특전사동지회는 왜 ‘군사작전’ 하듯 5·18묘지를 몰래 참배했나?

입력 2023.02.19 (19:5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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요약

1980년 5·18민주화운동을 잔인하게 진압한 계엄군의 주력부대 특전사. 이 특전사 예비역 단체가 5·18민주묘지를 처음으로 공식 참배했습니다. 그런데 예정된 일정을 대다수 언론에도 알리지 않은 채 기습적으로 바꿔 마치 '군사작전' 하듯 몰래 참배했습니다. 이유가 뭘까요?

5·18민주묘지 참배단 앞에 머리 숙인 특전사동지회 임원들. 특전사의 상징인 ‘검은 베레모’ 모자는 쓰지 않았다.5·18민주묘지 참배단 앞에 머리 숙인 특전사동지회 임원들. 특전사의 상징인 ‘검은 베레모’ 모자는 쓰지 않았다.

특전사동지회와 5·18 부상자회·공로자회가 19일 광주 5·18 기념문화센터에서 <5·18민주화운동 '포용과 화해 감사' 대국민 공동선언식>을 열었습니다. 행사가 열리기 전 5·18 기념문화센터 앞에서는 시민사회단체의 집회가 열렸는데요. 화해와 용서 전에 사과와 진상규명 협조가 먼저라며 행사 철회를 요구한 겁니다. 일부 집회 참석자들이 공동선언식 행사장에 들어가는 특전사동지회 회원들을 막아서며 충돌을 빚기도 했습니다.

그런데 이미 특전사동지회가 5·18민주묘지를 참배했다는 소식이 들려왔습니다. 이 때문에 더욱 반발을 샀는데요. 오월어머니집은 5·18 부상자회와 공로자회가 당초 일정 대신 미리 묘지 참배를 한 것은 '도둑 참배'라고 강하게 비판했습니다.

공동선언식 철회 요구 집회에 참석한 안성례 오월어머니집 초대 관장과 김준태 전 5·18기념재단 이사장 등 원로 회원들공동선언식 철회 요구 집회에 참석한 안성례 오월어머니집 초대 관장과 김준태 전 5·18기념재단 이사장 등 원로 회원들

5·18 부상자회와 공로자회는 오전 5·18 기념문화센터에서 '포용과 화해와 감사 5·18 민주화운동 대국민 공동선언식'을 마치고 오후 2시 이후 국립5·18민주묘지를 참배할 계획이었고 언론사에도 모두 그렇게 공지가 돼 있었습니다. 그러나 시민단체의 반발이 예상되자 오전 10시 전에 참배를 미리 마친 겁니다.

예정과 다른 5·18민주묘지 참배는 지역 언론사에도 전혀 알리지 않고 아무도 없는 사이에 진행해 마치 '군사작전'과 같다는 비판이 나오기도 했습니다. 공동선언식 철회를 요구하는 시민단체의 집회가 열리고 기자들이 이 취재에 열중하는 사이 임원들끼리만 모여서 기습참배를 했기 때문입니다.

민주의문을 지나 참배단으로 향하는 특전사동지회 회원. 5·18 공로자회와 부상자회 회장도 함께했다.민주의문을 지나 참배단으로 향하는 특전사동지회 회원. 5·18 공로자회와 부상자회 회장도 함께했다.

시민사회단체와 오월단체 내부 회원들의 거센 반발 속에서도 <5·18민주화운동 '포용과 화해 감사' 대국민 공동선언식> 행사는 예정대로 진행됐습니다. 특전사 군복에 검은 베레모를 쓴 회원들이 5·18 기념문화센터 강당 대동홀을 가득 메웠는데요. 행사는 주최 단체 대표들의 인사말과 공동선언문 낭독, 공동선언 조인식 등으로 진행됐습니다.

공동선언문 조인식(왼쪽부터 최익봉 특전사동지회 총재, 황일봉 5·18 부상자회장, 정성국 5·18 공로자회장, 전상부 특전사동지회 회장)공동선언문 조인식(왼쪽부터 최익봉 특전사동지회 총재, 황일봉 5·18 부상자회장, 정성국 5·18 공로자회장, 전상부 특전사동지회 회장)

공동선언식을 주최한 단체들은 1980년 당시 계엄군 장병도 '피해자'로 규정하며 '화해와 용서'를 말했습니다. 계엄군 장병들의 '노고에 대한 보상'이 필요하다며 제도적 지원을 추진하는 내용도 선언문에 포함시켰습니다.

"당시 투입된 계엄군들은 상명하복에 따른 강경진압의 트라우마 때문에 정신적, 유첵적으로 고통받고 있는 또 다른 피해자로 인식되고 있습니다. 이제는 역사 앞에 진실을 밝히고 트라우마에서 벗어나시길 진심으로 바라며 진상규명에도 당당히 나서 주시길 부탁드립니다." -정성국 5·18공로자회장

"5·18민주화운동이 우리 민주주의 변천 과정에서 미래의 길을 비추어준 교훈과 길잡이가 되었다는 점을 누구도 부인하지 않을 것입니다. 한편, 현지에 파견되어 질서회복의 임무를 수행한 특전사 선배 전우들의 노고와 희생은 결코 왜곡되거나 과소평가 되어서는 안 된다고 생각합니다. 여전히 고통받고 있는 군 선배들의 아픔이 정당하게 치유되고 보상되기를 기대합니다." -최익봉 특전사동지회 총재

당초 공동선언식에선 '도청지킴이 어머니 합창단'이 "5·18 어메" 노래를 합창하기로 했지만, 실제 행사에선 빠졌습니다. '오월어머니집' 회원들도 직접 참여해 만든 노래로 남다른 의미가 있는데, 오월어머니집 측이 행사 철회를 강하게 요구하고 나선데다 유족회도 행사 불참을 결정하면서 어머니들이 행사에 참여하지 않기로 한 겁니다. 또, 1980년 당시 최초로 계엄군에 맞아 사망한 희생자의 어머니가 당시 공수부대 출신 장교인 특전사동지회 회원과 모자 결연을 하는 행사도 예고됐지만, 해당 어머니가 참석하지 않아 무산됐습니다.

공동선언식 행사에 직접 참석해 축사하는 윤상현 의원공동선언식 행사에 직접 참석해 축사하는 윤상현 의원

당초 많은 국회의원과 자치단체장, 의회 의장 등을 초대한 것으로 전해졌지만, 실제 참석자는 거의 없었습니다. 국회의원 가운데는 국민의힘 윤상현 의원이 유일했고 역시 국민의힘 성일종 의원이 축하 영상을 보냈습니다. 박민식 국가보훈처장은 아주 짧은 축사만 보내왔습니다. 광주시장과 광주시의회 의장, 전남도지사와 도 의장을 비롯한 지역 인사들은 모두 참석하지 않았습니다.


최익봉 특전사동지회 총재는 선언식 인사말에서 "질서회복 임무를 위해 투입된 선배 전우들"이라고 표현했습니다. 또, "군 선배들의 노고에 대한 보상이 필요하다"고 직접 언급했는데요. 5·18민주화운동
의 가치를 인정한다고 말했지만, 공동선언문이나 인사말 어디에도 과거에 대한 반성이나 사과, 유감 표명은 없었습니다.

5·18민주묘지 참배단에서 분향하는 최익봉 특전사동지회 총재(가운데)5·18민주묘지 참배단에서 분향하는 최익봉 특전사동지회 총재(가운데)

이 때문에 선언식 이후에도 시민사회단체와 오월단체 회원들은 "시민들을 잔인하게 살상한 계엄군의 활동이 질서회복 임무일 수 있느냐"며 "사죄 없이 용서를 받고 정부 지원을 받으려는 정치적 쇼"라고 반발하기도 했습니다.

이번 선언식에서 특전사동지회와 5·18 부상자회, 공로자회는 해마다 정기적으로 국립5·18민주묘지와 국립서울현충원 합동 참배를 하기로 했습니다. 이번 선언을 시작으로 일회성이 아니라 지속적으로 화합 행사를 갖고 이후 진상규명도 성과를 낼 수 있도록 노력하겠다는 취지도 밝혔는데요. 아직 갈 길은 멀어 보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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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특전사동지회는 왜 ‘군사작전’ 하듯 5·18묘지를 몰래 참배했나?
    • 입력 2023-02-19 19:53:30
    취재K
1980년 5·18민주화운동을 잔인하게 진압한 계엄군의 주력부대 특전사. 이 특전사 예비역 단체가 5·18민주묘지를 처음으로 공식 참배했습니다. 그런데 예정된 일정을 대다수 언론에도 알리지 않은 채 기습적으로 바꿔 마치 '군사작전' 하듯 몰래 참배했습니다. 이유가 뭘까요?<br />
5·18민주묘지 참배단 앞에 머리 숙인 특전사동지회 임원들. 특전사의 상징인 ‘검은 베레모’ 모자는 쓰지 않았다.
특전사동지회와 5·18 부상자회·공로자회가 19일 광주 5·18 기념문화센터에서 <5·18민주화운동 '포용과 화해 감사' 대국민 공동선언식>을 열었습니다. 행사가 열리기 전 5·18 기념문화센터 앞에서는 시민사회단체의 집회가 열렸는데요. 화해와 용서 전에 사과와 진상규명 협조가 먼저라며 행사 철회를 요구한 겁니다. 일부 집회 참석자들이 공동선언식 행사장에 들어가는 특전사동지회 회원들을 막아서며 충돌을 빚기도 했습니다.

그런데 이미 특전사동지회가 5·18민주묘지를 참배했다는 소식이 들려왔습니다. 이 때문에 더욱 반발을 샀는데요. 오월어머니집은 5·18 부상자회와 공로자회가 당초 일정 대신 미리 묘지 참배를 한 것은 '도둑 참배'라고 강하게 비판했습니다.

공동선언식 철회 요구 집회에 참석한 안성례 오월어머니집 초대 관장과 김준태 전 5·18기념재단 이사장 등 원로 회원들
5·18 부상자회와 공로자회는 오전 5·18 기념문화센터에서 '포용과 화해와 감사 5·18 민주화운동 대국민 공동선언식'을 마치고 오후 2시 이후 국립5·18민주묘지를 참배할 계획이었고 언론사에도 모두 그렇게 공지가 돼 있었습니다. 그러나 시민단체의 반발이 예상되자 오전 10시 전에 참배를 미리 마친 겁니다.

예정과 다른 5·18민주묘지 참배는 지역 언론사에도 전혀 알리지 않고 아무도 없는 사이에 진행해 마치 '군사작전'과 같다는 비판이 나오기도 했습니다. 공동선언식 철회를 요구하는 시민단체의 집회가 열리고 기자들이 이 취재에 열중하는 사이 임원들끼리만 모여서 기습참배를 했기 때문입니다.

민주의문을 지나 참배단으로 향하는 특전사동지회 회원. 5·18 공로자회와 부상자회 회장도 함께했다.
시민사회단체와 오월단체 내부 회원들의 거센 반발 속에서도 <5·18민주화운동 '포용과 화해 감사' 대국민 공동선언식> 행사는 예정대로 진행됐습니다. 특전사 군복에 검은 베레모를 쓴 회원들이 5·18 기념문화센터 강당 대동홀을 가득 메웠는데요. 행사는 주최 단체 대표들의 인사말과 공동선언문 낭독, 공동선언 조인식 등으로 진행됐습니다.

공동선언문 조인식(왼쪽부터 최익봉 특전사동지회 총재, 황일봉 5·18 부상자회장, 정성국 5·18 공로자회장, 전상부 특전사동지회 회장)
공동선언식을 주최한 단체들은 1980년 당시 계엄군 장병도 '피해자'로 규정하며 '화해와 용서'를 말했습니다. 계엄군 장병들의 '노고에 대한 보상'이 필요하다며 제도적 지원을 추진하는 내용도 선언문에 포함시켰습니다.

"당시 투입된 계엄군들은 상명하복에 따른 강경진압의 트라우마 때문에 정신적, 유첵적으로 고통받고 있는 또 다른 피해자로 인식되고 있습니다. 이제는 역사 앞에 진실을 밝히고 트라우마에서 벗어나시길 진심으로 바라며 진상규명에도 당당히 나서 주시길 부탁드립니다." -정성국 5·18공로자회장

"5·18민주화운동이 우리 민주주의 변천 과정에서 미래의 길을 비추어준 교훈과 길잡이가 되었다는 점을 누구도 부인하지 않을 것입니다. 한편, 현지에 파견되어 질서회복의 임무를 수행한 특전사 선배 전우들의 노고와 희생은 결코 왜곡되거나 과소평가 되어서는 안 된다고 생각합니다. 여전히 고통받고 있는 군 선배들의 아픔이 정당하게 치유되고 보상되기를 기대합니다." -최익봉 특전사동지회 총재

당초 공동선언식에선 '도청지킴이 어머니 합창단'이 "5·18 어메" 노래를 합창하기로 했지만, 실제 행사에선 빠졌습니다. '오월어머니집' 회원들도 직접 참여해 만든 노래로 남다른 의미가 있는데, 오월어머니집 측이 행사 철회를 강하게 요구하고 나선데다 유족회도 행사 불참을 결정하면서 어머니들이 행사에 참여하지 않기로 한 겁니다. 또, 1980년 당시 최초로 계엄군에 맞아 사망한 희생자의 어머니가 당시 공수부대 출신 장교인 특전사동지회 회원과 모자 결연을 하는 행사도 예고됐지만, 해당 어머니가 참석하지 않아 무산됐습니다.

공동선언식 행사에 직접 참석해 축사하는 윤상현 의원
당초 많은 국회의원과 자치단체장, 의회 의장 등을 초대한 것으로 전해졌지만, 실제 참석자는 거의 없었습니다. 국회의원 가운데는 국민의힘 윤상현 의원이 유일했고 역시 국민의힘 성일종 의원이 축하 영상을 보냈습니다. 박민식 국가보훈처장은 아주 짧은 축사만 보내왔습니다. 광주시장과 광주시의회 의장, 전남도지사와 도 의장을 비롯한 지역 인사들은 모두 참석하지 않았습니다.


최익봉 특전사동지회 총재는 선언식 인사말에서 "질서회복 임무를 위해 투입된 선배 전우들"이라고 표현했습니다. 또, "군 선배들의 노고에 대한 보상이 필요하다"고 직접 언급했는데요. 5·18민주화운동
의 가치를 인정한다고 말했지만, 공동선언문이나 인사말 어디에도 과거에 대한 반성이나 사과, 유감 표명은 없었습니다.

5·18민주묘지 참배단에서 분향하는 최익봉 특전사동지회 총재(가운데)
이 때문에 선언식 이후에도 시민사회단체와 오월단체 회원들은 "시민들을 잔인하게 살상한 계엄군의 활동이 질서회복 임무일 수 있느냐"며 "사죄 없이 용서를 받고 정부 지원을 받으려는 정치적 쇼"라고 반발하기도 했습니다.

이번 선언식에서 특전사동지회와 5·18 부상자회, 공로자회는 해마다 정기적으로 국립5·18민주묘지와 국립서울현충원 합동 참배를 하기로 했습니다. 이번 선언을 시작으로 일회성이 아니라 지속적으로 화합 행사를 갖고 이후 진상규명도 성과를 낼 수 있도록 노력하겠다는 취지도 밝혔는데요. 아직 갈 길은 멀어 보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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