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아빠라고 불러’ 그루밍 성범죄 혐의 전직 교사, 기소 의견 송치

입력 2023.02.06 (12:02) 수정 2023.03.30 (11:0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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경기남부경찰청 여성청소년범죄수사대는 오늘(6일) 준강간치상과 공갈 등 혐의를 받는 전직 교사 강 모 씨(53)를 기소의견으로 검찰에 송치했다고 밝혔습니다. 강 씨는 지난 2009년부터 2016년까지 제자였던 피해자 A 씨를 상습적으로 성폭행하고, 자신이 운영하는 과외방이나 학원 등에서 일을 시키며 임금을 갈취한 혐의를 받습니다. 또 역시 전직 교사인 강 씨의 배우자와 30대 제자 2명도 범행을 방조한 혐의 등을 받고 있습니다. 2023년 1월 12일, KBS 탐사보도부가 전직 교사 강 씨의 제자 '그루밍', '가스라이팅' 의혹을 처음으로 세상에 드러낸 지 3주 정도 지나서입니다.

그런데 반년 이상 이어진 KBS 탐사보도부 추적 결과 강 씨는 단순히 A 씨 한 명을 성적, 경제적으로 착취하는 데 그친 것이 아니었습니다. 자신의 남·여 제자 10여 명을 '그루밍'해 집단 생활을 하도록 하며 성 착취를 하고, 일을 시키며 경제적 착취까지 했다는 의혹이 제기된 겁니다. 강 씨는 정말 '두 얼굴의 선생님'이었던 것일까요? 도대체 어떻게 이런 일이 가능했던 걸까요?

■ "아빠가 되어줄게"… 다정한 선생님의 두 얼굴

〈재연 화면〉〈재연 화면〉

2006년, 고등학교 2학년생이었던 피해자 A 씨는 논술 동아리에서 지도교사인 강 씨를 처음 만났습니다. 강 씨는 탁월한 강의력과 학생들에 대한 세심한 관심으로 인기가 많은 교사였습니다. 강 씨는 학생들을 따로 불러 개인 상담을 하며, 학생들의 속내를 듣곤 했습니다. 내성적이고 부모와의 관계가 소원했던 A 씨. 결국, 강 씨의 관심과 격려에 마음을 열고, 학업과 진로 고민, 가정사 고민까지 모두 강 씨에게 털어놓았습니다. 강 씨는 A 씨에게 이제부터 자신이 너의 '아빠'가 되어주겠다고까지 하며, 보호자 역할을 자처했습니다.

하지만 이 특별한 관심은 얼마 지나지 않아, 이상한 요구로 변질 됐습니다. A 씨는 강 씨가 내밀한 신체 사진을 찍게 하더니, 이내 성관계까지 요구했다고 말합니다. 키워드는 '변신' 이야기였습니다. 두려워하는 A 씨에게 강 씨는 "텅 빈 신체를 버리고 충만한 신체로 가야 한다"며, A 씨에게 "주체성을 버리고 자신을 따를 것"을 강요했습니다. 자신이 A 씨에게 얼마나 그동안 많은 호의를 베풀었는지를 강조하기도 했습니다. A 씨는 강 씨가 지속적인 압박과 회유를 반복하다, 결국 2007년, 고등학교 3학년이었던 자신을 성폭행했다고 말합니다. A 씨는 "강 씨가 집에 데려가 강제적 성관계를 했다"며, "아프고 힘들다 얘기했더니 제가 비싸게 구는 거고 유세를 떤다고 했다"고 밝혔습니다.

강 씨는 A 씨가 자신을 벗어나려고 하면, A 씨의 내밀한 사진을 가지고 있다고 협박했다고 합니다. A 씨는 강 씨와의 관계를 끊지 못한 채 재수를 했고, 심지어는 대학에 입학해서도 강 씨와의 관계를 이어나가게 됩니다. A 씨는 "시간이 지나면서 그 사람이 하는 말이나 관점에 점점 세뇌되어, 빠져나오기 힘들었다"고 고백합니다.

강 씨가 논술동아리에서 관계를 맺은 건 A 씨만이 아니었습니다. 강 씨는 또 다른 제자들 역시 개별 상담을 통해, 부모님과의 유대관계가 약하거나, 성장 과정에서 상처가 있는 학생들을 골라내, 자신이 '아빠'가 되어주겠다고 말했다고 합니다. 시간이 깊어질수록 강 씨는 이들에 대한 정신적, 육체적 지배를 강화했습니다.

■ "나를 섬겨라"…지옥 같았던 합숙 생활

강 씨는 이들을 더욱 자신의 통제 아래 두기 위해, 합숙 생활을 시작합니다. 대략 10여 명의 제자들이 함께했던 합숙 생활은 성 착취와 노동력 착취의 결정체였습니다. A 씨는 자신을 비롯한 강 씨의 여성 제자들은 강 씨가 부르면, 언제든 강 씨와의 관계에 기쁘게 응해야 했다고 증언합니다. 강 씨를 중심에 두고, 강 씨를 기쁘게 하는 것이 이 집단의 목적이었다고 합니다. 강 씨의 아내와 두 아들도 함께 살았다고 합니다. 심지어 강 씨의 아내도 중학교 교사로 근무한 '부부 교사'였습니다. 강 씨의 아내는 자신을 '엄마'로 부르게 하며, 강 씨의 행각에 적극적으로 동조했습니다.,강 씨의 아내는 제자들에게 "비싸게 굴지 말고 '아빠'와의 잠자리에 응하라"고 압박했다고 합니다.

〈재연 화면〉〈재연 화면〉

합숙 생활은 남성 제자들도 함께였습니다. 피해자들의 증언에 따르면 주로 강 씨가 가르치던 논술 동아리에서 포섭된 남학생들은 강 씨에게 충성을 다하며, 새로운 여성 제자들은 찾아내 강 씨에게 잇는 역할을 했습니다. 피해자 B 씨는 사귀던 남자친구에게 포섭돼, 이 집단에 들어오게 됐습니다. B 씨는 "뭔가 다 내려놓고, 들어가는 곳이기 때문에 그 당시 이상하다는 생각을 못 하고, 강 씨와 성관계를 했다"고 말했습니다.

KBS의 최초 보도 이후 당시, 비슷한 방식으로 이들 집단에 포섭될 뻔한 사람도 증언에 나섰습니다. 피해자 C 씨는 "당시 만나던 남자친구가 논술 모임이라고 해서, 이들의 모임에 데려갔다"며, "하지만 뭔가 분위기가 종교 단체 같고 너무 이상했다"고 말했습니다. C 씨가 문제의 모임을 목격한 시기는 2007년부터 2008년 사이로 합숙생활로 발전하기 직전이었습니다. 당시 여고생이었던 A 씨가 초기 그루밍과 성범죄를 당했던 시기이기도 합니다. C 씨는 A 씨가 증언했던 강 씨의 구체적인 발언들도 똑같이 기억했습니다. C씨 역시, "강 씨가 '텅 빈 신체를 버리고 충만한 신체로 나아가야한다 '변신 이야기를 했다"고 증언했습니다 . C 씨는 "이상한 느낌이 들어 그들과 멀어졌으나, 그곳에 남아있던 여학생들을 두고 혼자 빠져나왔다는 죄책감에 오랜 시간 시달렸다"고 고백했습니다.

강 씨는 자신의 왕국과 같았던 이 집단을 사업모델로 확장합니다. 강 씨가 포섭한 제자들은 성적이 뛰어나, 수도권 내에서 유수의 명문대를 입학한 재원들이었습니다. 강 씨는 이들을 강사로 내세워 과외방과 학원을 운영해 수입을 올렸습니다. 이들에게 제대로 된 월급을 주지 않았기 때문에, 수익 대부분은 강 씨의 주머니로 들어갔다고 합니다. 강 씨는 자신이 재직하던 학교도 그만두고, 학원 사업에 전념했습니다. A 씨는 당시 생활이 너무 고통스러웠다고 증언합니다. A 씨는 "학원 일을 하고, 집에 와서 집안일을 하고, 제 숙제도 하면 하루에 4, 5시간을 자기도 힘들었다"고 고백했습니다.

〈피해자 인터뷰 장면〉〈피해자 인터뷰 장면〉

지난 2016년, A 씨는 힘겨운 생활을 견디다 못해 집단을 탈출했습니다. 하지만 탈출 이후에도 자신이 성범죄 피해자라는 사실을 인식하긴 어려웠습니다. 탈출 4년만인 2020년 5월, 노무사에게 강 씨에 학원에서 일했던 기간 받지 못했던 임금 관련해 상담하러 갔다가, 문제점을 인식한 노무사에 의해 상담센터로 연결됐습니다.

피해 사실에 대한 제대로 된 인지와 본격적인 추적은 2020년 9월, 법무법인과 첫 상담 이후에야 이뤄졌습니다. KBS 취재진이 처음 사건을 접한 것도 바로 이때쯤입니다. 그러나 A 씨는 그 이후에도 강 씨가 자신에게 보복하지 않을까 하는 두려움에 수차례 진술을 망설이기도 했습니다. 피해자가 결심이 서고, 추가 피해자들과 접촉되면서 2022년 8월에야 경찰 수사가 착수됐고, 5개월 만에 강 씨에 대한 구속영장 신청에 이르렀습니다. 법원은 도주의 위험이 없다며 구속영장을 기각했지만, 경찰은 기소 의견으로 강 씨를 검찰에 불구속 송치했습니다. 경찰은 또 추가 피해자들에 대한 수사도 계속하고 있습니다.

■ '10년의 지배' 어떻게 가능했나?

무려 10년의 지배. 피해자는 고등학생 시절부터 대학생, 그리고 사회인이 되기까지 그 모든 시간을 어떻게 강 씨의 지배 아래 머무를 수 있었을까요? 강 씨 측은 KBS의 취재에 "강 씨와 A 씨는 연인관계"였다며, 성폭행은 사실이 아니라고 주장했습니다.

하지만 전문가들은 입을 모아 이같은 강 씨의 행동이 전형적인 그루밍 성범죄라고 말합니다. 그루밍 범죄는 일반적인 성폭행과 다른 양상을 보입니다. 일반적인 성폭력 범죄는 물리적인 힘을 이용해 강압적이고, 강제적으로 관계를 맺는다면, 그루밍 성범죄는 가해자가 피해자에게 호감을 얻거나 돈독한 관계를 만드는 등 심리적으로 지배한 뒤 성폭력을 가합니다.

김지은 상담심리전문가는 "성폭력을 가할 때, 바로 성폭력을 하면, 피해자도 이것이 폭력임을 인지한다"며 "가해자들은 한 단계, 한 단계 천천히 수위를 높인다"고 말했습니다. 또 "처음에 아주 낮은 강도로 스킨십을 시작했기 때문에 피해자가 '어 이상한데요?' 하며 의문을 제기하면 피해자가 예민하다고 몰아붙인다"며, "그러다가 지난번에 이만큼 했는데 이건 왜 안돼? 이건 왜' 하면서 점점 수위를 올려 나간다"고 설명했습니다.

〈강 씨와 피해자 A와의 SNS 대화〉〈강 씨와 피해자 A와의 SNS 대화〉

KBS가 입수한 두 사람의 SNS 대화 내용을 보면, 강 씨의 대화는 교묘하고 집요합니다. 자신과의 기쁘지 않냐며 답변을 지속적으로 유도하거나, 전부를 걸어야 한다면서 부양 책임을 강요하기도 합니다. 자신을 섬기고, 기쁘게 하는 것이 A 씨의 삶의 목적이라고 세뇌 시키는 겁니다. A 씨는 자신도 모르게 순종하는 상태가 되었다고 합니다. 합숙을 해가며 착취당하면서도 거부할 엄두를 못 낸 이유입니다.

배승민 가천대 길병원 정신건강의학과 교수는 "피해자는 가해자가 설정한 관계 내에 갇혀 있었다고 볼 수 있다"며 "나는 학생이고, 또 나한테는 아빠와 딸 같은 관계를 해준다고 했고, 실제로 잘해줄 때도 있다 보니 더 이상 도망갈 수 없다고 생각한 것으로 보인다"고 말했습니다.

게다가 강 씨는 가정환경이 좋지 않거나, 부모와의 유대 관계가 약한 학생들을 집중적으로 공략했습니다. 아이들 마음의 결핍을 파고들어, 자신을 의지하게 만든겁니다.

배 교수는 "부모님이나 친구들과의 관계가 돈독한 아이들은 이러한 범죄로 끌어들이는 데 많은 품이 든다"며, "그래서 이러한 부분에 취약성이 있는 아이들을 노리고 철저히 통제한 것"이라고 분석했습니다.

또, 강 씨의 제자들은 대부분 수도권 내 이른바 명문대에 갈 정도로 공부를 잘하는 모범생이었습니다. 선생님 말씀을 잘 듣고, 액면 그대로 받아들인 모범생들이 좀 더 쉽게 유입된 겁니다.

■ 강 씨만의 문제일까?…만연한 그루밍 성폭력, 처벌은?

제자들을 성적, 경제적으로 모두 착취한 끔찍한 사건. 하지만 전문가들은 이 사건이 특수한 사례가 아니라고 말합니다.

배 교수는 "현대 사회로 접어들면서, 이런 특징을 가진 가해자들이 점점 늘어나고 있다"며, "이들은 일반적인 소아성애자도 아니고, 학생들을 그루밍하고 이러한 집단을 이용해 금전적 이득을 얻을 수 있는 구조를 만든다"고 말했습니다.

이어, "수면 위로 드러나지 않았을 뿐, 생각보다 흔하다"며, "제가 상담했던 센터에만 한 지역 별로 1년에 몇 건 정도는 접수되는 종류의 사건"이라고 덧붙였습니다.

강 씨에게 적용된 혐의는 준강간치상과 공갈 등으로, 그루밍 범죄에 대한 혐의는 따로 적용되지 않습니다. 온라인 대화로 아동 청소년을 유인하는 온라인 그루밍 행위는 2021년 9월부터 처벌하지만, 오프라인에서 발생하는 그루밍 범죄는 아직 처벌 대상이 아니기 때문입니다.

여성가족부는 이달 초, 처벌 대상을 오프라인까지 확대하겠다고 발표했습니다. 하지만 아직은 법안 발의부터 부처 간 협의 등 많은 절차가 남아있습니다.

우리는 과거에 많은 것들을 경험했고 기억하고 있습니다. 스토킹 범죄나 가정 내 아동학대가 그저 "사랑 하기 때문에", "내 아이니까" 라는 이유로 용인되는 시절도 있었다는 것을 말입니다. 한국 사회에서 스토킹과 아동학대가 법적으로 처벌받게 된 건 그다지 먼 시절의 얘기가 아닙니다. 그리고 이제 우리는 또다시 새로운 것을 경험하고 있습니다. 과연 이번에는 얼마나 많은 시간이 지나야, 얼마나 많은 피해가 반복돼야, 그루밍 범죄 피해자들이 법으로 보호받을 수 있을까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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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아빠라고 불러’ 그루밍 성범죄 혐의 전직 교사, 기소 의견 송치
    • 입력 2023-02-06 12:02:39
    • 수정2023-03-30 11:06:55
    취재K

경기남부경찰청 여성청소년범죄수사대는 오늘(6일) 준강간치상과 공갈 등 혐의를 받는 전직 교사 강 모 씨(53)를 기소의견으로 검찰에 송치했다고 밝혔습니다. 강 씨는 지난 2009년부터 2016년까지 제자였던 피해자 A 씨를 상습적으로 성폭행하고, 자신이 운영하는 과외방이나 학원 등에서 일을 시키며 임금을 갈취한 혐의를 받습니다. 또 역시 전직 교사인 강 씨의 배우자와 30대 제자 2명도 범행을 방조한 혐의 등을 받고 있습니다. 2023년 1월 12일, KBS 탐사보도부가 전직 교사 강 씨의 제자 '그루밍', '가스라이팅' 의혹을 처음으로 세상에 드러낸 지 3주 정도 지나서입니다.

그런데 반년 이상 이어진 KBS 탐사보도부 추적 결과 강 씨는 단순히 A 씨 한 명을 성적, 경제적으로 착취하는 데 그친 것이 아니었습니다. 자신의 남·여 제자 10여 명을 '그루밍'해 집단 생활을 하도록 하며 성 착취를 하고, 일을 시키며 경제적 착취까지 했다는 의혹이 제기된 겁니다. 강 씨는 정말 '두 얼굴의 선생님'이었던 것일까요? 도대체 어떻게 이런 일이 가능했던 걸까요?

■ "아빠가 되어줄게"… 다정한 선생님의 두 얼굴

〈재연 화면〉
2006년, 고등학교 2학년생이었던 피해자 A 씨는 논술 동아리에서 지도교사인 강 씨를 처음 만났습니다. 강 씨는 탁월한 강의력과 학생들에 대한 세심한 관심으로 인기가 많은 교사였습니다. 강 씨는 학생들을 따로 불러 개인 상담을 하며, 학생들의 속내를 듣곤 했습니다. 내성적이고 부모와의 관계가 소원했던 A 씨. 결국, 강 씨의 관심과 격려에 마음을 열고, 학업과 진로 고민, 가정사 고민까지 모두 강 씨에게 털어놓았습니다. 강 씨는 A 씨에게 이제부터 자신이 너의 '아빠'가 되어주겠다고까지 하며, 보호자 역할을 자처했습니다.

하지만 이 특별한 관심은 얼마 지나지 않아, 이상한 요구로 변질 됐습니다. A 씨는 강 씨가 내밀한 신체 사진을 찍게 하더니, 이내 성관계까지 요구했다고 말합니다. 키워드는 '변신' 이야기였습니다. 두려워하는 A 씨에게 강 씨는 "텅 빈 신체를 버리고 충만한 신체로 가야 한다"며, A 씨에게 "주체성을 버리고 자신을 따를 것"을 강요했습니다. 자신이 A 씨에게 얼마나 그동안 많은 호의를 베풀었는지를 강조하기도 했습니다. A 씨는 강 씨가 지속적인 압박과 회유를 반복하다, 결국 2007년, 고등학교 3학년이었던 자신을 성폭행했다고 말합니다. A 씨는 "강 씨가 집에 데려가 강제적 성관계를 했다"며, "아프고 힘들다 얘기했더니 제가 비싸게 구는 거고 유세를 떤다고 했다"고 밝혔습니다.

강 씨는 A 씨가 자신을 벗어나려고 하면, A 씨의 내밀한 사진을 가지고 있다고 협박했다고 합니다. A 씨는 강 씨와의 관계를 끊지 못한 채 재수를 했고, 심지어는 대학에 입학해서도 강 씨와의 관계를 이어나가게 됩니다. A 씨는 "시간이 지나면서 그 사람이 하는 말이나 관점에 점점 세뇌되어, 빠져나오기 힘들었다"고 고백합니다.

강 씨가 논술동아리에서 관계를 맺은 건 A 씨만이 아니었습니다. 강 씨는 또 다른 제자들 역시 개별 상담을 통해, 부모님과의 유대관계가 약하거나, 성장 과정에서 상처가 있는 학생들을 골라내, 자신이 '아빠'가 되어주겠다고 말했다고 합니다. 시간이 깊어질수록 강 씨는 이들에 대한 정신적, 육체적 지배를 강화했습니다.

■ "나를 섬겨라"…지옥 같았던 합숙 생활

강 씨는 이들을 더욱 자신의 통제 아래 두기 위해, 합숙 생활을 시작합니다. 대략 10여 명의 제자들이 함께했던 합숙 생활은 성 착취와 노동력 착취의 결정체였습니다. A 씨는 자신을 비롯한 강 씨의 여성 제자들은 강 씨가 부르면, 언제든 강 씨와의 관계에 기쁘게 응해야 했다고 증언합니다. 강 씨를 중심에 두고, 강 씨를 기쁘게 하는 것이 이 집단의 목적이었다고 합니다. 강 씨의 아내와 두 아들도 함께 살았다고 합니다. 심지어 강 씨의 아내도 중학교 교사로 근무한 '부부 교사'였습니다. 강 씨의 아내는 자신을 '엄마'로 부르게 하며, 강 씨의 행각에 적극적으로 동조했습니다.,강 씨의 아내는 제자들에게 "비싸게 굴지 말고 '아빠'와의 잠자리에 응하라"고 압박했다고 합니다.

〈재연 화면〉
합숙 생활은 남성 제자들도 함께였습니다. 피해자들의 증언에 따르면 주로 강 씨가 가르치던 논술 동아리에서 포섭된 남학생들은 강 씨에게 충성을 다하며, 새로운 여성 제자들은 찾아내 강 씨에게 잇는 역할을 했습니다. 피해자 B 씨는 사귀던 남자친구에게 포섭돼, 이 집단에 들어오게 됐습니다. B 씨는 "뭔가 다 내려놓고, 들어가는 곳이기 때문에 그 당시 이상하다는 생각을 못 하고, 강 씨와 성관계를 했다"고 말했습니다.

KBS의 최초 보도 이후 당시, 비슷한 방식으로 이들 집단에 포섭될 뻔한 사람도 증언에 나섰습니다. 피해자 C 씨는 "당시 만나던 남자친구가 논술 모임이라고 해서, 이들의 모임에 데려갔다"며, "하지만 뭔가 분위기가 종교 단체 같고 너무 이상했다"고 말했습니다. C 씨가 문제의 모임을 목격한 시기는 2007년부터 2008년 사이로 합숙생활로 발전하기 직전이었습니다. 당시 여고생이었던 A 씨가 초기 그루밍과 성범죄를 당했던 시기이기도 합니다. C 씨는 A 씨가 증언했던 강 씨의 구체적인 발언들도 똑같이 기억했습니다. C씨 역시, "강 씨가 '텅 빈 신체를 버리고 충만한 신체로 나아가야한다 '변신 이야기를 했다"고 증언했습니다 . C 씨는 "이상한 느낌이 들어 그들과 멀어졌으나, 그곳에 남아있던 여학생들을 두고 혼자 빠져나왔다는 죄책감에 오랜 시간 시달렸다"고 고백했습니다.

강 씨는 자신의 왕국과 같았던 이 집단을 사업모델로 확장합니다. 강 씨가 포섭한 제자들은 성적이 뛰어나, 수도권 내에서 유수의 명문대를 입학한 재원들이었습니다. 강 씨는 이들을 강사로 내세워 과외방과 학원을 운영해 수입을 올렸습니다. 이들에게 제대로 된 월급을 주지 않았기 때문에, 수익 대부분은 강 씨의 주머니로 들어갔다고 합니다. 강 씨는 자신이 재직하던 학교도 그만두고, 학원 사업에 전념했습니다. A 씨는 당시 생활이 너무 고통스러웠다고 증언합니다. A 씨는 "학원 일을 하고, 집에 와서 집안일을 하고, 제 숙제도 하면 하루에 4, 5시간을 자기도 힘들었다"고 고백했습니다.

〈피해자 인터뷰 장면〉
지난 2016년, A 씨는 힘겨운 생활을 견디다 못해 집단을 탈출했습니다. 하지만 탈출 이후에도 자신이 성범죄 피해자라는 사실을 인식하긴 어려웠습니다. 탈출 4년만인 2020년 5월, 노무사에게 강 씨에 학원에서 일했던 기간 받지 못했던 임금 관련해 상담하러 갔다가, 문제점을 인식한 노무사에 의해 상담센터로 연결됐습니다.

피해 사실에 대한 제대로 된 인지와 본격적인 추적은 2020년 9월, 법무법인과 첫 상담 이후에야 이뤄졌습니다. KBS 취재진이 처음 사건을 접한 것도 바로 이때쯤입니다. 그러나 A 씨는 그 이후에도 강 씨가 자신에게 보복하지 않을까 하는 두려움에 수차례 진술을 망설이기도 했습니다. 피해자가 결심이 서고, 추가 피해자들과 접촉되면서 2022년 8월에야 경찰 수사가 착수됐고, 5개월 만에 강 씨에 대한 구속영장 신청에 이르렀습니다. 법원은 도주의 위험이 없다며 구속영장을 기각했지만, 경찰은 기소 의견으로 강 씨를 검찰에 불구속 송치했습니다. 경찰은 또 추가 피해자들에 대한 수사도 계속하고 있습니다.

■ '10년의 지배' 어떻게 가능했나?

무려 10년의 지배. 피해자는 고등학생 시절부터 대학생, 그리고 사회인이 되기까지 그 모든 시간을 어떻게 강 씨의 지배 아래 머무를 수 있었을까요? 강 씨 측은 KBS의 취재에 "강 씨와 A 씨는 연인관계"였다며, 성폭행은 사실이 아니라고 주장했습니다.

하지만 전문가들은 입을 모아 이같은 강 씨의 행동이 전형적인 그루밍 성범죄라고 말합니다. 그루밍 범죄는 일반적인 성폭행과 다른 양상을 보입니다. 일반적인 성폭력 범죄는 물리적인 힘을 이용해 강압적이고, 강제적으로 관계를 맺는다면, 그루밍 성범죄는 가해자가 피해자에게 호감을 얻거나 돈독한 관계를 만드는 등 심리적으로 지배한 뒤 성폭력을 가합니다.

김지은 상담심리전문가는 "성폭력을 가할 때, 바로 성폭력을 하면, 피해자도 이것이 폭력임을 인지한다"며 "가해자들은 한 단계, 한 단계 천천히 수위를 높인다"고 말했습니다. 또 "처음에 아주 낮은 강도로 스킨십을 시작했기 때문에 피해자가 '어 이상한데요?' 하며 의문을 제기하면 피해자가 예민하다고 몰아붙인다"며, "그러다가 지난번에 이만큼 했는데 이건 왜 안돼? 이건 왜' 하면서 점점 수위를 올려 나간다"고 설명했습니다.

〈강 씨와 피해자 A와의 SNS 대화〉
KBS가 입수한 두 사람의 SNS 대화 내용을 보면, 강 씨의 대화는 교묘하고 집요합니다. 자신과의 기쁘지 않냐며 답변을 지속적으로 유도하거나, 전부를 걸어야 한다면서 부양 책임을 강요하기도 합니다. 자신을 섬기고, 기쁘게 하는 것이 A 씨의 삶의 목적이라고 세뇌 시키는 겁니다. A 씨는 자신도 모르게 순종하는 상태가 되었다고 합니다. 합숙을 해가며 착취당하면서도 거부할 엄두를 못 낸 이유입니다.

배승민 가천대 길병원 정신건강의학과 교수는 "피해자는 가해자가 설정한 관계 내에 갇혀 있었다고 볼 수 있다"며 "나는 학생이고, 또 나한테는 아빠와 딸 같은 관계를 해준다고 했고, 실제로 잘해줄 때도 있다 보니 더 이상 도망갈 수 없다고 생각한 것으로 보인다"고 말했습니다.

게다가 강 씨는 가정환경이 좋지 않거나, 부모와의 유대 관계가 약한 학생들을 집중적으로 공략했습니다. 아이들 마음의 결핍을 파고들어, 자신을 의지하게 만든겁니다.

배 교수는 "부모님이나 친구들과의 관계가 돈독한 아이들은 이러한 범죄로 끌어들이는 데 많은 품이 든다"며, "그래서 이러한 부분에 취약성이 있는 아이들을 노리고 철저히 통제한 것"이라고 분석했습니다.

또, 강 씨의 제자들은 대부분 수도권 내 이른바 명문대에 갈 정도로 공부를 잘하는 모범생이었습니다. 선생님 말씀을 잘 듣고, 액면 그대로 받아들인 모범생들이 좀 더 쉽게 유입된 겁니다.

■ 강 씨만의 문제일까?…만연한 그루밍 성폭력, 처벌은?

제자들을 성적, 경제적으로 모두 착취한 끔찍한 사건. 하지만 전문가들은 이 사건이 특수한 사례가 아니라고 말합니다.

배 교수는 "현대 사회로 접어들면서, 이런 특징을 가진 가해자들이 점점 늘어나고 있다"며, "이들은 일반적인 소아성애자도 아니고, 학생들을 그루밍하고 이러한 집단을 이용해 금전적 이득을 얻을 수 있는 구조를 만든다"고 말했습니다.

이어, "수면 위로 드러나지 않았을 뿐, 생각보다 흔하다"며, "제가 상담했던 센터에만 한 지역 별로 1년에 몇 건 정도는 접수되는 종류의 사건"이라고 덧붙였습니다.

강 씨에게 적용된 혐의는 준강간치상과 공갈 등으로, 그루밍 범죄에 대한 혐의는 따로 적용되지 않습니다. 온라인 대화로 아동 청소년을 유인하는 온라인 그루밍 행위는 2021년 9월부터 처벌하지만, 오프라인에서 발생하는 그루밍 범죄는 아직 처벌 대상이 아니기 때문입니다.

여성가족부는 이달 초, 처벌 대상을 오프라인까지 확대하겠다고 발표했습니다. 하지만 아직은 법안 발의부터 부처 간 협의 등 많은 절차가 남아있습니다.

우리는 과거에 많은 것들을 경험했고 기억하고 있습니다. 스토킹 범죄나 가정 내 아동학대가 그저 "사랑 하기 때문에", "내 아이니까" 라는 이유로 용인되는 시절도 있었다는 것을 말입니다. 한국 사회에서 스토킹과 아동학대가 법적으로 처벌받게 된 건 그다지 먼 시절의 얘기가 아닙니다. 그리고 이제 우리는 또다시 새로운 것을 경험하고 있습니다. 과연 이번에는 얼마나 많은 시간이 지나야, 얼마나 많은 피해가 반복돼야, 그루밍 범죄 피해자들이 법으로 보호받을 수 있을까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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