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밤→낮’으로 바뀐 쓰레기 수거…“준비 안 돼 근무여건 더 악화”

입력 2023.02.19 (07:00)

읽어주기 기능은 크롬기반의
브라우저에서만 사용하실 수 있습니다.

요약

어두컴컴한 새벽은 환경미화원이 가장 활발히 움직이는 시간이자, 가장 위험한 시간대입니다. 시야가 확보되지 않는 탓에 최근 몇 년간 새벽에 사망 사고도 잇따랐습니다. 이에 정부 주도 아래 몇몇 지자체는 환경미화원의 수거 작업을 낮 시간대로 옮겼습니다. 대구 달성군도 최근 주간 근무를 전면 도입했는데 정작 현장에선 잡음이 일고 있습니다. 안전을 위한 조치가 근무 환경을 악화시킨다는 겁니다.

■ 아침마다 골목엔 쓰레기 산.. 노동 강도는 2배로

달성군의 주택가에서 쓰레기를 수거 중인 환경미화원들.달성군의 주택가에서 쓰레기를 수거 중인 환경미화원들.

오전 9시 대구 달성군 논공읍 남리의 한 주택가. 날이 밝았지만 여전히 집 앞 곳곳에는 종량제 봉투가 산을 이루고 있습니다. 주간 근무 도입으로 환경미화원들의 작업이 새벽 4시~오후 1시에서 아침 6시~오후 3시로 늦춰진 탓입니다.

뒤늦게 골목에 들어선 쓰레기 수거 차량 뒤로 미화원 2명이 바쁘게 쫓아가며 쓰레기가 가득 찬 봉투를 들어 압축기로 던져 넣습니다. 차량 진·출입이 잦은 골목인 탓에 작업이 중단되기도 여러 차례. 좁은 골목은 교행이 불가능해 작업하다 말고 후진을 해야 하는 상황도 발생합니다. 늦춰진 시간만큼 더 빠른 속도로 뛰는 미화원들의 몸에선 금세 땀이 비처럼 쏟아집니다.

신성욱/ 달성군 용역업체 소속 환경미화원
"아침에 근무를 시작하면서 작업 속도도 줄고 주민들의 민원이 크게 늘었습니다. 새벽에는 1시간이면 할 작업을 2시간은 걸려서 하기도 합니다. 차량이 많은 출근 시간에는 길을 막는다며 창문을 내리고 욕하는 분도 있었어요. 빨리 치워보겠다고 하루 종일 쓰레기 차량 뒤를 쫓아 30㎞ 정도를 뛰어다니는데 무릎도 아프고, 파스 없이는 못 살 지경입니다. 주간 근무가 원활하게 이뤄질 수 있도록 인력과 차량의 배치를 늘려줬으면 합니다."

쓰레기 배출량이 많은, 지역 대표 전통시장인 현풍 백년도깨비시장 인근은 상황이 더 심각합니다. 오일장이 열리면 차량이 통제돼 하루 종일 쓰레기 수거가 불가능하기 때문입니다. 이곳을 담당하는 환경미화원은 주간 근무가 도입되기 전엔 쓰레기를 수거할 수 있었다고 설명했습니다. 장이 서기 전인 새벽 4시에 미리 수거를 하면 쓰레기를 하루 종일 방치하지 않아도 된다는 것입니다.

이날도 시장 인근에 쌓여있는 쓰레기 더미를 어렵지 않게 찾아볼 수 있었습니다. 하천을 따라 조성된 데크와 시장 인근 주택가 골목에는 상인들이 내놓은 쓰레기가 대량으로 방치돼 있었습니다. 장날마다 온다는 한 노점상은 갑자기 생긴 쓰레기 더미에 "탁상 행정 때문에 이렇게 됐다"며 볼멘소리를 늘어놓기도 했습니다.

권차순 씨/ 달성군 현풍읍 상인
"원래도 시장이 있어서 일반 쓰레기부터 음식물까지 쓰레기 양이 엄청납니다. 지나가던 길고양이나 개가 봉투를 파헤치는 경우도 많아서 빨리 쓰레기를 가져가 달라고 민원도 많이 넣었어요. 그런데 이제는 장날이면 쓰레기가 하루 종일 그냥 있다가 내일 아침 되면 가져가니까 그거 뭐 가져가나 마나예요."

■ 잇따른 환경미화원 야간 사망 사고.. 안전 사고도 빈번

음주 차량에 치어 숨진 환경미화원이 타고 있던 차량.음주 차량에 치어 숨진 환경미화원이 타고 있던 차량.

환경미화원들의 주간 근무가 도입된 건 잇따른 야간 사망사고 때문입니다.

대구에선 2020년 11월 음식물 쓰레기 수거 차량에 타고 있던 50대 환경미화원이 숨지는 사고가 발생했습니다. 시간은 새벽 3시 40분. 음주 차량으로 인한 사고였습니다. 운전자의 당시 혈중알코올농도는 0.116%, 면허 취소에 해당하는 수치였습니다.

충북 청주에서는 지난해 10월 음식물 쓰레기 수거 차량이 가드레일을 들이받고 전복되는 사고가 났습니다. 시간은 새벽 5시로 역시 야간 작업이었습니다. 이 사고로 60대 수거 차량 운전자가 숨졌습니다.

생활폐기물을 수거하는 환경미화원의 안전 사고도 매년 계속되고 있습니다. 환경부의 환경미화원 산재접수 현황에 따르면 2017년부터 2021년까지 5년간 869건의 사고가 발생했습니다. 이 중 29건이 사망 사고입니다.

■ 유명무실한 '가이드라인'.. 작업 환경 근본적 개선 필요

환경부가 내놓은 환경미화원 작업안전 가이드라인.환경부가 내놓은 환경미화원 작업안전 가이드라인.

환경부는 2019년 3월 '환경미화원 작업안전 가이드라인'을 내놨습니다.

주간작업을 원칙으로 하도록 했는데, 함께 내놓은 대책은 이렇습니다. 주간작업 전환을 위해 ▲청소차량 추가 확보 및 인력 증원 ▲청소일정과 작업구역 순서 조정 ▲지자체·노조·업체·주민 간의 협의를 해야 한다는 내용입니다. 하지만 예외사항으로 자치단체장이 폐기물을 시급하게 처리할 필요가 있거나 주민 생활에 중대한 불편을 초래할 우려가 있는 등의 경우 야간 수거가 가능하도록 단서를 달았습니다. 사실상 유명무실한 지침이라는 지적이 잇따르는 이유입니다.

야간 작업 중인 환경미화원들.야간 작업 중인 환경미화원들.

이렇다 보니 대부분의 지자체에서 야간 근무를 유지하는 실정입니다. 대구에선 수성구, 중구, 동구가 야간 근무를 하고 있습니다. 남구와 서구는 주간 근무가 원칙이지만 용역업체 직원들은 여전히 야간에 일하고 있습니다.

주간 근무 도입이 지지부진하다 보니 낮에 일하는 작업 환경도 조성되지 못하는 상황.

미화원들은 주간 근무 도입을 위해선 인력과 차량 증원이 필수라고 말합니다. 출근길 차량 정체 등 주간 수거 특성상 작업 시간이 늘어나기 때문입니다. 달성군의 경우 주간 근무를 도입하면서 차량은 0.02대, 인력은 0.05명 늘리는 데 그쳤습니다. 사실상 추가 차량이나 증원이 없었던 겁니다.

쓰레기 처리장의 운영시간도 문제입니다. 대구 시내의 생활폐기물을 처리하는 곳은 소각장, SRF(폐기물에너지화)시설, 매립장 등 모두 3곳. 평일에는 오후 3시까지 운영하지만, 토요일에는 오전 11시가 되면 모두 문을 닫습니다. 이렇게 되면 주말 동안 종량제 봉투를 수거 차량에 쌓아둬야 하는데, 월요일 업무가 몰리면서 쓰레기 대란까지 벌어지는 상황입니다.

달성군은 미화원들과의 협의를 통해 주간 근무 정착 방안을 강구한다는 방침입니다.

달성군 관계자
"환경미화원의 안전과 직결된 문제이다 보니 주간 근무를 포기할 순 없는 사안입니다. 우선 용역업체에서 자체적으로 청소 구역과 경로를 재편하는 방향으로 이야기하고 있습니다. 용역업체의 자구책 실시 이후에도 근무 여건이 개선되지 않을 경우에는 추가적인 차량, 인력 지원을 고려하고 있습니다. 쓰레기 미수거가 신고된 지역에 대해선 즉각적으로 대응할 수 있도록 해나가겠습니다."

환경미화원 안전이라는 취지를 살리면서, 쓰레기 처리에도 지장이 없도록 제도 개선이 필요합니다.

■ 제보하기
▷ 카카오톡 : 'KBS제보' 검색, 채널 추가
▷ 전화 : 02-781-1234, 4444
▷ 이메일 : kbs1234@kbs.co.kr
▷ 유튜브, 네이버, 카카오에서도 KBS뉴스를 구독해주세요!


  • ‘밤→낮’으로 바뀐 쓰레기 수거…“준비 안 돼 근무여건 더 악화”
    • 입력 2023-02-19 07:00:42
    취재K
어두컴컴한 새벽은 환경미화원이 가장 활발히 움직이는 시간이자, 가장 위험한 시간대입니다. 시야가 확보되지 않는 탓에 최근 몇 년간 새벽에 사망 사고도 잇따랐습니다. 이에 정부 주도 아래 몇몇 지자체는 환경미화원의 수거 작업을 낮 시간대로 옮겼습니다. 대구 달성군도 최근 주간 근무를 전면 도입했는데 정작 현장에선 잡음이 일고 있습니다. 안전을 위한 조치가 근무 환경을 악화시킨다는 겁니다. <br />
■ 아침마다 골목엔 쓰레기 산.. 노동 강도는 2배로

달성군의 주택가에서 쓰레기를 수거 중인 환경미화원들.
오전 9시 대구 달성군 논공읍 남리의 한 주택가. 날이 밝았지만 여전히 집 앞 곳곳에는 종량제 봉투가 산을 이루고 있습니다. 주간 근무 도입으로 환경미화원들의 작업이 새벽 4시~오후 1시에서 아침 6시~오후 3시로 늦춰진 탓입니다.

뒤늦게 골목에 들어선 쓰레기 수거 차량 뒤로 미화원 2명이 바쁘게 쫓아가며 쓰레기가 가득 찬 봉투를 들어 압축기로 던져 넣습니다. 차량 진·출입이 잦은 골목인 탓에 작업이 중단되기도 여러 차례. 좁은 골목은 교행이 불가능해 작업하다 말고 후진을 해야 하는 상황도 발생합니다. 늦춰진 시간만큼 더 빠른 속도로 뛰는 미화원들의 몸에선 금세 땀이 비처럼 쏟아집니다.

신성욱/ 달성군 용역업체 소속 환경미화원
"아침에 근무를 시작하면서 작업 속도도 줄고 주민들의 민원이 크게 늘었습니다. 새벽에는 1시간이면 할 작업을 2시간은 걸려서 하기도 합니다. 차량이 많은 출근 시간에는 길을 막는다며 창문을 내리고 욕하는 분도 있었어요. 빨리 치워보겠다고 하루 종일 쓰레기 차량 뒤를 쫓아 30㎞ 정도를 뛰어다니는데 무릎도 아프고, 파스 없이는 못 살 지경입니다. 주간 근무가 원활하게 이뤄질 수 있도록 인력과 차량의 배치를 늘려줬으면 합니다."

쓰레기 배출량이 많은, 지역 대표 전통시장인 현풍 백년도깨비시장 인근은 상황이 더 심각합니다. 오일장이 열리면 차량이 통제돼 하루 종일 쓰레기 수거가 불가능하기 때문입니다. 이곳을 담당하는 환경미화원은 주간 근무가 도입되기 전엔 쓰레기를 수거할 수 있었다고 설명했습니다. 장이 서기 전인 새벽 4시에 미리 수거를 하면 쓰레기를 하루 종일 방치하지 않아도 된다는 것입니다.

이날도 시장 인근에 쌓여있는 쓰레기 더미를 어렵지 않게 찾아볼 수 있었습니다. 하천을 따라 조성된 데크와 시장 인근 주택가 골목에는 상인들이 내놓은 쓰레기가 대량으로 방치돼 있었습니다. 장날마다 온다는 한 노점상은 갑자기 생긴 쓰레기 더미에 "탁상 행정 때문에 이렇게 됐다"며 볼멘소리를 늘어놓기도 했습니다.

권차순 씨/ 달성군 현풍읍 상인
"원래도 시장이 있어서 일반 쓰레기부터 음식물까지 쓰레기 양이 엄청납니다. 지나가던 길고양이나 개가 봉투를 파헤치는 경우도 많아서 빨리 쓰레기를 가져가 달라고 민원도 많이 넣었어요. 그런데 이제는 장날이면 쓰레기가 하루 종일 그냥 있다가 내일 아침 되면 가져가니까 그거 뭐 가져가나 마나예요."

■ 잇따른 환경미화원 야간 사망 사고.. 안전 사고도 빈번

음주 차량에 치어 숨진 환경미화원이 타고 있던 차량.
환경미화원들의 주간 근무가 도입된 건 잇따른 야간 사망사고 때문입니다.

대구에선 2020년 11월 음식물 쓰레기 수거 차량에 타고 있던 50대 환경미화원이 숨지는 사고가 발생했습니다. 시간은 새벽 3시 40분. 음주 차량으로 인한 사고였습니다. 운전자의 당시 혈중알코올농도는 0.116%, 면허 취소에 해당하는 수치였습니다.

충북 청주에서는 지난해 10월 음식물 쓰레기 수거 차량이 가드레일을 들이받고 전복되는 사고가 났습니다. 시간은 새벽 5시로 역시 야간 작업이었습니다. 이 사고로 60대 수거 차량 운전자가 숨졌습니다.

생활폐기물을 수거하는 환경미화원의 안전 사고도 매년 계속되고 있습니다. 환경부의 환경미화원 산재접수 현황에 따르면 2017년부터 2021년까지 5년간 869건의 사고가 발생했습니다. 이 중 29건이 사망 사고입니다.

■ 유명무실한 '가이드라인'.. 작업 환경 근본적 개선 필요

환경부가 내놓은 환경미화원 작업안전 가이드라인.
환경부는 2019년 3월 '환경미화원 작업안전 가이드라인'을 내놨습니다.

주간작업을 원칙으로 하도록 했는데, 함께 내놓은 대책은 이렇습니다. 주간작업 전환을 위해 ▲청소차량 추가 확보 및 인력 증원 ▲청소일정과 작업구역 순서 조정 ▲지자체·노조·업체·주민 간의 협의를 해야 한다는 내용입니다. 하지만 예외사항으로 자치단체장이 폐기물을 시급하게 처리할 필요가 있거나 주민 생활에 중대한 불편을 초래할 우려가 있는 등의 경우 야간 수거가 가능하도록 단서를 달았습니다. 사실상 유명무실한 지침이라는 지적이 잇따르는 이유입니다.

야간 작업 중인 환경미화원들.
이렇다 보니 대부분의 지자체에서 야간 근무를 유지하는 실정입니다. 대구에선 수성구, 중구, 동구가 야간 근무를 하고 있습니다. 남구와 서구는 주간 근무가 원칙이지만 용역업체 직원들은 여전히 야간에 일하고 있습니다.

주간 근무 도입이 지지부진하다 보니 낮에 일하는 작업 환경도 조성되지 못하는 상황.

미화원들은 주간 근무 도입을 위해선 인력과 차량 증원이 필수라고 말합니다. 출근길 차량 정체 등 주간 수거 특성상 작업 시간이 늘어나기 때문입니다. 달성군의 경우 주간 근무를 도입하면서 차량은 0.02대, 인력은 0.05명 늘리는 데 그쳤습니다. 사실상 추가 차량이나 증원이 없었던 겁니다.

쓰레기 처리장의 운영시간도 문제입니다. 대구 시내의 생활폐기물을 처리하는 곳은 소각장, SRF(폐기물에너지화)시설, 매립장 등 모두 3곳. 평일에는 오후 3시까지 운영하지만, 토요일에는 오전 11시가 되면 모두 문을 닫습니다. 이렇게 되면 주말 동안 종량제 봉투를 수거 차량에 쌓아둬야 하는데, 월요일 업무가 몰리면서 쓰레기 대란까지 벌어지는 상황입니다.

달성군은 미화원들과의 협의를 통해 주간 근무 정착 방안을 강구한다는 방침입니다.

달성군 관계자
"환경미화원의 안전과 직결된 문제이다 보니 주간 근무를 포기할 순 없는 사안입니다. 우선 용역업체에서 자체적으로 청소 구역과 경로를 재편하는 방향으로 이야기하고 있습니다. 용역업체의 자구책 실시 이후에도 근무 여건이 개선되지 않을 경우에는 추가적인 차량, 인력 지원을 고려하고 있습니다. 쓰레기 미수거가 신고된 지역에 대해선 즉각적으로 대응할 수 있도록 해나가겠습니다."

환경미화원 안전이라는 취지를 살리면서, 쓰레기 처리에도 지장이 없도록 제도 개선이 필요합니다.

이 기사가 좋으셨다면

오늘의 핫 클릭

실시간 뜨거운 관심을 받고 있는 뉴스

이 기사에 대한 의견을 남겨주세요.

수신료 수신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