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특파원 리포트] 신냉전 시대 아프리카① ‘와그너’ 앞세워 침투하는 러시아, 밀리는 프랑스

입력 2023.02.13 (09:4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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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21년 영화 <모가디슈>는 UN 가입을 위해 아프리카에서 벌이는 남한과 북한의 외교전을 배경으로 시작된다. 이처럼 2차대전 후 구소련이 해체되기 전까지 냉전시대에, 미국 등 서방과 소비에트 연방국가 사이의 패권 경쟁은 치열했다. 헐벗고 가난했지만 제3세계 국가로 분류된 아프리카 나라들은 UN 체제에서 캐스팅보트를 쥐게 됐고, 국제 외교무대에서 몸값이 높아졌다.

냉전이 끝나고 미국의 팍스아메리카나 시대가 열린 후 아프리카는 줄곧 빈곤과 질병에 시달렸고 국제사회에서의 영향력은 약화 됐다. 그러나 우크라이나 전쟁 이후 시작된 ‘신냉전’은 아프리카 국가들의 존재감을 다시 소환했고, 아프리카는 다시 패권 경쟁의 각축장으로 변하기 시작했다. 신냉전 시대 아프리카는 어떤 변화와 운명을 맞게 될지 지켜볼 일이다.

■ 텃밭 사헬지역에서 밀려나는 프랑스

서방 국가 가운데 미국 다음으로 아프리카에 강한 영향력을 행사해 온 프랑스, 특히 사하라 사막 이남의 반건조지대를 일컫는 사헬지역과 서부해안 지역의 말리, 세네갈, 카메룬, 코트디부아르, 니제르, 차드와 같은 프랑스어권 국가들은 1960년대에 독립했지만, 그동안 프랑스의 영향력 아래 있었다. 프랑스는 자국의 이익을 보호하면서 동시에 북아프리카의 이슬람 극단주의 무장세력의 남하를 막기 위해 일명 ‘바르칸 작전’을 펼치며 사헬지역 여러 국가에 군대를 주둔시켜 왔다.

사헬지역에서 작전 중인 프랑스군사헬지역에서 작전 중인 프랑스군

말리. 2020년 8월과 2021년 5월 두 차례 쿠데타를 일으킨 말리 군부는 이후 정권의 민간이양 약속을 지키지 않아 국제사회의 비난을 받았다. 군부 집권 이후 프랑스와의 관계는 계속 악화 됐고 지난해 프랑스는 말리에 주둔했던 프랑스군을 완전 철수시켰다. 프랑스가 철수했다고도 할 수 있고, 말리에서 쫓겨난 것이라고도 할 수 있다.

부르키나파소. 지난해에는 말리 이웃 국가 부르키나파소에서도 쿠데타가 일어나 군부가 정권을 잡았고 말리와 비슷한 상황이 연출되고 있다. 최근 부르키나파소는 프랑스군의 철수를 요구했고, 프랑스도 곧 군대를 철수시키겠다고 밝혔다.

코로나 팬데믹 시기 사헬과 인근 아프리카 국가에서 쿠데타가 도미노처럼 번지고 있고, 군부 권력은 반프랑스· 반서방 성향을 보이고 있다. 마크롱 프랑스 대통령은 러시아가 아프리카에서 약탈적 전략을 펼치고 있다고 비난했고 프랑스 일간 르 몽드는 자국의 '외교·군사적 굴욕'이라고 꼬집고 있다.

■ '와그너 용병' 앞세워 사헬지역의 군사적 영향력 확대하는 러시아

정부가 이슬람 극단주의 무장세력을 효과적으로 차단하지 못하고 있다는 민심은 군부의 쿠데타를 정당화하는 수단이 됐지만, 그렇다고 군부가 스스로 국가 안보를 확실히 책임질만한 역량을 충분히 갖췄다고 보기도 힘들다. 그런데도 이들이 자신 있게 프랑스군을 배척하는 힘은 어디서 나오나.

러시아의 용병그룹 ‘와그너’러시아의 용병그룹 ‘와그너’

와그너. 지금 한창 우크라이나에서 전쟁사업에 뛰어든 ‘와그너 용병 그룹.’ 그동안 와그너가 힘을 키워온 것은 오히려 아프리카였다. 취약한 정부에 치안을 제공하고 각종 이권을 취하는 방식으로 용병사업을 키워온 것이다.

남아공과 케냐 등을 제외하고 아프리카에서 가장 친서방적인 국가들이 많이 몰려 있는 아프리카 서부해안 지역. 사헬지역으로 침투하고 있는 이슬람 무장세력의 활동은 서부해안(기니만) 국가에까지 퍼진 상태다. 와그너 그룹의 사업환경이 좋아진 셈이다. 와그너 그룹은 현재 9개 아프리카 국가에서 활동하고 있다고 알려졌는데, 쿠데타 이후 프랑스와 마찰을 빚고 있는 부르키나파소가 10번째 '고객'이 될 것이 확실시되고 있다.

쿠데타 이후 등장하는 푸틴 홍보물쿠데타 이후 등장하는 푸틴 홍보물

지난 7일 말리를 방문한 세르게이 라브로프 러시아 외무장관은 보란 듯이 이슬람 지하디스트가 준동하는 서아프리카 국가들에 대한 지원을 약속했다. 서방의 지원은 ‘신 식민주의적 접근’이라고 비판하며 자신들이 사헬지역과 서부 연안 국가들이 위기를 극복할 수 있도록 도와줄 것이라고 말했다.

미국의 군사력이 중국 견제에 집중되고 있는 사이 중동과 아프리카에서 러시아가 소리 없이 영향력을 키운 것이다. 경제적 측면에선 이미 중국이 아프리카를 선점하고 있는 상황. 검은 대륙 아프리카가 부지불식 간에 서방의 패권 밖으로 벗어나는 모습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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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입력 2023-02-13 09:40:16
    특파원 리포트

2021년 영화 <모가디슈>는 UN 가입을 위해 아프리카에서 벌이는 남한과 북한의 외교전을 배경으로 시작된다. 이처럼 2차대전 후 구소련이 해체되기 전까지 냉전시대에, 미국 등 서방과 소비에트 연방국가 사이의 패권 경쟁은 치열했다. 헐벗고 가난했지만 제3세계 국가로 분류된 아프리카 나라들은 UN 체제에서 캐스팅보트를 쥐게 됐고, 국제 외교무대에서 몸값이 높아졌다.

냉전이 끝나고 미국의 팍스아메리카나 시대가 열린 후 아프리카는 줄곧 빈곤과 질병에 시달렸고 국제사회에서의 영향력은 약화 됐다. 그러나 우크라이나 전쟁 이후 시작된 ‘신냉전’은 아프리카 국가들의 존재감을 다시 소환했고, 아프리카는 다시 패권 경쟁의 각축장으로 변하기 시작했다. 신냉전 시대 아프리카는 어떤 변화와 운명을 맞게 될지 지켜볼 일이다.

■ 텃밭 사헬지역에서 밀려나는 프랑스

서방 국가 가운데 미국 다음으로 아프리카에 강한 영향력을 행사해 온 프랑스, 특히 사하라 사막 이남의 반건조지대를 일컫는 사헬지역과 서부해안 지역의 말리, 세네갈, 카메룬, 코트디부아르, 니제르, 차드와 같은 프랑스어권 국가들은 1960년대에 독립했지만, 그동안 프랑스의 영향력 아래 있었다. 프랑스는 자국의 이익을 보호하면서 동시에 북아프리카의 이슬람 극단주의 무장세력의 남하를 막기 위해 일명 ‘바르칸 작전’을 펼치며 사헬지역 여러 국가에 군대를 주둔시켜 왔다.

사헬지역에서 작전 중인 프랑스군
말리. 2020년 8월과 2021년 5월 두 차례 쿠데타를 일으킨 말리 군부는 이후 정권의 민간이양 약속을 지키지 않아 국제사회의 비난을 받았다. 군부 집권 이후 프랑스와의 관계는 계속 악화 됐고 지난해 프랑스는 말리에 주둔했던 프랑스군을 완전 철수시켰다. 프랑스가 철수했다고도 할 수 있고, 말리에서 쫓겨난 것이라고도 할 수 있다.

부르키나파소. 지난해에는 말리 이웃 국가 부르키나파소에서도 쿠데타가 일어나 군부가 정권을 잡았고 말리와 비슷한 상황이 연출되고 있다. 최근 부르키나파소는 프랑스군의 철수를 요구했고, 프랑스도 곧 군대를 철수시키겠다고 밝혔다.

코로나 팬데믹 시기 사헬과 인근 아프리카 국가에서 쿠데타가 도미노처럼 번지고 있고, 군부 권력은 반프랑스· 반서방 성향을 보이고 있다. 마크롱 프랑스 대통령은 러시아가 아프리카에서 약탈적 전략을 펼치고 있다고 비난했고 프랑스 일간 르 몽드는 자국의 '외교·군사적 굴욕'이라고 꼬집고 있다.

■ '와그너 용병' 앞세워 사헬지역의 군사적 영향력 확대하는 러시아

정부가 이슬람 극단주의 무장세력을 효과적으로 차단하지 못하고 있다는 민심은 군부의 쿠데타를 정당화하는 수단이 됐지만, 그렇다고 군부가 스스로 국가 안보를 확실히 책임질만한 역량을 충분히 갖췄다고 보기도 힘들다. 그런데도 이들이 자신 있게 프랑스군을 배척하는 힘은 어디서 나오나.

러시아의 용병그룹 ‘와그너’
와그너. 지금 한창 우크라이나에서 전쟁사업에 뛰어든 ‘와그너 용병 그룹.’ 그동안 와그너가 힘을 키워온 것은 오히려 아프리카였다. 취약한 정부에 치안을 제공하고 각종 이권을 취하는 방식으로 용병사업을 키워온 것이다.

남아공과 케냐 등을 제외하고 아프리카에서 가장 친서방적인 국가들이 많이 몰려 있는 아프리카 서부해안 지역. 사헬지역으로 침투하고 있는 이슬람 무장세력의 활동은 서부해안(기니만) 국가에까지 퍼진 상태다. 와그너 그룹의 사업환경이 좋아진 셈이다. 와그너 그룹은 현재 9개 아프리카 국가에서 활동하고 있다고 알려졌는데, 쿠데타 이후 프랑스와 마찰을 빚고 있는 부르키나파소가 10번째 '고객'이 될 것이 확실시되고 있다.

쿠데타 이후 등장하는 푸틴 홍보물
지난 7일 말리를 방문한 세르게이 라브로프 러시아 외무장관은 보란 듯이 이슬람 지하디스트가 준동하는 서아프리카 국가들에 대한 지원을 약속했다. 서방의 지원은 ‘신 식민주의적 접근’이라고 비판하며 자신들이 사헬지역과 서부 연안 국가들이 위기를 극복할 수 있도록 도와줄 것이라고 말했다.

미국의 군사력이 중국 견제에 집중되고 있는 사이 중동과 아프리카에서 러시아가 소리 없이 영향력을 키운 것이다. 경제적 측면에선 이미 중국이 아프리카를 선점하고 있는 상황. 검은 대륙 아프리카가 부지불식 간에 서방의 패권 밖으로 벗어나는 모습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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