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아들 일’이라고요? ‘학폭’ 당시 ‘검사 정순신’의 흔적

입력 2023.02.28 (08:00) 수정 2023.02.28 (11:3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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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 자식의 일에 대해 죄송스럽게 생각합니다."

자녀의 학교 폭력 논란이 불거진 뒤 정순신 변호사가 24일 KBS에 밝힌 입장입니다.

학교 폭력 자체는 '자식의 일'이 맞습니다. 부모에 책임을 물을 수 있는 건 기껏해야 '자식 교육 어떻게 한 거냐' 정도일 겁니다. 문제는 그 이후입니다.

학교 폭력 이후 학교에서 열린 학교폭력대책자치위원회(이하 학폭위), 교육청에 청구한 재심, 법원에 낸 가처분 소송과 행정소송까지 그 과정을 살펴봤습니다.

■ 교사 "아버지가 써준 내용 보고 진술서 썼다"

2018년 3월, 명문 자사고인 ○○고에서 학폭위가 열립니다.

회의 첫 머리에, 학폭 책임 교사는 추가로 보고할 내용이 있다며 가해 학생인 정 변호사의 아들 정 모 군의 진술서 이야기를 꺼냅니다.

그러면서 아버지가 정 군의 진술서 작성에 관여했다고 주장합니다. 당시 정 변호사는 검찰에 몸담고 있었습니다.

교사의 발언을 보면 잘못을 인정하지 않고 책임을 돌리는 내용 위주였던 것으로 보입니다.

학폭위 책임 교사(학폭위 회의록 발췌)
"추가적으로 보고할 내용이 있습니다. 정○○ 학생의 1, 2차 진술서에 회피하는 모습이 강한 이유는 아버지의 써주신 내용을 보고 썼기 때문이며, 3차에 반성하고 다시 진술서를 썼습니다."

■ 정순신 "언어적 폭력은 맥락이 중요"

정 변호사는 이 학폭위에 불려가기도 했습니다.

피해 학생을 나가게 한 뒤 두 차례 발언했는데, 가해 학생 부모로서 책임지는 모습보다는 아들을 감싸는 듯한 모습을 보였습니다.

정순신 변호사
"물리적으로 때린 것이 있으면, 더 이상 변명할 여지가 없겠지만, 언어적 폭력이니 맥락이 중요한 것 같습니다."

■ 가처분에 행정소송...'전학' 조치 이후 1년 넘게 지연

첫 학폭위에서 정 군에 대해 전학 결정을 내리고도, 이 결정이 합당했다는 최종 판단이 나올 때까지 약 1년 1개월이 걸렸습니다. 정 군의 부모가 재심 청구와 행정소송 등 갖은 절차를 밟으며 최종 결론을 미뤘기 때문입니다. 이 기간, 가해 학생인 정 군은 학교를 다녔고 피해 학생은 병원 생활을 주로 해야 했습니다.

정 군 징계 진행 절차
2018년 3월, 학폭위 '전학' 결정 → 정 군 측 '재심' 청구 → '전학' 취소
→ A 군 측 '재재심' 청구 → '전학' 재결정 → 집행정지 가처분 신청 및 행정 소송 → 2019년 4월, '전학 합당' 대법원 최종 판결

행정소송은 정 변호사와 사법연수원 동기인, 판사 출신의 변호사가 변호를 맡았습니다. 이 변호사는 전학 재심 과정에도 참여했는데, 이런 주장을 했습니다.

"폭력이라고 명백하게 보기 어렵다. (피해학생이) 충분히 회피가 가능했던 것 같은데 왜 그런 게 없었는지... 말이 심하긴 하지만 남학생들 사이에서 서로 욕을 하거나 하는 일은 많이 하는 일인데..."

"어떤 언어폭력으로 인해서 피해 학생이 어떤 상처를 받았는지 저희가 납득 할 수가 없다. 00새끼, 00 이런 말은 욕은 될 수 있지만 그야말로 극단적으로 건강이 나빠지고 황폐화될 수 있는 행위가 될 수 있는지"

1심 법원은 정 군 측 주장을 모두 기각했지만, 사건은 항소심을 거쳐 대법원까지 갔습니다.

이같은 소송전에 대해 학교 폭력 전문 변호사들은 생활기록부에 '학폭' 기록을 남기지 않으려는 전략으로 보인다고 설명했습니다. 행정 소송에서 최종적으로 승소하면, 생활기록부에 강제전학 조치를 당했다는 기록이 남지 않습니다. 또 가처분 소송에서 법원이 인용을 하더라도, 생활기록부 기록을 미룰 수 있습니다.

■ 원고가 소송 무효 주장?...'재판의 기술'

'미수'로 남긴 했지만, 2심 재판 과정에선 소위 '기술'도 등장합니다.

재판을 청구한 '원고' 정 군 측이, 돌연 "소가 부적법하다"며 소송 무효를 주장합니다. 학교폭력 피해 학생만 행정심판을 제기할 수 있는데 정 군은 가해 학생이므로 원고로서의 자격이 없고, 결론적으론 재판이 무효라는 겁니다.

원고가 원고 패소를 위한 주장을 한 겁니다. 이해가 안 가는 대목입니다.

학교폭력 전문 변호사들은 이 부분이 '가해자의 기술'이라고 설명합니다. 이지헌 학교폭력 전문 변호사의 설명을 들어봤습니다.

첫째, 패소할 것 같으니 그 사유를 '소송 무효'로 뒤바꾸려는 전략이라는 겁니다. '학교 폭력이 인정'돼 패소한 게 아니라, 부적법한 소송을 걸어 패소한 모양새로 보이게 할 수 있다는 겁니다. 이 경우, 판결문 기록도 남지 않습니다.

둘째, 지연에 지연을 이어갈 수 있습니다. 소송이 무효가 되면 '학교 폭력이 맞고, 전학 조치는 합당하다'는 1심 판결도 취소됩니다. 1심 판단을 '없는 판결'로 만들어버리고, 다시 민사 소송을 걸거나 다른 지연 전략을 펼치려 했을 수 있습니다.

정 군 측이 법적인 전문성을 동원해 길고 긴 소송을 벌이는 동안, A 군의 고통은 커질 수밖에 없었습니다.

결국 '아들의 일'만으로는 볼 수 없었던 이 학교 폭력 사건. KBS가 정 변호사의 경찰청 국가수사본부장 임명 이후 이 사건 보도를 결정한 것도 이 때문입니다.

○○고 학폭위에 참석했던 한 경찰관은 당시 A 군 모습을 이렇게 기억했습니다.

학폭위 참석 경찰관
A 군은 인간적인 모멸감을 느낀 것 같았고, 견디기 힘들어 보였어요.
스스로는 병원 다니며 학교도 제대로 못 다니는데, 상대방은 학교를 잘 다니는 모습에 힘들지 않았을까요.
가해 학생 측에서 재심을 청구하고 소송을 걸면서 피해가 더 심해지지 않았을까 합니다.

■ "진술서 써준 적 없어…'시시비비 급급' 후회'"

당시 이런 상황에 대해 정 변호사는 오늘 KBS에 입장을 밝혀왔습니다.

먼저 학폭위 책임 교사의 '정 군이 1, 2차 진술서를 아버지가 써 준 내용을 보고 썼다'는 주장에 대해, 정 변호사는 "교사에 추정에 따른 것"으로 "아들의 진술서를 써 준 적이 없다"고 밝혔습니다.

또 "소송 과정은 변호사가 알아서 한 것"이라며, "오히려 내가 개입 안 하려고, '검사'로서 부적절하게 개입한다는 이야기를 듣기 싫어서 변호사를 선임해서 맡긴 것"이라 말했습니다.

법원 판단을 구하게 된 배경에 대해선 다음과 같이 설명했습니다.

정순신 변호사
전학 처분이 과중하다고 생각해서 먼저 강원도교육청에 재심을 청구한 바 있습니다.
강원도교육청은 전학 처분이 과중하다면서 이 처분을 취소한 바가 있어서 법원의 최종 판단을 받아보고 싶어서 대법원까지 소송을 진행하게 된 것입니다.
돌이켜보니 그 당시 피해자의 상황에 대해 미처 공감하지 못하고 시시비비를 따지기에만 급급했던 점이 후회스럽습니다.

이미 알려진 대로, 검찰 출신인 정 변호사는 임기 시작을 하루 앞둔 지난 25일 국가수사본부장 자리에서 낙마했습니다. 그는 스스로 물러나겠다면서, 피해자와 그 가족에게 사과를 전하고 "두고두고 반성하며 살겠다"는 말을 남겼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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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아들 일’이라고요? ‘학폭’ 당시 ‘검사 정순신’의 흔적
    • 입력 2023-02-28 08:00:08
    • 수정2023-02-28 11:37:06
    취재K

"제 자식의 일에 대해 죄송스럽게 생각합니다."

자녀의 학교 폭력 논란이 불거진 뒤 정순신 변호사가 24일 KBS에 밝힌 입장입니다.

학교 폭력 자체는 '자식의 일'이 맞습니다. 부모에 책임을 물을 수 있는 건 기껏해야 '자식 교육 어떻게 한 거냐' 정도일 겁니다. 문제는 그 이후입니다.

학교 폭력 이후 학교에서 열린 학교폭력대책자치위원회(이하 학폭위), 교육청에 청구한 재심, 법원에 낸 가처분 소송과 행정소송까지 그 과정을 살펴봤습니다.

■ 교사 "아버지가 써준 내용 보고 진술서 썼다"

2018년 3월, 명문 자사고인 ○○고에서 학폭위가 열립니다.

회의 첫 머리에, 학폭 책임 교사는 추가로 보고할 내용이 있다며 가해 학생인 정 변호사의 아들 정 모 군의 진술서 이야기를 꺼냅니다.

그러면서 아버지가 정 군의 진술서 작성에 관여했다고 주장합니다. 당시 정 변호사는 검찰에 몸담고 있었습니다.

교사의 발언을 보면 잘못을 인정하지 않고 책임을 돌리는 내용 위주였던 것으로 보입니다.

학폭위 책임 교사(학폭위 회의록 발췌)
"추가적으로 보고할 내용이 있습니다. 정○○ 학생의 1, 2차 진술서에 회피하는 모습이 강한 이유는 아버지의 써주신 내용을 보고 썼기 때문이며, 3차에 반성하고 다시 진술서를 썼습니다."

■ 정순신 "언어적 폭력은 맥락이 중요"

정 변호사는 이 학폭위에 불려가기도 했습니다.

피해 학생을 나가게 한 뒤 두 차례 발언했는데, 가해 학생 부모로서 책임지는 모습보다는 아들을 감싸는 듯한 모습을 보였습니다.

정순신 변호사
"물리적으로 때린 것이 있으면, 더 이상 변명할 여지가 없겠지만, 언어적 폭력이니 맥락이 중요한 것 같습니다."

■ 가처분에 행정소송...'전학' 조치 이후 1년 넘게 지연

첫 학폭위에서 정 군에 대해 전학 결정을 내리고도, 이 결정이 합당했다는 최종 판단이 나올 때까지 약 1년 1개월이 걸렸습니다. 정 군의 부모가 재심 청구와 행정소송 등 갖은 절차를 밟으며 최종 결론을 미뤘기 때문입니다. 이 기간, 가해 학생인 정 군은 학교를 다녔고 피해 학생은 병원 생활을 주로 해야 했습니다.

정 군 징계 진행 절차
2018년 3월, 학폭위 '전학' 결정 → 정 군 측 '재심' 청구 → '전학' 취소
→ A 군 측 '재재심' 청구 → '전학' 재결정 → 집행정지 가처분 신청 및 행정 소송 → 2019년 4월, '전학 합당' 대법원 최종 판결

행정소송은 정 변호사와 사법연수원 동기인, 판사 출신의 변호사가 변호를 맡았습니다. 이 변호사는 전학 재심 과정에도 참여했는데, 이런 주장을 했습니다.

"폭력이라고 명백하게 보기 어렵다. (피해학생이) 충분히 회피가 가능했던 것 같은데 왜 그런 게 없었는지... 말이 심하긴 하지만 남학생들 사이에서 서로 욕을 하거나 하는 일은 많이 하는 일인데..."

"어떤 언어폭력으로 인해서 피해 학생이 어떤 상처를 받았는지 저희가 납득 할 수가 없다. 00새끼, 00 이런 말은 욕은 될 수 있지만 그야말로 극단적으로 건강이 나빠지고 황폐화될 수 있는 행위가 될 수 있는지"

1심 법원은 정 군 측 주장을 모두 기각했지만, 사건은 항소심을 거쳐 대법원까지 갔습니다.

이같은 소송전에 대해 학교 폭력 전문 변호사들은 생활기록부에 '학폭' 기록을 남기지 않으려는 전략으로 보인다고 설명했습니다. 행정 소송에서 최종적으로 승소하면, 생활기록부에 강제전학 조치를 당했다는 기록이 남지 않습니다. 또 가처분 소송에서 법원이 인용을 하더라도, 생활기록부 기록을 미룰 수 있습니다.

■ 원고가 소송 무효 주장?...'재판의 기술'

'미수'로 남긴 했지만, 2심 재판 과정에선 소위 '기술'도 등장합니다.

재판을 청구한 '원고' 정 군 측이, 돌연 "소가 부적법하다"며 소송 무효를 주장합니다. 학교폭력 피해 학생만 행정심판을 제기할 수 있는데 정 군은 가해 학생이므로 원고로서의 자격이 없고, 결론적으론 재판이 무효라는 겁니다.

원고가 원고 패소를 위한 주장을 한 겁니다. 이해가 안 가는 대목입니다.

학교폭력 전문 변호사들은 이 부분이 '가해자의 기술'이라고 설명합니다. 이지헌 학교폭력 전문 변호사의 설명을 들어봤습니다.

첫째, 패소할 것 같으니 그 사유를 '소송 무효'로 뒤바꾸려는 전략이라는 겁니다. '학교 폭력이 인정'돼 패소한 게 아니라, 부적법한 소송을 걸어 패소한 모양새로 보이게 할 수 있다는 겁니다. 이 경우, 판결문 기록도 남지 않습니다.

둘째, 지연에 지연을 이어갈 수 있습니다. 소송이 무효가 되면 '학교 폭력이 맞고, 전학 조치는 합당하다'는 1심 판결도 취소됩니다. 1심 판단을 '없는 판결'로 만들어버리고, 다시 민사 소송을 걸거나 다른 지연 전략을 펼치려 했을 수 있습니다.

정 군 측이 법적인 전문성을 동원해 길고 긴 소송을 벌이는 동안, A 군의 고통은 커질 수밖에 없었습니다.

결국 '아들의 일'만으로는 볼 수 없었던 이 학교 폭력 사건. KBS가 정 변호사의 경찰청 국가수사본부장 임명 이후 이 사건 보도를 결정한 것도 이 때문입니다.

○○고 학폭위에 참석했던 한 경찰관은 당시 A 군 모습을 이렇게 기억했습니다.

학폭위 참석 경찰관
A 군은 인간적인 모멸감을 느낀 것 같았고, 견디기 힘들어 보였어요.
스스로는 병원 다니며 학교도 제대로 못 다니는데, 상대방은 학교를 잘 다니는 모습에 힘들지 않았을까요.
가해 학생 측에서 재심을 청구하고 소송을 걸면서 피해가 더 심해지지 않았을까 합니다.

■ "진술서 써준 적 없어…'시시비비 급급' 후회'"

당시 이런 상황에 대해 정 변호사는 오늘 KBS에 입장을 밝혀왔습니다.

먼저 학폭위 책임 교사의 '정 군이 1, 2차 진술서를 아버지가 써 준 내용을 보고 썼다'는 주장에 대해, 정 변호사는 "교사에 추정에 따른 것"으로 "아들의 진술서를 써 준 적이 없다"고 밝혔습니다.

또 "소송 과정은 변호사가 알아서 한 것"이라며, "오히려 내가 개입 안 하려고, '검사'로서 부적절하게 개입한다는 이야기를 듣기 싫어서 변호사를 선임해서 맡긴 것"이라 말했습니다.

법원 판단을 구하게 된 배경에 대해선 다음과 같이 설명했습니다.

정순신 변호사
전학 처분이 과중하다고 생각해서 먼저 강원도교육청에 재심을 청구한 바 있습니다.
강원도교육청은 전학 처분이 과중하다면서 이 처분을 취소한 바가 있어서 법원의 최종 판단을 받아보고 싶어서 대법원까지 소송을 진행하게 된 것입니다.
돌이켜보니 그 당시 피해자의 상황에 대해 미처 공감하지 못하고 시시비비를 따지기에만 급급했던 점이 후회스럽습니다.

이미 알려진 대로, 검찰 출신인 정 변호사는 임기 시작을 하루 앞둔 지난 25일 국가수사본부장 자리에서 낙마했습니다. 그는 스스로 물러나겠다면서, 피해자와 그 가족에게 사과를 전하고 "두고두고 반성하며 살겠다"는 말을 남겼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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