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씨네마진국] 살인범을 잡는다고 끝이 아니다…영화 ‘성스러운 거미’

입력 2023.02.19 (09:0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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영화 ‘성스러운 거미’(2022)의 한 장면. 출처 IMDB.영화 ‘성스러운 거미’(2022)의 한 장면. 출처 IMDB.

※주의 : 영화 내용이 포함돼 있습니다.

살인범을 쫓는 영화들을 생각해보자. 서사를 극단적으로 단순화해 받아들이는 요새 유행대로라면, '살인의 추억'은 '고구마'고 '추격자'는 '사이다'가 될 것이다. '고구마'는 답답하고 석연찮은 감정을 느끼게 하는 연출이나 결말을, '사이다'는 통쾌한 권선징악을 가리킨다. 기준은 단순하다. 살인범을 놓치면 고구마, 어떻게든 잡는 데 성공하면 사이다가 되는 식이다. 실제 미제 사건을 다뤄 어쩔 수 없이 고구마로 끝내야 하는 경우가 아니라면, 대부분 범죄 영화를 보는 이들은 사회 정의에 부합하는 결말을 기대한다. 가해자는 감옥으로, 피해자는 일상으로.

지난 8일 국내 개봉한 영화 '성스러운 거미'는 그러나 이 구분에 들어맞지 않는다. 16명을 살해한 연쇄살인범을 간신히 붙잡아 사형대 위에 올린 뒤에도, 영화에선 통쾌한 승리의 감각 대신 씁쓸함이 감돈다. 연출을 맡은 알리 아바시 감독의 카메라가 하나의 범죄 '사건'이 아니라 이를 묵인하고 조장하는 범죄 '사회'를 비추고 있기 때문이다. 여타 영화라면 법정에 선 살인범을 비추며 마침표를 찍을 순간, '성스러운 거미'의 여주인공은 회의에 찬 얼굴로 여기서 끝이 아니라고 읖조리고, 그의 예감은 현실이 된다. 왜일까? 제목에 단서가 있다.

주인공 ‘라히미’는 사건을 다룬 기사를 쓰며 직접 살인범을 유인하기에 이른다. 출처 IMDB.주인공 ‘라히미’는 사건을 다룬 기사를 쓰며 직접 살인범을 유인하기에 이른다. 출처 IMDB.

2000년대 이란에서 일어난 연쇄 살인을 다룬 이 작품은 실제 사건에 붙은 별명에 '성스러운'이라는 단어를 더해 영화가 겨누는 대상을 드러낸다. 거미줄로 먹이를 휘감듯 피해자의 시신을 차도르(이슬람교도 여성이 얼굴을 가리려 뒤집어쓰는 큰 천)로 꽁꽁 묶어 거미 살인자라는 별명이 붙었던 범인 사이드 하네이가 체포 뒤 종교를 동원해 살인을 정당화했기 때문이다. 거리의 성매매 여성과 마약 중독자를 제거해 도시를 '정화'하려고 했을 뿐이라는 그의 궤변은 안타깝게도 효과를 거뒀다. 보수 신문은 '타락의 근원에 서 있는 자'와 '질병을 근절하려는 자' 가운데 누가 더 나쁘냐며 하네이를 감쌌고, 사람들도 그가 옳은 일을 했다며 추켜세웠다.

현실 속 하네이는 다행히 재판에서 진실이 드러나 교수형에 처해 지지만, 영화는 제2, 제3의 하네이가 뒤따를 거라는 암울한 전망으로 끝난다. 직접 성매매 여성으로 위장하는 등 천신만고 끝에 사건을 해결한 주인공 라히미는 집으로 돌아가며 그간 인터뷰한 사람들의 영상을 돌려본다. 사건을 수사하던 경찰, 라히미의 아내, 그리고 마지막으로 그의 아들. 기껏해야 열댓 살인 그는 당당하게 아버지는 정의를 수행했을 뿐이라 말한다. 실제론 소심하기 그지없었던 추잡한 범행 행각을 한껏 미화해 들려주기도 한다. 한 치 의심 없이 아버지를 믿는 소년의 얼굴 앞에서 라히미는 말을 잃는다. 네 아버지에게 그런 권리를 준 사람은 아무도 없다고, 만일 신이 자격을 준 거라면 왜 똑같이 성을 사들이는 남성들은 단죄하지 않느냐고 관객이 목놓아 소리치고 싶을 정도다.

지난해 칸 영화제에서 여우주연상을 받았고, 올해 아카데미에서 장편 국제영화상 예비 후보에 오르기도 했던 이 작품을 두고 이란은 침묵했고 서구 세계는 찬사를 보냈다. 주연 배우와 감독 모두 망명객 신세로 자국의 어둠을 고발한 용기를 높이 샀겠지만, 보수적인 이슬람 사회를 손가락질하는 거로 끝난다면 반쪽짜리 감상에 불과하다는 생각이다. 20년의 시차와 종교적 차이에도 불구하고 현대 관객들 역시 공감할 여지가 적지 않다. 살인범 유영철이 여성의 몸가짐 운운하며 오히려 훈계를 늘어놓았던 게 우리나라의 일이니까. 살인자를 붙잡고 중한 형을 내리는 일이 아무리 반복되더라도, 여자를 인간으로 보지 않는 시각 자체가 달라지지 않으면 바뀌는 건 없을 거라는 게 '성스러운 거미'가 진정 말하고자 하는 바 아닐까. 소름 끼치는 스릴러에 묵직한 메시지까지 담은 이 작품은 지금 극장에서 볼 수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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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씨네마진국] 살인범을 잡는다고 끝이 아니다…영화 ‘성스러운 거미’
    • 입력 2023-02-19 09:00:50
    씨네마진국
영화 ‘성스러운 거미’(2022)의 한 장면. 출처 IMDB.
※주의 : 영화 내용이 포함돼 있습니다.

살인범을 쫓는 영화들을 생각해보자. 서사를 극단적으로 단순화해 받아들이는 요새 유행대로라면, '살인의 추억'은 '고구마'고 '추격자'는 '사이다'가 될 것이다. '고구마'는 답답하고 석연찮은 감정을 느끼게 하는 연출이나 결말을, '사이다'는 통쾌한 권선징악을 가리킨다. 기준은 단순하다. 살인범을 놓치면 고구마, 어떻게든 잡는 데 성공하면 사이다가 되는 식이다. 실제 미제 사건을 다뤄 어쩔 수 없이 고구마로 끝내야 하는 경우가 아니라면, 대부분 범죄 영화를 보는 이들은 사회 정의에 부합하는 결말을 기대한다. 가해자는 감옥으로, 피해자는 일상으로.

지난 8일 국내 개봉한 영화 '성스러운 거미'는 그러나 이 구분에 들어맞지 않는다. 16명을 살해한 연쇄살인범을 간신히 붙잡아 사형대 위에 올린 뒤에도, 영화에선 통쾌한 승리의 감각 대신 씁쓸함이 감돈다. 연출을 맡은 알리 아바시 감독의 카메라가 하나의 범죄 '사건'이 아니라 이를 묵인하고 조장하는 범죄 '사회'를 비추고 있기 때문이다. 여타 영화라면 법정에 선 살인범을 비추며 마침표를 찍을 순간, '성스러운 거미'의 여주인공은 회의에 찬 얼굴로 여기서 끝이 아니라고 읖조리고, 그의 예감은 현실이 된다. 왜일까? 제목에 단서가 있다.

주인공 ‘라히미’는 사건을 다룬 기사를 쓰며 직접 살인범을 유인하기에 이른다. 출처 IMDB.
2000년대 이란에서 일어난 연쇄 살인을 다룬 이 작품은 실제 사건에 붙은 별명에 '성스러운'이라는 단어를 더해 영화가 겨누는 대상을 드러낸다. 거미줄로 먹이를 휘감듯 피해자의 시신을 차도르(이슬람교도 여성이 얼굴을 가리려 뒤집어쓰는 큰 천)로 꽁꽁 묶어 거미 살인자라는 별명이 붙었던 범인 사이드 하네이가 체포 뒤 종교를 동원해 살인을 정당화했기 때문이다. 거리의 성매매 여성과 마약 중독자를 제거해 도시를 '정화'하려고 했을 뿐이라는 그의 궤변은 안타깝게도 효과를 거뒀다. 보수 신문은 '타락의 근원에 서 있는 자'와 '질병을 근절하려는 자' 가운데 누가 더 나쁘냐며 하네이를 감쌌고, 사람들도 그가 옳은 일을 했다며 추켜세웠다.

현실 속 하네이는 다행히 재판에서 진실이 드러나 교수형에 처해 지지만, 영화는 제2, 제3의 하네이가 뒤따를 거라는 암울한 전망으로 끝난다. 직접 성매매 여성으로 위장하는 등 천신만고 끝에 사건을 해결한 주인공 라히미는 집으로 돌아가며 그간 인터뷰한 사람들의 영상을 돌려본다. 사건을 수사하던 경찰, 라히미의 아내, 그리고 마지막으로 그의 아들. 기껏해야 열댓 살인 그는 당당하게 아버지는 정의를 수행했을 뿐이라 말한다. 실제론 소심하기 그지없었던 추잡한 범행 행각을 한껏 미화해 들려주기도 한다. 한 치 의심 없이 아버지를 믿는 소년의 얼굴 앞에서 라히미는 말을 잃는다. 네 아버지에게 그런 권리를 준 사람은 아무도 없다고, 만일 신이 자격을 준 거라면 왜 똑같이 성을 사들이는 남성들은 단죄하지 않느냐고 관객이 목놓아 소리치고 싶을 정도다.

지난해 칸 영화제에서 여우주연상을 받았고, 올해 아카데미에서 장편 국제영화상 예비 후보에 오르기도 했던 이 작품을 두고 이란은 침묵했고 서구 세계는 찬사를 보냈다. 주연 배우와 감독 모두 망명객 신세로 자국의 어둠을 고발한 용기를 높이 샀겠지만, 보수적인 이슬람 사회를 손가락질하는 거로 끝난다면 반쪽짜리 감상에 불과하다는 생각이다. 20년의 시차와 종교적 차이에도 불구하고 현대 관객들 역시 공감할 여지가 적지 않다. 살인범 유영철이 여성의 몸가짐 운운하며 오히려 훈계를 늘어놓았던 게 우리나라의 일이니까. 살인자를 붙잡고 중한 형을 내리는 일이 아무리 반복되더라도, 여자를 인간으로 보지 않는 시각 자체가 달라지지 않으면 바뀌는 건 없을 거라는 게 '성스러운 거미'가 진정 말하고자 하는 바 아닐까. 소름 끼치는 스릴러에 묵직한 메시지까지 담은 이 작품은 지금 극장에서 볼 수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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