북, 알맹이 없는 농사 대책…식량난 지속되나

입력 2023.03.02 (15:48) 수정 2023.03.02 (16:1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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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관계기관 간 북한 식량 사정 평가를 긴밀히 공유하고 있으며, 일부 지역에서 아사자가 속출하는 등 식량난이 심각한 것으로 보고 있습니다." - 통일부 대변인 (지난달 20일) -

'북한 내 아사자 속출' 정부 발표가 나온 뒤인 지난달 26일부터 어제까지 나흘간 북한은 노동당 중앙위 제8기 제7차 전원회의 확대회의를 열어 농사 문제를 중점 논의했습니다. 북한의 주요 정책 결정 기구로 통상 1년에 한두 번 열린 전원회의가 지난해 말 이후 두 달 만에 '농사 문제'를 주 안건으로 다시 열려 그만큼 식량난이 심각한 것이란 관측이 제기됐습니다.

회의 결과에 이목이 쏠렸는데요. 하지만 어제 폐막까지 연일 회의 소식을 전한 북한 매체 보도 어디에도 주민들을 먹여 살릴 구체적 방법은 제시되지 않았습니다.

■ 김정은 "알곡 고지 점령" 호소…방법은 있나?

북한 매체는 지난달 28일, 2일 차 회의(27일 진행) 상황을 전하며 "가까운 몇 해 안에 농업 생산에서 근본적 변혁을 일으키자"는 김정은 국무위원장의 발언을 소개했습니다. 그래서 회의 마지막 날 채택됐을 결정서에 어떤 내용이 담겼을지 주목됐는데요. 마지막 차 회의까지 총정리한 오늘 북한 매체 보도를 본 전문가들은 '알맹이가 없다'는 반응을 보였습니다.

조선중앙통신은 오늘도 "올해 알곡 고지를 기어이 점령하자" 등의 김 위원장 발언을 주로 전했습니다. 회의를 통해 도출된 '방안'이라고는 ▲관개공사 강력 추진 ▲'새롭고 능률 높은' 농기계 보급 ▲간석지 개간과 경지 면적 확대, 이 세 가지를 소개한 게 전부입니다. 임을출 경남대 극동문제연구소 교수는 세 방안 역시 "이미 제시된 내용"이라고 지적했습니다. 통일부도 "식량 증산과 관련해서 특별히 새로운 내용이 없고, 기존 과제를 반복했다"고 평가했습니다.

통신은 또 "농업 생산량을 늘리기 위해 농사지도에서 편파성을 극복하고 전반을 책임지는 균형성을 보장하는 데 주목하며 모든 농장에서 수확량을 높이도록 하는데 중심을 두고 투쟁하는 것이 중요한 농업생산 지도 원칙이 돼야 한다"고 강조했습니다. 통일부 당국자는 "농촌 지도기관의 역할을 강조한 점이 특징으로 보인다"고 말했는데, 결국 일선 현장으로 공이 돌아갔을 수 있다는 관측이 나옵니다. 홍민 통일연구원 북한연구실장은 "농업 발전 계획에 내적인 문제가 있었던 부분을 집중 평가한 것 같다"고 했고, 양무진 북한대학원 대학교 교수는 "실적 점검 등이 강화될 것으로 관측되며, 실적 미도달 시 처벌 등이 예상된다"고 분석했습니다.

북한 노동당 중앙위원회 제8기 제7차 전원회의 확대회의 (출처 : 조선중앙통신)북한 노동당 중앙위원회 제8기 제7차 전원회의 확대회의 (출처 : 조선중앙통신)

■ '제재·봉쇄'가 원인인데…통제 강화 지속

북한은 2021년 말 노동당 중앙위 8기 4차 전원회의에서 이른바 '새 시대 농촌혁명 강령'을 내놨습니다. 그러면서 "(김 위원장이) 농촌 진흥의 웅대한 목표를 달성하기 위한 중장기적인 발전 전략과 중심 과업, 구체적인 실행 방도들을 제시했다"고 선전했습니다. 하지만 이후 북한의 식량 사정은 오히려 더 악화됐습니다.

전문가들은 북한의 핵 개발과 무력 과시가 국제사회의 제재 강화로 이어지는 악순환 구조가 북한 식량난의 근본적인 원인이라며, 북한이 핵 개발 등을 포기하지 않는 한 뾰족한 수를 찾기가 어렵다고 지적합니다. 정부가 북한을 향해 지속적으로 '몇 년 치' 주민들의 식량 값으로 미사일을 쐈다는 비판을 해온 것도 같은 맥락입니다. 마키노 요시히로 일본 히로시마 대학교 교수(아사히신문 외교전문기자)는 자유아시아방송(RFA)에 "북한이 군이나 고위 당 간부의 생활을 우선시하면서 농업에 대한 충분한 투자를 안 해왔기 때문에 이번 사태(식량난)가 생겼다"면서 "이러한 회의를 백 번, 천 번 열어도 문제를 해결하지 못한다"고 진단했습니다.

코로나 19 이후 강화된 북한의 폐쇄성도 식량난 악화의 주 원인으로 거론됩니다. 마키노 교수는 "2019년 이후 북·중 국경지대가 봉쇄돼 양국 간 밀무역도 많이 줄었다"며 "코로나로 인한 물류 제한 때문에 시골 지역에서 아사자가 나오는 것 같다"고 말했습니다. 중국과의 밀무역은 북한 주민들의 주요 돈벌이 수단 중 하나였습니다.

정부와 전문가들은 북한이 이번 회의에서 양곡 정책을 손보지 않은 점에도 주목하고 있는데요. 국경봉쇄가 장기화되자 북한 당국은 장마당에서 양곡 판매를 금지하고, 국가의 식량 수매 비율을 높였다고 알려져 있습니다. 결국, 식량의 사적 유통을 통제하고 국가 장악력을 높인 정책이 식량난을 더 악화시킨 셈이 됐습니다. 양무진 교수는 "현재의 식량난을 초래한 양곡 정책에 대한 별도 언급이 없었다"며 "북한이 통제 위주의 공급 정책을 지속할 거로 관측된다"고 밝혔습니다.

북한은 최근 해외원조마저 '독약 발린 사탕'에 비유하며 받지 않고 있습니다. 대신 '자력갱생'과 '제국주의 타도'를 외치며 책임을 외부로 돌리고 있는데요. 전문가들은 개방을 거부하고 체제 보위를 위해 통제만 고집하는 방식으로는 획기적인 식량 증산이 어려울 거라고 입을 모읍니다. 먹고사는 문제를 해결하자는 노동신문 사설을 보면 '정신 무장', '신념' 같은 구호 일색입니다. 본질적인 원인을 등한시한채 열린 이번 전원회의는 악화한 민심 달래기에 불과한 선전용이라는 혹평도 나옵니다.

지난달 22일자 노동신문. 해외원조를 받는 것은 ‘독약 발린 사탕’을 먹는 것과 같다며 철저한 자립경제 건설을 주문했다.지난달 22일자 노동신문. 해외원조를 받는 것은 ‘독약 발린 사탕’을 먹는 것과 같다며 철저한 자립경제 건설을 주문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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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입력 2023-03-02 15:48:19
    • 수정2023-03-02 16:16:56
    취재K


"관계기관 간 북한 식량 사정 평가를 긴밀히 공유하고 있으며, 일부 지역에서 아사자가 속출하는 등 식량난이 심각한 것으로 보고 있습니다." - 통일부 대변인 (지난달 20일) -

'북한 내 아사자 속출' 정부 발표가 나온 뒤인 지난달 26일부터 어제까지 나흘간 북한은 노동당 중앙위 제8기 제7차 전원회의 확대회의를 열어 농사 문제를 중점 논의했습니다. 북한의 주요 정책 결정 기구로 통상 1년에 한두 번 열린 전원회의가 지난해 말 이후 두 달 만에 '농사 문제'를 주 안건으로 다시 열려 그만큼 식량난이 심각한 것이란 관측이 제기됐습니다.

회의 결과에 이목이 쏠렸는데요. 하지만 어제 폐막까지 연일 회의 소식을 전한 북한 매체 보도 어디에도 주민들을 먹여 살릴 구체적 방법은 제시되지 않았습니다.

■ 김정은 "알곡 고지 점령" 호소…방법은 있나?

북한 매체는 지난달 28일, 2일 차 회의(27일 진행) 상황을 전하며 "가까운 몇 해 안에 농업 생산에서 근본적 변혁을 일으키자"는 김정은 국무위원장의 발언을 소개했습니다. 그래서 회의 마지막 날 채택됐을 결정서에 어떤 내용이 담겼을지 주목됐는데요. 마지막 차 회의까지 총정리한 오늘 북한 매체 보도를 본 전문가들은 '알맹이가 없다'는 반응을 보였습니다.

조선중앙통신은 오늘도 "올해 알곡 고지를 기어이 점령하자" 등의 김 위원장 발언을 주로 전했습니다. 회의를 통해 도출된 '방안'이라고는 ▲관개공사 강력 추진 ▲'새롭고 능률 높은' 농기계 보급 ▲간석지 개간과 경지 면적 확대, 이 세 가지를 소개한 게 전부입니다. 임을출 경남대 극동문제연구소 교수는 세 방안 역시 "이미 제시된 내용"이라고 지적했습니다. 통일부도 "식량 증산과 관련해서 특별히 새로운 내용이 없고, 기존 과제를 반복했다"고 평가했습니다.

통신은 또 "농업 생산량을 늘리기 위해 농사지도에서 편파성을 극복하고 전반을 책임지는 균형성을 보장하는 데 주목하며 모든 농장에서 수확량을 높이도록 하는데 중심을 두고 투쟁하는 것이 중요한 농업생산 지도 원칙이 돼야 한다"고 강조했습니다. 통일부 당국자는 "농촌 지도기관의 역할을 강조한 점이 특징으로 보인다"고 말했는데, 결국 일선 현장으로 공이 돌아갔을 수 있다는 관측이 나옵니다. 홍민 통일연구원 북한연구실장은 "농업 발전 계획에 내적인 문제가 있었던 부분을 집중 평가한 것 같다"고 했고, 양무진 북한대학원 대학교 교수는 "실적 점검 등이 강화될 것으로 관측되며, 실적 미도달 시 처벌 등이 예상된다"고 분석했습니다.

북한 노동당 중앙위원회 제8기 제7차 전원회의 확대회의 (출처 : 조선중앙통신)
■ '제재·봉쇄'가 원인인데…통제 강화 지속

북한은 2021년 말 노동당 중앙위 8기 4차 전원회의에서 이른바 '새 시대 농촌혁명 강령'을 내놨습니다. 그러면서 "(김 위원장이) 농촌 진흥의 웅대한 목표를 달성하기 위한 중장기적인 발전 전략과 중심 과업, 구체적인 실행 방도들을 제시했다"고 선전했습니다. 하지만 이후 북한의 식량 사정은 오히려 더 악화됐습니다.

전문가들은 북한의 핵 개발과 무력 과시가 국제사회의 제재 강화로 이어지는 악순환 구조가 북한 식량난의 근본적인 원인이라며, 북한이 핵 개발 등을 포기하지 않는 한 뾰족한 수를 찾기가 어렵다고 지적합니다. 정부가 북한을 향해 지속적으로 '몇 년 치' 주민들의 식량 값으로 미사일을 쐈다는 비판을 해온 것도 같은 맥락입니다. 마키노 요시히로 일본 히로시마 대학교 교수(아사히신문 외교전문기자)는 자유아시아방송(RFA)에 "북한이 군이나 고위 당 간부의 생활을 우선시하면서 농업에 대한 충분한 투자를 안 해왔기 때문에 이번 사태(식량난)가 생겼다"면서 "이러한 회의를 백 번, 천 번 열어도 문제를 해결하지 못한다"고 진단했습니다.

코로나 19 이후 강화된 북한의 폐쇄성도 식량난 악화의 주 원인으로 거론됩니다. 마키노 교수는 "2019년 이후 북·중 국경지대가 봉쇄돼 양국 간 밀무역도 많이 줄었다"며 "코로나로 인한 물류 제한 때문에 시골 지역에서 아사자가 나오는 것 같다"고 말했습니다. 중국과의 밀무역은 북한 주민들의 주요 돈벌이 수단 중 하나였습니다.

정부와 전문가들은 북한이 이번 회의에서 양곡 정책을 손보지 않은 점에도 주목하고 있는데요. 국경봉쇄가 장기화되자 북한 당국은 장마당에서 양곡 판매를 금지하고, 국가의 식량 수매 비율을 높였다고 알려져 있습니다. 결국, 식량의 사적 유통을 통제하고 국가 장악력을 높인 정책이 식량난을 더 악화시킨 셈이 됐습니다. 양무진 교수는 "현재의 식량난을 초래한 양곡 정책에 대한 별도 언급이 없었다"며 "북한이 통제 위주의 공급 정책을 지속할 거로 관측된다"고 밝혔습니다.

북한은 최근 해외원조마저 '독약 발린 사탕'에 비유하며 받지 않고 있습니다. 대신 '자력갱생'과 '제국주의 타도'를 외치며 책임을 외부로 돌리고 있는데요. 전문가들은 개방을 거부하고 체제 보위를 위해 통제만 고집하는 방식으로는 획기적인 식량 증산이 어려울 거라고 입을 모읍니다. 먹고사는 문제를 해결하자는 노동신문 사설을 보면 '정신 무장', '신념' 같은 구호 일색입니다. 본질적인 원인을 등한시한채 열린 이번 전원회의는 악화한 민심 달래기에 불과한 선전용이라는 혹평도 나옵니다.

지난달 22일자 노동신문. 해외원조를 받는 것은 ‘독약 발린 사탕’을 먹는 것과 같다며 철저한 자립경제 건설을 주문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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