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통계감사’는 실패한 고래잡이?…특별조사국 긴급 투입

입력 2023.02.21 (14:3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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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유병호 사무총장 어록으로 되짚어 본 '통계 감사'

"단순한 규정 위반 등 송사리, 피라미급 이하 사건에는 관심도 가지지 말고, 하던 감사의 성공적인 마무리에 총력을 다할 것."

"(가급적) 프로급 실력을 갖추어서 정확, 신속하게 일할 수 있는 역량을 갖추어야, 그것을 바탕으로 상어급 이상의 사냥에 몰입하여 국가와 국민에게 임빠꾸를 주는 감사를 할 수 있어야 하고, 하여야 함." - 유병호 감사원 사무총장이 국장 재직 당시 작성한 글에서 발췌

감사원의 유병호 사무총장은 감사를 '사냥'이나 '낚시'에, 감사 대상을 '어종'에 빗대어 표현하기를 즐긴다. 장관급 이상, 현역 의원, 광역단체장 이상을 조사하면 유 총장이 정한 기준상 '고래급 감사'로 인정받는 식이다.

지난해 6월 사무총장 취임 후 유 총장이 감사원 내부적으로 자신 있게 내세우는 '대왕 고래급' 성과는 서해 공무원 피격 사건이라고 한다. 실제로 감사원의 수사 요청 이후 검찰 수사를 통해 서훈 전 청와대 안보실장 등 문재인 정부 고위급 인사들이 구속되기도 했다.

유 총장이 다음으로 지목한 '대왕 고래급' 감사는 문재인 정부의 '국가 통계 조작 의혹' 감사라는 게 감사원 관계자의 전언이다.

하지만 지난해 9월 시작된 감사는 기약 없이 길어지고 있다. 중요 사건의 경우 전광석화처럼 밀어붙인 뒤, 수사 요청을 하면서 성과를 내보였던 '유병호 스타일'이 아직 드러나지 않고 있다.

감사원은 두 달 전 마무리한 현장 감사(실지 감사)를 재개한다고 지난 18일 홈페이지에 공개했다. 지난주 국회 법제사법위원회 업무보고에서 감사원은 국가 통계 의혹 실지 감사가 이미 종료됐다고 보고했다. 그런데 사흘 만에 재개한 것이다. 통계 의혹 감사에서 실지 감사 연장은 이번이 두 번째다.

■ 윗선과 연결고리 규명, 난항 겪나?

<나의 임무 수행 스타일>

"옛날부터 늘 배가 항로대로 순항하도록 팀의 선봉에 서서 준비 설계부터(망원경 투사) 기본설계(돋보기), 상세조사 설계(현미경), 실행 작업, 설명 자료와 보도 자료 작성, 감사 저항 극복 해결, 외부와 고객에 대한 전략적 정무적 대응까지 직접 이끌어 가는 스타일"
"중요한 사안인 경우, 내가 설계해주고 실무팀의 임무 수행이 항로를 이탈하지 않으면 팀을 밀어주고 믿어 줌. 이탈하면 임무가 완성될 때까지 다시 감사하는 스타일"
"특히, 큰 고래사냥은 내가 선봉에 서서, 동지와 팀원들과 직접 사건을 완성하고 내 외부의 방해세력에 대응해나가는 스타일"
- 유병호 감사원 사무총장이 국장 재직 당시 작성한 글에서 발췌

감사원의 통계 의혹 감사 과정에 무슨 일이 생긴 걸까? 그동안 국가 통계 의혹 감사는 재정경제감사국 재정경제3과에서 맡아왔다. 재정경제국은 기재부와 통계청, 국세청 등 숫자를 전문적으로 다루는 부서이다.

하지만 유 총장은 재정경제감사국의 감사 속도에 만족하지 못한 것으로 전해졌다. 통계청(소득 통계)와 국토교통부(집값 통계), 두 갈래로 진행되는 감사가 모두 '고래급'인 윗선과의 연결고리를 확인하지 못한 게 아니냐는 분석이 감사원 안팎에서 나온다.

집값 통계에 대한 감사는 피감기관장인 원희룡 국토부 장관의 강력한 의지와 국토부, 부동산원의 적극적 협조 속에서 진행됐다. 개인 휴대전화도 포렌식을 위해 자진 제출한 직원이 상당수인 것으로 알려졌다. 국토부 간부 중 일부가 김현미 전 국토부 장관의 묵인 속에 부동산원 주택가격 동향 통계에 대한 왜곡이나 조작이 가능했다는 정황을 진술했다는 얘기도 전해졌다.

하지만 감사원은 결론을 바로 내리지 못하고 있다. 결정권자의 '묵인'과 '지시' 사이 간극이 크기 때문이라는 분석도 나온다. 유병호 사무총장의 업무 스타일상 '고래급' 고위 공직자의 과실이나 위법 행위를 입증하지 못하면 감사는 실패로 받아들여진다.

통계청 소득분배 통계에 대한 감사 상황은 더욱 좋지 않은 것으로 전해졌다. 홍장표 전 청와대 경제수석과 강신욱 전 통계청장 등 윗선 조사는 이미 끝났다. 하지만 정책 결정으로 통계 설계를 변경하거나 신설, 또는 폐지할 수 있다는 통계청 실무자들의 일관된 주장을 감사원이 반박하기 쉽지 않을 거란 전망이 나온다. 통계청 감사는 '통계 자료 유출' 과정의 절차 위반 등 곁가지를 파헤치는데 머물고 있다는 분석이다.

■ '서해 공무원 피살' 감사했던 특별조사국 등판

'항로를 이탈하면 임무가 완성될 때까지 다시 감사하는 스타일'이라고 자신을 스스로 소개했던 유 총장의 선택은 '특별조사국'이었다. 유 총장은 재정경제3과가 담당했던 기존의 통계 감사를 특별조사국 주도로 진행하라고 지시했다. 감사가 진행 중인데 도중에 담당 부서를 바꾸는 건 이례적인 일이다.

특조국이 주도하는 감사에는 기존의 재정경제감사국 인력을 비롯해 사회복지감사국 인력 일부도 차출된 것으로 전해졌다.

특별조사국은 전문 분야가 따로 없고, 감사원장이나 사무총장 지시사항이나 제보, 신고 사안에 대한 감사를 주로 담당한다. 검찰로 치면 특수부 같은 곳이다. 유 총장 역시 2008년 특별조사국에서 근무했는데, 당시 경험에 대해 상당한 자부심을 느끼고 있다고 전해진다.

"2008년 특조 재직 시에 특조본부 사건들을 성공적으로 마무리. 고생한 국 동료들도 함께 수상, 상패와 상금을 수여받음 ." - 유병호 감사원 사무총장이 국장 재직 당시 작성한 글에서 발췌

다만, 특별조사국 투입이 반드시 유 총장이 원하는 결과로 이어질 거란 보장은 없다. 장기간 감사에 피감 대상들이 반발할 우려도 있다.

감사원의 국가 통계 의혹 감사는 항로를 이탈하고 있는 걸까? 감사원 안팎의 비판에도 '업무 능력'과 '유능함'에 대한 자신감은 잃지 않았던 유 총장이 이번엔 시험대에 올랐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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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통계감사’는 실패한 고래잡이?…특별조사국 긴급 투입
    • 입력 2023-02-21 14:30:25
    취재K

■ 유병호 사무총장 어록으로 되짚어 본 '통계 감사'

"단순한 규정 위반 등 송사리, 피라미급 이하 사건에는 관심도 가지지 말고, 하던 감사의 성공적인 마무리에 총력을 다할 것."

"(가급적) 프로급 실력을 갖추어서 정확, 신속하게 일할 수 있는 역량을 갖추어야, 그것을 바탕으로 상어급 이상의 사냥에 몰입하여 국가와 국민에게 임빠꾸를 주는 감사를 할 수 있어야 하고, 하여야 함." - 유병호 감사원 사무총장이 국장 재직 당시 작성한 글에서 발췌

감사원의 유병호 사무총장은 감사를 '사냥'이나 '낚시'에, 감사 대상을 '어종'에 빗대어 표현하기를 즐긴다. 장관급 이상, 현역 의원, 광역단체장 이상을 조사하면 유 총장이 정한 기준상 '고래급 감사'로 인정받는 식이다.

지난해 6월 사무총장 취임 후 유 총장이 감사원 내부적으로 자신 있게 내세우는 '대왕 고래급' 성과는 서해 공무원 피격 사건이라고 한다. 실제로 감사원의 수사 요청 이후 검찰 수사를 통해 서훈 전 청와대 안보실장 등 문재인 정부 고위급 인사들이 구속되기도 했다.

유 총장이 다음으로 지목한 '대왕 고래급' 감사는 문재인 정부의 '국가 통계 조작 의혹' 감사라는 게 감사원 관계자의 전언이다.

하지만 지난해 9월 시작된 감사는 기약 없이 길어지고 있다. 중요 사건의 경우 전광석화처럼 밀어붙인 뒤, 수사 요청을 하면서 성과를 내보였던 '유병호 스타일'이 아직 드러나지 않고 있다.

감사원은 두 달 전 마무리한 현장 감사(실지 감사)를 재개한다고 지난 18일 홈페이지에 공개했다. 지난주 국회 법제사법위원회 업무보고에서 감사원은 국가 통계 의혹 실지 감사가 이미 종료됐다고 보고했다. 그런데 사흘 만에 재개한 것이다. 통계 의혹 감사에서 실지 감사 연장은 이번이 두 번째다.

■ 윗선과 연결고리 규명, 난항 겪나?

<나의 임무 수행 스타일>

"옛날부터 늘 배가 항로대로 순항하도록 팀의 선봉에 서서 준비 설계부터(망원경 투사) 기본설계(돋보기), 상세조사 설계(현미경), 실행 작업, 설명 자료와 보도 자료 작성, 감사 저항 극복 해결, 외부와 고객에 대한 전략적 정무적 대응까지 직접 이끌어 가는 스타일"
"중요한 사안인 경우, 내가 설계해주고 실무팀의 임무 수행이 항로를 이탈하지 않으면 팀을 밀어주고 믿어 줌. 이탈하면 임무가 완성될 때까지 다시 감사하는 스타일"
"특히, 큰 고래사냥은 내가 선봉에 서서, 동지와 팀원들과 직접 사건을 완성하고 내 외부의 방해세력에 대응해나가는 스타일"
- 유병호 감사원 사무총장이 국장 재직 당시 작성한 글에서 발췌

감사원의 통계 의혹 감사 과정에 무슨 일이 생긴 걸까? 그동안 국가 통계 의혹 감사는 재정경제감사국 재정경제3과에서 맡아왔다. 재정경제국은 기재부와 통계청, 국세청 등 숫자를 전문적으로 다루는 부서이다.

하지만 유 총장은 재정경제감사국의 감사 속도에 만족하지 못한 것으로 전해졌다. 통계청(소득 통계)와 국토교통부(집값 통계), 두 갈래로 진행되는 감사가 모두 '고래급'인 윗선과의 연결고리를 확인하지 못한 게 아니냐는 분석이 감사원 안팎에서 나온다.

집값 통계에 대한 감사는 피감기관장인 원희룡 국토부 장관의 강력한 의지와 국토부, 부동산원의 적극적 협조 속에서 진행됐다. 개인 휴대전화도 포렌식을 위해 자진 제출한 직원이 상당수인 것으로 알려졌다. 국토부 간부 중 일부가 김현미 전 국토부 장관의 묵인 속에 부동산원 주택가격 동향 통계에 대한 왜곡이나 조작이 가능했다는 정황을 진술했다는 얘기도 전해졌다.

하지만 감사원은 결론을 바로 내리지 못하고 있다. 결정권자의 '묵인'과 '지시' 사이 간극이 크기 때문이라는 분석도 나온다. 유병호 사무총장의 업무 스타일상 '고래급' 고위 공직자의 과실이나 위법 행위를 입증하지 못하면 감사는 실패로 받아들여진다.

통계청 소득분배 통계에 대한 감사 상황은 더욱 좋지 않은 것으로 전해졌다. 홍장표 전 청와대 경제수석과 강신욱 전 통계청장 등 윗선 조사는 이미 끝났다. 하지만 정책 결정으로 통계 설계를 변경하거나 신설, 또는 폐지할 수 있다는 통계청 실무자들의 일관된 주장을 감사원이 반박하기 쉽지 않을 거란 전망이 나온다. 통계청 감사는 '통계 자료 유출' 과정의 절차 위반 등 곁가지를 파헤치는데 머물고 있다는 분석이다.

■ '서해 공무원 피살' 감사했던 특별조사국 등판

'항로를 이탈하면 임무가 완성될 때까지 다시 감사하는 스타일'이라고 자신을 스스로 소개했던 유 총장의 선택은 '특별조사국'이었다. 유 총장은 재정경제3과가 담당했던 기존의 통계 감사를 특별조사국 주도로 진행하라고 지시했다. 감사가 진행 중인데 도중에 담당 부서를 바꾸는 건 이례적인 일이다.

특조국이 주도하는 감사에는 기존의 재정경제감사국 인력을 비롯해 사회복지감사국 인력 일부도 차출된 것으로 전해졌다.

특별조사국은 전문 분야가 따로 없고, 감사원장이나 사무총장 지시사항이나 제보, 신고 사안에 대한 감사를 주로 담당한다. 검찰로 치면 특수부 같은 곳이다. 유 총장 역시 2008년 특별조사국에서 근무했는데, 당시 경험에 대해 상당한 자부심을 느끼고 있다고 전해진다.

"2008년 특조 재직 시에 특조본부 사건들을 성공적으로 마무리. 고생한 국 동료들도 함께 수상, 상패와 상금을 수여받음 ." - 유병호 감사원 사무총장이 국장 재직 당시 작성한 글에서 발췌

다만, 특별조사국 투입이 반드시 유 총장이 원하는 결과로 이어질 거란 보장은 없다. 장기간 감사에 피감 대상들이 반발할 우려도 있다.

감사원의 국가 통계 의혹 감사는 항로를 이탈하고 있는 걸까? 감사원 안팎의 비판에도 '업무 능력'과 '유능함'에 대한 자신감은 잃지 않았던 유 총장이 이번엔 시험대에 올랐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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