지방의료원, 의사 못 구해 ‘아우성’…공공임상교수제 ‘유명무실’

입력 2023.02.22 (17:3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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순천의료원 신경외과 진료실순천의료원 신경외과 진료실

순천의료원 신경외과 진료실 앞에 A4 용지가 붙어 있습니다. 신경외과 의사가 그만둔 뒤 의사를 구하지 못하자 의료원 측이 진료실 옆 진료 과목 팻말을 종이로 가려둔 겁니다. 환자들이 혼란을 겪지 않도록 하려는 조처인데 벌써 3년째 이런 풍경이 이어지고 있습니다.

순천의료원 일반외과 진료실순천의료원 일반외과 진료실

일반외과 진료실도 텅 비어 있습니다. 일반외과 의사가 석 달 전 나간 뒤 새 의사를 충원하지 못하면서 빈 방으로 남겨 뒀습니다. 주인을 찾지 못한 책상과 의자만 덩그러니 자리를 지키고 있습니다.

심각한 건 응급실입니다. 종합병원급인 순천의료원의 응급실 의사 정원은 4명인데 지난해 3월과 4월 2명이 차례로 그만두면서 현재는 2명이 밤에 맞교대를 합니다. 낮에는 다른 진료 과목 의사들이 돌아가며 응급실에서 근무합니다.

순천의료원 응급실순천의료원 응급실

순천의료원은 지난해부터 응급실 의사를 구하기 위해 수차례 채용 공고를 냈지만 소득이 없었습니다. 최근엔 채용 정보를 문의해 온 의사에게 연봉 3억 8천만 원을 제시했지만 해당 의사가 4억 2천만 원을 고수해 협상이 깨졌습니다.

순천의료원 측은 기존에 근무하는 의사들 가운데 최고 수준으로 처우를 제시했는데도 거절당하자 난감한 처지에 놓였습니다. 최근 강원도 속초의료원에서 연봉 4억 원대를 제시한 것처럼 연봉 수준을 높여야 하나, 그러면 다른 의사들의 처우 개선 요구는 어떻게 받아줘야 하나 고민에 빠졌습니다.

신창호 순천의료원 총무과장
"훨씬 더 상향된 조건을 요구해서 저희가 의료진을 충원하려면 조건을 변경해야 될
상황이 아닌가 싶습니다."

지방의료원들이 의사를 못 구해 애를 태우고 있습니다. 전남에는 순천의료원과 강진의료원, 목포의료원 등 지방의료원 3곳이 있는데 부족한 의사가 13명에 달합니다. 의료원 관계자들은 채용 협상이라도 해보면 나을 텐데 아예 연락조차 없는 경우가 많아서 허탈하다고 합니다.

지방의료원의 의사 충원이 어려운 것은 어제오늘 얘기가 아닙니다. 그래서 문재인정부 시절인 지난해 4월 교육부는 공공보건의료에 대한 국립대병원의 책무성을 강화한다면서 '국립대병원 공공임상교수제 시범사업'을 도입했습니다. 각 권역의 국립대병원 10곳에서 공공임상교수 150여 명을 뽑아 지방의료원과 적십자병원 등 공공의료기관에 배치한다는 게 주요 내용입니다.


공공임상교수는 국립대병원 소속의 정년보장 정규의사로 임용 기간은 최소 3년입니다. 국립대병원과 지방의료원 간에 순환근무를 하면서 지방의료원에서는 진료와 연구·교육을 담당하고 소속 국립대병원에서는 최신 의료기술도 지속적으로 학습한다는 게 당시 교육부의 구상이었습니다.

하지만 현실은 판이한 양상을 보였습니다. 제도 시행 이후 순천의료원과 강진의료원, 목포의료원은 공공임상교수 15명을 배정해달라고 신청했습니다. 그래서 광주전남권역 국립대병원인 전남대병원이 지난해 상반기부터 하반기까지 모두 3차례에 걸쳐 공공임상교수 신청을 받았지만 단 1명의 지원자도 없었습니다.

전남대병원전남대병원

전남대병원 관계자에게 왜 의사들이 지원하지 않은 건지 속사정을 물어보니 3가지 답을 내놨습니다. 우선 시범사업이어서 사업의 불확실성에 대해 의사들이 염려하고 있고 전국적으로 의사 자원이 부족한 상황에서 굳이 중소도시 의료원에서 근무해야 하는지 확신을 갖지 못한다고 합니다. 또 순환근무를 한다고 해도 지방의 정주 여건이 갖춰지지 않은 상황이어서 의사들이 주저하는 것으로 분석했습니다.

의료계에서는 지방의료원의 정주 여건 등 처우 못지 않게 의료전달 체계가 미비한 점도 의사들의 현실적 고민일 거라고 말합니다. 지방의료원 응급실에 촌각을 다투는 응급환자가 들어왔을 경우 대도시 대학병원으로 전원이 제대로 되지 않으면 의료사고의 위험성을 온전히 의사가 져야 할 수 있다는 겁니다. 지방의료원과 자치단체의 역할이 필요한 지점입니다.

지방의료원 관계자들은 공공의료 인력 증원을 위해 마련된 국립대병원 공공임상교수제도를 이참에 손질해야 한다고 말합니다. 공공임상교수를 국립대병원에서만 찾지 말고 권역별 사립대학병원과 수도권병원까지 문호를 더 확대해야 한다고 말합니다.
목포의료원목포의료원

그러면서 근본적으로 의사 정원이 부족한 만큼 의사 정원을 늘리기 위해 의과대학을 신설해야 한다고 강조합니다. 의사 정원이 늘지 않고서는 중소도시 지방의료원의 의료 인력 확보난이 계속될 수밖에 없다는 겁니다.

이와 관련해 보건복지부는 지난달 의대 정원을 확충하기 위해 의료계와 협의를 시작하겠다고 밝혔습니다. 이에 따라 대학병원이 없는 지역에서는 의대 설립 요구가 봇물 터지듯 터져 나오고 있고 최근엔 순천대와 목포대, 공주대, 안동대, 창원대 등 전국의 국립대학교 5곳이 보건복지부에 의과대학 설립 공동 건의문을 제출하기도 했습니다.

국립대 총장들, 의과대학 설립 건의문 제출국립대 총장들, 의과대학 설립 건의문 제출

지방의료원은 코로나19 상황에서 지역 공공의료의 든든한 버팀목 역할을 해왔습니다. 코로나19 상황이 안정된 지금도 지방의료원은 고령층과 저소득층 등 의료 취약계층에게 필수 의료 서비스를 제공해야 합니다. 의사를 구하지 못해 문을 닫는 진료실이 늘어나는 지방의료원의 현실을 개선하기 위해 정부와 자치단체, 의료계가 머리를 맞대고 서둘러 해법을 내놓아야 할 시점입니다. 늦었다고 생각할 때는 너무 늦을지 모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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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지방의료원, 의사 못 구해 ‘아우성’…공공임상교수제 ‘유명무실’
    • 입력 2023-02-22 17:37:34
    취재K
순천의료원 신경외과 진료실
순천의료원 신경외과 진료실 앞에 A4 용지가 붙어 있습니다. 신경외과 의사가 그만둔 뒤 의사를 구하지 못하자 의료원 측이 진료실 옆 진료 과목 팻말을 종이로 가려둔 겁니다. 환자들이 혼란을 겪지 않도록 하려는 조처인데 벌써 3년째 이런 풍경이 이어지고 있습니다.

순천의료원 일반외과 진료실
일반외과 진료실도 텅 비어 있습니다. 일반외과 의사가 석 달 전 나간 뒤 새 의사를 충원하지 못하면서 빈 방으로 남겨 뒀습니다. 주인을 찾지 못한 책상과 의자만 덩그러니 자리를 지키고 있습니다.

심각한 건 응급실입니다. 종합병원급인 순천의료원의 응급실 의사 정원은 4명인데 지난해 3월과 4월 2명이 차례로 그만두면서 현재는 2명이 밤에 맞교대를 합니다. 낮에는 다른 진료 과목 의사들이 돌아가며 응급실에서 근무합니다.

순천의료원 응급실
순천의료원은 지난해부터 응급실 의사를 구하기 위해 수차례 채용 공고를 냈지만 소득이 없었습니다. 최근엔 채용 정보를 문의해 온 의사에게 연봉 3억 8천만 원을 제시했지만 해당 의사가 4억 2천만 원을 고수해 협상이 깨졌습니다.

순천의료원 측은 기존에 근무하는 의사들 가운데 최고 수준으로 처우를 제시했는데도 거절당하자 난감한 처지에 놓였습니다. 최근 강원도 속초의료원에서 연봉 4억 원대를 제시한 것처럼 연봉 수준을 높여야 하나, 그러면 다른 의사들의 처우 개선 요구는 어떻게 받아줘야 하나 고민에 빠졌습니다.

신창호 순천의료원 총무과장
"훨씬 더 상향된 조건을 요구해서 저희가 의료진을 충원하려면 조건을 변경해야 될
상황이 아닌가 싶습니다."

지방의료원들이 의사를 못 구해 애를 태우고 있습니다. 전남에는 순천의료원과 강진의료원, 목포의료원 등 지방의료원 3곳이 있는데 부족한 의사가 13명에 달합니다. 의료원 관계자들은 채용 협상이라도 해보면 나을 텐데 아예 연락조차 없는 경우가 많아서 허탈하다고 합니다.

지방의료원의 의사 충원이 어려운 것은 어제오늘 얘기가 아닙니다. 그래서 문재인정부 시절인 지난해 4월 교육부는 공공보건의료에 대한 국립대병원의 책무성을 강화한다면서 '국립대병원 공공임상교수제 시범사업'을 도입했습니다. 각 권역의 국립대병원 10곳에서 공공임상교수 150여 명을 뽑아 지방의료원과 적십자병원 등 공공의료기관에 배치한다는 게 주요 내용입니다.


공공임상교수는 국립대병원 소속의 정년보장 정규의사로 임용 기간은 최소 3년입니다. 국립대병원과 지방의료원 간에 순환근무를 하면서 지방의료원에서는 진료와 연구·교육을 담당하고 소속 국립대병원에서는 최신 의료기술도 지속적으로 학습한다는 게 당시 교육부의 구상이었습니다.

하지만 현실은 판이한 양상을 보였습니다. 제도 시행 이후 순천의료원과 강진의료원, 목포의료원은 공공임상교수 15명을 배정해달라고 신청했습니다. 그래서 광주전남권역 국립대병원인 전남대병원이 지난해 상반기부터 하반기까지 모두 3차례에 걸쳐 공공임상교수 신청을 받았지만 단 1명의 지원자도 없었습니다.

전남대병원
전남대병원 관계자에게 왜 의사들이 지원하지 않은 건지 속사정을 물어보니 3가지 답을 내놨습니다. 우선 시범사업이어서 사업의 불확실성에 대해 의사들이 염려하고 있고 전국적으로 의사 자원이 부족한 상황에서 굳이 중소도시 의료원에서 근무해야 하는지 확신을 갖지 못한다고 합니다. 또 순환근무를 한다고 해도 지방의 정주 여건이 갖춰지지 않은 상황이어서 의사들이 주저하는 것으로 분석했습니다.

의료계에서는 지방의료원의 정주 여건 등 처우 못지 않게 의료전달 체계가 미비한 점도 의사들의 현실적 고민일 거라고 말합니다. 지방의료원 응급실에 촌각을 다투는 응급환자가 들어왔을 경우 대도시 대학병원으로 전원이 제대로 되지 않으면 의료사고의 위험성을 온전히 의사가 져야 할 수 있다는 겁니다. 지방의료원과 자치단체의 역할이 필요한 지점입니다.

지방의료원 관계자들은 공공의료 인력 증원을 위해 마련된 국립대병원 공공임상교수제도를 이참에 손질해야 한다고 말합니다. 공공임상교수를 국립대병원에서만 찾지 말고 권역별 사립대학병원과 수도권병원까지 문호를 더 확대해야 한다고 말합니다.
목포의료원
그러면서 근본적으로 의사 정원이 부족한 만큼 의사 정원을 늘리기 위해 의과대학을 신설해야 한다고 강조합니다. 의사 정원이 늘지 않고서는 중소도시 지방의료원의 의료 인력 확보난이 계속될 수밖에 없다는 겁니다.

이와 관련해 보건복지부는 지난달 의대 정원을 확충하기 위해 의료계와 협의를 시작하겠다고 밝혔습니다. 이에 따라 대학병원이 없는 지역에서는 의대 설립 요구가 봇물 터지듯 터져 나오고 있고 최근엔 순천대와 목포대, 공주대, 안동대, 창원대 등 전국의 국립대학교 5곳이 보건복지부에 의과대학 설립 공동 건의문을 제출하기도 했습니다.

국립대 총장들, 의과대학 설립 건의문 제출
지방의료원은 코로나19 상황에서 지역 공공의료의 든든한 버팀목 역할을 해왔습니다. 코로나19 상황이 안정된 지금도 지방의료원은 고령층과 저소득층 등 의료 취약계층에게 필수 의료 서비스를 제공해야 합니다. 의사를 구하지 못해 문을 닫는 진료실이 늘어나는 지방의료원의 현실을 개선하기 위해 정부와 자치단체, 의료계가 머리를 맞대고 서둘러 해법을 내놓아야 할 시점입니다. 늦었다고 생각할 때는 너무 늦을지 모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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