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챗GPT’가 만든 소송서류, 법원에 내도 되나요?

입력 2023.03.01 (09:00)

읽어주기 기능은 크롬기반의
브라우저에서만 사용하실 수 있습니다.


어떤 종류의 질문에도 인간처럼 자연스러운 문장으로 답변해주는 오픈AI의 인공지능(AI), '챗GPT(Chat Generative Pre-trained Transformer)'가 화제입니다.

무엇이든 대답해주는 '리얼한' 인공지능이 드디어 등장했단 후한 평가도 있지만, 사실과 다른 '아무 말'을 자연스럽게 늘어놓는단 비판도 만만치 않습니다.

그렇다면 전문적인 지식이 필요한 법률 서류의 경우엔 어떨까요?

AI가 어느 정도의 문장을 쓸 수 있을지 궁금했습니다. 에세이나 리포트 작성 용도로 많이 쓰인다는 소식은 이미 들었지만, 법률적으로는 어떤 '아무 말'을 할지 호기심이 생겼습니다.

시험 삼아 "대여금 청구 소송 소장을 작성해 줘"라고 입력했습니다.


■"OOO 소장 만들어줘"…결과는?

기대치를 너무 낮게 잡아서였을까요? 결과는 생각보다 만족스러웠습니다.

변호사들이 실제 재판에 내는 소장은 △당사자(원·피고의 성명과 주소, 연락처, 소송대리인, 주민등록번호 등) △청구취지(선고해달라고 요청하는 주문의 형식) △청구이유(청구의 근거) △증거물 순으로 구성됩니다.

물론 챗GPT가 만든 내용은 이런 소장과는 양식이나 순서도 다르고, A4 한두 페이지 분량으로 내용도 간소했지만 '청구이유' 부분에 들어가야 할 내용은 놀라운 수준이었습니다.

대여금 청구소송에 들어가야 하는 요건사실(△소비대차계약 체결 △반환시기의 도래 등)이 제대로 들어가 있었기 때문입니다.

단순한 질문을 던졌는데, 형식을 다듬기만 하면 충분히 통용될 수 있는 법률적 문구들을 써 준 겁니다.

■ 손해배상·건물인도…답변 유창하게 '쓱쓱'

내친김에 여러 종류의 소장을 작성해달라고 요청해 봤습니다. 보다 구체적으로 묻기도 했습니다.

"지난달 말 임대차계약이 종료되었는데 세입자가 집을 비우지 않고 있어. (세입자에게) 다음 달 1일까지 건물을 비워달라는 건물인도청구소송 소장을 작성해 줘."


"유튜버 A 씨가 내 책의 내용을 무단으로 인용문구 없이 자신의 동영상에 내용을 인용하고 있어. 저작권을 침해를 이유로 한 손해배상 청구소송 소장을 작성해 줘. 배상액은 3,000만 원으로 하고 싶어."


여러분이 직접 보니 어떠신가요?

챗GPT에게 서면 작성을 의뢰해 본 다른 변호사들도 저랑 똑같이 혀를 내둘렀습니다. 형식이야 어떻든, 전문가의 눈으로 봐도 그럴 듯한 문장을 만들어내는 AI의 성능이 놀랍단 반응이 대부분이었습니다.

■ 요청사항 많아질수록 '어리둥절'…짧은 답변 한계도

재미있는 건, 같은 질문을 던져도 다른 방식의 답이 나올 때가 많단 점이었습니다. 현재 공개된 챗GPT 버전이 무료 버전이어서인지 조금만 답변 내용이 길어져도 중간에 잘리는 일도 잦았습니다.

또 '대여금 소송'과 같은 일반적인 소송의 경우엔 자주 쓰이는 소장 양식이 널리 공개돼 있고, 학습 대상이 많아서인지 대체로 정확한 요건사실이 포함되는 편이었습니다.

반면, 청구하려는 내용이 복잡해지고 항목을 늘릴수록 오히려 요청한 사항을 답변에 반복하거나, 내용을 정반대로 이해하는 등 오류를 내는 한계도 보였습니다. 시도 횟수가 많아질수록 내용이 부정확한 경우가 자주 발견돼, 문장을 이해하는 것이 맞는지 의구심이 드는 답변도 있었습니다.

결국, 변호사 없이 진행하는 소송이라면 문장을 만드는 데 어느 정도 도움을 받을 수도 있겠지만, 현 시점에서 이를 그대로 법원에 제출할 수준은 되지 못한다는 게 여러 변호사들의 평가입니다. 그대로 낼 경우 십중팔구 재판부가 서면 내용을 보충하라는 '보정명령'을 할 거란 겁니다. 작성한 내용에 오류가 있는 경우도 잦아, 최종적으로는 법률 전문가의 검수가 필요해 보입니다.

다만, 챗GPT가 2021년까지 제한적인 한국어 웹사이트만 학습했는데도 이 정도의 콘텐츠를 만들 수 있는데, 본격적으로 판결문이나 서면 데이터를 학습한다면 어느 정도까지 수준이 올라갈지 가늠하기 어렵다는 반응도 많았습니다.

■ 해외는 챗GPT 접목한 법률 상담도

법률 데이터를 많이 학습시키면 더 정확한 답변을 주지 않을까? 실제로 그런 구상이 일본에서 벌써 현실화 단계에 와 있다는 소식도 들립니다.

아사히신문에 따르면, 일본에서 가장 큰 법률상담 사이트 '모두의 법률 상담'을 운영하는 상장사 벤고시닷컴(변호사닷컴)이 이르면 4월쯤 챗GPT를 활용한 '무료' 법률 상담을 시작하기로 했습니다.

법률상담 사이트를 운영하는 일본 ‘벤고시닷컴’ 홈페이지.법률상담 사이트를 운영하는 일본 ‘벤고시닷컴’ 홈페이지.

챗GPT에 일본의 법률과 과거 판례를 학습시킨 뒤, 일반인들이 묻는 말에 답하도록 하겠단 계획입니다. 그동안 이용자가 질문을 올리면 이를 읽은 변호사가 답변을 달아주는 방식이었는데, 챗GPT를 이용해 실시간으로 답변을 달아주겠단 겁니다.

2005년 만들어진 벤고시닷컴 사이트는 일본 변호사의 절반 가량이 이용합니다. 여기 축적된 100만여 건의 법률 상담 사례를 AI에게 가르쳐 늦어도 2분기 중 신규 법률 서비스를 시작하겠단 게 이 회사의 계획입니다.

일반인들이 보다 쉽게 법률 상담을 받을 수 있으면 변호사 일거리도 늘어날 것이란 게 이 회사의 입장인데요, 과거의 데이터를 기반으로 학습한 답변인 만큼 판례가 바뀔 경우 이를 제때 반영하지 못할 수 있단 우려도 나옵니다. 또 인간이 판단해 내린 데이터를 학습하는 이상, 일정 분량의 데이터가 모이지 않는다면 편향된 결론에 다다를 수 있단 지적도 있습니다.

우리나라에서도 AI를 접목한 서비스를 준비 중인 법률 스타트업들이 몇몇 있다고 하는데요, 어떤 서비스들이 나올지 지켜봐야겠습니다.

백인성 법조전문기자·변호사

■ 제보하기
▷ 카카오톡 : 'KBS제보' 검색, 채널 추가
▷ 전화 : 02-781-1234, 4444
▷ 이메일 : kbs1234@kbs.co.kr
▷ 유튜브, 네이버, 카카오에서도 KBS뉴스를 구독해주세요!


  • ‘챗GPT’가 만든 소송서류, 법원에 내도 되나요?
    • 입력 2023-03-01 09:00:13
    취재K

어떤 종류의 질문에도 인간처럼 자연스러운 문장으로 답변해주는 오픈AI의 인공지능(AI), '챗GPT(Chat Generative Pre-trained Transformer)'가 화제입니다.

무엇이든 대답해주는 '리얼한' 인공지능이 드디어 등장했단 후한 평가도 있지만, 사실과 다른 '아무 말'을 자연스럽게 늘어놓는단 비판도 만만치 않습니다.

그렇다면 전문적인 지식이 필요한 법률 서류의 경우엔 어떨까요?

AI가 어느 정도의 문장을 쓸 수 있을지 궁금했습니다. 에세이나 리포트 작성 용도로 많이 쓰인다는 소식은 이미 들었지만, 법률적으로는 어떤 '아무 말'을 할지 호기심이 생겼습니다.

시험 삼아 "대여금 청구 소송 소장을 작성해 줘"라고 입력했습니다.


■"OOO 소장 만들어줘"…결과는?

기대치를 너무 낮게 잡아서였을까요? 결과는 생각보다 만족스러웠습니다.

변호사들이 실제 재판에 내는 소장은 △당사자(원·피고의 성명과 주소, 연락처, 소송대리인, 주민등록번호 등) △청구취지(선고해달라고 요청하는 주문의 형식) △청구이유(청구의 근거) △증거물 순으로 구성됩니다.

물론 챗GPT가 만든 내용은 이런 소장과는 양식이나 순서도 다르고, A4 한두 페이지 분량으로 내용도 간소했지만 '청구이유' 부분에 들어가야 할 내용은 놀라운 수준이었습니다.

대여금 청구소송에 들어가야 하는 요건사실(△소비대차계약 체결 △반환시기의 도래 등)이 제대로 들어가 있었기 때문입니다.

단순한 질문을 던졌는데, 형식을 다듬기만 하면 충분히 통용될 수 있는 법률적 문구들을 써 준 겁니다.

■ 손해배상·건물인도…답변 유창하게 '쓱쓱'

내친김에 여러 종류의 소장을 작성해달라고 요청해 봤습니다. 보다 구체적으로 묻기도 했습니다.

"지난달 말 임대차계약이 종료되었는데 세입자가 집을 비우지 않고 있어. (세입자에게) 다음 달 1일까지 건물을 비워달라는 건물인도청구소송 소장을 작성해 줘."


"유튜버 A 씨가 내 책의 내용을 무단으로 인용문구 없이 자신의 동영상에 내용을 인용하고 있어. 저작권을 침해를 이유로 한 손해배상 청구소송 소장을 작성해 줘. 배상액은 3,000만 원으로 하고 싶어."


여러분이 직접 보니 어떠신가요?

챗GPT에게 서면 작성을 의뢰해 본 다른 변호사들도 저랑 똑같이 혀를 내둘렀습니다. 형식이야 어떻든, 전문가의 눈으로 봐도 그럴 듯한 문장을 만들어내는 AI의 성능이 놀랍단 반응이 대부분이었습니다.

■ 요청사항 많아질수록 '어리둥절'…짧은 답변 한계도

재미있는 건, 같은 질문을 던져도 다른 방식의 답이 나올 때가 많단 점이었습니다. 현재 공개된 챗GPT 버전이 무료 버전이어서인지 조금만 답변 내용이 길어져도 중간에 잘리는 일도 잦았습니다.

또 '대여금 소송'과 같은 일반적인 소송의 경우엔 자주 쓰이는 소장 양식이 널리 공개돼 있고, 학습 대상이 많아서인지 대체로 정확한 요건사실이 포함되는 편이었습니다.

반면, 청구하려는 내용이 복잡해지고 항목을 늘릴수록 오히려 요청한 사항을 답변에 반복하거나, 내용을 정반대로 이해하는 등 오류를 내는 한계도 보였습니다. 시도 횟수가 많아질수록 내용이 부정확한 경우가 자주 발견돼, 문장을 이해하는 것이 맞는지 의구심이 드는 답변도 있었습니다.

결국, 변호사 없이 진행하는 소송이라면 문장을 만드는 데 어느 정도 도움을 받을 수도 있겠지만, 현 시점에서 이를 그대로 법원에 제출할 수준은 되지 못한다는 게 여러 변호사들의 평가입니다. 그대로 낼 경우 십중팔구 재판부가 서면 내용을 보충하라는 '보정명령'을 할 거란 겁니다. 작성한 내용에 오류가 있는 경우도 잦아, 최종적으로는 법률 전문가의 검수가 필요해 보입니다.

다만, 챗GPT가 2021년까지 제한적인 한국어 웹사이트만 학습했는데도 이 정도의 콘텐츠를 만들 수 있는데, 본격적으로 판결문이나 서면 데이터를 학습한다면 어느 정도까지 수준이 올라갈지 가늠하기 어렵다는 반응도 많았습니다.

■ 해외는 챗GPT 접목한 법률 상담도

법률 데이터를 많이 학습시키면 더 정확한 답변을 주지 않을까? 실제로 그런 구상이 일본에서 벌써 현실화 단계에 와 있다는 소식도 들립니다.

아사히신문에 따르면, 일본에서 가장 큰 법률상담 사이트 '모두의 법률 상담'을 운영하는 상장사 벤고시닷컴(변호사닷컴)이 이르면 4월쯤 챗GPT를 활용한 '무료' 법률 상담을 시작하기로 했습니다.

법률상담 사이트를 운영하는 일본 ‘벤고시닷컴’ 홈페이지.
챗GPT에 일본의 법률과 과거 판례를 학습시킨 뒤, 일반인들이 묻는 말에 답하도록 하겠단 계획입니다. 그동안 이용자가 질문을 올리면 이를 읽은 변호사가 답변을 달아주는 방식이었는데, 챗GPT를 이용해 실시간으로 답변을 달아주겠단 겁니다.

2005년 만들어진 벤고시닷컴 사이트는 일본 변호사의 절반 가량이 이용합니다. 여기 축적된 100만여 건의 법률 상담 사례를 AI에게 가르쳐 늦어도 2분기 중 신규 법률 서비스를 시작하겠단 게 이 회사의 계획입니다.

일반인들이 보다 쉽게 법률 상담을 받을 수 있으면 변호사 일거리도 늘어날 것이란 게 이 회사의 입장인데요, 과거의 데이터를 기반으로 학습한 답변인 만큼 판례가 바뀔 경우 이를 제때 반영하지 못할 수 있단 우려도 나옵니다. 또 인간이 판단해 내린 데이터를 학습하는 이상, 일정 분량의 데이터가 모이지 않는다면 편향된 결론에 다다를 수 있단 지적도 있습니다.

우리나라에서도 AI를 접목한 서비스를 준비 중인 법률 스타트업들이 몇몇 있다고 하는데요, 어떤 서비스들이 나올지 지켜봐야겠습니다.

백인성 법조전문기자·변호사

이 기사가 좋으셨다면

오늘의 핫 클릭

실시간 뜨거운 관심을 받고 있는 뉴스

이 기사에 대한 의견을 남겨주세요.

수신료 수신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