부당해고 인정받아 복직했지만…“지옥이 시작됐다”

입력 2023.02.10 (07:0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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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20년 9월, 32살 강 모 씨는 광주비아농협으로 다시 돌아왔습니다. 부당해고 구제 신청을 통한 6개월 만의 복직이었습니다. 사랑하는 사람과 결혼한 지 1년도 안 된 시점, 안정적 직장에 단란한 신혼 생활이 펼쳐질 줄 알았습니다. 하지만 강 씨는 "지옥이 시작됐다"고 말합니다. 강씨에게 무슨 일이 있었던 걸까요?

■ 부당해고 인정받았지만….

강 씨가 광주 비아농협에 처음 입사한 건 지난 2018년 4월입니다. 비록 계약직이었지만 누구보다 성실히 일했습니다. 사랑하는 사람과 미래를 약속하고 결혼을 결심했기 때문입니다. 그런데 2년 뒤 무기계약직 전환을 앞두고 계약 갱신을 거절당했습니다.


강 씨는 받아들이기 힘들었습니다. 전남지방노동위원회(이하 지노위)에 구제신청을 했습니다. 지노위에선 부당해고임을 인정했습니다. 강 씨에게 정규직 전환기대권이 존재함에도 갱신 거절을 한 합리적 이유가 존재하지 않는다는 이유였습니다. 지노위에선 강 씨를 원직에 복직시키고, 해고 기간 받지 못한 급여를 지급하라는 판정을 내렸습니다.

광주 비아농협 측은 불복했습니다. 중앙노동위원회(이하 중노위)에 즉각 재심을 신청했습니다. 하지만 중노위의 판정도 같았습니다. 강 씨에게 정규직 전환기대권이 인정되고, 정규직 전환거절의 합리적 이유가 인정되지 않는다고 본 겁니다. 그렇게 강 씨는 2020년 9월 다시 복직할 수 있게 됐습니다.

■ 복직, 그리고 괴롭힘이 시작되다

강 씨가 부당해고 구제 신청을 통해 복직한 뒤 발령받은 폐창고.강 씨가 부당해고 구제 신청을 통해 복직한 뒤 발령받은 폐창고.
그러나 고통은 그때부터 시작됐습니다. 강 씨가 입사해 줄곧 일했던 곳은 농협 마트였습니다. 하지만 폐창고로 출근하라는 통보를 받았습니다. 휴게실은커녕 화장실조차 없는 곳이었습니다. 풀 뽑기, 잡초 제거, 나무 제거, 가시덤불 제거 등의 잡일이 주어졌습니다. 제대로 된 도구도 지급되지 않았고, 작은 톱 하나에 의지해 모든 일을 해야 했습니다. 20kg 소금 포대 7백여 개를 홀로 옮기라고 지시받은 적도 있었습니다.

더 괴로웠던 건 조합장의 감시와 폭언이었습니다. 마땅한 휴게실이 없어 바닥에 앉아 잠시 쉬고 있으면 "근무시간에 근무하지 않았다"며 '주의촉구통보서'를 보냈습니다.


강 씨는 또 조합장이 '부당해고 구제 신청'을 한 걸 문제 삼으며 폭언을 일삼았다고 말합니다.

"네가 백이 그렇게 좋냐? XX야! 조직이 호락호락 한 게 아니야"
"사람 잘 써가지고 이겼는지 몰라도 이제 2라운드가 시작됐다. 2라운드는 내부에서 할 테니 두고 봐라"

-강 씨 고소장 中 일부 발췌-

참다 못한 강 씨는 같은 해 11월 전남노동위원회에 부당전보 구제신청을 하고, 노동청에 직장 내 괴롭힘을 이유로 진정을 냈습니다. 그러자 조합장 측은 필요한 조처를 하겠다고 약속했습니다. 강 씨는 그 말을 믿고 구제신청과 직장 내 괴롭힘 진정을 모두 취하했습니다.

■ 폐창고에서 주유소로...계속된 감시


하지만 말뿐이었습니다. 강 씨는 이후 광주 비아농협의 주유소로 전보됐습니다. 강 씨의 직장동료 A 씨는 조합장의 감시가 계속됐다고 증언합니다. 동료 A 씨는 KBS와의 인터뷰에서 "조합장이 강 씨에게 물도 주지 말고, 사무실도 못 들어오게 했다"면서 "같이 붙어있으면 지나가다가 보고 전화가 온다. 떨어지라고 했다"고 증언했습니다. 심지어는 CCTV를 확인해서 강 씨가 뭐 하고 있는지 감시하라고 했다는 게 A 씨 주장입니다.

강 씨의 진단서.강 씨의 진단서.
건강했던 강 씨는 휴직을 신청하고 정신과 치료를 받고 있습니다. 얼마 전, 전북의 한 농협에서 극단적 선택을 한 직원이 직장 내 괴롭힘에 시달려왔다는 소식을 듣고는 또다시 밤잠을 설쳤습니다. 강 씨는 취재진에게 "아이를 낳지 않기로 했다"고 털어놓았습니다. 자신의 아이가 이런 세상에서 살게 할 수 없다는 이유였습니다.

■ "풀 뽑기 등은 모든 직원이 하는 업무"

강 씨는 경찰과 고용노동청에 모욕죄와 근로기준법 위반 혐의로 조합장을 고소했고 수사와 조사가 진행 중입니다.

해당 조합장 측은 풀 뽑기 등은 모든 직원이 하는 업무라고 반박했습니다. 다른 직원들을 동원해 강 씨를 감시하거나 따돌린 적도 없다고 선을 그었습니다. 또 각 영업장 책임자에게 직원을 관리, 지시하는 건 조합장의 당연한 업무라고 강조했습니다. 또 고소 사실을 인정할 수 없으며 당당하게 조사에 임해 사실을 소명하고 혐의없음 결론을 예상한다고도 덧붙였습니다.

광주 노동시민단체는 광주지방고용노동청에 특별근로감독을 요청하고 나섰습니다. '지역농협 직장 갑질 아웃 대책위'는 오늘 광주고용노동청 앞에서 기자회견을 열어 "해당 직원이 부당해고 판정을 받았음에도 폭언과 괴롭힘을 일삼은 것과 관련해 노동청이 특별근로감독에 나서야 한다"고 촉구했습니다.

정의당 광주시당도 성명서를 내고, 광주고용노동청이 중소금융기관에 대한 기획감독을 통해 직장 내 괴롭힘을 뿌리 뽑아야 한다고 강조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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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부당해고 인정받아 복직했지만…“지옥이 시작됐다”
    • 입력 2023-02-10 07:00:41
    취재K

2020년 9월, 32살 강 모 씨는 광주비아농협으로 다시 돌아왔습니다. 부당해고 구제 신청을 통한 6개월 만의 복직이었습니다. 사랑하는 사람과 결혼한 지 1년도 안 된 시점, 안정적 직장에 단란한 신혼 생활이 펼쳐질 줄 알았습니다. 하지만 강 씨는 "지옥이 시작됐다"고 말합니다. 강씨에게 무슨 일이 있었던 걸까요?

■ 부당해고 인정받았지만….

강 씨가 광주 비아농협에 처음 입사한 건 지난 2018년 4월입니다. 비록 계약직이었지만 누구보다 성실히 일했습니다. 사랑하는 사람과 미래를 약속하고 결혼을 결심했기 때문입니다. 그런데 2년 뒤 무기계약직 전환을 앞두고 계약 갱신을 거절당했습니다.


강 씨는 받아들이기 힘들었습니다. 전남지방노동위원회(이하 지노위)에 구제신청을 했습니다. 지노위에선 부당해고임을 인정했습니다. 강 씨에게 정규직 전환기대권이 존재함에도 갱신 거절을 한 합리적 이유가 존재하지 않는다는 이유였습니다. 지노위에선 강 씨를 원직에 복직시키고, 해고 기간 받지 못한 급여를 지급하라는 판정을 내렸습니다.

광주 비아농협 측은 불복했습니다. 중앙노동위원회(이하 중노위)에 즉각 재심을 신청했습니다. 하지만 중노위의 판정도 같았습니다. 강 씨에게 정규직 전환기대권이 인정되고, 정규직 전환거절의 합리적 이유가 인정되지 않는다고 본 겁니다. 그렇게 강 씨는 2020년 9월 다시 복직할 수 있게 됐습니다.

■ 복직, 그리고 괴롭힘이 시작되다

강 씨가 부당해고 구제 신청을 통해 복직한 뒤 발령받은 폐창고.그러나 고통은 그때부터 시작됐습니다. 강 씨가 입사해 줄곧 일했던 곳은 농협 마트였습니다. 하지만 폐창고로 출근하라는 통보를 받았습니다. 휴게실은커녕 화장실조차 없는 곳이었습니다. 풀 뽑기, 잡초 제거, 나무 제거, 가시덤불 제거 등의 잡일이 주어졌습니다. 제대로 된 도구도 지급되지 않았고, 작은 톱 하나에 의지해 모든 일을 해야 했습니다. 20kg 소금 포대 7백여 개를 홀로 옮기라고 지시받은 적도 있었습니다.

더 괴로웠던 건 조합장의 감시와 폭언이었습니다. 마땅한 휴게실이 없어 바닥에 앉아 잠시 쉬고 있으면 "근무시간에 근무하지 않았다"며 '주의촉구통보서'를 보냈습니다.


강 씨는 또 조합장이 '부당해고 구제 신청'을 한 걸 문제 삼으며 폭언을 일삼았다고 말합니다.

"네가 백이 그렇게 좋냐? XX야! 조직이 호락호락 한 게 아니야"
"사람 잘 써가지고 이겼는지 몰라도 이제 2라운드가 시작됐다. 2라운드는 내부에서 할 테니 두고 봐라"

-강 씨 고소장 中 일부 발췌-

참다 못한 강 씨는 같은 해 11월 전남노동위원회에 부당전보 구제신청을 하고, 노동청에 직장 내 괴롭힘을 이유로 진정을 냈습니다. 그러자 조합장 측은 필요한 조처를 하겠다고 약속했습니다. 강 씨는 그 말을 믿고 구제신청과 직장 내 괴롭힘 진정을 모두 취하했습니다.

■ 폐창고에서 주유소로...계속된 감시


하지만 말뿐이었습니다. 강 씨는 이후 광주 비아농협의 주유소로 전보됐습니다. 강 씨의 직장동료 A 씨는 조합장의 감시가 계속됐다고 증언합니다. 동료 A 씨는 KBS와의 인터뷰에서 "조합장이 강 씨에게 물도 주지 말고, 사무실도 못 들어오게 했다"면서 "같이 붙어있으면 지나가다가 보고 전화가 온다. 떨어지라고 했다"고 증언했습니다. 심지어는 CCTV를 확인해서 강 씨가 뭐 하고 있는지 감시하라고 했다는 게 A 씨 주장입니다.

강 씨의 진단서.건강했던 강 씨는 휴직을 신청하고 정신과 치료를 받고 있습니다. 얼마 전, 전북의 한 농협에서 극단적 선택을 한 직원이 직장 내 괴롭힘에 시달려왔다는 소식을 듣고는 또다시 밤잠을 설쳤습니다. 강 씨는 취재진에게 "아이를 낳지 않기로 했다"고 털어놓았습니다. 자신의 아이가 이런 세상에서 살게 할 수 없다는 이유였습니다.

■ "풀 뽑기 등은 모든 직원이 하는 업무"

강 씨는 경찰과 고용노동청에 모욕죄와 근로기준법 위반 혐의로 조합장을 고소했고 수사와 조사가 진행 중입니다.

해당 조합장 측은 풀 뽑기 등은 모든 직원이 하는 업무라고 반박했습니다. 다른 직원들을 동원해 강 씨를 감시하거나 따돌린 적도 없다고 선을 그었습니다. 또 각 영업장 책임자에게 직원을 관리, 지시하는 건 조합장의 당연한 업무라고 강조했습니다. 또 고소 사실을 인정할 수 없으며 당당하게 조사에 임해 사실을 소명하고 혐의없음 결론을 예상한다고도 덧붙였습니다.

광주 노동시민단체는 광주지방고용노동청에 특별근로감독을 요청하고 나섰습니다. '지역농협 직장 갑질 아웃 대책위'는 오늘 광주고용노동청 앞에서 기자회견을 열어 "해당 직원이 부당해고 판정을 받았음에도 폭언과 괴롭힘을 일삼은 것과 관련해 노동청이 특별근로감독에 나서야 한다"고 촉구했습니다.

정의당 광주시당도 성명서를 내고, 광주고용노동청이 중소금융기관에 대한 기획감독을 통해 직장 내 괴롭힘을 뿌리 뽑아야 한다고 강조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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