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태원 안정적 관리” 보고받은 서울경찰청장…검찰 수사 전략은?

입력 2023.02.01 (08:00) 수정 2023.02.01 (08:0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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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대규모 인파가 몰려나오고 있어요. 손이 부족합니다.” (밤 9시 10분)

“인파가 이태원파출소 건너편 쪽에 쏟아지고 있는 상황입니다.” (밤 9시 11분)

‘비명 소리’ (밤 10시 20분)

“건너편에 압사 사고!”(밤 10시 23분)

‘비명 소리, 계속…’(밤 10시 28분)

짐작하시듯, 이태원 참사 당일 밤 상황입니다.

저 다급한 외침들은 경찰 무전망입니다. 현장 경찰관들이 상급자에게 위급함을 알리는 내용입니다.

다급한 무전 보고가 이어지던 때, 이임재 전 용산경찰서장은 관용차 안에 있었습니다. 이 서장의 무전기가 4대나 설치돼 있었습니다.

그렇다면, 이 전 서장은 관용차 안에서 이태원 상황을 실시간으로 듣지 않았을까요.

그럴 수밖에 없었다는 게 이태원 특별수사본부와 검찰의 판단입니다. 저렇게 생생한 무전이 쏟아지는데 어떻게 못 듣냐는 겁니다.

널리 알려졌듯이, 이 전 서장은 밤 11시가 넘어 이태원 현장에 도착할 때까지 지시를 내리지 않았습니다. ‘실효적인 지시’는 물론 ‘추상적인 지시’조차 없었다는 게 검찰의 판단입니다.

이런 내용이 담긴 이 전 서장의 공소장이 국회를 통해 공개됐습니다.

여기까지는 지금까지 충분히 알려진 내용입니다. 곱씹어볼 대목은 그 다음부터입니다.

■ “안전 관리 최선 다하겠습니다”

참사 당일 현장의 보고는 철저히 묵살했던 이 전 서장. 상급 기관인 서울경찰청을 향해서는 다른 모습이었습니다. 꼼꼼하고 철저했습니다.


이 전 서장은 참사 전날인 10월 28일 저녁 김광호 서울경찰청장에게 카카오톡으로 보고합니다.

<용산 이태원 핼러윈데이 종합치안대책 보고>

○추진기간 10.28(금)~ 10.31(월)
○주요내용
- 112상황실장을 팀장으로 현장 상황 대응팀 운영
- 이태원파출소 인접 3개 파출소도 야간 순찰팀 150% 확보, 신고처리 신속 대응
...
- 특히 청장님께서 특별 지원해주시는 지방청 마수팀, 관광경찰, 기동대 경력 등과 협력하여 안전하고 질서있게 관리하겠습니다
용산서장 이임재 올림

참사 당일 오전 이 전 서장은 김 청장에게 또다시 보고합니다.

<용산 이태원 핼러윈데이 1일차 상황 보고>
○(112신고) 역대 핼러윈 주말 첫째 날 대비 가장 많은 137건 접수되었으나,
신고처리 공백은 없었음
...
※금일 가장 혼잡한 날이 될 것으로 예상되어 더욱 안전 관리 최선 다하겠습니다.
용산서장 이임재 올림

112 신고가 쏟아졌지만 아무 문제 없이 처리했다고 강조하면서, 핼러윈 축제 이틀째인 참사 당일은 ‘가장 혼잡한 날이 되겠지만 안전 관리 최선을 다하겠다’고 거듭 보고합니다.

현장 지휘관이 상급자에게 업무에 최선을 다하겠다고 보고를 하는 게 이상할 건 없습니다. 당연하고 바람직한 일입니다.

그런데, 이 보고를 ‘반대로’ 뒤집어 보면 어떨까요.

■ “안정적” 보고…김광호 청장에겐 방패?

김광호 서울경찰청장은 현장 지휘관으로부터 ‘상황이 안정적임’을 거듭해서 보고받은 셈입니다.

현장 지휘관이 문제없다 보고했으니, 참사 발생을 예측하기 어려웠다는 방어 논리가 힘을 받게 됩니다.

특수본에 이어 보강 수사를 진행 중인 검찰이 수사력을 모으고 있는 1차 대상은 김광호 서울경찰청장입니다.

서울경찰청을 3번 압수수색했고, 그중 2번은 김 청장 집무실 수색에 공을 들였습니다.


검찰이 김 청장의 구속 기소를 목표로 움직이는 걸 사실상 예고하고 있는데, 김 청장에게 무거운 형사 책임을 묻기 위해 꼭 필요한 법적 요건은 ‘예견 가능성’입니다.

서울 치안을 책임지는 지휘관으로서 이태원 참사를 충분히 예견할 수 있었는데, 치안력을 적절히 동원하지 않았음이 입증돼야 엄벌이 가능한 겁니다.

그러나 ‘신속 대응’ ‘공백 없다’를 반복한 현장 지휘관의 보고를 반복적으로 받았다는 점은 김 청장에게 매우 유리한 사정이 될 수 있습니다.

■ 관건은 ‘명확한’ 지시를 내릴 의무

검찰로선 넘어야 할 산이 더 높아진 셈입니다. 이걸 넘을 검찰의 수사 전략은 뭘까요.

검찰은 일단 ‘서울경찰청 자체 보고’에 초점을 맞추고 있습니다.

설사 용산경찰서장이 그렇게 보고했다고 하더라도, 서울경찰청 내부적으로 충분히 위험을 인지하고 경고하지 않았느냐는 겁니다.

서울경찰청은 정보부와 경비부라는 전담 부서를 두고 있습니다. 다중 인파가 모이는 행사나 축제의 위험성을 예측하고(정보부), 적절한 대응 계획을 세울 임무(경비부)를 부여받은 부서입니다.

이런 부서에서 김 청장에게 핼러윈 축제의 위험성을 보고했다면? 김 청장에게 예견 가능성이 있었다고 볼 여지가 커집니다.

반대로, 서울경찰청 내부 부서마저도 제대로 보고하지 않았다면? 김 청장의 예견 가능성은 더 낮아집니다.

검찰이 만지작거리는 일종의 두 번째 카드는 ‘지휘관은 명확한 지시를 내릴 의무가 있다’는 논리입니다. 지휘관으로서 구체적이고 명확한 지시를 내리지 않았기에, 전담부서마저도 부실하게 대처했다는 점을 입증해 책임을 묻겠다는 전략입니다. 검찰은 관련 판례와 법리를 보강하고 있는 것으로 알려졌습니다.

실제로 검찰은 보강수사를 하면서 서울경찰청 정보부와 경비부를 집중 수사하고 있습니다.

이태원 참사 보름 전인 지난해 10월 14일, 정보부가 작성한 보고서도 꼼꼼히 확인하고 있습니다. 10월 17일과 24일 열린 화상회의도 정밀하게 재구성하고 있습니다. 회의에서 김 청장이 어떤 보고를 받고 어떤 지시를 했는지 정밀 조사 중입니다.


검찰은 이태원 참사 수사팀에 안전사고 전문검사까지 합류시켰습니다. ‘경주 마우나 리조트 체육관 붕괴사고’ 수사 경력이 있는 전문 검사라고 합니다.

경찰 특수본를 넘어서는 수사 성과를 내보겠다는 검찰 조직 차원의 의지로 읽힙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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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이태원 안정적 관리” 보고받은 서울경찰청장…검찰 수사 전략은?
    • 입력 2023-02-01 08:00:25
    • 수정2023-02-01 08:02:48
    취재K

“대규모 인파가 몰려나오고 있어요. 손이 부족합니다.” (밤 9시 10분)

“인파가 이태원파출소 건너편 쪽에 쏟아지고 있는 상황입니다.” (밤 9시 11분)

‘비명 소리’ (밤 10시 20분)

“건너편에 압사 사고!”(밤 10시 23분)

‘비명 소리, 계속…’(밤 10시 28분)

짐작하시듯, 이태원 참사 당일 밤 상황입니다.

저 다급한 외침들은 경찰 무전망입니다. 현장 경찰관들이 상급자에게 위급함을 알리는 내용입니다.

다급한 무전 보고가 이어지던 때, 이임재 전 용산경찰서장은 관용차 안에 있었습니다. 이 서장의 무전기가 4대나 설치돼 있었습니다.

그렇다면, 이 전 서장은 관용차 안에서 이태원 상황을 실시간으로 듣지 않았을까요.

그럴 수밖에 없었다는 게 이태원 특별수사본부와 검찰의 판단입니다. 저렇게 생생한 무전이 쏟아지는데 어떻게 못 듣냐는 겁니다.

널리 알려졌듯이, 이 전 서장은 밤 11시가 넘어 이태원 현장에 도착할 때까지 지시를 내리지 않았습니다. ‘실효적인 지시’는 물론 ‘추상적인 지시’조차 없었다는 게 검찰의 판단입니다.

이런 내용이 담긴 이 전 서장의 공소장이 국회를 통해 공개됐습니다.

여기까지는 지금까지 충분히 알려진 내용입니다. 곱씹어볼 대목은 그 다음부터입니다.

■ “안전 관리 최선 다하겠습니다”

참사 당일 현장의 보고는 철저히 묵살했던 이 전 서장. 상급 기관인 서울경찰청을 향해서는 다른 모습이었습니다. 꼼꼼하고 철저했습니다.


이 전 서장은 참사 전날인 10월 28일 저녁 김광호 서울경찰청장에게 카카오톡으로 보고합니다.

<용산 이태원 핼러윈데이 종합치안대책 보고>

○추진기간 10.28(금)~ 10.31(월)
○주요내용
- 112상황실장을 팀장으로 현장 상황 대응팀 운영
- 이태원파출소 인접 3개 파출소도 야간 순찰팀 150% 확보, 신고처리 신속 대응
...
- 특히 청장님께서 특별 지원해주시는 지방청 마수팀, 관광경찰, 기동대 경력 등과 협력하여 안전하고 질서있게 관리하겠습니다
용산서장 이임재 올림

참사 당일 오전 이 전 서장은 김 청장에게 또다시 보고합니다.

<용산 이태원 핼러윈데이 1일차 상황 보고>
○(112신고) 역대 핼러윈 주말 첫째 날 대비 가장 많은 137건 접수되었으나,
신고처리 공백은 없었음
...
※금일 가장 혼잡한 날이 될 것으로 예상되어 더욱 안전 관리 최선 다하겠습니다.
용산서장 이임재 올림

112 신고가 쏟아졌지만 아무 문제 없이 처리했다고 강조하면서, 핼러윈 축제 이틀째인 참사 당일은 ‘가장 혼잡한 날이 되겠지만 안전 관리 최선을 다하겠다’고 거듭 보고합니다.

현장 지휘관이 상급자에게 업무에 최선을 다하겠다고 보고를 하는 게 이상할 건 없습니다. 당연하고 바람직한 일입니다.

그런데, 이 보고를 ‘반대로’ 뒤집어 보면 어떨까요.

■ “안정적” 보고…김광호 청장에겐 방패?

김광호 서울경찰청장은 현장 지휘관으로부터 ‘상황이 안정적임’을 거듭해서 보고받은 셈입니다.

현장 지휘관이 문제없다 보고했으니, 참사 발생을 예측하기 어려웠다는 방어 논리가 힘을 받게 됩니다.

특수본에 이어 보강 수사를 진행 중인 검찰이 수사력을 모으고 있는 1차 대상은 김광호 서울경찰청장입니다.

서울경찰청을 3번 압수수색했고, 그중 2번은 김 청장 집무실 수색에 공을 들였습니다.


검찰이 김 청장의 구속 기소를 목표로 움직이는 걸 사실상 예고하고 있는데, 김 청장에게 무거운 형사 책임을 묻기 위해 꼭 필요한 법적 요건은 ‘예견 가능성’입니다.

서울 치안을 책임지는 지휘관으로서 이태원 참사를 충분히 예견할 수 있었는데, 치안력을 적절히 동원하지 않았음이 입증돼야 엄벌이 가능한 겁니다.

그러나 ‘신속 대응’ ‘공백 없다’를 반복한 현장 지휘관의 보고를 반복적으로 받았다는 점은 김 청장에게 매우 유리한 사정이 될 수 있습니다.

■ 관건은 ‘명확한’ 지시를 내릴 의무

검찰로선 넘어야 할 산이 더 높아진 셈입니다. 이걸 넘을 검찰의 수사 전략은 뭘까요.

검찰은 일단 ‘서울경찰청 자체 보고’에 초점을 맞추고 있습니다.

설사 용산경찰서장이 그렇게 보고했다고 하더라도, 서울경찰청 내부적으로 충분히 위험을 인지하고 경고하지 않았느냐는 겁니다.

서울경찰청은 정보부와 경비부라는 전담 부서를 두고 있습니다. 다중 인파가 모이는 행사나 축제의 위험성을 예측하고(정보부), 적절한 대응 계획을 세울 임무(경비부)를 부여받은 부서입니다.

이런 부서에서 김 청장에게 핼러윈 축제의 위험성을 보고했다면? 김 청장에게 예견 가능성이 있었다고 볼 여지가 커집니다.

반대로, 서울경찰청 내부 부서마저도 제대로 보고하지 않았다면? 김 청장의 예견 가능성은 더 낮아집니다.

검찰이 만지작거리는 일종의 두 번째 카드는 ‘지휘관은 명확한 지시를 내릴 의무가 있다’는 논리입니다. 지휘관으로서 구체적이고 명확한 지시를 내리지 않았기에, 전담부서마저도 부실하게 대처했다는 점을 입증해 책임을 묻겠다는 전략입니다. 검찰은 관련 판례와 법리를 보강하고 있는 것으로 알려졌습니다.

실제로 검찰은 보강수사를 하면서 서울경찰청 정보부와 경비부를 집중 수사하고 있습니다.

이태원 참사 보름 전인 지난해 10월 14일, 정보부가 작성한 보고서도 꼼꼼히 확인하고 있습니다. 10월 17일과 24일 열린 화상회의도 정밀하게 재구성하고 있습니다. 회의에서 김 청장이 어떤 보고를 받고 어떤 지시를 했는지 정밀 조사 중입니다.


검찰은 이태원 참사 수사팀에 안전사고 전문검사까지 합류시켰습니다. ‘경주 마우나 리조트 체육관 붕괴사고’ 수사 경력이 있는 전문 검사라고 합니다.

경찰 특수본를 넘어서는 수사 성과를 내보겠다는 검찰 조직 차원의 의지로 읽힙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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