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도이치’ 판결문에 ‘김건희’ 등장할까?

입력 2023.02.10 (06:0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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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주문'을 아십니까? 음식 등을 시키는 주문(注文), 도술을 부리는 주문(呪文) 등이 흔히 떠오르지만, 법원 판결문에도 주문(主文)이 있습니다.

판결문 맨 앞 장에 나오는, 재판의 결론을 '주문'이라고 합니다. 형사재판 판결문의 경우 '피고인을 징역 ○년에 처한다'거나, '피고인은 무죄'라거나 하는 것들입니다. 주요 선고 공판을 취재할 때 가장 신경이 곤두서는 순간도 재판장이 이 '주문'을 읽을 때입니다.

그런데 10일 이 '주문'보다도 '(판단) 이유'에 더 관심이 쏠리는 판결이 나옵니다. 이른바 '도이치모터스 주가 조작 의혹사건'입니다. '주문'의 주인공인 피고인보다, '(판단) 이유'에 등장할 것으로 보이는 인물이 더 관심이기 때문입니다.

바로 윤석열 대통령의 부인 김건희 여사입니다.

■ 주가 조작 있었나?…김건희 여사의 '역할'은?

이 사건을 아주 단순하게 정리하면 이렇습니다.

도이치모터스는 독일 BMW 차량을 국내에 판매하는 딜러사 가운데 하나입니다. 2009년 주식 시장에 상장됐는데 주가가 계속 떨어지자, 위기에 처한 권오수 당시 도이치모터스 회장이 '선수'를 동원해 주가를 띄웠다는 의혹입니다.

주식을 대량으로 사고 파는 방식으로 인위적으로 주가를 띄우려면 많은 주식과 돈, 계좌가 필요합니다. 여기서, 김건희 여사는 여러 명의 계좌 주인 가운데 하나로, 이 사건에 등장합니다.

'법적으로' 중요한 건 등장 사실 자체가 아니라, '역할'이 무엇이었느냐 하는 것입니다. 바꿔 말하면, 계좌가 주가 조작에 사용된다는 것을 알았느냐, 더 적극적으로 주가를 띄우기 위한 매매에 직접 가담했느냐, 아니면 투자 목적으로 계좌만 맡겼을 뿐 이 돈이 어떻게 오가는지는 몰랐느냐 하는 것입니다.

이 사건에서 '역할'이 무엇이었느냐에 따라 형사 처벌 대상이 될 수도, 아닐 수도 있습니다.


■ "2010년 1~5월 계좌를 맡겼을 뿐"

김건희 여사가 '도이치모터스 사건'에 연루됐다는 의혹은 윤석열 대통령이 정치에 뛰어들기 전부터 나왔습니다.

이후 윤 대통령이 대선 후보로 나서면서 의혹이 확산하자, 2021년 10월 '김 여사는 금융 전문가로 소개 받은 이모 씨에게 2010년 1월 주식계좌를 맡겼고, 수익은커녕 손실만 나서 2010년 5월 관계를 끊었다'는 취지로 해명했습니다.

이 해명의 이모 씨가 바로 도이치모터스 주가 조작 혐의를 받고 있는 '선수'입니다.

쉽게 정리하면, '투자 전문가라는 사람에게 계좌를 맡겼는데 그 사람이 김건희 여사 계좌를 도이치모터스 주가 관리에 이용했을 뿐, 주가 조작 등에 대해서는 알지 못하고 개입한 일도 없다'는 해명입니다.

이후 '도이치모터스 사건' 재판 과정에서 김 여사가 증권사 직원과 통화를 했다거나, 2010년 5월 이후에도 도이치모터스 주식을 매매한 흔적 등이 나왔지만, 대통령실의 해명은 큰 틀에서 과거와 달라지지 않았습니다.

추가 의혹 제기에는 '다른 사람의 재판에서 나온 일부 정황을 근거로 한 억지 추론'이라는 입장을 반복했습니다. 보다 구체적인 설명을 요청했지만 들을 수 없었습니다.

■ 판결문에 '김건희 여사 역할' 명시될까?

10일 재판부의 '주문'이 권오수 당시 도이치모터스 회장 등 '피고인들은 무죄'라면, 법적으로 김 여사의 역할은 더 따져볼 근거가 없어집니다. '주가 조작이 없었다'면 등장 인물들 또한 법적으로 문제 삼기 어렵습니다.

'일부 혐의 유죄'가 나온다면, 이때는 '(판단) 이유'에 김건희 여사의 역할이 명시될지, 어떻게 명시될지가 관건입니다. 판결문에 김 여사가 단순 투자자로 등장하느냐, 주가 조작에 어느 정도 관여한 인물로 등장하느냐에 따라, 검찰 수사나 민주당 일부에서 나오는 '특검' 주장이 탄력을 받을 수도 있습니다.

물론, 김 여사가 여러 계좌주 가운데 한 사람인 만큼, 판결문에 콕 집어 등장하지 않을 가능성도 있습니다.

김 여사의 역할과 관계없이, 법원이 '주가 조작'의 시기를 어떻게 보느냐도 관심사입니다. 공소시효 때문입니다.

검찰은 '도이치모터스 주가조작'이 3년여에 걸쳐 크게 5단계로 진행된 것으로 보고 있습니다. 이 가운데 김 여사 계좌가 등장하는 시기는 초기 단계인 2010년쯤입니다.

전체 '주가 조작'을 하나의 범죄로 본다면, 마지막 '주가 조작' 시기부터 공소시효가 시작되니 아직 시간이 남아있습니다.

하지만 각 단계의 '주가 조작'을 개별 범죄로 판단한다면, 김 여사 계좌가 등장하는 시기는 10년의 공소시효가 이미 지났습니다. 처벌할 수도 없는 범죄를 검찰이 수사할 이유는 없습니다.


■ 법원 판결로 '김건희 여사 의혹' 해소될까?

여러 대통령실 관계자들은 '도이치모터스 사건 재판 결과가 나오면, 김건희 여사 주가조작 의혹은 해소될 것'이라고 말합니다. 김 여사는 '계좌를 맡겼을 뿐'이라는 해명이 사실로 밝혀질 것이라는 것입니다.

앞서 짚었듯, 재판부가 어떤 판단을 할지, 판결문에 어떻게 명시될지는 알 수 없습니다. 다만, 판결로 김 여사 주가조작 의혹이 완전히 해소될지는 물음표입니다. 김 여사가 관련한 조사를 한 번도 받지 않았다는 게 그 이유 가운데 하나입니다.

'도이치모터스 사건' 수사에서 검찰은 김 여사를 한 번도 조사하지 않았습니다. 재판 과정에서 나왔듯, 김 여사가 '주가 조작'에 이용된 계좌의 명의자인 만큼 '참고인'으로라도 조사할 법하지만 한 차례도 소환되지 않았습니다.

'김건희 여사가 평범한 국민이었어도 같았을까?', 묻는 사람들이 적지 않습니다.

대통령실이 '문재인 정부 때부터 탈탈 털었지만 나온 게 없지 않으냐', '허위사실이다'라고 해도, 의혹이 계속되는 이유 가운데 하나입니다.

'법적으로 문제없는데 왜 조사받아야 하나', '문제가 없으니 검찰이 안 부른 것 아니냐'고 항변할 수도 있습니다. '대통령의 부인이니 검찰이 조사 안 하는 것'이라는 일부의 주장도 뚜렷한 근거는 없습니다.

문제는 법적 영역이 아니라 정치의 영역입니다. 법적으로는 등장 사실 자체보다 사건에서의 '역할'이 중요하지만, 정치적으로는 등장 자체에 따른 국민의 의구심을 어떻게 해소할지가 중요합니다. '특별감찰관을 조속히 임명하겠다'거나, 검찰 수사를 먼저 요청한다거나 하는 것들을 떠올릴 수 있습니다. 대통령의 부인이라는 자리가 짊어져야 하는 무게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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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도이치’ 판결문에 ‘김건희’ 등장할까?
    • 입력 2023-02-10 06:00:16
    취재K

'주문'을 아십니까? 음식 등을 시키는 주문(注文), 도술을 부리는 주문(呪文) 등이 흔히 떠오르지만, 법원 판결문에도 주문(主文)이 있습니다.

판결문 맨 앞 장에 나오는, 재판의 결론을 '주문'이라고 합니다. 형사재판 판결문의 경우 '피고인을 징역 ○년에 처한다'거나, '피고인은 무죄'라거나 하는 것들입니다. 주요 선고 공판을 취재할 때 가장 신경이 곤두서는 순간도 재판장이 이 '주문'을 읽을 때입니다.

그런데 10일 이 '주문'보다도 '(판단) 이유'에 더 관심이 쏠리는 판결이 나옵니다. 이른바 '도이치모터스 주가 조작 의혹사건'입니다. '주문'의 주인공인 피고인보다, '(판단) 이유'에 등장할 것으로 보이는 인물이 더 관심이기 때문입니다.

바로 윤석열 대통령의 부인 김건희 여사입니다.

■ 주가 조작 있었나?…김건희 여사의 '역할'은?

이 사건을 아주 단순하게 정리하면 이렇습니다.

도이치모터스는 독일 BMW 차량을 국내에 판매하는 딜러사 가운데 하나입니다. 2009년 주식 시장에 상장됐는데 주가가 계속 떨어지자, 위기에 처한 권오수 당시 도이치모터스 회장이 '선수'를 동원해 주가를 띄웠다는 의혹입니다.

주식을 대량으로 사고 파는 방식으로 인위적으로 주가를 띄우려면 많은 주식과 돈, 계좌가 필요합니다. 여기서, 김건희 여사는 여러 명의 계좌 주인 가운데 하나로, 이 사건에 등장합니다.

'법적으로' 중요한 건 등장 사실 자체가 아니라, '역할'이 무엇이었느냐 하는 것입니다. 바꿔 말하면, 계좌가 주가 조작에 사용된다는 것을 알았느냐, 더 적극적으로 주가를 띄우기 위한 매매에 직접 가담했느냐, 아니면 투자 목적으로 계좌만 맡겼을 뿐 이 돈이 어떻게 오가는지는 몰랐느냐 하는 것입니다.

이 사건에서 '역할'이 무엇이었느냐에 따라 형사 처벌 대상이 될 수도, 아닐 수도 있습니다.


■ "2010년 1~5월 계좌를 맡겼을 뿐"

김건희 여사가 '도이치모터스 사건'에 연루됐다는 의혹은 윤석열 대통령이 정치에 뛰어들기 전부터 나왔습니다.

이후 윤 대통령이 대선 후보로 나서면서 의혹이 확산하자, 2021년 10월 '김 여사는 금융 전문가로 소개 받은 이모 씨에게 2010년 1월 주식계좌를 맡겼고, 수익은커녕 손실만 나서 2010년 5월 관계를 끊었다'는 취지로 해명했습니다.

이 해명의 이모 씨가 바로 도이치모터스 주가 조작 혐의를 받고 있는 '선수'입니다.

쉽게 정리하면, '투자 전문가라는 사람에게 계좌를 맡겼는데 그 사람이 김건희 여사 계좌를 도이치모터스 주가 관리에 이용했을 뿐, 주가 조작 등에 대해서는 알지 못하고 개입한 일도 없다'는 해명입니다.

이후 '도이치모터스 사건' 재판 과정에서 김 여사가 증권사 직원과 통화를 했다거나, 2010년 5월 이후에도 도이치모터스 주식을 매매한 흔적 등이 나왔지만, 대통령실의 해명은 큰 틀에서 과거와 달라지지 않았습니다.

추가 의혹 제기에는 '다른 사람의 재판에서 나온 일부 정황을 근거로 한 억지 추론'이라는 입장을 반복했습니다. 보다 구체적인 설명을 요청했지만 들을 수 없었습니다.

■ 판결문에 '김건희 여사 역할' 명시될까?

10일 재판부의 '주문'이 권오수 당시 도이치모터스 회장 등 '피고인들은 무죄'라면, 법적으로 김 여사의 역할은 더 따져볼 근거가 없어집니다. '주가 조작이 없었다'면 등장 인물들 또한 법적으로 문제 삼기 어렵습니다.

'일부 혐의 유죄'가 나온다면, 이때는 '(판단) 이유'에 김건희 여사의 역할이 명시될지, 어떻게 명시될지가 관건입니다. 판결문에 김 여사가 단순 투자자로 등장하느냐, 주가 조작에 어느 정도 관여한 인물로 등장하느냐에 따라, 검찰 수사나 민주당 일부에서 나오는 '특검' 주장이 탄력을 받을 수도 있습니다.

물론, 김 여사가 여러 계좌주 가운데 한 사람인 만큼, 판결문에 콕 집어 등장하지 않을 가능성도 있습니다.

김 여사의 역할과 관계없이, 법원이 '주가 조작'의 시기를 어떻게 보느냐도 관심사입니다. 공소시효 때문입니다.

검찰은 '도이치모터스 주가조작'이 3년여에 걸쳐 크게 5단계로 진행된 것으로 보고 있습니다. 이 가운데 김 여사 계좌가 등장하는 시기는 초기 단계인 2010년쯤입니다.

전체 '주가 조작'을 하나의 범죄로 본다면, 마지막 '주가 조작' 시기부터 공소시효가 시작되니 아직 시간이 남아있습니다.

하지만 각 단계의 '주가 조작'을 개별 범죄로 판단한다면, 김 여사 계좌가 등장하는 시기는 10년의 공소시효가 이미 지났습니다. 처벌할 수도 없는 범죄를 검찰이 수사할 이유는 없습니다.


■ 법원 판결로 '김건희 여사 의혹' 해소될까?

여러 대통령실 관계자들은 '도이치모터스 사건 재판 결과가 나오면, 김건희 여사 주가조작 의혹은 해소될 것'이라고 말합니다. 김 여사는 '계좌를 맡겼을 뿐'이라는 해명이 사실로 밝혀질 것이라는 것입니다.

앞서 짚었듯, 재판부가 어떤 판단을 할지, 판결문에 어떻게 명시될지는 알 수 없습니다. 다만, 판결로 김 여사 주가조작 의혹이 완전히 해소될지는 물음표입니다. 김 여사가 관련한 조사를 한 번도 받지 않았다는 게 그 이유 가운데 하나입니다.

'도이치모터스 사건' 수사에서 검찰은 김 여사를 한 번도 조사하지 않았습니다. 재판 과정에서 나왔듯, 김 여사가 '주가 조작'에 이용된 계좌의 명의자인 만큼 '참고인'으로라도 조사할 법하지만 한 차례도 소환되지 않았습니다.

'김건희 여사가 평범한 국민이었어도 같았을까?', 묻는 사람들이 적지 않습니다.

대통령실이 '문재인 정부 때부터 탈탈 털었지만 나온 게 없지 않으냐', '허위사실이다'라고 해도, 의혹이 계속되는 이유 가운데 하나입니다.

'법적으로 문제없는데 왜 조사받아야 하나', '문제가 없으니 검찰이 안 부른 것 아니냐'고 항변할 수도 있습니다. '대통령의 부인이니 검찰이 조사 안 하는 것'이라는 일부의 주장도 뚜렷한 근거는 없습니다.

문제는 법적 영역이 아니라 정치의 영역입니다. 법적으로는 등장 사실 자체보다 사건에서의 '역할'이 중요하지만, 정치적으로는 등장 자체에 따른 국민의 의구심을 어떻게 해소할지가 중요합니다. '특별감찰관을 조속히 임명하겠다'거나, 검찰 수사를 먼저 요청한다거나 하는 것들을 떠올릴 수 있습니다. 대통령의 부인이라는 자리가 짊어져야 하는 무게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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