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창+] “엄마! 거기 있어?”…잃어버린 시간을 찾아서

입력 2023.02.21 (15:22)

읽어주기 기능은 크롬기반의
브라우저에서만 사용하실 수 있습니다.


"패티김의 '누가 이 사람을 모르시나요' 방송을 알리는 음악이 나오잖아요.
그러면 온 가족이, 내가 이산가족이 아니어도 다 TV 앞에 모여 앉는 거예요.
그리고 하염없이 새벽 1시고 2시고 같이 우시는 거예요. 같이 찾아주는 마음으로...
온 국민이 그러다 보니까 최고 시청률이 78%까지 나온 거예요.
그렇게 이산가족의 역사가 시작되고 연결이 되고 이어졌던 거죠."

- 1983년 KBS 특별생방송 '이산가족을 찾습니다' 진행자 이지연 씨 인터뷰 중 -

■ "맞다, 맞아!" 40년 전 유행했던 말

1983년 '이산가족을 찾습니다' 특별생방송을 시작하자, KBS 본관 앞으로 전국의 이산가족들이 모였습니다. 원래 6월 30일 단 하루 2시간짜리 방송으로 기획된 프로그램이었지만 이날 4시간으로 연장됐고, 다음 날은 7시간으로 연장되는 등 모두 450시간이 넘는 생방송 기록을 세웠습니다.


이산가족찾기 첫 방송을 시작하자마자 30분 만에 내 가족을 찾았다는 전화가 왔습니다. 한 출연자가 1.4 후퇴 때 부산에서 헤어진 사촌 남매를 찾으려고 사연을 신청했다가, 서울에 살던 사촌 7명이 방송을 보고 스튜디오로 찾아온 겁니다. 감격의 눈물이 전파를 타고 흐르자 스튜디오는 술렁이기 시작했습니다.


이날 방송에서만 무려 36가족이 만났습니다. 내가 찾던 가족이 맞아도, 남이지만 누가 봐도 닮은 가족 같다면 모두가 외쳤던 말 "맞다, 맞아!" 였습니다.

모두 10만여 건의 사연이 접수되고 방송 시간이 계속 연장되면서 무려 138일 동안 '이산가족찾기' 생방송의 역사가 이뤄졌습니다. 국민 열 명 중 여덟 명이 봤을 정도로, 지금은 상상도 할 수 없는 시청률 78%를 기록했습니다. 한국전쟁으로 생긴 이산가족은 무려 천만 명. 분단의 아픔을 함께 나눴던 시민들의 관심이 뜨거울 수밖에 없었습니다.

■ VR로 간 73년 만의 귀향길…"엄마! 거기 있어?"

40년 전 이산가족찾기 방송에 사연 접수조차 못 한 사람들이 있습니다. 길어도 한두 달만 있으면 돌아올 거라 믿고 떠났지만, 휴전선으로 영영 갈라져 버린 남북 이산가족입니다. 73년 전 전쟁이 무서워 엄마 손을 놓고 큰형을 따라 피난길에 나섰던 9살 꼬마는 평생 고향 집의 엄마 품을 그리며 살아왔습니다.


"막내아들이었기 때문에 늘 어머니하고 붙어살았어요.
하지만 6.25 당일 인민군 앞에 총을 보면서 서 있는데요.
총 앞의 공포감은 안 겪어봐서는 몰라요.
그 생각이 무서워서 어머니에게서 떨어지더라도 잠시 피해야겠다.
그 생각을 하고 형님을 따라 나온 거예요."

- 시사기획 창 '잃어버린 시간을 찾아서' 인터뷰 중 -

KBS '시사기획 창'은 한 실향민 할아버지와 함께 스케치북에 고향 모습을 그려봤습니다. 처음에는 간단한 선으로 시작된 초가집 모습이 점점 마을 모양으로 변해갔습니다. 정겨운 우물과 감나무, 집 앞에 펼쳐진 논과 밭, 학교로 가는 길목까지 할아버지의 연필 끝에서 그리운 고향 땅이 되살아났습니다.


스케치북 속 황해도 옹진군의 고향 집을 VR, 가상현실로 만들어보기로 했습니다. 그저 커다란 그림으로만 고향을 다시 그리는 거로 아셨던 할아버지. 가상현실 속 집 앞에 도착하자 어머니의 흔적을 보고 우셨습니다.
그리고 73년 만에 그리운 이름을 불렀습니다. "어머니! 막내아들이 왔어요"

■ 지금도 이어지는 '이산가족 상봉 신청'…살아생전 마지막 소원

"고령화된 이산가족 1세대가 연간 3,000~4,000명씩 돌아가신다는 걸 감안하면 시간이 많이 남아 있지 않습니다. 이산가족 상봉을 신청한 13만여 명 가운데 이제 4만 2천여 명 정도만 생존해 계십니다."

대한적십자사 남북교류팀에는 지금도 이산가족 상봉 신청이 매달 끊이지 않고 들어오고 있습니다. 북녘의 가족에게 혹시라도 피해가 갈까 봐 걱정되는 마음에 뒤늦게 신청했거나, 2세나 3세가 신청하는 경우입니다.

'시사기획 창'은 시민들에게 물어봤습니다.

"내가 만약 이산가족이 된다면 어떤 마음일까요?
평생 어떻게 살아갈 것 같나요?"

대답은 모두 달랐지만 뜻은 한결같았습니다. 이산가족의 아픔을 조금은 알게 된 것 같다고 말했습니다.


대한적십자사에 보관된 수많은 이산가족 영상편지 역시 공통된 소원을 담고 있었습니다. 살아생전 꼭 한번 고향에 가보는 것, 가족의 산소라도 꼭 찾아가고 싶다는 것이었습니다.

고향과 가족에 대한 애틋한 기억을 가상현실로 되살린 특별한 귀향길. 한 실향민 할아버지의 잃어버린 시간을 찾아가는 가슴 뭉클한 여정은 2월 21일 방송되는 KBS '시사기획 창'에서 함께할 수 있습니다.

시사기획 창 '잃어버린 시간을 찾아서' KBS 1TV 2월 21일(화) 밤 10시

#남북이산가족 #상봉 #전쟁 #분단 #고향 #통일 #가상현실 #VR #남북회담 #영상편지 #적십자 #가족 #휴전선 #생이별 #향수 #프루스트

■ 제보하기
▷ 카카오톡 : 'KBS제보' 검색, 채널 추가
▷ 전화 : 02-781-1234, 4444
▷ 이메일 : kbs1234@kbs.co.kr
▷ 유튜브, 네이버, 카카오에서도 KBS뉴스를 구독해주세요!


  • [창+] “엄마! 거기 있어?”…잃어버린 시간을 찾아서
    • 입력 2023-02-21 15:22:42
    취재K

"패티김의 '누가 이 사람을 모르시나요' 방송을 알리는 음악이 나오잖아요.
그러면 온 가족이, 내가 이산가족이 아니어도 다 TV 앞에 모여 앉는 거예요.
그리고 하염없이 새벽 1시고 2시고 같이 우시는 거예요. 같이 찾아주는 마음으로...
온 국민이 그러다 보니까 최고 시청률이 78%까지 나온 거예요.
그렇게 이산가족의 역사가 시작되고 연결이 되고 이어졌던 거죠."

- 1983년 KBS 특별생방송 '이산가족을 찾습니다' 진행자 이지연 씨 인터뷰 중 -

■ "맞다, 맞아!" 40년 전 유행했던 말

1983년 '이산가족을 찾습니다' 특별생방송을 시작하자, KBS 본관 앞으로 전국의 이산가족들이 모였습니다. 원래 6월 30일 단 하루 2시간짜리 방송으로 기획된 프로그램이었지만 이날 4시간으로 연장됐고, 다음 날은 7시간으로 연장되는 등 모두 450시간이 넘는 생방송 기록을 세웠습니다.


이산가족찾기 첫 방송을 시작하자마자 30분 만에 내 가족을 찾았다는 전화가 왔습니다. 한 출연자가 1.4 후퇴 때 부산에서 헤어진 사촌 남매를 찾으려고 사연을 신청했다가, 서울에 살던 사촌 7명이 방송을 보고 스튜디오로 찾아온 겁니다. 감격의 눈물이 전파를 타고 흐르자 스튜디오는 술렁이기 시작했습니다.


이날 방송에서만 무려 36가족이 만났습니다. 내가 찾던 가족이 맞아도, 남이지만 누가 봐도 닮은 가족 같다면 모두가 외쳤던 말 "맞다, 맞아!" 였습니다.

모두 10만여 건의 사연이 접수되고 방송 시간이 계속 연장되면서 무려 138일 동안 '이산가족찾기' 생방송의 역사가 이뤄졌습니다. 국민 열 명 중 여덟 명이 봤을 정도로, 지금은 상상도 할 수 없는 시청률 78%를 기록했습니다. 한국전쟁으로 생긴 이산가족은 무려 천만 명. 분단의 아픔을 함께 나눴던 시민들의 관심이 뜨거울 수밖에 없었습니다.

■ VR로 간 73년 만의 귀향길…"엄마! 거기 있어?"

40년 전 이산가족찾기 방송에 사연 접수조차 못 한 사람들이 있습니다. 길어도 한두 달만 있으면 돌아올 거라 믿고 떠났지만, 휴전선으로 영영 갈라져 버린 남북 이산가족입니다. 73년 전 전쟁이 무서워 엄마 손을 놓고 큰형을 따라 피난길에 나섰던 9살 꼬마는 평생 고향 집의 엄마 품을 그리며 살아왔습니다.


"막내아들이었기 때문에 늘 어머니하고 붙어살았어요.
하지만 6.25 당일 인민군 앞에 총을 보면서 서 있는데요.
총 앞의 공포감은 안 겪어봐서는 몰라요.
그 생각이 무서워서 어머니에게서 떨어지더라도 잠시 피해야겠다.
그 생각을 하고 형님을 따라 나온 거예요."

- 시사기획 창 '잃어버린 시간을 찾아서' 인터뷰 중 -

KBS '시사기획 창'은 한 실향민 할아버지와 함께 스케치북에 고향 모습을 그려봤습니다. 처음에는 간단한 선으로 시작된 초가집 모습이 점점 마을 모양으로 변해갔습니다. 정겨운 우물과 감나무, 집 앞에 펼쳐진 논과 밭, 학교로 가는 길목까지 할아버지의 연필 끝에서 그리운 고향 땅이 되살아났습니다.


스케치북 속 황해도 옹진군의 고향 집을 VR, 가상현실로 만들어보기로 했습니다. 그저 커다란 그림으로만 고향을 다시 그리는 거로 아셨던 할아버지. 가상현실 속 집 앞에 도착하자 어머니의 흔적을 보고 우셨습니다.
그리고 73년 만에 그리운 이름을 불렀습니다. "어머니! 막내아들이 왔어요"

■ 지금도 이어지는 '이산가족 상봉 신청'…살아생전 마지막 소원

"고령화된 이산가족 1세대가 연간 3,000~4,000명씩 돌아가신다는 걸 감안하면 시간이 많이 남아 있지 않습니다. 이산가족 상봉을 신청한 13만여 명 가운데 이제 4만 2천여 명 정도만 생존해 계십니다."

대한적십자사 남북교류팀에는 지금도 이산가족 상봉 신청이 매달 끊이지 않고 들어오고 있습니다. 북녘의 가족에게 혹시라도 피해가 갈까 봐 걱정되는 마음에 뒤늦게 신청했거나, 2세나 3세가 신청하는 경우입니다.

'시사기획 창'은 시민들에게 물어봤습니다.

"내가 만약 이산가족이 된다면 어떤 마음일까요?
평생 어떻게 살아갈 것 같나요?"

대답은 모두 달랐지만 뜻은 한결같았습니다. 이산가족의 아픔을 조금은 알게 된 것 같다고 말했습니다.


대한적십자사에 보관된 수많은 이산가족 영상편지 역시 공통된 소원을 담고 있었습니다. 살아생전 꼭 한번 고향에 가보는 것, 가족의 산소라도 꼭 찾아가고 싶다는 것이었습니다.

고향과 가족에 대한 애틋한 기억을 가상현실로 되살린 특별한 귀향길. 한 실향민 할아버지의 잃어버린 시간을 찾아가는 가슴 뭉클한 여정은 2월 21일 방송되는 KBS '시사기획 창'에서 함께할 수 있습니다.

시사기획 창 '잃어버린 시간을 찾아서' KBS 1TV 2월 21일(화) 밤 10시

#남북이산가족 #상봉 #전쟁 #분단 #고향 #통일 #가상현실 #VR #남북회담 #영상편지 #적십자 #가족 #휴전선 #생이별 #향수 #프루스트

이 기사가 좋으셨다면

오늘의 핫 클릭

실시간 뜨거운 관심을 받고 있는 뉴스

이 기사에 대한 의견을 남겨주세요.

수신료 수신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