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마을발전기금’이 뭐길래…“마을 자치 규약 표준안 필요”

입력 2023.02.15 (09:35) 수정 2023.02.15 (09:3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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충북 단양군 대강면 ○○리 전경충북 단양군 대강면 ○○리 전경

충북 단양군 대강면의 조용한 시골 마을이 '마을발전기금' 문제로 시끄럽습니다. 이 마을에서 일어나는 일은, 단순히 마을발전기금 납입을 두고 벌어졌던 귀농·귀촌인과 원주민간의 분쟁과는 조금은 다릅니다. 어떤 사연이 있는 걸까요?

■ 같은 마을 안에서 '주소 이전'만 했는데…마을발전기금을 내라 ?

경기도 용인에서 살던 권미영 씨는 시골에 홀로 계시는 아버지를 모시기 위해 2021년 5월, 단양군 대강면의 한 마을로 귀촌했습니다. 9월에는 아버지 집 근처인 이 마을 한 주택으로 주민등록 주소도 이전했죠.

주민등록 주소 이전 기록이 남아 있는 권미영 씨 초본주민등록 주소 이전 기록이 남아 있는 권미영 씨 초본

문제는 아버지가 돌아가신 뒤부터 시작됐습니다. 같은 해 11월, 권 씨가 비어 있는 아버지 집으로 주소지를 이전하자 마을에서 '마을발전기금'으로 100만 원을 내라고 요구하기 시작했습니다.

권 씨에 따르면, 마을 이장은 "자녀가 외지에서 아버지 집으로 전입했다면 발전기금을 납입할 의무가 없지만, 권 씨의 경우 같은 마을에 있는 다른 집에서 본가로 전입했기 때문에 기금을 내야한다"고 말했다고 주장합니다.

권 씨는 이 요구를 거부했습니다. 권 씨는 "이장의 논리대로 한다면, 원래 마을에 살고 있던 주민이 바로 옆 집으로 전입하면 발전기금을 내라는 말이나 다름 없다"며 "발전기금 요구가 있기 석 달 전에 이 마을로 주소를 옮겼고, 당시에도 내지 않았던 발전기금을 같은 마을 안에서 주소를 이전하는 시점에 내야할 이유가 없다"고 말했습니다.

■ "최소한의 행정 서비스도 못 받아…투명인간 취급"

권 씨는 이후 2년 가까운 시간동안 자신이 마을에서 '투명인간' 취급을 받았다고 주장합니다. 마을발전기금을 내지 않았다는 이유로 마을의 대소사를 논의하고 공유하는 마을 총회 참석은 거부됐고, 이장 선거권도 박탈됐다고 덧붙였습니다. 특히, 마을 단체 카톡방에도 참여할 수 없어 단수 일정 확인 등 마을 주민으로서 최소한의 행정 서비스도 받을 수 없었다고 하소연했습니다.


군청에 민원도 제기했습니다. 하지만, 마을 자체적으로 만든 규약에 지자체는 관여할 수 없다는 답변만 돌아왔습니다. 결국, 권 씨는 어렵게 귀촌한 단양군에서 다시 떠날 생각을 하고 있습니다.

이에 대해 마을 이장은 KBS 취재진에게 이 마을 이장은 "특별히 할 말이 없다"고 말했습니다. 다만 "이 문제에 대해서는 추후 마을 총회를 열어 다시 한 번 논의하겠다"고 밝혔습니다.

■ '마을발전기금'이 뭐길래…"마을 자체 규약 표준안 필요"

마을발전기금 납부에 법적 강제성은 없습니다. 마을에서 '자체 규약'으로 정해놓은 곳이 대부분인데요. 마을 구성원에게 공동체 생활 유지를 위해 걷는, 공동 분담금의 성격으로 이해하면 쉽습니다.

하지만 문제는 여기서 발생합니다. 강제도 아니고 법적으로 정해진 게 아무것도 없다보니 이걸 왜 내야 하는지, 낸다면 얼마나 내야 하는지, 냈다면 어디에 사용해야 하는지 명확히 규정된 게 하나도 없기 때문입니다.

결국 '마을발전기금'은 귀농·귀촌인들에게는 '원주민의 텃세'로 비쳐질 수 밖에 없고, 기존 주민들은 기금을 내지 않으려는 이주민들을 '무임 승차자'란 시선이 생길 수 밖에 없습니다. 이주민과 원주민의 갈등이 시작되는 순간입니다.

‘마을발전기금으로 인한 갈등해결방안 연구’ 표지 (한국지방행정연구원)‘마을발전기금으로 인한 갈등해결방안 연구’ 표지 (한국지방행정연구원)

<마을발전기금으로 인한 갈등해결 방안> 연구자인 한국지방행정연구원의 전대욱 연구위원은 이에 대한 해결책으로 '표준화된 마을 자치 규약' 개발이 필요하다고 조언합니다. 마을발전기금을 받아야 하는 이주민과 받지 않아야 하는 이주민에 대한 기준은 물론, 기금의 사용처와 공개 의무, 회계 처리 방법 등을 명확히 한 표준안으로 갈등 발생 여지를 줄이자는 게 요지입니다.

실제로 강원도 평창군과 경남 고성군, 충북 옥천군 등의 지방자치단체는 이같은 기준이 담긴 표준안을 만들고 각 마을에 배포하기도 했는데요. 이에 대해 전 위원은 "표준안 배포로 끝나는 게 아니라, 이주민과 원주민 사이 의사결정 참여 기회의 균등성은 물론 기존의 마을 공동재산 관리 방안까지 도모한 추가적인 방안이 필요하다"고 밝혔습니다.

■ 귀농·귀촌인 15% "지역 주민과 갈등"

한국농촌경제연구원의 연구 결과, 귀농·귀촌 정착 과정에서의 어려움은 '여유자금 부족'이나 '생활 불편' 등과 같은 경제적·환경적 요인 뿐만 아니라 '지역 주민과의 갈등'(15.9%) 측면에서도 나타나고 있습니다. 이들 가운데 10% 가량은 적응에 실패해 농촌을 떠나기도 합니다.

'마을발전기금'으로 인한 귀농·귀촌인과 원주민 갈등은 "관리 권한이 없다"며 수수방관하면서 , 매년 수십, 수백억 원의 혈세를 투입해 귀농·귀촌인을 끌어 모으는 지방자치단체들이 더욱 유심히 봐야 하는 통계가 아닌가 생각해봅니다.

[연관 기사] “같은 마을에서 주소만 옮겼는데”…‘마을발전기금’ 갈등
https://news.kbs.co.kr/news/view.do?ncd=760507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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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마을발전기금’이 뭐길래…“마을 자치 규약 표준안 필요”
    • 입력 2023-02-15 09:35:47
    • 수정2023-02-15 09:36:12
    취재K
충북 단양군 대강면 ○○리 전경
충북 단양군 대강면의 조용한 시골 마을이 '마을발전기금' 문제로 시끄럽습니다. 이 마을에서 일어나는 일은, 단순히 마을발전기금 납입을 두고 벌어졌던 귀농·귀촌인과 원주민간의 분쟁과는 조금은 다릅니다. 어떤 사연이 있는 걸까요?

■ 같은 마을 안에서 '주소 이전'만 했는데…마을발전기금을 내라 ?

경기도 용인에서 살던 권미영 씨는 시골에 홀로 계시는 아버지를 모시기 위해 2021년 5월, 단양군 대강면의 한 마을로 귀촌했습니다. 9월에는 아버지 집 근처인 이 마을 한 주택으로 주민등록 주소도 이전했죠.

주민등록 주소 이전 기록이 남아 있는 권미영 씨 초본
문제는 아버지가 돌아가신 뒤부터 시작됐습니다. 같은 해 11월, 권 씨가 비어 있는 아버지 집으로 주소지를 이전하자 마을에서 '마을발전기금'으로 100만 원을 내라고 요구하기 시작했습니다.

권 씨에 따르면, 마을 이장은 "자녀가 외지에서 아버지 집으로 전입했다면 발전기금을 납입할 의무가 없지만, 권 씨의 경우 같은 마을에 있는 다른 집에서 본가로 전입했기 때문에 기금을 내야한다"고 말했다고 주장합니다.

권 씨는 이 요구를 거부했습니다. 권 씨는 "이장의 논리대로 한다면, 원래 마을에 살고 있던 주민이 바로 옆 집으로 전입하면 발전기금을 내라는 말이나 다름 없다"며 "발전기금 요구가 있기 석 달 전에 이 마을로 주소를 옮겼고, 당시에도 내지 않았던 발전기금을 같은 마을 안에서 주소를 이전하는 시점에 내야할 이유가 없다"고 말했습니다.

■ "최소한의 행정 서비스도 못 받아…투명인간 취급"

권 씨는 이후 2년 가까운 시간동안 자신이 마을에서 '투명인간' 취급을 받았다고 주장합니다. 마을발전기금을 내지 않았다는 이유로 마을의 대소사를 논의하고 공유하는 마을 총회 참석은 거부됐고, 이장 선거권도 박탈됐다고 덧붙였습니다. 특히, 마을 단체 카톡방에도 참여할 수 없어 단수 일정 확인 등 마을 주민으로서 최소한의 행정 서비스도 받을 수 없었다고 하소연했습니다.


군청에 민원도 제기했습니다. 하지만, 마을 자체적으로 만든 규약에 지자체는 관여할 수 없다는 답변만 돌아왔습니다. 결국, 권 씨는 어렵게 귀촌한 단양군에서 다시 떠날 생각을 하고 있습니다.

이에 대해 마을 이장은 KBS 취재진에게 이 마을 이장은 "특별히 할 말이 없다"고 말했습니다. 다만 "이 문제에 대해서는 추후 마을 총회를 열어 다시 한 번 논의하겠다"고 밝혔습니다.

■ '마을발전기금'이 뭐길래…"마을 자체 규약 표준안 필요"

마을발전기금 납부에 법적 강제성은 없습니다. 마을에서 '자체 규약'으로 정해놓은 곳이 대부분인데요. 마을 구성원에게 공동체 생활 유지를 위해 걷는, 공동 분담금의 성격으로 이해하면 쉽습니다.

하지만 문제는 여기서 발생합니다. 강제도 아니고 법적으로 정해진 게 아무것도 없다보니 이걸 왜 내야 하는지, 낸다면 얼마나 내야 하는지, 냈다면 어디에 사용해야 하는지 명확히 규정된 게 하나도 없기 때문입니다.

결국 '마을발전기금'은 귀농·귀촌인들에게는 '원주민의 텃세'로 비쳐질 수 밖에 없고, 기존 주민들은 기금을 내지 않으려는 이주민들을 '무임 승차자'란 시선이 생길 수 밖에 없습니다. 이주민과 원주민의 갈등이 시작되는 순간입니다.

‘마을발전기금으로 인한 갈등해결방안 연구’ 표지 (한국지방행정연구원)
<마을발전기금으로 인한 갈등해결 방안> 연구자인 한국지방행정연구원의 전대욱 연구위원은 이에 대한 해결책으로 '표준화된 마을 자치 규약' 개발이 필요하다고 조언합니다. 마을발전기금을 받아야 하는 이주민과 받지 않아야 하는 이주민에 대한 기준은 물론, 기금의 사용처와 공개 의무, 회계 처리 방법 등을 명확히 한 표준안으로 갈등 발생 여지를 줄이자는 게 요지입니다.

실제로 강원도 평창군과 경남 고성군, 충북 옥천군 등의 지방자치단체는 이같은 기준이 담긴 표준안을 만들고 각 마을에 배포하기도 했는데요. 이에 대해 전 위원은 "표준안 배포로 끝나는 게 아니라, 이주민과 원주민 사이 의사결정 참여 기회의 균등성은 물론 기존의 마을 공동재산 관리 방안까지 도모한 추가적인 방안이 필요하다"고 밝혔습니다.

■ 귀농·귀촌인 15% "지역 주민과 갈등"

한국농촌경제연구원의 연구 결과, 귀농·귀촌 정착 과정에서의 어려움은 '여유자금 부족'이나 '생활 불편' 등과 같은 경제적·환경적 요인 뿐만 아니라 '지역 주민과의 갈등'(15.9%) 측면에서도 나타나고 있습니다. 이들 가운데 10% 가량은 적응에 실패해 농촌을 떠나기도 합니다.

'마을발전기금'으로 인한 귀농·귀촌인과 원주민 갈등은 "관리 권한이 없다"며 수수방관하면서 , 매년 수십, 수백억 원의 혈세를 투입해 귀농·귀촌인을 끌어 모으는 지방자치단체들이 더욱 유심히 봐야 하는 통계가 아닌가 생각해봅니다.

[연관 기사] “같은 마을에서 주소만 옮겼는데”…‘마을발전기금’ 갈등
https://news.kbs.co.kr/news/view.do?ncd=760507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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