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특파원 리포트] “11일부터는 물도 거부”…태국 왕실개혁요구 대학생들 건강 급속히 악화

입력 2023.02.09 (14:5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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왕실모독죄 등으로 기소된 대학생 '타완(오른쪽)'과 '밤'이 붉은색 페인트를 뒤집어 쓴 채, 보석 석방을 거부한다고 밝혔다. 이들은 지난달 19일부터 단식투쟁에 돌입했다.

1.

지난 2020년 7월, 방콕에는 뜨겁게 민주화 열기가 몰아쳤다. 연일 대규모 시위대가 쿠데타 정부를 비판하며 정권 교체를 요구했다. 대학생 등 청년들이 주도했지만, 과거 탁신 문민 정권을 지지했던 레드셔츠 등 다양한 국민들이 참여했다. 시위에서 만난 어머니는 KBS와의 인터뷰에서 "딸에게 우리의 미래를 보여주기 위해 참여했다"고 했다.

대학생들은 이 민주화 열기를 왕실 개혁까지 연결하고 싶었다. 다음달 대학생 대표들은 방콕 탐마삿 대학에 모여 '왕실개혁을 위한 10개조항'을 발표했다. 대학생들은 '왕실에 대한 선출된 기관(국회)의 견제와, 왕실 예산의 감축, 왕실의 정치 개입 반대' 등을 요구했다. 하지만 여론은 싸늘했다. 며칠뒤 열린 거리시위에 중장년층의 참여가 썰물 빠지듯 줄었다. 민주화 시위는 사그러들었다. 입헌군주제인 태국에서 '왕실'은 매우 예민하며 복잡한 이슈다.

2.

태국에서 왕이나 왕실에 대한 비판은 언제든 강력한 처벌을 받을 수 있다. '왕의 존엄에 대한 법(lese majeste)'을 위반하면 형법 112조로 처벌 받는다. 1건 당 최대 징역 15년형이 가능하다(이미 수십년 형을 선고받고 복역하고 있는 사람들이 있다). 왕실을 지지하는 왕당파 시민들은 늘 왕실에 비판적인 사람들의 행적을 쫓아 폭로하고 고발한다.

싱가포르에서 마케팅을 전공하고 다시 고국으로 돌아온 탄타완 투아툴라논 (타완, 21)과 대학생이며 환경운동을 해온 오라완 푸퐁 (밤, 23)은 페이스북 라이브로 왕실 차량 행렬을 비판하고, 왕실 차량행렬에 대해 시민들의 의견을 물어본 혐의로 체포돼 기소됐다.


2022년 2월, 방콕 시내 시암에서 ‘타완’과 ‘밤’ 은  시민들에게 “왕실행렬이 문제라고 생각하십니까?” 라는 질문을 던진 혐의 등으로 체포됐다. 사진 SNS2022년 2월, 방콕 시내 시암에서 ‘타완’과 ‘밤’ 은 시민들에게 “왕실행렬이 문제라고 생각하십니까?” 라는 질문을 던진 혐의 등으로 체포됐다. 사진 SNS

지난 1월 16일 보석 심사를 위해 법원에 출두한 이들은 "법원이 표현의 자유를 인정할 것"과, "사흘안에 왕실을 비판하다 체포된 8명의 석방"등을 요구하며 보석을 거부한다고 밝혔다. 이들은 피를 상징하는 빨간색 페인트를 뒤집어쓰고 스스로 유치장으로 들어갔다. 그리고 사흘 뒤인 지난달 19일부터 단식에 돌입했다. 물만 마시며 단식투쟁을 벌이던 두사람은 탈진해 탐마삿 대학병원으로 이송됐다.

병원측은 두사람의 건강 상태가 빠르게 악화되고 있다고 밝혔다. 태국의 로스쿨 대학 교수 50여 명은 대법원장 등에게 보낸 서신에서 '이들의 보석 철회를 취소할 것과 관련 수감자들의 석방'을 촉구했다. 의료인 300여 명도 유엔(UN)과 대법원장, 형사재판소장 등에게 보낸 서신을 통해, '관련 정치범 등을 석방하고 조속히 치료를 받을 수 있게 해달라'고 주장했다.

3.

태국은 영화관에서 영화관람전에 '왕실 찬가'가 울려퍼지고, 관객들은 모두 자리에서 일어나야한다. 하지만 갈수록 일어나 왕실에 예를 표하는 관객이 줄어든다. 태국 북부 치앙마이 대학교 학생회는 대학 졸업식 보이콧 운동을 벌이고 있다. 태국 주요대학의 졸업식에는 늘 왕실 가족이 참여해 학위를 수여한다.

지난 1월 치앙마이대학교 졸업식장에는 "사회를 바꾸려는 선한 의도로 친구들이 감옥에 갇혀있는데, 우리는 왜 왕권을 받아들이는 의식에 참여해야 하는가?"라는 전단지가 뿌려졌다. 방콕 탐마삿 대학 등 일부 대학의 졸업식 참가율이 50% 이하로 떨어졌다고 현지 언론이 전했다.

4.
단식중인 탄타완 투아툴라논(타완/왼쪽)과 이들의 상태를 브리핑하고 있는 탐마삿 대학병원 교수. 사진 채널3 뉴스 캡처단식중인 탄타완 투아툴라논(타완/왼쪽)과 이들의 상태를 브리핑하고 있는 탐마삿 대학병원 교수. 사진 채널3 뉴스 캡처

1월 31일, 솜삭 텝수틴 법무장관이 '타완'과 '밤'이 단식중인 탐마삿 대학병원을 찾았다. 두사람을 만난 솜삭 장관은 "당신들의 행동이 태국의 사법 절차에 변화를 가져올 것"이라고 말하고 단식의 중단을 호소했다. 그는 "정치인으로 수많은 단식을 목격했지만 두사람처럼 엄격한 단식은 보지 못했다"고도 말했다.

2월 6일 병원측은 이들의 신장기능이 빠르게 악화되고, 피가 응고하지않는 괴혈증 증세를 보이고 있다고 전했다. '타완'과 '밤'의 변호사는 이들의 부모에게 연락해 이들이 병원 치료에 당장 응해줄 것을 부탁했다. 하지만 이틀뒤인 지난 8일, '타완'과 '밤'은 자신들의 변호사를 통해 정부가 사흘안에(왕실 비판으로) 구금된 사람들을 석방하지 않으면 오는 11일부터는 병원을 떠나 모든 물과 약물의 섭취를 거부한다고 밝혔다.

타완의 변호사는 타완이 "내가 잠들다 죽으면 여러분이 내가 요구하는 것을 위해 싸워주세요"라고 말했다고 밝혔다. 방콕포스트는 관련 기사에서 '안타깝지만 많은 지지가 없는 싸움(Sympathy, but little support for protest)'이라고 전했다. 국제앰네스티는 태국에서 2020년 민주화 시위 이후 시위에 참여하거나 정치적 의견을 표현했다가 기소된 18세 미만 청소년이 300명에 달하며, 그중 17명은 왕실모독죄로 기소됐다고 밝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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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특파원 리포트] “11일부터는 물도 거부”…태국 왕실개혁요구 대학생들 건강 급속히 악화
    • 입력 2023-02-09 14:50:07
    특파원 리포트

왕실모독죄 등으로 기소된 대학생 '타완(오른쪽)'과 '밤'이 붉은색 페인트를 뒤집어 쓴 채, 보석 석방을 거부한다고 밝혔다. 이들은 지난달 19일부터 단식투쟁에 돌입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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지난 2020년 7월, 방콕에는 뜨겁게 민주화 열기가 몰아쳤다. 연일 대규모 시위대가 쿠데타 정부를 비판하며 정권 교체를 요구했다. 대학생 등 청년들이 주도했지만, 과거 탁신 문민 정권을 지지했던 레드셔츠 등 다양한 국민들이 참여했다. 시위에서 만난 어머니는 KBS와의 인터뷰에서 "딸에게 우리의 미래를 보여주기 위해 참여했다"고 했다.

대학생들은 이 민주화 열기를 왕실 개혁까지 연결하고 싶었다. 다음달 대학생 대표들은 방콕 탐마삿 대학에 모여 '왕실개혁을 위한 10개조항'을 발표했다. 대학생들은 '왕실에 대한 선출된 기관(국회)의 견제와, 왕실 예산의 감축, 왕실의 정치 개입 반대' 등을 요구했다. 하지만 여론은 싸늘했다. 며칠뒤 열린 거리시위에 중장년층의 참여가 썰물 빠지듯 줄었다. 민주화 시위는 사그러들었다. 입헌군주제인 태국에서 '왕실'은 매우 예민하며 복잡한 이슈다.

2.

태국에서 왕이나 왕실에 대한 비판은 언제든 강력한 처벌을 받을 수 있다. '왕의 존엄에 대한 법(lese majeste)'을 위반하면 형법 112조로 처벌 받는다. 1건 당 최대 징역 15년형이 가능하다(이미 수십년 형을 선고받고 복역하고 있는 사람들이 있다). 왕실을 지지하는 왕당파 시민들은 늘 왕실에 비판적인 사람들의 행적을 쫓아 폭로하고 고발한다.

싱가포르에서 마케팅을 전공하고 다시 고국으로 돌아온 탄타완 투아툴라논 (타완, 21)과 대학생이며 환경운동을 해온 오라완 푸퐁 (밤, 23)은 페이스북 라이브로 왕실 차량 행렬을 비판하고, 왕실 차량행렬에 대해 시민들의 의견을 물어본 혐의로 체포돼 기소됐다.


2022년 2월, 방콕 시내 시암에서 ‘타완’과 ‘밤’ 은  시민들에게 “왕실행렬이 문제라고 생각하십니까?” 라는 질문을 던진 혐의 등으로 체포됐다. 사진 SNS
지난 1월 16일 보석 심사를 위해 법원에 출두한 이들은 "법원이 표현의 자유를 인정할 것"과, "사흘안에 왕실을 비판하다 체포된 8명의 석방"등을 요구하며 보석을 거부한다고 밝혔다. 이들은 피를 상징하는 빨간색 페인트를 뒤집어쓰고 스스로 유치장으로 들어갔다. 그리고 사흘 뒤인 지난달 19일부터 단식에 돌입했다. 물만 마시며 단식투쟁을 벌이던 두사람은 탈진해 탐마삿 대학병원으로 이송됐다.

병원측은 두사람의 건강 상태가 빠르게 악화되고 있다고 밝혔다. 태국의 로스쿨 대학 교수 50여 명은 대법원장 등에게 보낸 서신에서 '이들의 보석 철회를 취소할 것과 관련 수감자들의 석방'을 촉구했다. 의료인 300여 명도 유엔(UN)과 대법원장, 형사재판소장 등에게 보낸 서신을 통해, '관련 정치범 등을 석방하고 조속히 치료를 받을 수 있게 해달라'고 주장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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태국은 영화관에서 영화관람전에 '왕실 찬가'가 울려퍼지고, 관객들은 모두 자리에서 일어나야한다. 하지만 갈수록 일어나 왕실에 예를 표하는 관객이 줄어든다. 태국 북부 치앙마이 대학교 학생회는 대학 졸업식 보이콧 운동을 벌이고 있다. 태국 주요대학의 졸업식에는 늘 왕실 가족이 참여해 학위를 수여한다.

지난 1월 치앙마이대학교 졸업식장에는 "사회를 바꾸려는 선한 의도로 친구들이 감옥에 갇혀있는데, 우리는 왜 왕권을 받아들이는 의식에 참여해야 하는가?"라는 전단지가 뿌려졌다. 방콕 탐마삿 대학 등 일부 대학의 졸업식 참가율이 50% 이하로 떨어졌다고 현지 언론이 전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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단식중인 탄타완 투아툴라논(타완/왼쪽)과 이들의 상태를 브리핑하고 있는 탐마삿 대학병원 교수. 사진 채널3 뉴스 캡처
1월 31일, 솜삭 텝수틴 법무장관이 '타완'과 '밤'이 단식중인 탐마삿 대학병원을 찾았다. 두사람을 만난 솜삭 장관은 "당신들의 행동이 태국의 사법 절차에 변화를 가져올 것"이라고 말하고 단식의 중단을 호소했다. 그는 "정치인으로 수많은 단식을 목격했지만 두사람처럼 엄격한 단식은 보지 못했다"고도 말했다.

2월 6일 병원측은 이들의 신장기능이 빠르게 악화되고, 피가 응고하지않는 괴혈증 증세를 보이고 있다고 전했다. '타완'과 '밤'의 변호사는 이들의 부모에게 연락해 이들이 병원 치료에 당장 응해줄 것을 부탁했다. 하지만 이틀뒤인 지난 8일, '타완'과 '밤'은 자신들의 변호사를 통해 정부가 사흘안에(왕실 비판으로) 구금된 사람들을 석방하지 않으면 오는 11일부터는 병원을 떠나 모든 물과 약물의 섭취를 거부한다고 밝혔다.

타완의 변호사는 타완이 "내가 잠들다 죽으면 여러분이 내가 요구하는 것을 위해 싸워주세요"라고 말했다고 밝혔다. 방콕포스트는 관련 기사에서 '안타깝지만 많은 지지가 없는 싸움(Sympathy, but little support for protest)'이라고 전했다. 국제앰네스티는 태국에서 2020년 민주화 시위 이후 시위에 참여하거나 정치적 의견을 표현했다가 기소된 18세 미만 청소년이 300명에 달하며, 그중 17명은 왕실모독죄로 기소됐다고 밝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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