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특파원 리포트] 극비리 키이우 간 미 대통령과 백악관 기자의 ‘골프 여행’

입력 2023.02.21 (10:11) 수정 2023.02.21 (10:1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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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23년 2월 20일 우크라이나 키이우에 전격 방문한 바이든 미국대통령   (사진/AP)2023년 2월 20일 우크라이나 키이우에 전격 방문한 바이든 미국대통령 (사진/AP)

■아무도 몰랐습니다.

바이든 미 대통령이 우크라이나 전쟁 1년을 즈음해 인접국인 폴란드를 방문하겠다는 일정을 발표한 뒤 과연 우크라이나를 갈 것인가에 대한 질문이 쏟아졌지만, 백악관은 단호히 부인했습니다. 심지어 폴란드 방문 사흘 전(17일)에 열린 미 백악관 브리핑에서 존 커비 NSC 전략소통조정관은 바이든의 추가 행선지를 묻는 질문에 이렇게 말했습니다.

"현재로서 목적지는 바르샤바(폴란드 수도)입니다. 음.. 현재로선 이라는 말이 혼선을 일으킬 수 있겠군요. 빼겠습니다. 목적지는 바르샤바입니다."

우크라이나를 방문할 것이라는 기자들의 질문에 대해 단호하게 여지를 차단한 겁니다.

전격적인 키이우 방문 소식이 전해진 것은 바이든 미 대통령이 현장에 도착해 차량 행렬을 하는 것을 본 사람들이 소셜미디어에 올리면서 부텁니다. 미국 대통령이 전쟁이 벌어지고 있는 현장에, 그것도 미군이 주둔하고 있지 않은 전쟁 국가의 심장부에 도착한 겁니다. 이어 로이터를 시작으로 미국 언론들의 속보가 일제히 타전되기 시작했습니다. 마치 기다렸다는 듯이 준비된 보도였습니다.

■기자들은 알고 있었을까요?

백악관 출입기자인 월스트리트 저널의 사브리나 시디키 기자는 바이든의 키이우행이 소셜미디어에 오르기 시작한 20일 저녁 7시 백악관 출입기자들에게 "엠바고가 일찍 파기됐다"라며 현지 상황을 상세히 담은 이메일을 보냈습니다.

바이든 대통령이 약 4시간 전(우크라이나 현지시각 오전 8시)에 키이우에 도착했고, 젤렌스키 우크라이나 대통령과 마린스키 궁전에서 만났다는 겁니다. 바이든 대통령이 기차역에서 내리면서 한 말과 젤렌스키 대통령과 만나 나눈 대화의 내용도 철저하게 복기해서 공유됐습니다.

■비밀 작전인 바이든의 우크라이나행에 동행한 기자들

통상 백악관 출장단은 13명으로 구성됩니다. 공동 취재단은 백악관 출입기자들에게 자신이 취재한 내용을 실시간으로 공유하고, 출입기자들이 묻는 질문에 추가로 취재를 해서 보내주기도 합니다. 기자단을 대표해서 가는 것인 만큼, 현장에 참석한 이들의 옷차림(바이든은 우크라이나를 상징하는 노란색과 파란색 줄무늬 넥타이에 짙은 파란 양복을 입었음) , 분위기, 나눈 대화 등은 모두 상세하게 취재되어 공유됩니다. 다만 이번엔 상황이 상황인 만큼 13명이 아닌 2명의 기자가 대표로 선발됐습니다. 월스트리트 저널과 AP였습니다.

바이든 미 대통령과 젤렌스키 우크라이나 대통령 (사진/ 공동 취재로 뽑힌 AP 에반 부치 기자)바이든 미 대통령과 젤렌스키 우크라이나 대통령 (사진/ 공동 취재로 뽑힌 AP 에반 부치 기자)

사브리나 시디키 기자는 백악관 공보실장인 케이크 베딩필드의 호출을 받아 지난 금요일 회의가 소집됐다고 알렸습니다. 그곳에는 베딩필드 실장과 안보실 관계자들, 그리고 백악관 출입기자단(WHCA)의 의장인 태머라 키스(NPR) -백악관 출입기자들은 해마다 의장을 투표로 선출합니다 - 가 있었다고 합니다. 백악관 안보실은 기자단에 바이든 대통령의 키이우행이 방금 결정됐음을 알리며, 기자단 중 2명만 같이 갈 수 있다고 설명했습니다. 비밀 엄수 서약을 하고, 바이든 대통령의 동선이 키이우를 떠나는 시점에 보도를 하는 것으로 보도 유예(엠바고)에 동의했습니다 - 키이우의 시민들이 바이든을 찍어서 소셜 미디어에 올리는 바람에 엠바고는 일찍 파기됐습니다.

■골프 투어에 대해 안내드립니다

사브리나 기자는 백악관에서 출발 항공기 탑승과 관련된 이메일을 보내주겠다고 해서 확인했는데 제목이 "골프 투어의 도착 관련"이었다고도 설명했습니다. 자신과 AP 부치 기자는 항공기에 탑승해 개인적인 휴대전화 같은 장비를 반납했고, 이는 안보와 관련된 사안이었다고도 적었습니다. 그만큼 바이든의 키이우 행 취재는 철통같은 보안 속에서 진행됐습니다.

키이우 도착을 알리는 메일(현지시각 새벽 5시 15분)을 시작으로 사브리나 기자는 모두 6차례의 취재 공유 메일을 백악관 기자단에 송고했습니다. 젤렌스키 대통령의 말은 현장에서 제공된 실시간 통역을 기반으로 했다는 정보도 빠짐없이 기록했습니다. 마지막 공유 취재 내용은 현지시간 자정 무렵, 대통령이 폴란드 바르샤바에 도착했다는 것과 이로써 오늘 취재 일정은 끝났다는 알림 메일입니다.

이번 폴란드 순방에 동행하는 다른 11명의 기자들은 이에 화답해 자신들이 '들러리' 신세가 됐다면서도 대통령의 다음 일정은 자신들이 보내겠다, 수고한 2명의 동료들에게 감사한다는 이메일을 송고했습니다.

이후 백악관 기자단 의장을 맡고 있는 태머라 키스는 백악관 출입기자단에게 이메일을 보내, 현지 취재에 더 많은 기자들을 보내고 싶었지만, 백악관 안보실에서 2명까지만 가능하다고 선을 그었다고 설명했습니다. 취재 자유 보장을 위해 다음에는 가능한 한 더 많은 기자들이 참여할 수 있도록 노력하겠다는 말도 덧붙였습니다.

■빠짐없이 기록되는 대통령 취재와 이를 보장하는 백악관

미국에서 가장 역동적인 출입처인 백악관 출입기자에게 가장 중요한 일이 바로 공동 취재입니다. 대통령과 부통령, 대통령 영부인 이렇게 3명의 일정은 상시 마크맨이 붙습니다. 매주 공식 일정을 공개하고, 취재 가능 여부가 공지됩니다. 주말에 대통령이 쉬러 가는 델라웨어의 별장 앞에도 늘 기자들이 있습니다. 특히 대통령의 동선에는 항상 공동 취재 기자(pool 기자)가 따라붙어 그날 그날의 현안에 대해 질문합니다 대통령은 답변을 할 때도, 하지 않을 때도 있습니다. 하지만 취재 자체는 보장됩니다.

백악관 출입기자단 홈페이지 WHCA  : “기자단은 대통령과 관련된 강력한 언론 자유와 확고한 취재를 보장하기 위해 일한다”고 쓰여있다백악관 출입기자단 홈페이지 WHCA : “기자단은 대통령과 관련된 강력한 언론 자유와 확고한 취재를 보장하기 위해 일한다”고 쓰여있다

전쟁이 한창이 키이우에 들어가는 것 또한 다를 바가 없었습니다. 백악관은 사실을 알렸고, 출입 기자단은 최대한의 취재 자유를 요청했습니다. 그리고 받아들여졌습니다. 수년 뒤, 혹은 수십 년 뒤, 미국 대통령이 전쟁의 한 복판에 방문했었고, 당시 무슨 대화가 오갔었는 지에 대한 기록은 언론의 사명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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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특파원 리포트] 극비리 키이우 간 미 대통령과 백악관 기자의 ‘골프 여행’
    • 입력 2023-02-21 10:11:32
    • 수정2023-02-21 10:12:59
    특파원 리포트
2023년 2월 20일 우크라이나 키이우에 전격 방문한 바이든 미국대통령   (사진/AP)
■아무도 몰랐습니다.

바이든 미 대통령이 우크라이나 전쟁 1년을 즈음해 인접국인 폴란드를 방문하겠다는 일정을 발표한 뒤 과연 우크라이나를 갈 것인가에 대한 질문이 쏟아졌지만, 백악관은 단호히 부인했습니다. 심지어 폴란드 방문 사흘 전(17일)에 열린 미 백악관 브리핑에서 존 커비 NSC 전략소통조정관은 바이든의 추가 행선지를 묻는 질문에 이렇게 말했습니다.

"현재로서 목적지는 바르샤바(폴란드 수도)입니다. 음.. 현재로선 이라는 말이 혼선을 일으킬 수 있겠군요. 빼겠습니다. 목적지는 바르샤바입니다."

우크라이나를 방문할 것이라는 기자들의 질문에 대해 단호하게 여지를 차단한 겁니다.

전격적인 키이우 방문 소식이 전해진 것은 바이든 미 대통령이 현장에 도착해 차량 행렬을 하는 것을 본 사람들이 소셜미디어에 올리면서 부텁니다. 미국 대통령이 전쟁이 벌어지고 있는 현장에, 그것도 미군이 주둔하고 있지 않은 전쟁 국가의 심장부에 도착한 겁니다. 이어 로이터를 시작으로 미국 언론들의 속보가 일제히 타전되기 시작했습니다. 마치 기다렸다는 듯이 준비된 보도였습니다.

■기자들은 알고 있었을까요?

백악관 출입기자인 월스트리트 저널의 사브리나 시디키 기자는 바이든의 키이우행이 소셜미디어에 오르기 시작한 20일 저녁 7시 백악관 출입기자들에게 "엠바고가 일찍 파기됐다"라며 현지 상황을 상세히 담은 이메일을 보냈습니다.

바이든 대통령이 약 4시간 전(우크라이나 현지시각 오전 8시)에 키이우에 도착했고, 젤렌스키 우크라이나 대통령과 마린스키 궁전에서 만났다는 겁니다. 바이든 대통령이 기차역에서 내리면서 한 말과 젤렌스키 대통령과 만나 나눈 대화의 내용도 철저하게 복기해서 공유됐습니다.

■비밀 작전인 바이든의 우크라이나행에 동행한 기자들

통상 백악관 출장단은 13명으로 구성됩니다. 공동 취재단은 백악관 출입기자들에게 자신이 취재한 내용을 실시간으로 공유하고, 출입기자들이 묻는 질문에 추가로 취재를 해서 보내주기도 합니다. 기자단을 대표해서 가는 것인 만큼, 현장에 참석한 이들의 옷차림(바이든은 우크라이나를 상징하는 노란색과 파란색 줄무늬 넥타이에 짙은 파란 양복을 입었음) , 분위기, 나눈 대화 등은 모두 상세하게 취재되어 공유됩니다. 다만 이번엔 상황이 상황인 만큼 13명이 아닌 2명의 기자가 대표로 선발됐습니다. 월스트리트 저널과 AP였습니다.

바이든 미 대통령과 젤렌스키 우크라이나 대통령 (사진/ 공동 취재로 뽑힌 AP 에반 부치 기자)
사브리나 시디키 기자는 백악관 공보실장인 케이크 베딩필드의 호출을 받아 지난 금요일 회의가 소집됐다고 알렸습니다. 그곳에는 베딩필드 실장과 안보실 관계자들, 그리고 백악관 출입기자단(WHCA)의 의장인 태머라 키스(NPR) -백악관 출입기자들은 해마다 의장을 투표로 선출합니다 - 가 있었다고 합니다. 백악관 안보실은 기자단에 바이든 대통령의 키이우행이 방금 결정됐음을 알리며, 기자단 중 2명만 같이 갈 수 있다고 설명했습니다. 비밀 엄수 서약을 하고, 바이든 대통령의 동선이 키이우를 떠나는 시점에 보도를 하는 것으로 보도 유예(엠바고)에 동의했습니다 - 키이우의 시민들이 바이든을 찍어서 소셜 미디어에 올리는 바람에 엠바고는 일찍 파기됐습니다.

■골프 투어에 대해 안내드립니다

사브리나 기자는 백악관에서 출발 항공기 탑승과 관련된 이메일을 보내주겠다고 해서 확인했는데 제목이 "골프 투어의 도착 관련"이었다고도 설명했습니다. 자신과 AP 부치 기자는 항공기에 탑승해 개인적인 휴대전화 같은 장비를 반납했고, 이는 안보와 관련된 사안이었다고도 적었습니다. 그만큼 바이든의 키이우 행 취재는 철통같은 보안 속에서 진행됐습니다.

키이우 도착을 알리는 메일(현지시각 새벽 5시 15분)을 시작으로 사브리나 기자는 모두 6차례의 취재 공유 메일을 백악관 기자단에 송고했습니다. 젤렌스키 대통령의 말은 현장에서 제공된 실시간 통역을 기반으로 했다는 정보도 빠짐없이 기록했습니다. 마지막 공유 취재 내용은 현지시간 자정 무렵, 대통령이 폴란드 바르샤바에 도착했다는 것과 이로써 오늘 취재 일정은 끝났다는 알림 메일입니다.

이번 폴란드 순방에 동행하는 다른 11명의 기자들은 이에 화답해 자신들이 '들러리' 신세가 됐다면서도 대통령의 다음 일정은 자신들이 보내겠다, 수고한 2명의 동료들에게 감사한다는 이메일을 송고했습니다.

이후 백악관 기자단 의장을 맡고 있는 태머라 키스는 백악관 출입기자단에게 이메일을 보내, 현지 취재에 더 많은 기자들을 보내고 싶었지만, 백악관 안보실에서 2명까지만 가능하다고 선을 그었다고 설명했습니다. 취재 자유 보장을 위해 다음에는 가능한 한 더 많은 기자들이 참여할 수 있도록 노력하겠다는 말도 덧붙였습니다.

■빠짐없이 기록되는 대통령 취재와 이를 보장하는 백악관

미국에서 가장 역동적인 출입처인 백악관 출입기자에게 가장 중요한 일이 바로 공동 취재입니다. 대통령과 부통령, 대통령 영부인 이렇게 3명의 일정은 상시 마크맨이 붙습니다. 매주 공식 일정을 공개하고, 취재 가능 여부가 공지됩니다. 주말에 대통령이 쉬러 가는 델라웨어의 별장 앞에도 늘 기자들이 있습니다. 특히 대통령의 동선에는 항상 공동 취재 기자(pool 기자)가 따라붙어 그날 그날의 현안에 대해 질문합니다 대통령은 답변을 할 때도, 하지 않을 때도 있습니다. 하지만 취재 자체는 보장됩니다.

백악관 출입기자단 홈페이지 WHCA  : “기자단은 대통령과 관련된 강력한 언론 자유와 확고한 취재를 보장하기 위해 일한다”고 쓰여있다
전쟁이 한창이 키이우에 들어가는 것 또한 다를 바가 없었습니다. 백악관은 사실을 알렸고, 출입 기자단은 최대한의 취재 자유를 요청했습니다. 그리고 받아들여졌습니다. 수년 뒤, 혹은 수십 년 뒤, 미국 대통령이 전쟁의 한 복판에 방문했었고, 당시 무슨 대화가 오갔었는 지에 대한 기록은 언론의 사명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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