가 악화된 것 같아 마음이 아픕니다."
- 김성환 영남 119특수구조대 소방장(소백이 前 핸들러)

김 소방장은 소백이를 '최고의 구조견'으로 기억합니다. 소백이는 지난해 1월 광주 아이파크 붕괴사고 현장에서 가장 먼저 실종자 1명을 발견했습니다. 수색 과정에서 무릎 인대를 다치기도 했지만, 소백이의 활약은 계속 됐고, 실종자 6명 가운데 4명을 찾아냈습니다.

일생을 사람의 목숨을 지키기 위해 희생하는 구조견. 지금도 전국에는 35마리의 119구조견들이 생전 소백이처럼 현장에서 누군가의 생명을 구하고 있습니다. 이들의 노후를 위해 바뀌어야 할 건 없는 걸까요?

"소백이가 기침을 해서 병원을 갔다가 '폐렴' 진단을 받았고, 결국 '림프종' 진단까지 받았습니다.
기침하는데도 아이가 아픈 줄 몰랐다는 점이 문제라고 생각합니다."
- 소백이 입양인 (KBS와의 통화)

은퇴한 소백이의 입양인은 KBS와의 통화에서 '관리 소홀' 문제를 지적했습니다. 입양인은 "소백이가 기침을 하는데도 몰랐다면 문제고, 그걸 알면서도 멀쩡하다며 검진 없이 은퇴시켰다면 더 큰 문제"라고 말했습니다.

소백이의 입양인은 2020년에도 119 구조견이었던 세빈이를 입양했습니다. 세빈이는 당시 7살의 나이로, 만성 신부전증과 고관절 이형성증을 앓는 채로 은퇴했습니다.

세빈과 소백을 만나본 입양인은 구조견에 대한 지원이 필요하다고 말합니다. 그는 "구조견 수는 계속 늘지만 아이들을 관리할 인력과 금전적 지원은 여전히 부족해보인다"며 "구조견을 위한 지원이 받쳐줘야 아이들의 건강 상태를 더 잘 관찰하고 관리할 수 있을 것"이라고 했습니다.

또, 은퇴견에 대한 처우도 달라져야 한다고 얘기합니다. 은퇴견은 장기간 활동으로 아픈 경우가 있어 입양을 꺼립니다. 이 경우, 1년에 한 번씩 정기 검진을 해주거나 혹은 정기 검진 할인을 해주는 등 지원이 있어야 입양인의 부담이 줄어들 거란 지적입니다.

2022년 8월, 충남 부여 실종자 수색 활동 당시 소백이 모습
사실 넓은 구조 현장에서 장시간 일하는 구조견들은 매년 정기 검진을 받습니다. 1년마다 관절과 흉부 건강 상태를 보기 위해 엑스레이를 찍고, 혈액 검사와 초음파 검사 등을 받는 건데요. 이외에도 이상 증상을 보일 때마다 병원을 찾아가 수시로 진찰을 받습니다.

하지만 은퇴 뒤 입양을 위한 별도의 검진은 없습니다. 구조견에서 반려견으로 노후를 보내기 위한 최소한의 준비를 받지 못하고 있는 게 현실입니다.

소백이의 죽음 이후, 구조견들을 관리하는 중앙119구조본부는 "앞으로 은퇴 예정인 구조견에 대해 암 검진을 포함한 종합 검진을 실시해 안전한 입양이 될 수 있도록 노력하겠다"고 KBS에 밝혔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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