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실내 온도 7~8도”…난방비 지원 ‘이곳’까진 닿지 않는다

입력 2023.02.08 (17:02) 수정 2023.02.08 (17:0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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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밖에 나가면 춥지. 될 수 있으면 안 나가. 안에서도 화장실 갈 때 추우니까 내복을 입어”

70대 남성 A씨가 머무는 이곳. 고시원입니다.

지난해 6월 고시원에 입주했습니다. 집에 딸이 있지만, 함께 사는 게 불편해 나왔습니다. 딸과 생활 공간이 겹치지 않고, 혼자 밥해 먹기도 좋습니다. 가끔씩 눈치 보지 않고 술 한 잔 마실 수도 있습니다.

10여 년 전 공사장 2층 높이에서 떨어지며 손을 다친 뒤 허드렛일도 할 수 없게 됐습니다. 어쩔 수 없이 주로 실내에서 시간을 보냅니다.

그렇게 고시원에서 첫 겨울을 보내고 있습니다.

■ 한파 때는 실내 온도 7~8도…"잠 못 자"

A 씨가 가끔 바람 쐬러 가는 곳은 서울 탑골공원입니다. 이곳에는 비슷한 처지의 노인들이 많습니다. 상당수가 주변 고시원이나 고시텔에서 거주합니다.


"시설이 열악하긴 열악하지. 자기 집만 하겠어? 여기 방 한칸만 얻어갖고 사는건데. 아무래도 전기장판 하나에 의지해서 살고 그러니까 춥지."
- 고시원 거주자 B 씨 -

마땅한 벌이가 없는 기초생활보장 수급자가 대부분입니다. 몸 하나 누일 좁은 방에서 중앙난방과 전기장판 등에 의지해 하루를 보냅니다.

그들이 하루 대부분을 보내는 고시원은 매우 춥습니다. 취재진이 고시원 문을 열자, 한기가 확 느껴졌습니다.

고시원 거주자 C 씨(76세)도 "영하 17도 정도 되는 때엔 밤에 고시원 (내부) 온도를 보면 7~8도 정도"라고 말했습니다.

당연히 잠을 자기 어렵습니다. 감기는 떨어질 날이 없습니다.

■ " 보일러 켠다고 켜는데"…난방비 폭탄

고시원과 고시텔은 대부분 중앙난방식입니다. 업주가 일괄해서 난방 온도를 조절하는 경우가 많습니다.

예전보다 올해 유독 난방 인심이 팍팍해졌다고 합니다. 고시원·고시텔을 운영하는 업주들에게 이유를 물었습니다.

고시원 업주 D 씨는 난방비 고지서를 취재진에게 보여줬습니다. "이런 고지서는 정말 처음 받아봤다"고 합니다.

D 씨가 고시원을 운영한 건 13년째, 이런 난방비는 처음입니다. 12월 난방비는 1년 전보다 2배 넘게 뛰었습니다.

"보통 난방비를 150~180만원 정도 내는데, 이번 달은 370만원이 나왔죠. 다음 달은 400만원이 넘게 나올 것 같아요."
- 고시원 업주 D 씨 -

전기세, 수도세 모두 오른 터라 난방비 급등의 고통은 이만저만이 아닙니다.


고시원은 사각지대?…지원 늘렸다지만

정부가 지원을 늘리기로 한 '에너지 바우처'는 이런 고시원·고시텔 운영자에겐 별 도움이 되지 않습니다.

상당수 고시원의 거주자들은 월세만 냅니다. 관리비나 난방비 등을 추가로 부담하지 않습니다. 원룸이나 오피스텔과는 차이가 있습니다.

결국, 폭등한 난방비는 모두 업주가 부담해야 합니다.

"다 우리가 내요. 전기세, 수도세, 가스비, 하다못해 밥까지 다 주잖아요. 만약 지원해준다면 이 고시원 운영하는 사람들을 해줘야지요."
- 고시원 업주 D 씨 -

최근 정부가 '에너지 바우처' 지원을 확대했습니다. 그러나 지원 대상은 소득 요건을 갖춘 저소득층에 해당합니다. 고시원 업주는 그 대상에 포함되지 못합니다.

고시원과 고시텔에서만큼은, 난방비 부담 주체수혜 대상에서 완전한 '미스 매치'가 일어나고 있는 겁니다.

물론 고시원에 사는 거주자 일부는 지원을 받을 수 있습니다. 직접 난방을 하지 않기 때문에 바우처가 아닌 현금 지원 형태로 이뤄집니다. 그 돈을 다른 생활비로 돌려쓸 순 있을지언정, 난방비로는 쓸 수 없는 구조입니다.

그러면 난방비가 오른만큼 고시원 월세도 올리면 되지 않을까.

업주들은 "현실적으로 어렵다"고 말합니다. 대부분 고령의 세입자인데다가, 형편상 지금 있는 비용도 비싸 부담하기 어렵다고 하소연하는 경우가 많아 올리기는 쉽지 않다는 겁니다.

에너지 바우처 지원을 받은 거주자들이 삼삼오오 운영자에게 받은 돈을 모아주면 좋겠지만, 옆방에 사는 이가 누군지도 모르는 고시원에서 그런 협의는 쉽지 않습니다.

■ 난방 줄이면 세입자 피해…전열기구 화재 위험도

견디다 못한 운영자는 난방 가동에 인색해질 수밖에 없습니다. 난방을 줄이면 그 피해는 세입자에게 돌아갑니다.

세입자들이 개별적으로 전열기구를 쓰면 화재로 이어질 우려도 큽니다. 2018년 11월, 7명의 목숨을 앗아간 서울 종로구 고시원화재도 전열기구 사용이 한 원인이었습니다.


대책은 없는 걸까요. 에너지관리공단에 물어봤습니다.

난방비를 실제 부담하는 고시원 업주 등에 대해서는 별도의 지원책을 검토할 필요가 있다는 원론적인 답만 돌아왔습니다.

정순둘 이화여대 사회복지학과 교수는 "세입자가 실제로 에너지를 사용하긴 하지만 그 비용을 내는 사람이 다른 사람이라는 데에 문제가 있다"며 "효과를 봐야 할 사람이 오히려 더 효과를 볼 수 없는 상황이 될 수 있다"고 지적했습니다.

시간은 걸리겠지만, 지원 취지에 맞게, 실제 난방비를 부담하는 주체가 그 부담을 덜 수 있도록 제도를 보다 정교하게 다듬을 필요가 있다는 지적이 나오는 이유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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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실내 온도 7~8도”…난방비 지원 ‘이곳’까진 닿지 않는다
    • 입력 2023-02-08 17:02:45
    • 수정2023-02-08 17:03:20
    취재K

“밖에 나가면 춥지. 될 수 있으면 안 나가. 안에서도 화장실 갈 때 추우니까 내복을 입어”

70대 남성 A씨가 머무는 이곳. 고시원입니다.

지난해 6월 고시원에 입주했습니다. 집에 딸이 있지만, 함께 사는 게 불편해 나왔습니다. 딸과 생활 공간이 겹치지 않고, 혼자 밥해 먹기도 좋습니다. 가끔씩 눈치 보지 않고 술 한 잔 마실 수도 있습니다.

10여 년 전 공사장 2층 높이에서 떨어지며 손을 다친 뒤 허드렛일도 할 수 없게 됐습니다. 어쩔 수 없이 주로 실내에서 시간을 보냅니다.

그렇게 고시원에서 첫 겨울을 보내고 있습니다.

■ 한파 때는 실내 온도 7~8도…"잠 못 자"

A 씨가 가끔 바람 쐬러 가는 곳은 서울 탑골공원입니다. 이곳에는 비슷한 처지의 노인들이 많습니다. 상당수가 주변 고시원이나 고시텔에서 거주합니다.


"시설이 열악하긴 열악하지. 자기 집만 하겠어? 여기 방 한칸만 얻어갖고 사는건데. 아무래도 전기장판 하나에 의지해서 살고 그러니까 춥지."
- 고시원 거주자 B 씨 -

마땅한 벌이가 없는 기초생활보장 수급자가 대부분입니다. 몸 하나 누일 좁은 방에서 중앙난방과 전기장판 등에 의지해 하루를 보냅니다.

그들이 하루 대부분을 보내는 고시원은 매우 춥습니다. 취재진이 고시원 문을 열자, 한기가 확 느껴졌습니다.

고시원 거주자 C 씨(76세)도 "영하 17도 정도 되는 때엔 밤에 고시원 (내부) 온도를 보면 7~8도 정도"라고 말했습니다.

당연히 잠을 자기 어렵습니다. 감기는 떨어질 날이 없습니다.

■ " 보일러 켠다고 켜는데"…난방비 폭탄

고시원과 고시텔은 대부분 중앙난방식입니다. 업주가 일괄해서 난방 온도를 조절하는 경우가 많습니다.

예전보다 올해 유독 난방 인심이 팍팍해졌다고 합니다. 고시원·고시텔을 운영하는 업주들에게 이유를 물었습니다.

고시원 업주 D 씨는 난방비 고지서를 취재진에게 보여줬습니다. "이런 고지서는 정말 처음 받아봤다"고 합니다.

D 씨가 고시원을 운영한 건 13년째, 이런 난방비는 처음입니다. 12월 난방비는 1년 전보다 2배 넘게 뛰었습니다.

"보통 난방비를 150~180만원 정도 내는데, 이번 달은 370만원이 나왔죠. 다음 달은 400만원이 넘게 나올 것 같아요."
- 고시원 업주 D 씨 -

전기세, 수도세 모두 오른 터라 난방비 급등의 고통은 이만저만이 아닙니다.


고시원은 사각지대?…지원 늘렸다지만

정부가 지원을 늘리기로 한 '에너지 바우처'는 이런 고시원·고시텔 운영자에겐 별 도움이 되지 않습니다.

상당수 고시원의 거주자들은 월세만 냅니다. 관리비나 난방비 등을 추가로 부담하지 않습니다. 원룸이나 오피스텔과는 차이가 있습니다.

결국, 폭등한 난방비는 모두 업주가 부담해야 합니다.

"다 우리가 내요. 전기세, 수도세, 가스비, 하다못해 밥까지 다 주잖아요. 만약 지원해준다면 이 고시원 운영하는 사람들을 해줘야지요."
- 고시원 업주 D 씨 -

최근 정부가 '에너지 바우처' 지원을 확대했습니다. 그러나 지원 대상은 소득 요건을 갖춘 저소득층에 해당합니다. 고시원 업주는 그 대상에 포함되지 못합니다.

고시원과 고시텔에서만큼은, 난방비 부담 주체수혜 대상에서 완전한 '미스 매치'가 일어나고 있는 겁니다.

물론 고시원에 사는 거주자 일부는 지원을 받을 수 있습니다. 직접 난방을 하지 않기 때문에 바우처가 아닌 현금 지원 형태로 이뤄집니다. 그 돈을 다른 생활비로 돌려쓸 순 있을지언정, 난방비로는 쓸 수 없는 구조입니다.

그러면 난방비가 오른만큼 고시원 월세도 올리면 되지 않을까.

업주들은 "현실적으로 어렵다"고 말합니다. 대부분 고령의 세입자인데다가, 형편상 지금 있는 비용도 비싸 부담하기 어렵다고 하소연하는 경우가 많아 올리기는 쉽지 않다는 겁니다.

에너지 바우처 지원을 받은 거주자들이 삼삼오오 운영자에게 받은 돈을 모아주면 좋겠지만, 옆방에 사는 이가 누군지도 모르는 고시원에서 그런 협의는 쉽지 않습니다.

■ 난방 줄이면 세입자 피해…전열기구 화재 위험도

견디다 못한 운영자는 난방 가동에 인색해질 수밖에 없습니다. 난방을 줄이면 그 피해는 세입자에게 돌아갑니다.

세입자들이 개별적으로 전열기구를 쓰면 화재로 이어질 우려도 큽니다. 2018년 11월, 7명의 목숨을 앗아간 서울 종로구 고시원화재도 전열기구 사용이 한 원인이었습니다.


대책은 없는 걸까요. 에너지관리공단에 물어봤습니다.

난방비를 실제 부담하는 고시원 업주 등에 대해서는 별도의 지원책을 검토할 필요가 있다는 원론적인 답만 돌아왔습니다.

정순둘 이화여대 사회복지학과 교수는 "세입자가 실제로 에너지를 사용하긴 하지만 그 비용을 내는 사람이 다른 사람이라는 데에 문제가 있다"며 "효과를 봐야 할 사람이 오히려 더 효과를 볼 수 없는 상황이 될 수 있다"고 지적했습니다.

시간은 걸리겠지만, 지원 취지에 맞게, 실제 난방비를 부담하는 주체가 그 부담을 덜 수 있도록 제도를 보다 정교하게 다듬을 필요가 있다는 지적이 나오는 이유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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