음주운전 신고에도 단속 안한 경찰…“보닛 차갑다” 황당 해명

입력 2023.02.10 (17:24) 수정 2023.02.10 (17:3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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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음주운전 의심 차량’이 대전시 궁동 대학로를 빠져나가고 있는 모습/CCTV‘음주운전 의심 차량’이 대전시 궁동 대학로를 빠져나가고 있는 모습/CCTV

■ 술 먹고 운전대 잡은 옆 자리 손님..용기 내 신고한 시민

직장인 A씨는 지난달 중순, 친구와 함께 대전시 궁동 대학로의 한 가게에서 술을 마시고 있었습니다. 바 형태의 술집으로 주변의 대화가 쉽게 들리는 곳이었습니다.

옆자리에는 한 건장한 남성이 일행과 술을 마시고 있었습니다. 잠시 뒤 일어날 시간이 되었는지 집에 돌아갈 방법에 대해 논의했고, 가게 주인에게 '음주운전 단속' 여부를 물었습니다.

가게 주인은 당연히 음주운전을 말렸습니다. 대리운전해서 가시는 게 좋겠다고 권유했습니다. 그러나 이 남성은 일행에게 '음주운전 걸리면 걸리는 거지', '장기 투숙하고 있는 호텔이 있으니 그쪽으로 가자'며 밖으로 나섰습니다. A씨의 귀가 쫑긋 열리는 순간이었습니다.

설마 하는 마음에 A씨는 남성을 따라 나섰습니다. 그러나 우려는 현실이 됐습니다. 이 남성은 가게 앞에 세워둔 대형 SUV 차량 운전석에 올랐고, 함께 술을 마신 일행을 조수석에 태운 채 현장을 떠났습니다.

A씨는 곧바로 112에 신고했습니다. 출발하는 차량의 모습과 차량번호 등을 찍어 보냈고 남성 일행의 대화에서 유추한 행선지와 예상 동선 등도 알렸습니다.

본인의 일은 아니지만 사고로 누군가 피해를 볼 수도 있다고 생각해 용기를 낸 겁니다.

■ 신고자 제보한 곳에서 발견된 '음주운전 의심 차량'

신고한 지 30여 분이 지난 시간, 경찰은 A씨에게 해당 차량을 찾았다는 연락을 해왔습니다. 차량이 발견된 곳은 A씨가 신고한 대전의 한 호텔 주차장이었습니다. 차량을 찾았으니, 적절한 조처를 하겠다는 말도 덧붙였습니다.

음주운전 의심 신고를 받고 출동한 만큼 차적을 조회해 운전자를 만나 정황을 묻고 혈중알코올농도를 측정하면 될 일이었습니다.

하지만 며칠 뒤, 조치 상황을 묻는 A씨에게 경찰은 황당한 답변을 내놨습니다. '발견한 차량의 보닛이 차가워 운전 정황이 없다고 판단했고 단속을 안 했다'는 것이었습니다. A씨에게 말한 것과는 달리 적절한 조치가 취해지지 않은 겁니다.

용기를 내 구체적인 내용을 모두 신고한 A씨 입장에서는 썩 손부끄러운 일이었습니다.

A씨가 경찰에 신고한 일부 내용. 차량 종류와 번호, 목적지 등 구체적 내용이 담긴  것을 알 수 있다.A씨가 경찰에 신고한 일부 내용. 차량 종류와 번호, 목적지 등 구체적 내용이 담긴 것을 알 수 있다.

■ 문 안 열어주면 답 없어..다만 '소극적 판단' 아쉬워

경찰의 한 고위 관계자는 "보닛만 볼 게 아니라 신고 내용 등 여러 정황을 종합해 판단을 잘해야 한다"고 말했습니다. 현장 경찰의 판단이 다소 아쉬웠다는 의견이었습니다.

이번 사례의 경우 목적지가 구체적으로 신고된 만큼 일부 경력이 미리 도착해 차량을 기다리는 것도 검거에 도움이 됐을 것이라는 말도 덧붙였습니다.

그러면서도 경찰에 강제권이 없는 점은 한계라고 설명했습니다. 자택 또는 호텔과 같은 숙박 시설에서 문을 안 열어주고 버틴다면 사실상 음주단속을 벌이기가 어렵다는 겁니다.

결국, A씨처럼 아무리 구체적으로 신고하더라도 '음주운전 의심자'가 문을 열지 않고 버티거나 현장 경찰이 '단속이 필요 없다'고 판단하면 술을 마시고 운전대를 잡아도 별다른 문제가 없는 게 음주단속 현장의 현실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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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음주운전 신고에도 단속 안한 경찰…“보닛 차갑다” 황당 해명
    • 입력 2023-02-10 17:24:40
    • 수정2023-02-10 17:31:09
    취재K
‘음주운전 의심 차량’이 대전시 궁동 대학로를 빠져나가고 있는 모습/CCTV
■ 술 먹고 운전대 잡은 옆 자리 손님..용기 내 신고한 시민

직장인 A씨는 지난달 중순, 친구와 함께 대전시 궁동 대학로의 한 가게에서 술을 마시고 있었습니다. 바 형태의 술집으로 주변의 대화가 쉽게 들리는 곳이었습니다.

옆자리에는 한 건장한 남성이 일행과 술을 마시고 있었습니다. 잠시 뒤 일어날 시간이 되었는지 집에 돌아갈 방법에 대해 논의했고, 가게 주인에게 '음주운전 단속' 여부를 물었습니다.

가게 주인은 당연히 음주운전을 말렸습니다. 대리운전해서 가시는 게 좋겠다고 권유했습니다. 그러나 이 남성은 일행에게 '음주운전 걸리면 걸리는 거지', '장기 투숙하고 있는 호텔이 있으니 그쪽으로 가자'며 밖으로 나섰습니다. A씨의 귀가 쫑긋 열리는 순간이었습니다.

설마 하는 마음에 A씨는 남성을 따라 나섰습니다. 그러나 우려는 현실이 됐습니다. 이 남성은 가게 앞에 세워둔 대형 SUV 차량 운전석에 올랐고, 함께 술을 마신 일행을 조수석에 태운 채 현장을 떠났습니다.

A씨는 곧바로 112에 신고했습니다. 출발하는 차량의 모습과 차량번호 등을 찍어 보냈고 남성 일행의 대화에서 유추한 행선지와 예상 동선 등도 알렸습니다.

본인의 일은 아니지만 사고로 누군가 피해를 볼 수도 있다고 생각해 용기를 낸 겁니다.

■ 신고자 제보한 곳에서 발견된 '음주운전 의심 차량'

신고한 지 30여 분이 지난 시간, 경찰은 A씨에게 해당 차량을 찾았다는 연락을 해왔습니다. 차량이 발견된 곳은 A씨가 신고한 대전의 한 호텔 주차장이었습니다. 차량을 찾았으니, 적절한 조처를 하겠다는 말도 덧붙였습니다.

음주운전 의심 신고를 받고 출동한 만큼 차적을 조회해 운전자를 만나 정황을 묻고 혈중알코올농도를 측정하면 될 일이었습니다.

하지만 며칠 뒤, 조치 상황을 묻는 A씨에게 경찰은 황당한 답변을 내놨습니다. '발견한 차량의 보닛이 차가워 운전 정황이 없다고 판단했고 단속을 안 했다'는 것이었습니다. A씨에게 말한 것과는 달리 적절한 조치가 취해지지 않은 겁니다.

용기를 내 구체적인 내용을 모두 신고한 A씨 입장에서는 썩 손부끄러운 일이었습니다.

A씨가 경찰에 신고한 일부 내용. 차량 종류와 번호, 목적지 등 구체적 내용이 담긴  것을 알 수 있다.
■ 문 안 열어주면 답 없어..다만 '소극적 판단' 아쉬워

경찰의 한 고위 관계자는 "보닛만 볼 게 아니라 신고 내용 등 여러 정황을 종합해 판단을 잘해야 한다"고 말했습니다. 현장 경찰의 판단이 다소 아쉬웠다는 의견이었습니다.

이번 사례의 경우 목적지가 구체적으로 신고된 만큼 일부 경력이 미리 도착해 차량을 기다리는 것도 검거에 도움이 됐을 것이라는 말도 덧붙였습니다.

그러면서도 경찰에 강제권이 없는 점은 한계라고 설명했습니다. 자택 또는 호텔과 같은 숙박 시설에서 문을 안 열어주고 버틴다면 사실상 음주단속을 벌이기가 어렵다는 겁니다.

결국, A씨처럼 아무리 구체적으로 신고하더라도 '음주운전 의심자'가 문을 열지 않고 버티거나 현장 경찰이 '단속이 필요 없다'고 판단하면 술을 마시고 운전대를 잡아도 별다른 문제가 없는 게 음주단속 현장의 현실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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