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특파원 리포트] 행방불명 회장님, 알고 보니…中 금융권에 ‘칼바람’

입력 2023.02.28 (15:54) 수정 2023.02.28 (15:5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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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행방불명' 회장님이 발견된 곳은?

최근 중국 금융권을 얼어붙게 만든 소식이 있습니다. 중국 최고 투자은행 '차이나 르네상스 홀딩스'의 바오판 회장이 지난 2월 16일 행방불명된 겁니다. 회사 측은 "바오판 회장이 출근도 하지 않고, 연락도 닿지 않는다"고 당일 공시했는데요. 지인들도 연락을 주고받지 못할 정도로 감쪽같이 사라졌습니다.

바오판 회장은 모건 스탠리 등에서 근무하다 2005년 차이나 르네상스 홀딩스를 설립했는데요. 중국 온라인 쇼핑몰인 '징둥'과 중국판 배달의민족 '메이퇀' 등을 일찌감치 알아보고 초기에 투자해, 중국 최고 빅테크 투자자 반열에 올랐습니다. 현재 회사의 투자금 관리 규모만 9조 원대로 알려졌습니다.

사라진 바오판 차이나르네상스 홀딩스 회장 (출처: 바이두)사라진 바오판 차이나르네상스 홀딩스 회장 (출처: 바이두)

바오판 회장이 행방불명 되기 전, 지난해 9월에는 같은 회사 총린 사장이 중국 당국에 체포되기도 했습니다. 이 때문에 바오판 회장이 중국 사정 당국의 조사를 받고 있을 것이라는 걱정이 컸는데요. 이런 우려 때문에 실종 당일 회사 주가가 50% 넘게 폭락했습니다.

그런 바오판 회장의 거취가 행방불명된 지 열흘 만인 2월 26일 확인됐습니다. 회사 측이 "바오 회장이 현재 중국 관계 기관의 조사에 협조하고 있다는 사실을 알게 됐다"고 밝힌 겁니다. 하지만 바오 회장이 어떤 조사를 받고 있는 지는 언급하지 않았습니다. 생사는 확인했지만, 우려했던 대로 중국 사정 당국의 칼날을 피해가지 못한겁니다.

■中 금융 거물들 '줄줄이' 낙마 ...무슨 일이?

바오판 회장에게만 '칼바람'이 몰아친 건 아닙니다. 중국 최대 국유손해보험사 '중국 인민보험그룹'의 뤄시 회장과 중국은행 류롄거 회장도 지난 2월 17일 갑자기 면직 조치 됐습니다. 중국 금융계에서 손꼽히는 거물들이 줄줄이 당국에 조사를 받게 된 겁니다.

중국 최대 정치 행사인 '양회'를 앞두고 일어난 일입니다. 왜 이런 일이 벌어지고 있는 걸까요? 최근 중국 공산당 중앙기율검사위원회가 발표한 글을 보면 배경을 짐작할 수 있습니다.


중앙기율위는 2월 23일 <험난하고 장기적인 반부패 전투에서 결연하게 승리를 거두자>는 제목의 발표문을 냈습니다. 이 글은 무려 3천 5백자 분량으로 "금융 엘리트 이론과 배금론, 서방 추종론 등 잘못된 사상을 타파하고, 쾌락주의와 사치 풍조를 바로잡아야 한다"라는 내용입니다.

3천여 자 중에 '중앙기업'에 대한 언급이 8번에 그친 반면, '금융'에 대한 언급은 2배인 16번이나 됐습니다.사정 당국의 칼날이 어디로 향하고 있는지를 단적으로 보여줍니다.

기율위는 그러면서 "권력과 자금이 몰리는 분야의 지속적인 부패 척결과 명의뿐인 '그림자 주주'와 '그림자 회사' 등 신종 부패를 강력하게 단속해 권력과 자본의 유착고리를 끊겠다"고 설명했습니다.

■시작은 마윈의 '알리바바'...지방 정부까지 탈탈 턴다

알리바바 항저우 사옥알리바바 항저우 사옥

중국 정부의 금융권 '사정 바람'은 알리바바 사태 때부터 시작된 것으로 보는 전문가들이 많습니다. 마윈 회장이 막대한 자본력을 무기로 정부에 반기를 들자, 중국 공산당이 위기감을 느꼈다는 겁니다.
중국 정부는 2021년 말부터 디디추싱과 부동산 재벌 '헝다', 앤트그룹 등에 대해 대규모 감찰을 벌였습니다. 그야말로 탈탈 털었는데요.

비슷한 시기에 알리바바 본사가 있는 중국 항저우시 당서기 등 지방정부 간부 2만여 명 전원이 알리바바와 유착 관계를 조사받기도 했습니다.

조사를 통해 막대한 빅데이터를 구축한 뒤 금융 불안 사태를 일으킨 부동산그룹 '헝다' 와 알리바바의 '앤트그룹' 등과 결탁한 뒷배를 색출했다는 분석이 나오고 있습니다.

■결국 금융도 '공산당' 손 안으로?...금융총괄기구 부활설 '솔솔'

금융권에 대한 대규모 사정 작업과 더불어 주목할만한 움직임이 또 있습니다.

최근 시진핑 주석이 최측근 인사를 인민은행 수장으로 임명한겁니다. 이번 주 개막하는 양회에서 차기 부총리로 인선 될 가능성이 큰 '허리펑' 국가발전개혁위원회 주임입니다. 허리펑 주임은 인민은행 총재보다 높은 '당위원회 서기'를 맡을 것으로 점쳐지고 있습니다.

허 주임은 시진핑 주석이 중국 푸젠성에서 근무할 때 보좌 역을 맡았고, 시 주석 결혼식에도 하객으로 참석할 만큼 친분이 두텁습니다. 이 때문에 대표적인 시자쥔(시진핑 주석의 측근 그룹)으로 분류돼 있습니다. 공산당의 의중이 인민은행 통화정책에 곧바로 전해질 수 있는 구조입니다.

허리펑 국가발전개혁위원회 주임허리펑 국가발전개혁위원회 주임

이에 더해 금융정책과 인사 문제를 총괄하는 '중앙금융공작위원회'도 부활할 조짐을 보이고 있습니다.

금융공작위원회는 아시아 금융위기 당시인 1998년 설립돼 인민은행 같은 금융감독기관과 국영 금융회사의 정책과 인사 문제를 총괄했습니다. 중국 금융이 안정된 2003년 이후 수명을 다하고 문을 닫았는데요. 그런 금융공작위가 이번 주 개막하는 양회에서 부활할 가능성이 큰 것으로 알려졌습니다.

중국 정부가 느끼는 금융개혁에 대한 위기감이 그만큼 높다는 것으로 비쳐 지는 대목입니다. 위드코로나 이후 민영 기업들의 자율성을 강조했던 중국 정부가 금융권을 옥죄는 상황입니다. 중국 경제 회복에는 어떤 영향을 미칠지 관심을 두고 지켜 봐야 할 것 같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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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입력 2023-02-28 15:54:41
    • 수정2023-02-28 15:55:15
    특파원 리포트

■'행방불명' 회장님이 발견된 곳은?

최근 중국 금융권을 얼어붙게 만든 소식이 있습니다. 중국 최고 투자은행 '차이나 르네상스 홀딩스'의 바오판 회장이 지난 2월 16일 행방불명된 겁니다. 회사 측은 "바오판 회장이 출근도 하지 않고, 연락도 닿지 않는다"고 당일 공시했는데요. 지인들도 연락을 주고받지 못할 정도로 감쪽같이 사라졌습니다.

바오판 회장은 모건 스탠리 등에서 근무하다 2005년 차이나 르네상스 홀딩스를 설립했는데요. 중국 온라인 쇼핑몰인 '징둥'과 중국판 배달의민족 '메이퇀' 등을 일찌감치 알아보고 초기에 투자해, 중국 최고 빅테크 투자자 반열에 올랐습니다. 현재 회사의 투자금 관리 규모만 9조 원대로 알려졌습니다.

사라진 바오판 차이나르네상스 홀딩스 회장 (출처: 바이두)
바오판 회장이 행방불명 되기 전, 지난해 9월에는 같은 회사 총린 사장이 중국 당국에 체포되기도 했습니다. 이 때문에 바오판 회장이 중국 사정 당국의 조사를 받고 있을 것이라는 걱정이 컸는데요. 이런 우려 때문에 실종 당일 회사 주가가 50% 넘게 폭락했습니다.

그런 바오판 회장의 거취가 행방불명된 지 열흘 만인 2월 26일 확인됐습니다. 회사 측이 "바오 회장이 현재 중국 관계 기관의 조사에 협조하고 있다는 사실을 알게 됐다"고 밝힌 겁니다. 하지만 바오 회장이 어떤 조사를 받고 있는 지는 언급하지 않았습니다. 생사는 확인했지만, 우려했던 대로 중국 사정 당국의 칼날을 피해가지 못한겁니다.

■中 금융 거물들 '줄줄이' 낙마 ...무슨 일이?

바오판 회장에게만 '칼바람'이 몰아친 건 아닙니다. 중국 최대 국유손해보험사 '중국 인민보험그룹'의 뤄시 회장과 중국은행 류롄거 회장도 지난 2월 17일 갑자기 면직 조치 됐습니다. 중국 금융계에서 손꼽히는 거물들이 줄줄이 당국에 조사를 받게 된 겁니다.

중국 최대 정치 행사인 '양회'를 앞두고 일어난 일입니다. 왜 이런 일이 벌어지고 있는 걸까요? 최근 중국 공산당 중앙기율검사위원회가 발표한 글을 보면 배경을 짐작할 수 있습니다.


중앙기율위는 2월 23일 <험난하고 장기적인 반부패 전투에서 결연하게 승리를 거두자>는 제목의 발표문을 냈습니다. 이 글은 무려 3천 5백자 분량으로 "금융 엘리트 이론과 배금론, 서방 추종론 등 잘못된 사상을 타파하고, 쾌락주의와 사치 풍조를 바로잡아야 한다"라는 내용입니다.

3천여 자 중에 '중앙기업'에 대한 언급이 8번에 그친 반면, '금융'에 대한 언급은 2배인 16번이나 됐습니다.사정 당국의 칼날이 어디로 향하고 있는지를 단적으로 보여줍니다.

기율위는 그러면서 "권력과 자금이 몰리는 분야의 지속적인 부패 척결과 명의뿐인 '그림자 주주'와 '그림자 회사' 등 신종 부패를 강력하게 단속해 권력과 자본의 유착고리를 끊겠다"고 설명했습니다.

■시작은 마윈의 '알리바바'...지방 정부까지 탈탈 턴다

알리바바 항저우 사옥
중국 정부의 금융권 '사정 바람'은 알리바바 사태 때부터 시작된 것으로 보는 전문가들이 많습니다. 마윈 회장이 막대한 자본력을 무기로 정부에 반기를 들자, 중국 공산당이 위기감을 느꼈다는 겁니다.
중국 정부는 2021년 말부터 디디추싱과 부동산 재벌 '헝다', 앤트그룹 등에 대해 대규모 감찰을 벌였습니다. 그야말로 탈탈 털었는데요.

비슷한 시기에 알리바바 본사가 있는 중국 항저우시 당서기 등 지방정부 간부 2만여 명 전원이 알리바바와 유착 관계를 조사받기도 했습니다.

조사를 통해 막대한 빅데이터를 구축한 뒤 금융 불안 사태를 일으킨 부동산그룹 '헝다' 와 알리바바의 '앤트그룹' 등과 결탁한 뒷배를 색출했다는 분석이 나오고 있습니다.

■결국 금융도 '공산당' 손 안으로?...금융총괄기구 부활설 '솔솔'

금융권에 대한 대규모 사정 작업과 더불어 주목할만한 움직임이 또 있습니다.

최근 시진핑 주석이 최측근 인사를 인민은행 수장으로 임명한겁니다. 이번 주 개막하는 양회에서 차기 부총리로 인선 될 가능성이 큰 '허리펑' 국가발전개혁위원회 주임입니다. 허리펑 주임은 인민은행 총재보다 높은 '당위원회 서기'를 맡을 것으로 점쳐지고 있습니다.

허 주임은 시진핑 주석이 중국 푸젠성에서 근무할 때 보좌 역을 맡았고, 시 주석 결혼식에도 하객으로 참석할 만큼 친분이 두텁습니다. 이 때문에 대표적인 시자쥔(시진핑 주석의 측근 그룹)으로 분류돼 있습니다. 공산당의 의중이 인민은행 통화정책에 곧바로 전해질 수 있는 구조입니다.

허리펑 국가발전개혁위원회 주임
이에 더해 금융정책과 인사 문제를 총괄하는 '중앙금융공작위원회'도 부활할 조짐을 보이고 있습니다.

금융공작위원회는 아시아 금융위기 당시인 1998년 설립돼 인민은행 같은 금융감독기관과 국영 금융회사의 정책과 인사 문제를 총괄했습니다. 중국 금융이 안정된 2003년 이후 수명을 다하고 문을 닫았는데요. 그런 금융공작위가 이번 주 개막하는 양회에서 부활할 가능성이 큰 것으로 알려졌습니다.

중국 정부가 느끼는 금융개혁에 대한 위기감이 그만큼 높다는 것으로 비쳐 지는 대목입니다. 위드코로나 이후 민영 기업들의 자율성을 강조했던 중국 정부가 금융권을 옥죄는 상황입니다. 중국 경제 회복에는 어떤 영향을 미칠지 관심을 두고 지켜 봐야 할 것 같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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