반도체 베테랑의 인생 2막은 ‘특허심사관’…“기술 유출 막고, 심사 효율 높혀”

입력 2023.02.23 (15:0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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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퇴직자를 모십니다"

잊을 만하면 터져 나오는 최첨단 기술 유출 문제. 특히 고경력 은퇴자들의 중국 등 해외 이직이 이어지면서, 인력 이동이 고스란히 기술 유출로 이어지고 있어 관리가 필요한 실정입니다. 이 때문에 반도체 업계에서는 인력 유출을 막는 일이 경쟁력 차원에서 중요해졌고, 주요 대기업들을 중심으로 장기간 경험을 축적한 엔지니어가 퇴직 후 일할 수 있는 제도를 마련해 인력 유출에 대비하고 있습니다.

이런 움직임은 정부 기관의 채용으로도 이어지고 있습니다. 지식 재산의 창출과 활용, 보호를 지원하고 있는 행정부처인 특허청에서 반도체 고 경력자, 즉 민간 퇴직자를 특허심사관으로 채용하고 나선 겁니다.

특허청이 오늘, 지난 2달여의 채용 과정을 거쳐 선발한 특허심사관 최종 합격자 30명을 발표했습니다. 민간의 퇴직 인력을 공공 영역에 활용하는 공직 인사의 새로운 실험 틀인데요.

정부의 반도체 산업 육성 정책에 맞춰 세계적인 반도체 기술 패권 경쟁 속에서, 우리 반도체 분야의 우수인력의 해외 이직에 따른 핵심 기술 유출을 방지하고, 풍부한 현장 경험과 지식을 특허 심사에 활용해, 반도체 '초격차' 확보를 지원하기 위한 전략입니다.

■반도체 특허 심사 기간 평균 15개월….'11개월로 단축' 목표

현재 반도체 특허 심사를 받으려면 적어도 14개월, 평균 15개월은 걸리는 실정입니다. 특허청에 해당 업무를 하는 심사관이 135명이 있는데, 주요 국가들과 비교해 평균 2~4배나 많은 심사 업무를 담당하고 있다고 합니다.

출원 신청이 몰려들고 있지만, 이를 감당할 인력이 충분치 않다는 얘기인데요. 반도체 기술 관련 특허 심사에 통상 5개월이 걸린다는 유럽은 물론이고, 경쟁국인 일본의 경우에도 10개월 이내 처리 속도를 보여 세계시장에서 중요한 기술 선점에서도 다소 불리한 상황입니다. 더욱이 출원 신청이 계속 증가할 것으로 예상하는 상황이어서, 지금의 인력만으로는 수년 내 심사 기간이 2년으로 늘 것으로 예측되고 있습니다.

그래서 특허청에서는 이번 특별채용을 '가뭄의 단비'로 여깁니다. 현재 인원의 22% 가량이나 대폭 증원되기 때문인데요. 특히 현장 경험이 풍부한 반도체 분야 퇴직 기술자야말로, 실전에 바로 투입할 수 있는 적임자이기도 합니다.

■ 평균 경력 23년 9개월, 현직자 비율 90%…. 선발 경쟁률 6:1

지난해 11월 특허청에서 '반도체 분야 전문임기제 특허심사관'을 채용한다고 공고했을 때만 해도 과연 얼마나 지원자가 있을 것인지 우려하는 목소리가 있었습니다. 공직 사회에서는 유례없는 민간 퇴직자 고용인데다, 민간 기업과 비교해 낮은 급여와 임기제 공무원이라는 한계 때문인데요.

하지만 채용에 대한 반응은 뜨거웠습니다. 특허심사관 30명 모집에, 175명이 지원해 평균 6대 1의 높은 경쟁률을 보였기 때문인데요. 보통 2, 3대 1 정도의 경쟁률을 보이는 전문임기제 심사관 채용과 비교해도 매우 높은 수치입니다.

지원자의 86%인 150명은 반도체 분야 기업 출신이고, 해외기업 경력자의 U턴 지원도 4명이나 됐습니다. 지원자의 역량을 심층적으로 파악하기 위해 전문 분야별 외부 전문가를 평가위원으로 위촉해, 2달여의 동안의 서류 심사와 개별 면접을 거쳐 최종 30명이 특허심사관으로 선발됐습니다.

최종 합격자 현황을 분석해 봤더니, 최고령 합격자는 60세, 최연소 합격자는 41세로, 평균 연령 53.8세로 나타났습니다. 대부분은 50대 중후반의 현직 종사자들로, 퇴직을 앞둔 경우가 가장 많았습니다. 이들의 석·박사 학위 보유율도 83%로, 전문지식이나 최신 기술 동향에 정통해 기술 유출 방지 대책으로서 이번 채용의 효과가 어느 정도 확인된 셈입니다.

합격자들은 신규 심사관 교육 등을 거쳐 반도체 설계와 공정, 소재 등 세부 기술분야별 부서에 배치돼 특허심사 업무를 수행하게 되며, 심사 역량을 기르기 위해 기존 심사관의 밀착 지도 지원도 뒤따를 예정입니다.


■"기술 노하우와 다양한 경험들을 살릴 기회"

이번 채용에 응모한 반도체 베테랑 기술자들의 지원 동기를 들어왔습니다.

합격자 A: "현장 경험이 풍부한 인력을 특허심사관으로 채용한다는 취지가 큰 매력으로 느껴졌고, 현장 엔지니어로서 터득한 기술과 다양한 경험들을 살릴 수 있는 가치 잇는 기회라고 생각합니다."

합격자 B: "퇴직을 앞두고 업계 동료 상당수가 해외로 스카우트 되는 현실을 보며, 힘들게 일군 반도체 강국의 지위를 유지하는 데 일조하고 싶습니다."

전문임기제 특허심사관의 지위는 5급 상당의 공무원으로, 최초 2년 근무 뒤 근무평가 등을 바탕으로 최대 10년까지 나이와 상관없이 연장 근무가 가능합니다.

기존 회사만큼 고액의 연봉을 받는 것은 아니지만, 말 그대로 인생 2막을 준비하면서 보람과 성취감을 느낄 수 있는 새로운 직장으로서는 충분히 매력적인 조건입니다. 가장 나이가 많은 합격자가 60세라고 하니, 이분의 경우 최장 70세까지 고용을 유지할 수 있는 셈입니다.

■"기술 인재 유출 막아라"

다수의 국내 반도체 기업들은 특허청의 이번 채용에 높은 관심을 보였다고 합니다. 이런 정책이야말로 기업에 실질적인 도움이 되는 정부 정책이라며, 일회성이 아니라 지속적으로 추진되길 바라고 있고 2차전지 분야 등 또 다른 첨단기술 분야로도 확대가 필요하다고 제언하는 상황입니다.

기술자의 해외 유출은 곧 기술 유출과 산업 붕괴로 이어질 가능성이 큽니다. 국정원의 자료에 따르면 최근 5년간 핵심기술 유출은 시도는 99건으로, 직간접적인 피해 규모가 22조 원에 이릅니다. 특히 기술 유출의 절반 가까운 46%는 퇴직자에 의해 발생하고 있다고 하는데요.

1980년대 반도체 최강국이었던 일본의 입지를 가장 크게 흔든 요인이 한국과 대만으로 반도체 전문가가 대량 유출됐기 때문이라는 분석도 있습니다. 현재는 우리나라의 숙련된 기술자들을 중국을 비롯한 주요국에서 표적으로 삼고 있는 실정입니다. 문제는 앞으로 매년 반도체 분야의 고경력 기술 퇴직자가 매년 천 명 이상씩 나온다는 겁니다.

해외 이직 가능성이 큰 퇴직 인력을 심사관으로 채용하면, 기술 유출 방지는 물론 빠르고 정확한 특허 심사에 큰 도움이 될 수 있어 그야말로 1석 2조의 효과를 거둘 수 있습니다. 고경력, 베테랑 기술자들의 인생 2막 준비에도 적지 않은 힘이 되길 기대해 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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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반도체 베테랑의 인생 2막은 ‘특허심사관’…“기술 유출 막고, 심사 효율 높혀”
    • 입력 2023-02-23 15:03:24
    취재K

■"퇴직자를 모십니다"

잊을 만하면 터져 나오는 최첨단 기술 유출 문제. 특히 고경력 은퇴자들의 중국 등 해외 이직이 이어지면서, 인력 이동이 고스란히 기술 유출로 이어지고 있어 관리가 필요한 실정입니다. 이 때문에 반도체 업계에서는 인력 유출을 막는 일이 경쟁력 차원에서 중요해졌고, 주요 대기업들을 중심으로 장기간 경험을 축적한 엔지니어가 퇴직 후 일할 수 있는 제도를 마련해 인력 유출에 대비하고 있습니다.

이런 움직임은 정부 기관의 채용으로도 이어지고 있습니다. 지식 재산의 창출과 활용, 보호를 지원하고 있는 행정부처인 특허청에서 반도체 고 경력자, 즉 민간 퇴직자를 특허심사관으로 채용하고 나선 겁니다.

특허청이 오늘, 지난 2달여의 채용 과정을 거쳐 선발한 특허심사관 최종 합격자 30명을 발표했습니다. 민간의 퇴직 인력을 공공 영역에 활용하는 공직 인사의 새로운 실험 틀인데요.

정부의 반도체 산업 육성 정책에 맞춰 세계적인 반도체 기술 패권 경쟁 속에서, 우리 반도체 분야의 우수인력의 해외 이직에 따른 핵심 기술 유출을 방지하고, 풍부한 현장 경험과 지식을 특허 심사에 활용해, 반도체 '초격차' 확보를 지원하기 위한 전략입니다.

■반도체 특허 심사 기간 평균 15개월….'11개월로 단축' 목표

현재 반도체 특허 심사를 받으려면 적어도 14개월, 평균 15개월은 걸리는 실정입니다. 특허청에 해당 업무를 하는 심사관이 135명이 있는데, 주요 국가들과 비교해 평균 2~4배나 많은 심사 업무를 담당하고 있다고 합니다.

출원 신청이 몰려들고 있지만, 이를 감당할 인력이 충분치 않다는 얘기인데요. 반도체 기술 관련 특허 심사에 통상 5개월이 걸린다는 유럽은 물론이고, 경쟁국인 일본의 경우에도 10개월 이내 처리 속도를 보여 세계시장에서 중요한 기술 선점에서도 다소 불리한 상황입니다. 더욱이 출원 신청이 계속 증가할 것으로 예상하는 상황이어서, 지금의 인력만으로는 수년 내 심사 기간이 2년으로 늘 것으로 예측되고 있습니다.

그래서 특허청에서는 이번 특별채용을 '가뭄의 단비'로 여깁니다. 현재 인원의 22% 가량이나 대폭 증원되기 때문인데요. 특히 현장 경험이 풍부한 반도체 분야 퇴직 기술자야말로, 실전에 바로 투입할 수 있는 적임자이기도 합니다.

■ 평균 경력 23년 9개월, 현직자 비율 90%…. 선발 경쟁률 6:1

지난해 11월 특허청에서 '반도체 분야 전문임기제 특허심사관'을 채용한다고 공고했을 때만 해도 과연 얼마나 지원자가 있을 것인지 우려하는 목소리가 있었습니다. 공직 사회에서는 유례없는 민간 퇴직자 고용인데다, 민간 기업과 비교해 낮은 급여와 임기제 공무원이라는 한계 때문인데요.

하지만 채용에 대한 반응은 뜨거웠습니다. 특허심사관 30명 모집에, 175명이 지원해 평균 6대 1의 높은 경쟁률을 보였기 때문인데요. 보통 2, 3대 1 정도의 경쟁률을 보이는 전문임기제 심사관 채용과 비교해도 매우 높은 수치입니다.

지원자의 86%인 150명은 반도체 분야 기업 출신이고, 해외기업 경력자의 U턴 지원도 4명이나 됐습니다. 지원자의 역량을 심층적으로 파악하기 위해 전문 분야별 외부 전문가를 평가위원으로 위촉해, 2달여의 동안의 서류 심사와 개별 면접을 거쳐 최종 30명이 특허심사관으로 선발됐습니다.

최종 합격자 현황을 분석해 봤더니, 최고령 합격자는 60세, 최연소 합격자는 41세로, 평균 연령 53.8세로 나타났습니다. 대부분은 50대 중후반의 현직 종사자들로, 퇴직을 앞둔 경우가 가장 많았습니다. 이들의 석·박사 학위 보유율도 83%로, 전문지식이나 최신 기술 동향에 정통해 기술 유출 방지 대책으로서 이번 채용의 효과가 어느 정도 확인된 셈입니다.

합격자들은 신규 심사관 교육 등을 거쳐 반도체 설계와 공정, 소재 등 세부 기술분야별 부서에 배치돼 특허심사 업무를 수행하게 되며, 심사 역량을 기르기 위해 기존 심사관의 밀착 지도 지원도 뒤따를 예정입니다.


■"기술 노하우와 다양한 경험들을 살릴 기회"

이번 채용에 응모한 반도체 베테랑 기술자들의 지원 동기를 들어왔습니다.

합격자 A: "현장 경험이 풍부한 인력을 특허심사관으로 채용한다는 취지가 큰 매력으로 느껴졌고, 현장 엔지니어로서 터득한 기술과 다양한 경험들을 살릴 수 있는 가치 잇는 기회라고 생각합니다."

합격자 B: "퇴직을 앞두고 업계 동료 상당수가 해외로 스카우트 되는 현실을 보며, 힘들게 일군 반도체 강국의 지위를 유지하는 데 일조하고 싶습니다."

전문임기제 특허심사관의 지위는 5급 상당의 공무원으로, 최초 2년 근무 뒤 근무평가 등을 바탕으로 최대 10년까지 나이와 상관없이 연장 근무가 가능합니다.

기존 회사만큼 고액의 연봉을 받는 것은 아니지만, 말 그대로 인생 2막을 준비하면서 보람과 성취감을 느낄 수 있는 새로운 직장으로서는 충분히 매력적인 조건입니다. 가장 나이가 많은 합격자가 60세라고 하니, 이분의 경우 최장 70세까지 고용을 유지할 수 있는 셈입니다.

■"기술 인재 유출 막아라"

다수의 국내 반도체 기업들은 특허청의 이번 채용에 높은 관심을 보였다고 합니다. 이런 정책이야말로 기업에 실질적인 도움이 되는 정부 정책이라며, 일회성이 아니라 지속적으로 추진되길 바라고 있고 2차전지 분야 등 또 다른 첨단기술 분야로도 확대가 필요하다고 제언하는 상황입니다.

기술자의 해외 유출은 곧 기술 유출과 산업 붕괴로 이어질 가능성이 큽니다. 국정원의 자료에 따르면 최근 5년간 핵심기술 유출은 시도는 99건으로, 직간접적인 피해 규모가 22조 원에 이릅니다. 특히 기술 유출의 절반 가까운 46%는 퇴직자에 의해 발생하고 있다고 하는데요.

1980년대 반도체 최강국이었던 일본의 입지를 가장 크게 흔든 요인이 한국과 대만으로 반도체 전문가가 대량 유출됐기 때문이라는 분석도 있습니다. 현재는 우리나라의 숙련된 기술자들을 중국을 비롯한 주요국에서 표적으로 삼고 있는 실정입니다. 문제는 앞으로 매년 반도체 분야의 고경력 기술 퇴직자가 매년 천 명 이상씩 나온다는 겁니다.

해외 이직 가능성이 큰 퇴직 인력을 심사관으로 채용하면, 기술 유출 방지는 물론 빠르고 정확한 특허 심사에 큰 도움이 될 수 있어 그야말로 1석 2조의 효과를 거둘 수 있습니다. 고경력, 베테랑 기술자들의 인생 2막 준비에도 적지 않은 힘이 되길 기대해 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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