태극기에 새긴 항일…남원에 깃든 독립 정신
입력 2023.03.02 (07:33)
수정 2023.03.02 (09:0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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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앵커]
남원의 고찰 선원사에서 탱화에 선명하게 그려진 태극기가 처음 발견됐습니다.
엄혹한 통치를 딛고 불교계와 남원 민중이 지켜낸 항일 의식을 엿보게 하는데요,
남원은 3·1운동 당시 전국에서도 손꼽히는 대표 항쟁지였습니다.
안승길 기자입니다.
[리포트]
남원 도심의 천년고찰 선원사.
명부전을 지키는 지장보살 뒤 탱화 한쪽에 선명한 문양, 다름 아닌 민족의 상징 태극기입니다.
태극기를 새긴 자리는 선과 악을 심판하는 변성대왕의 머리 위, 일제의 악행을 꾸짖는 의미로도 읽힙니다.
[운문스님/남원 선원사 주지 : "우리나라 탱화에 태극기가 그려져 있는 건 전무후무합니다. 1917년 일제 암흑기에 그려졌단 건 분명하게 대한독립의 강력한 의지가 있지 않으냐…."]
이 작품의 중심에 선 이는 당시 일제 불교로의 흡수에 맞서 불교계 독립운동을 이끈 구례 화엄사 주지 진응스님.
태극기 말살책이 조선 민중을 억압하던 시기, 큰 스님 뜻을 받든 남원의 불자들은 총칼로 꺾이지 않는 용기를 내보였습니다.
[송명호/전 문화재청 근대문화재 전문위원 : "임시정부 태극기도 이런 모양이고, 3·1 운동 때 흔들었던 괘도 이 모양이고. 지장시왕도에 태극기를 그렸단 건 일본으로 봐선 도전이죠. 감옥보다 더 치열한 어려움을 극복할 각오로…."]
항일 정신이 녹아든 태극기의 흔적은 춘향 사당 곳곳에서도 남아 있습니다.
영정을 모신 제대 네 귀퉁이에 팔괘 태극기가 선명하고, 1931년 당시 사당 출입문에도 태극 문양이 그려졌습니다.
'최초 영정' 속 춘향의 붉은 저고리와 푸른 치마 역시, 엄혹하던 시절 숨겨야 했던 태극 문양을 상징합니다.
신간회 이현순 등이 시민 뜻을 모아 세운 금수정에는 봉우리 정상 일제 신사를 향한 저항의 뜻이 담겼고, 3·1운동 대표 장면 10곳을 모은 서울 탑골공원 기념 부조 한 자리엔, 남원 장날 만세 운동에 나섰다 희생된 방 씨 일가의 투쟁이 기록돼 있습니다.
이처럼 도시 곳곳에 녹아 있는 올곧은 항일 정신.
남원은 3·1운동 당시 전국에서 6번째로 많은 민중들이 만세 운동에 나선 대표 독립 항쟁지입니다.
[윤영근/남원항일운동사 저자 : "다른 데는 중앙으로부터 하향식이에요. 천도교를 통했다든지, 기독교를 통했다든지 이런 하향식의 운동을 했는데, 남원은 그렇지 않고. 면장이 주축이 돼 암암리에 일어났던 순수한 지방 농민 봉기라고…."]
백 네 번째 삼일절을 맞아 되새긴 조상들의 항일 정신, 우리 후손들이 갈 길을 되묻습니다.
KBS 뉴스 안승길입니다.
촬영기자:한문현
남원의 고찰 선원사에서 탱화에 선명하게 그려진 태극기가 처음 발견됐습니다.
엄혹한 통치를 딛고 불교계와 남원 민중이 지켜낸 항일 의식을 엿보게 하는데요,
남원은 3·1운동 당시 전국에서도 손꼽히는 대표 항쟁지였습니다.
안승길 기자입니다.
[리포트]
남원 도심의 천년고찰 선원사.
명부전을 지키는 지장보살 뒤 탱화 한쪽에 선명한 문양, 다름 아닌 민족의 상징 태극기입니다.
태극기를 새긴 자리는 선과 악을 심판하는 변성대왕의 머리 위, 일제의 악행을 꾸짖는 의미로도 읽힙니다.
[운문스님/남원 선원사 주지 : "우리나라 탱화에 태극기가 그려져 있는 건 전무후무합니다. 1917년 일제 암흑기에 그려졌단 건 분명하게 대한독립의 강력한 의지가 있지 않으냐…."]
이 작품의 중심에 선 이는 당시 일제 불교로의 흡수에 맞서 불교계 독립운동을 이끈 구례 화엄사 주지 진응스님.
태극기 말살책이 조선 민중을 억압하던 시기, 큰 스님 뜻을 받든 남원의 불자들은 총칼로 꺾이지 않는 용기를 내보였습니다.
[송명호/전 문화재청 근대문화재 전문위원 : "임시정부 태극기도 이런 모양이고, 3·1 운동 때 흔들었던 괘도 이 모양이고. 지장시왕도에 태극기를 그렸단 건 일본으로 봐선 도전이죠. 감옥보다 더 치열한 어려움을 극복할 각오로…."]
항일 정신이 녹아든 태극기의 흔적은 춘향 사당 곳곳에서도 남아 있습니다.
영정을 모신 제대 네 귀퉁이에 팔괘 태극기가 선명하고, 1931년 당시 사당 출입문에도 태극 문양이 그려졌습니다.
'최초 영정' 속 춘향의 붉은 저고리와 푸른 치마 역시, 엄혹하던 시절 숨겨야 했던 태극 문양을 상징합니다.
신간회 이현순 등이 시민 뜻을 모아 세운 금수정에는 봉우리 정상 일제 신사를 향한 저항의 뜻이 담겼고, 3·1운동 대표 장면 10곳을 모은 서울 탑골공원 기념 부조 한 자리엔, 남원 장날 만세 운동에 나섰다 희생된 방 씨 일가의 투쟁이 기록돼 있습니다.
이처럼 도시 곳곳에 녹아 있는 올곧은 항일 정신.
남원은 3·1운동 당시 전국에서 6번째로 많은 민중들이 만세 운동에 나선 대표 독립 항쟁지입니다.
[윤영근/남원항일운동사 저자 : "다른 데는 중앙으로부터 하향식이에요. 천도교를 통했다든지, 기독교를 통했다든지 이런 하향식의 운동을 했는데, 남원은 그렇지 않고. 면장이 주축이 돼 암암리에 일어났던 순수한 지방 농민 봉기라고…."]
백 네 번째 삼일절을 맞아 되새긴 조상들의 항일 정신, 우리 후손들이 갈 길을 되묻습니다.
KBS 뉴스 안승길입니다.
촬영기자:한문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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남원의 고찰 선원사에서 탱화에 선명하게 그려진 태극기가 처음 발견됐습니다.
엄혹한 통치를 딛고 불교계와 남원 민중이 지켜낸 항일 의식을 엿보게 하는데요,
남원은 3·1운동 당시 전국에서도 손꼽히는 대표 항쟁지였습니다.
안승길 기자입니다.
[리포트]
남원 도심의 천년고찰 선원사.
명부전을 지키는 지장보살 뒤 탱화 한쪽에 선명한 문양, 다름 아닌 민족의 상징 태극기입니다.
태극기를 새긴 자리는 선과 악을 심판하는 변성대왕의 머리 위, 일제의 악행을 꾸짖는 의미로도 읽힙니다.
[운문스님/남원 선원사 주지 : "우리나라 탱화에 태극기가 그려져 있는 건 전무후무합니다. 1917년 일제 암흑기에 그려졌단 건 분명하게 대한독립의 강력한 의지가 있지 않으냐…."]
이 작품의 중심에 선 이는 당시 일제 불교로의 흡수에 맞서 불교계 독립운동을 이끈 구례 화엄사 주지 진응스님.
태극기 말살책이 조선 민중을 억압하던 시기, 큰 스님 뜻을 받든 남원의 불자들은 총칼로 꺾이지 않는 용기를 내보였습니다.
[송명호/전 문화재청 근대문화재 전문위원 : "임시정부 태극기도 이런 모양이고, 3·1 운동 때 흔들었던 괘도 이 모양이고. 지장시왕도에 태극기를 그렸단 건 일본으로 봐선 도전이죠. 감옥보다 더 치열한 어려움을 극복할 각오로…."]
항일 정신이 녹아든 태극기의 흔적은 춘향 사당 곳곳에서도 남아 있습니다.
영정을 모신 제대 네 귀퉁이에 팔괘 태극기가 선명하고, 1931년 당시 사당 출입문에도 태극 문양이 그려졌습니다.
'최초 영정' 속 춘향의 붉은 저고리와 푸른 치마 역시, 엄혹하던 시절 숨겨야 했던 태극 문양을 상징합니다.
신간회 이현순 등이 시민 뜻을 모아 세운 금수정에는 봉우리 정상 일제 신사를 향한 저항의 뜻이 담겼고, 3·1운동 대표 장면 10곳을 모은 서울 탑골공원 기념 부조 한 자리엔, 남원 장날 만세 운동에 나섰다 희생된 방 씨 일가의 투쟁이 기록돼 있습니다.
이처럼 도시 곳곳에 녹아 있는 올곧은 항일 정신.
남원은 3·1운동 당시 전국에서 6번째로 많은 민중들이 만세 운동에 나선 대표 독립 항쟁지입니다.
[윤영근/남원항일운동사 저자 : "다른 데는 중앙으로부터 하향식이에요. 천도교를 통했다든지, 기독교를 통했다든지 이런 하향식의 운동을 했는데, 남원은 그렇지 않고. 면장이 주축이 돼 암암리에 일어났던 순수한 지방 농민 봉기라고…."]
백 네 번째 삼일절을 맞아 되새긴 조상들의 항일 정신, 우리 후손들이 갈 길을 되묻습니다.
KBS 뉴스 안승길입니다.
촬영기자:한문현
남원의 고찰 선원사에서 탱화에 선명하게 그려진 태극기가 처음 발견됐습니다.
엄혹한 통치를 딛고 불교계와 남원 민중이 지켜낸 항일 의식을 엿보게 하는데요,
남원은 3·1운동 당시 전국에서도 손꼽히는 대표 항쟁지였습니다.
안승길 기자입니다.
[리포트]
남원 도심의 천년고찰 선원사.
명부전을 지키는 지장보살 뒤 탱화 한쪽에 선명한 문양, 다름 아닌 민족의 상징 태극기입니다.
태극기를 새긴 자리는 선과 악을 심판하는 변성대왕의 머리 위, 일제의 악행을 꾸짖는 의미로도 읽힙니다.
[운문스님/남원 선원사 주지 : "우리나라 탱화에 태극기가 그려져 있는 건 전무후무합니다. 1917년 일제 암흑기에 그려졌단 건 분명하게 대한독립의 강력한 의지가 있지 않으냐…."]
이 작품의 중심에 선 이는 당시 일제 불교로의 흡수에 맞서 불교계 독립운동을 이끈 구례 화엄사 주지 진응스님.
태극기 말살책이 조선 민중을 억압하던 시기, 큰 스님 뜻을 받든 남원의 불자들은 총칼로 꺾이지 않는 용기를 내보였습니다.
[송명호/전 문화재청 근대문화재 전문위원 : "임시정부 태극기도 이런 모양이고, 3·1 운동 때 흔들었던 괘도 이 모양이고. 지장시왕도에 태극기를 그렸단 건 일본으로 봐선 도전이죠. 감옥보다 더 치열한 어려움을 극복할 각오로…."]
항일 정신이 녹아든 태극기의 흔적은 춘향 사당 곳곳에서도 남아 있습니다.
영정을 모신 제대 네 귀퉁이에 팔괘 태극기가 선명하고, 1931년 당시 사당 출입문에도 태극 문양이 그려졌습니다.
'최초 영정' 속 춘향의 붉은 저고리와 푸른 치마 역시, 엄혹하던 시절 숨겨야 했던 태극 문양을 상징합니다.
신간회 이현순 등이 시민 뜻을 모아 세운 금수정에는 봉우리 정상 일제 신사를 향한 저항의 뜻이 담겼고, 3·1운동 대표 장면 10곳을 모은 서울 탑골공원 기념 부조 한 자리엔, 남원 장날 만세 운동에 나섰다 희생된 방 씨 일가의 투쟁이 기록돼 있습니다.
이처럼 도시 곳곳에 녹아 있는 올곧은 항일 정신.
남원은 3·1운동 당시 전국에서 6번째로 많은 민중들이 만세 운동에 나선 대표 독립 항쟁지입니다.
[윤영근/남원항일운동사 저자 : "다른 데는 중앙으로부터 하향식이에요. 천도교를 통했다든지, 기독교를 통했다든지 이런 하향식의 운동을 했는데, 남원은 그렇지 않고. 면장이 주축이 돼 암암리에 일어났던 순수한 지방 농민 봉기라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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