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창+] 명사십리 ‘해당화 향수’를 아시나요?

입력 2023.02.27 (07:0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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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세계기록유산 KBS 이산가족찾기 생방송 40주년 기념, 시사기획 창 ‘잃어버린 시간을 찾아서’ 中에서〉

통일향수 해당화 향기의 주인공, 이재순 할머님은 오빠와 어떤 추억이 있을까요?

<녹취>이재순/이산가족
"원산의 명사십리 해당화 향이에요. 오빠 생각하며 만든 거. 얼마나 좋은가 봐봐요, 냄새가."

"그 해당화 보러 가는 거는 흥남역에서 기차를 타고 가요. 그러면 그 당시 기차는 어떤 기차냐. 불 때요, 불. 백 리인데 새카매요, 콧구멍이. 굴 들어갔다 나오면 그 연기가 들어와서 새카맣다고. 그래도 그 해당화 보고 금모래에서 막 뒹굴고 놀던 그런 생각 해서 여름방학이면 하루도 안 빼고 간 것 같아."

"(오빠가) 발뒤꿈치로 이렇게, 이렇게 해서 그 뒤꿈치로 조개를 잡아요. 그러면 조개, 밥조개 같은 거 잡으면 이만해요, 이만해. 그거를 나무 주워다 떼서 그 조개 끓여서 먹으면 그게 왜 그렇게 맛있어요?"

"툭하면 해당화꽃 꺾어서 나를 꽂아주면서 여봐라. 우리 아무개가 해당화꽃을 꽂으니까 해당화보다 더 예쁘지?"

이렇게 우애 좋던 남매는 어떻게 헤어지게 됐을까요?
1950년 당시, 그러니까 지금으로부터 꼭 73년 전, 17살 때의 이야기를 어렵게 들려주셨습니다.

<인터뷰> 이재순/이산가족
"6.25를 생각도 안 하고 학교를 갔을 거 아니에요. 그런데 며칠이 돼도 안 오는 거예요. 그런데 한 일주일 있으니까 (편지로) 나는 군대에 입대했다고. 나는 자원입대했다고, 나라를 위해서. 왜 어린 거를 그저 만 열여덟뿐이 안 됐는데 부모 저것도 없이 그냥 끌고 갔을까. 그래서 지금까지 모르고 소식도 모르고 그렇게 헤어진 거예요. 그러니까 작별하는 인사도 없고 헤어진다는 인사도 없고 잘 갔다 와라. 잘 있어라, 하는 그것도 없이 헤어져서 더 아쉽고 가슴 아프죠."

그로부터 얼마 후 전쟁이 났습니다. 오빠를 북에 남겨두고 피난길에 오를 때만 해도 금방 다시 돌아올 거라고 믿었습니다.

<인터뷰> 이재순/ 이산가족
"맨날 그냥 미군 비행기가 와서 폭격을 하니까. 그런데 흥남이라는 데는 유명한 도시잖아요. 동양에서 둘째가라는 곳인데 맨날 그냥 쌕쌕이(제트기)가 사격하고 폭탄 던지고. 그러니까 목숨, 내 목숨 하나 살려고 그냥 막 쫓겨 다니느라고 애쓰고 그러다가 금방 겨울이 돌아왔어.

그러니까 1.4후퇴 때 오빠를 기다리느라고 마지막까지 기다리고 있었어요. 안 가면 흥남 부둣가에는 사람이 살아남을 수가 없다는 거예요. 왜냐하면 함포 사격해서 이 근방에는 그냥 쑥대밭이 될테고 사람도 살아남지 못한다. 그러니까 빨리 여기는 철수해야 한다.

그래서 어쩔 수 없이 나오는데 우리 어머니는 나는 너희가 피난 잘하고 오면 되니까 여기서 우리 재규 만나기 위해서 갈 수가 없다 하고 우리 어머니는 안 왔어. 그런데 부둣가에까지 나가 보니까 다 가느라고 식구들이 다 같이 가. 엄마만 남겨놓고 오는 격이 되니까, 엄마를 억지로 끌고 왔어, 강제로. 마지막 배에 우리는 왔어요."

그 추웠던 한겨울의 피난길이 정말 슬펐을 것 같아요. 가족들은 얼마나 애타고 아픈 세월을 보냈을까요?

<인터뷰> 이재순/ 이산가족
"우리 어머니 유언은 너는 젊으니까 아직 살날이 많으니 악착같이 살아서 재규를 꼭 만나라. 만나거든... (가슴 치며) 나의 한 맺힌 말을 꼭 전해달라고. 그게 어머니 유언이야. 그리고 차라리 죽었다는 소식이 오면 내가 잊을 수가 있는데. 살아서 생이별을 했으니 도저히 잊을 수가 없고 눈을 못 감겠다고."

"내가 외롭고 쓸쓸하면 뜸북뜸북을 불러, 맨날."

“우리 오빠 말타고 서울 가시면 비단 구두 사가지고 오신다더니...”

생이별을 한 지도 어느새 70년이 훌쩍 넘었습니다. 만날 수 있다는 희망도 이젠 점점 희미해져만 가는 게 안타깝습니다.

<인터뷰>이재순/ 이산가족
"내가 못 만나도 좋으니 생사나 알았으면 좋겠고 만나지는 못하더라도 편지라도 주고받았으면 좋겠다. 그런데 이게 무슨 원수가 져서 부모, 형제, 직계가 서로 못 만나고 편지 연락도 못 하고 이렇게 사느냐 이거예요."

"그 심정은 겪어보지 않으면 몰라요. 10년이 지나가면 잊어버리고 20년이 지나가면 잊어버려. 절대 아니에요. 더 생생히 살아나는 게 이산가족의 아픔일 거예요. (울먹) 나만 이럴 게 아니라 다 그럴 거예요."

#남북이산가족 #상봉 #전쟁 #분단 #고향 #통일 #가상현실 #VR #남북회담 #영상편지 #적십자 #가족 #휴전선 #생이별 #향수 #프루스트 #잃어버린_시간

취재기자 : 김진희
촬영기자 : 안용습
영상편집 : 성동혁
자료조사 : 황현비
조연출 : 진의선

방송일시 : KBS 1TV 2023년 2월 21일(화) 밤 10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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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입력 2023-02-27 07:00:42
    취재K
▲〈세계기록유산 KBS 이산가족찾기 생방송 40주년 기념, 시사기획 창 ‘잃어버린 시간을 찾아서’ 中에서〉

통일향수 해당화 향기의 주인공, 이재순 할머님은 오빠와 어떤 추억이 있을까요?

<녹취>이재순/이산가족
"원산의 명사십리 해당화 향이에요. 오빠 생각하며 만든 거. 얼마나 좋은가 봐봐요, 냄새가."

"그 해당화 보러 가는 거는 흥남역에서 기차를 타고 가요. 그러면 그 당시 기차는 어떤 기차냐. 불 때요, 불. 백 리인데 새카매요, 콧구멍이. 굴 들어갔다 나오면 그 연기가 들어와서 새카맣다고. 그래도 그 해당화 보고 금모래에서 막 뒹굴고 놀던 그런 생각 해서 여름방학이면 하루도 안 빼고 간 것 같아."

"(오빠가) 발뒤꿈치로 이렇게, 이렇게 해서 그 뒤꿈치로 조개를 잡아요. 그러면 조개, 밥조개 같은 거 잡으면 이만해요, 이만해. 그거를 나무 주워다 떼서 그 조개 끓여서 먹으면 그게 왜 그렇게 맛있어요?"

"툭하면 해당화꽃 꺾어서 나를 꽂아주면서 여봐라. 우리 아무개가 해당화꽃을 꽂으니까 해당화보다 더 예쁘지?"

이렇게 우애 좋던 남매는 어떻게 헤어지게 됐을까요?
1950년 당시, 그러니까 지금으로부터 꼭 73년 전, 17살 때의 이야기를 어렵게 들려주셨습니다.

<인터뷰> 이재순/이산가족
"6.25를 생각도 안 하고 학교를 갔을 거 아니에요. 그런데 며칠이 돼도 안 오는 거예요. 그런데 한 일주일 있으니까 (편지로) 나는 군대에 입대했다고. 나는 자원입대했다고, 나라를 위해서. 왜 어린 거를 그저 만 열여덟뿐이 안 됐는데 부모 저것도 없이 그냥 끌고 갔을까. 그래서 지금까지 모르고 소식도 모르고 그렇게 헤어진 거예요. 그러니까 작별하는 인사도 없고 헤어진다는 인사도 없고 잘 갔다 와라. 잘 있어라, 하는 그것도 없이 헤어져서 더 아쉽고 가슴 아프죠."

그로부터 얼마 후 전쟁이 났습니다. 오빠를 북에 남겨두고 피난길에 오를 때만 해도 금방 다시 돌아올 거라고 믿었습니다.

<인터뷰> 이재순/ 이산가족
"맨날 그냥 미군 비행기가 와서 폭격을 하니까. 그런데 흥남이라는 데는 유명한 도시잖아요. 동양에서 둘째가라는 곳인데 맨날 그냥 쌕쌕이(제트기)가 사격하고 폭탄 던지고. 그러니까 목숨, 내 목숨 하나 살려고 그냥 막 쫓겨 다니느라고 애쓰고 그러다가 금방 겨울이 돌아왔어.

그러니까 1.4후퇴 때 오빠를 기다리느라고 마지막까지 기다리고 있었어요. 안 가면 흥남 부둣가에는 사람이 살아남을 수가 없다는 거예요. 왜냐하면 함포 사격해서 이 근방에는 그냥 쑥대밭이 될테고 사람도 살아남지 못한다. 그러니까 빨리 여기는 철수해야 한다.

그래서 어쩔 수 없이 나오는데 우리 어머니는 나는 너희가 피난 잘하고 오면 되니까 여기서 우리 재규 만나기 위해서 갈 수가 없다 하고 우리 어머니는 안 왔어. 그런데 부둣가에까지 나가 보니까 다 가느라고 식구들이 다 같이 가. 엄마만 남겨놓고 오는 격이 되니까, 엄마를 억지로 끌고 왔어, 강제로. 마지막 배에 우리는 왔어요."

그 추웠던 한겨울의 피난길이 정말 슬펐을 것 같아요. 가족들은 얼마나 애타고 아픈 세월을 보냈을까요?

<인터뷰> 이재순/ 이산가족
"우리 어머니 유언은 너는 젊으니까 아직 살날이 많으니 악착같이 살아서 재규를 꼭 만나라. 만나거든... (가슴 치며) 나의 한 맺힌 말을 꼭 전해달라고. 그게 어머니 유언이야. 그리고 차라리 죽었다는 소식이 오면 내가 잊을 수가 있는데. 살아서 생이별을 했으니 도저히 잊을 수가 없고 눈을 못 감겠다고."

"내가 외롭고 쓸쓸하면 뜸북뜸북을 불러, 맨날."

“우리 오빠 말타고 서울 가시면 비단 구두 사가지고 오신다더니...”

생이별을 한 지도 어느새 70년이 훌쩍 넘었습니다. 만날 수 있다는 희망도 이젠 점점 희미해져만 가는 게 안타깝습니다.

<인터뷰>이재순/ 이산가족
"내가 못 만나도 좋으니 생사나 알았으면 좋겠고 만나지는 못하더라도 편지라도 주고받았으면 좋겠다. 그런데 이게 무슨 원수가 져서 부모, 형제, 직계가 서로 못 만나고 편지 연락도 못 하고 이렇게 사느냐 이거예요."

"그 심정은 겪어보지 않으면 몰라요. 10년이 지나가면 잊어버리고 20년이 지나가면 잊어버려. 절대 아니에요. 더 생생히 살아나는 게 이산가족의 아픔일 거예요. (울먹) 나만 이럴 게 아니라 다 그럴 거예요."

#남북이산가족 #상봉 #전쟁 #분단 #고향 #통일 #가상현실 #VR #남북회담 #영상편지 #적십자 #가족 #휴전선 #생이별 #향수 #프루스트 #잃어버린_시간

취재기자 : 김진희
촬영기자 : 안용습
영상편집 : 성동혁
자료조사 : 황현비
조연출 : 진의선

방송일시 : KBS 1TV 2023년 2월 21일(화) 밤 10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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