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특파원 리포트] 결혼 지참금이 얼마길래?…中 ‘1호 문건’으로 해결 강조

입력 2023.02.16 (07:00) 수정 2023.02.16 (08:0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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중국의 결혼 지참금 풍속 개선을 다룬 기사 삽화. 신랑 신부가 ‘나쁜 풍속을 고치자. 지참금 제로’라는 생각을 공유하고 있다. (출처: 신화망)중국의 결혼 지참금 풍속 개선을 다룬 기사 삽화. 신랑 신부가 ‘나쁜 풍속을 고치자. 지참금 제로’라는 생각을 공유하고 있다. (출처: 신화망)

중국 공산당 중앙위원회와 국무원이 2023년 '1호 문건'을 발표했습니다. '1호 문건'은 중국 지도부의 올해 최우선 추진 과제로 해석됩니다.

올해 '1호 문건'도 예년처럼 농촌 진흥 방안이었습니다. 관영매체들은 '농촌 활성화의 핵심 업무를 전면적으로 추진하기 위한 의견'이라고 소개했습니다. 문건은 농업과 농민, 농촌 즉 삼농(三農) 문제 해결을 강조했습니다. 20년째 똑같습니다.

■ 중국 정부 올해 '1호 문건' 발표...'농촌 진흥'과 함께 '지참금 문제 해결' 강조

'1호 문건'은 농업과 농촌 현대화를 위한 방안으로 농산물의 안정적 생산과 공급, 농업 기반 시설 확충, 농민 소득 증대와 부농 실현, 농촌 인재 육성 등을 내걸었습니다. 이를 위해 공산당 조직이 농촌 관리 체계를 확립하고 구조 개혁에 나서라고 강조했습니다.

개혁개방으로 중국인의 소득 수준이 높아지면서 결혼 지참금, 차이리(彩禮)도 급등하는 경향을 보이고 있다. (출처: 바이두)개혁개방으로 중국인의 소득 수준이 높아지면서 결혼 지참금, 차이리(彩禮)도 급등하는 경향을 보이고 있다. (출처: 바이두)

그런데 중국 매체들이 올해 '1호 문건' 내용 가운데 특별히 주목한 사안이 하나 있습니다. 바로 중국에서 '차이리(彩禮)'라고 부르는 결혼 지참금 문제입니다. 중국에서는 신랑이 신부 가족에게 약혼 선물로 결혼 지참금을 주는 풍습이 있습니다. 결혼으로 맺어지는 두 가족의 호의적 관계를 위해서라며 오랜 세월 이어온 풍습입니다. 하지만 요구 액수가 과도해 논란이 돼왔습니다.

관영매체 신화망은 중국 장시성에서 50년간 중매를 선 판수란 씨의 말을 전했습니다. 그는 살기 팍팍한 농촌임에도 지참금이 대략 40만 위안, 우리 돈 7천 500만 원 정도까지 올랐다고 했습니다. 같은 성 스청현의 한 80대 노인은 농촌 가정의 한해 벌이가 보통 3만~5만 위안인데, 장가를 가려면 지참금을 포함해 10~20만 위안을 들여야 한다고 토로했습니다.

■ 중국 농촌, 한해 소득 뛰어넘는 지참금 '사회 문제화'

지난 해 2월 중국 소셜미디어에서 논란이 된 지참금 사례도 있습니다. 신부가 결혼식장에 도착했는데 차에서 내리지 않고 신랑 측과 실랑이를 벌였습니다. 지참금이 입금되지 않았기 때문입니다. 신부는 약속한 지참금을 송금 받았다는 사실을 확인한 뒤에야 결혼식장에 들어갔습니다. 급하게 돈을 마련하느라 분주했던 신랑 아버지의 눈물을 뒤로 한 채였습니다.

결혼식장 앞에서 지참금을 마련하기 위해 휴대전화로 돈을 빌리는 신랑 아버지의 모습이 중국 SNS에서 논란이 됐다.(출처: 연합뉴스)결혼식장 앞에서 지참금을 마련하기 위해 휴대전화로 돈을 빌리는 신랑 아버지의 모습이 중국 SNS에서 논란이 됐다.(출처: 연합뉴스)

이 때문에 과도한 지참금은 농촌 청년들의 결혼을 어렵게 하는 사회적 문제로까지 지적됐습니다. 가뜩이나 인구 수가 뒷걸음치기 시작한 중국 입장에서 심각한 현안이 된 것입니다.

올해 1호 문건은 과도한 지참금 문제를 바로 잡기 위해 특별 캠페인을 시작한다고 공언했습니다. 이를 위해 지방자치단체들이 구시대적 관습을 바꿀 규범을 마련하고 마을 규약을 강화하라고 촉구했습니다. 공산당 당원들의 솔선수범도 요구했습니다.

적지 않은 지방에서는 지참금 문제를 겨냥한 캠페인이 이미 시작됐습니다. 장시성 관창군에서는 지난 해 9월 지참금을 건네지 않는 '차이리 제로' 10쌍이 단체 결혼식을 올렸습니다. 홍보를 위해 생중계도 했는데, 4만 명이 시청했습니다.

‘지참금 없는 결혼’ 홍보를 위한 단체 결혼식(출처: 신화망)‘지참금 없는 결혼’ 홍보를 위한 단체 결혼식(출처: 신화망)

■ "소득 수준 향상과 함께 지참금도 급등"...'결혼 최저치' 중국의 고민

중국의 현장 간부들은 지참금 문제를 단번에 해결하기는 어렵다면서도 일정 수준의 억제 방안은 필요하다는데 인식을 같이 하고 있습니다. 영문매체 글로벌타임스는 '차이리'를 '신부 값(bride prices)'이라고 번역하며 장시성 샹라오시 관계자의 의견을 소개했습니다. 이 관계자는 "소득 수준이 향상되면서 지참금 인상도 함께 시작됐다"면서 "지참금을 완전히 없애거나 강제로 억제하는 것은 현실적이지 않지만 과도하고 감당하기 어려운 지참금은 제한해야 한다"고 말했습니다.

베이징대 무광종 교수는 글로벌타임스와의 인터뷰에서 지참금 액수 급등은 과도한 물질주의와 극심한 빈부 격차의 결과라고 진단했습니다. 특히 농촌에서는 남성 수가 훨씬 많은 성비 불균형 때문에 남성이 치러야하는 지참금 액수가 올라가고 있다고 분석했습니다. 지참금이 합리적 수준으로 내려가야 젊은 층의 결혼 의향이 높아질 것이라고도 설명했습니다.

지난 2021년 중국에서 혼인 신고를 한 신혼 부부 수는 764만 쌍이었습니다. 8년 연속 감소한 수치입니다. 1985년 관련 통계 작성 이래 최저치였습니다. 중국 정부 '1호 문건'의 '결혼 지참금' 고민 뒤에는 이같은 현실이 자리잡고 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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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특파원 리포트] 결혼 지참금이 얼마길래?…中 ‘1호 문건’으로 해결 강조
    • 입력 2023-02-16 07:00:10
    • 수정2023-02-16 08:08:36
    특파원 리포트
중국의 결혼 지참금 풍속 개선을 다룬 기사 삽화. 신랑 신부가 ‘나쁜 풍속을 고치자. 지참금 제로’라는 생각을 공유하고 있다. (출처: 신화망)
중국 공산당 중앙위원회와 국무원이 2023년 '1호 문건'을 발표했습니다. '1호 문건'은 중국 지도부의 올해 최우선 추진 과제로 해석됩니다.

올해 '1호 문건'도 예년처럼 농촌 진흥 방안이었습니다. 관영매체들은 '농촌 활성화의 핵심 업무를 전면적으로 추진하기 위한 의견'이라고 소개했습니다. 문건은 농업과 농민, 농촌 즉 삼농(三農) 문제 해결을 강조했습니다. 20년째 똑같습니다.

■ 중국 정부 올해 '1호 문건' 발표...'농촌 진흥'과 함께 '지참금 문제 해결' 강조

'1호 문건'은 농업과 농촌 현대화를 위한 방안으로 농산물의 안정적 생산과 공급, 농업 기반 시설 확충, 농민 소득 증대와 부농 실현, 농촌 인재 육성 등을 내걸었습니다. 이를 위해 공산당 조직이 농촌 관리 체계를 확립하고 구조 개혁에 나서라고 강조했습니다.

개혁개방으로 중국인의 소득 수준이 높아지면서 결혼 지참금, 차이리(彩禮)도 급등하는 경향을 보이고 있다. (출처: 바이두)
그런데 중국 매체들이 올해 '1호 문건' 내용 가운데 특별히 주목한 사안이 하나 있습니다. 바로 중국에서 '차이리(彩禮)'라고 부르는 결혼 지참금 문제입니다. 중국에서는 신랑이 신부 가족에게 약혼 선물로 결혼 지참금을 주는 풍습이 있습니다. 결혼으로 맺어지는 두 가족의 호의적 관계를 위해서라며 오랜 세월 이어온 풍습입니다. 하지만 요구 액수가 과도해 논란이 돼왔습니다.

관영매체 신화망은 중국 장시성에서 50년간 중매를 선 판수란 씨의 말을 전했습니다. 그는 살기 팍팍한 농촌임에도 지참금이 대략 40만 위안, 우리 돈 7천 500만 원 정도까지 올랐다고 했습니다. 같은 성 스청현의 한 80대 노인은 농촌 가정의 한해 벌이가 보통 3만~5만 위안인데, 장가를 가려면 지참금을 포함해 10~20만 위안을 들여야 한다고 토로했습니다.

■ 중국 농촌, 한해 소득 뛰어넘는 지참금 '사회 문제화'

지난 해 2월 중국 소셜미디어에서 논란이 된 지참금 사례도 있습니다. 신부가 결혼식장에 도착했는데 차에서 내리지 않고 신랑 측과 실랑이를 벌였습니다. 지참금이 입금되지 않았기 때문입니다. 신부는 약속한 지참금을 송금 받았다는 사실을 확인한 뒤에야 결혼식장에 들어갔습니다. 급하게 돈을 마련하느라 분주했던 신랑 아버지의 눈물을 뒤로 한 채였습니다.

결혼식장 앞에서 지참금을 마련하기 위해 휴대전화로 돈을 빌리는 신랑 아버지의 모습이 중국 SNS에서 논란이 됐다.(출처: 연합뉴스)
이 때문에 과도한 지참금은 농촌 청년들의 결혼을 어렵게 하는 사회적 문제로까지 지적됐습니다. 가뜩이나 인구 수가 뒷걸음치기 시작한 중국 입장에서 심각한 현안이 된 것입니다.

올해 1호 문건은 과도한 지참금 문제를 바로 잡기 위해 특별 캠페인을 시작한다고 공언했습니다. 이를 위해 지방자치단체들이 구시대적 관습을 바꿀 규범을 마련하고 마을 규약을 강화하라고 촉구했습니다. 공산당 당원들의 솔선수범도 요구했습니다.

적지 않은 지방에서는 지참금 문제를 겨냥한 캠페인이 이미 시작됐습니다. 장시성 관창군에서는 지난 해 9월 지참금을 건네지 않는 '차이리 제로' 10쌍이 단체 결혼식을 올렸습니다. 홍보를 위해 생중계도 했는데, 4만 명이 시청했습니다.

‘지참금 없는 결혼’ 홍보를 위한 단체 결혼식(출처: 신화망)
■ "소득 수준 향상과 함께 지참금도 급등"...'결혼 최저치' 중국의 고민

중국의 현장 간부들은 지참금 문제를 단번에 해결하기는 어렵다면서도 일정 수준의 억제 방안은 필요하다는데 인식을 같이 하고 있습니다. 영문매체 글로벌타임스는 '차이리'를 '신부 값(bride prices)'이라고 번역하며 장시성 샹라오시 관계자의 의견을 소개했습니다. 이 관계자는 "소득 수준이 향상되면서 지참금 인상도 함께 시작됐다"면서 "지참금을 완전히 없애거나 강제로 억제하는 것은 현실적이지 않지만 과도하고 감당하기 어려운 지참금은 제한해야 한다"고 말했습니다.

베이징대 무광종 교수는 글로벌타임스와의 인터뷰에서 지참금 액수 급등은 과도한 물질주의와 극심한 빈부 격차의 결과라고 진단했습니다. 특히 농촌에서는 남성 수가 훨씬 많은 성비 불균형 때문에 남성이 치러야하는 지참금 액수가 올라가고 있다고 분석했습니다. 지참금이 합리적 수준으로 내려가야 젊은 층의 결혼 의향이 높아질 것이라고도 설명했습니다.

지난 2021년 중국에서 혼인 신고를 한 신혼 부부 수는 764만 쌍이었습니다. 8년 연속 감소한 수치입니다. 1985년 관련 통계 작성 이래 최저치였습니다. 중국 정부 '1호 문건'의 '결혼 지참금' 고민 뒤에는 이같은 현실이 자리잡고 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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