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영상채록 5·18] ‘아아 광주여, 우리나라의 십자가여!’ 5·18 시인 김준태

입력 2023.03.03 (07:01) 수정 2023.03.17 (15:5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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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980년 6월 2일 전남매일 1면에 실린 김준태 시인의 시 ‘아아 광주여, 우리나라의 십자가여!’1980년 6월 2일 전남매일 1면에 실린 김준태 시인의 시 ‘아아 광주여, 우리나라의 십자가여!’

5·18민주화운동이 신군부의 진압으로 막을 내리고 불과 일주일이 채 안 된 1980년 6월 2일, 일간지 1면에 실린 시 한 편이 보안당국을 발칵 뒤집어 놓았습니다. 보도 통제 속에서 '광주 폭동'으로 불렸던 5·18의 진상을 알린 최초의 시라 할 수 있는 김준태의 '아아, 광주여! 우리나라의 십자가여!'가 일간지 1면에 버젓이 실려 10만 부가 전국으로 퍼져나갔던 겁니다. 서슬 퍼런 검열이 존재하던 시절 어떻게 가능했던 걸까요? 1980년 당시 전남고 교사였던 김준태 시인을 KBS 광주 <영상채록5·18> 취재진이 만났습니다.

■광주의 부활을 알린 시 한 편
자신의 시가 실린 신문 전시물 앞에서 인터뷰 중인 김준태 시인자신의 시가 실린 신문 전시물 앞에서 인터뷰 중인 김준태 시인

죽음과 죽음 사이에 피눈물 흘리는 우리들의 영원한 청춘의 도시여
우리들의 아버지는 어디로 갔나 우리들의 어머니는 어디서 쓰러졌나
우리들의 아들은 어디에서 죽어서 어디에 파묻혔나
우리들의 귀여운 딸은 또 어디에서 입을 벌린 채 누워 있나
우리들의 혼백은 또 어디에서 찢어져 산산이 조각나버렸나
…중략…
아아, 살아남은 사람들은
모두가 죄인처럼 고개를 숙이고 있구나
살아남은 사람들은 모두가
넋을 잃고, 밥그릇조차 대하기
어렵구나 무섭구나
무서워서 어쩌지도 못하는구나
…후략…

김준태 시 '아아 광주여, 우리나라의 십자가여!' 가운데

"아아 광주여, 우리나라의 십자가여! 이건 제가 쓴 시가 아닙니다. 저는 단지 손으로 썼고요. 오월 영령과 광주 시민들의 염원이 썼던 시라고 저는 생각합니다."

김준태 시인이 쓴 시는 1980년 당시 전남매일 1면에 말 그대로 대문짝만하게 실렸습니다. 시민들의 민주화 시위와 저항의 정당성을 알리고 계엄군의 잔인한 진압을 적나라하게 꼬집는 장문의 시가 검열 전 원본 그대로 국민들에게 전달된 겁니다. 당시 10만 부가 뿌려진 것으로 알려졌습니다.

'김준태 선생, 오늘 19일 만에 우리 신문이 나오게 됐네. 이제 우리가 무참하게 진압된 상태에서 신문을 내려고 하는데 광주의 진실을 밝힐 수가 없네. 쓸 수가 없네. 자네 시로 1면을 채워줘야겠네.'
-1980년 당시 전남매일(광주일보 전신) 문순태 편집부국장이 김준태 시인에게 요청한 내용

김준태 시인은 소설가 문순태(당시 전남매일 편집부국장)씨로부터 5·18을 시로 써달라는 부탁을 받고 130줄 넘는 걸 한 시간도 안 돼 썼다고 말합니다. 문순태 부국장의 요청도 한 시간 내로 시를 써오라는 것이었다고 하는데요. 다 쓴 시를 직접 들고 자전거를 타고 신문사에 가서 전달했다고 합니다.

당시 신군부의 지휘를 받는 검열관들은 김준태 시인이 쓴 시로 편집한 1면을 빨간펜으로 난도질했습니다. 내용이 거의 없는 죽은 문장으로 점철된 시만 남은 겁니다. 하지만 당시 신문사에서는 검열 전 원본으로 인쇄해 전국에 배포했습니다.

"10만 부를 찍었대요. 평상시에는 만 부 정도 찍었는데. 그래서 전국으로 뿌린 거예요. 두루마리 해가지고 보자기로 싸서 서울, 부산, 대구, 인천 전국으로 다 보낸 거예요. 그 때 서울에 와 있었던 하버드대 영문과 교수 데이비드 맥캔이 번역해서 AP, UPI, 로이터 심지어 중국 신화통신, 소련의 타스통신까지 다 보내버렸어요. "

'김준태 선생 여기 있으면 큰일 나겠습니다. 빨리 도망가세요.'

"이런 말을 하더래요. '요놈 죽여야겠다'고. 연고지가 아닌 곳으로 도망 다녔죠. 25일을 도망치다가 너무 애들이 보고 싶어서 이제 전남고등학교를 먼저 갔어요. 학생들이 난리예요. 어디 계셨었냐고. 애들한테 이별하고 신안동 집에 갔더니 5분도 안 돼서 잡혔죠. 화정동에 있는 505보안대로 끌려갔죠."

이 일로 김준태 시인은 보안대에 끌려가 고초를 겪었고 독일어 등을 가르쳤던 교단에서도 떠나야 했습니다. 시 원고를 요청하고 신문 1면에 실었던 문순태 소설가도 신문사에서 쫓겨났습니다.

■ 잊지 못할 '항쟁의 기억'
김준태 시인은 만 21살인 1969년 '참깨를 털면서'로 신춘문예에 등단해 일찍이 문학성을 인정받았습니다. 이후 문학 활동을 하면서 중고등학교에서 영어와 독일어 등을 가르치는 교사 생활을 하다 전남고 재직 시절 5·18을 마주하게 됐습니다.

'선생님 죄송합니다. 저희들은 시험을 응할 수가 없습니다. 이 상황이 끝나고 나서 중간고사에 임하겠습니다. 모두가 다치고 죽어가는 이 세상에 우리는 시험을 보기 위해서 여기에 앉아 있을 수 없습니다.'
-김준태 시인이 재직하던 전남고 학생이 시험지에 쓴 내용

"5월 19일이 중간고사 기간이었거든요. 제가 시험지를 나눠주니까 시험지에다가요. 지금도 기억납니다. 애들이 '선생님 죄송합니다. 저희는 주저앉아 있을 수는 없습니다.'라면서 잠가놓은 교문을 뚫고 담을 넘어서 금남로로 가버렸어요. 선생님들이 난리가 났죠. 결국, 아이들을 보호하는 차원에서라도 도청 앞으로 가자고 해서 교사들도 금남로로 갔습니다."

김준태 시인은 5월 21일 도청 앞 집단 발포를 직접 목격하고는 충격에 빠졌습니다. 눈 앞에서 총에 맞고 쓰러지는 청년을 지켜봐야 했습니다.

"5월 21일 날 가톨릭센터 바로 이 앞에 제가 서 있었습니다. 약 20만 명이 꽉 차서 노래를 부르는 거예요. 1시를 기해서 난데없이 엄청나게 애국가가 울려 퍼지더라고요. 동시에 계엄군이 진입한 도청 쪽에서 총소리가 울려 퍼지기 시작했어요. 완전 전쟁터였습니다. 나보다 몸이 엄청 좋은 젊은이가 가슴에 정통으로 총알이 박힌 걸 봤어요. 지혈하고 싶으니까 보듬고 가까운 산부인과로 갔었습니다. 얼마나 급하면 그 젊은이를 끌고 산부인과로 떠밀고 들어갔겠어요. 살려낼 수가 없었습니다."

■'이렇게 죽는 거예요, 여보!'

5·18 때 숨진 전남고 교사 부인의 묘비(김준태 시인의 시에서 인용한 묘비문)5·18 때 숨진 전남고 교사 부인의 묘비(김준태 시인의 시에서 인용한 묘비문)

5월 21일 그날, 김 시인의 전남고 동료 교사의 부인도 계엄군의 총탄을 맞고 숨졌습니다. 계엄군이 주둔했던 전남대 인근에 살았던 김모 교사의 부인이 길가에 나와 남편을 기다리다 총을 맞고 사망한 겁니다.

"그때는 조문도 가기 힘들었습니다. 너무나 무섭고 공포스러웠으니까. 총소리가 전남대 앞에 난무하고 있었으니까. 조문을 갔는데 동료 교사의 첫째 놈 세 살짜리가 이제 놀고 있더라고요. 엄마가 죽었는지도 모르죠. 근데 뱃속 아기는 임신 8개월째에 죽은 거예요. 그런데 장모 이야기를 들었는데, 바로 대문 앞에서 남편을 기다리다 죽었다고."

동료 교사 부인의 죽음은 '아아 광주여, 우리나라의 십자가여!' 시의 중요한 모티브가 되기도 했습니다. 묘비에도 시 내용이 인용됐습니다.

여보, 당신을 기다리다가
문밖에 나아가 당신을 기다리다가
나는 죽었어요 ......
왜 나의 목숨을 빼앗아 갔을까요
아니 당신의 전부를 빼앗아 갔을까요
셋방살이 신세였지만
얼마나 우리는 행복했어요
난 당신에게 잘 해 주고 싶었어요
아 아, 여보!
그런데 나는 당신의 아이를 밴 몸으로
이렇게 죽는 거예요, 여보!
미안해요, 여보!
- 김준태 시 '아아 광주여, 우리나라의 십자가여!' 가운데

■ '광주·무등산 우리들의 영원한 깃발'

국립5·18민주묘지 내 시비 「아아 광주여, 우리나라의 십자가여!」국립5·18민주묘지 내 시비 「아아 광주여, 우리나라의 십자가여!」

광주여, 무등산이여
아아, 우리들의 영원한 깃발이여
꿈이여 십자가여
세월이 흐르면 흐를수록
더욱 젊어져 가는 청춘의 도시여
지금 우리들은 확실히
굳게 뭉쳐 있다 확실히
굳게 손잡고 일어선다
- 김준태 시 '아아 광주여, 우리나라의 십자가여!' 가운데

"5·18은 생명의 존중, 평화의 존중, 그 다음에 모두가 하나 되는 공동체였다. 오월 정신은 같이 살아야 나도 산다, 남들이 죽으면 나도 죽는다는 것을 가르쳐주고 싶은 게 오월이었거든요. 그 정신으로 지금까지 쓰다 보니까 시집을 스물 세 번 냈는데. 천여 편의 광주의 노래가 들어 있더라고요. 결국, 광주에 바치는 시. 그것이 바로 광주의 정신이라고 생각했습니다."

"5·18은 과거가 아닙니다. 5·18은 현재이면서 미래예요. 5·18은 죽음이 아니에요. 5·18은 생명입니다. 이 생명을 우리는 절대로 더럽혀서는 안 됩니다. 왜곡해서는 안 됩니다. 폄하시켜서는 안 됩니다."

김준태 시인은 5·18이 계엄군에게 참담하게 짓밟힌 이후 문학 활동 중단까지 생각했지만 '아아 광주여, 우리나라의 십자가여!'를 쓰고 나서 '오월의 시인'이 됐습니다. 지금까지 '오월'과 '광주'에 대한 천 편 넘는 시를 썼습니다. 영어와 일어, 독일어 등 수많은 외국어로도 시집을 펴내며 여전히 '오월 정신'을 세계에 알리고 있습니다.

43년 전 5·18의 진상을 알린 김준태 시인의 '아아 광주여, 우리나라의 십자가여' 전문을 소개합니다. 김준태 시인의 감수를 거쳐 최대한 당시 원문 그대로 싣습니다.

아아 광주여, 우리나라의 십자가여!
- 김 준 태 -

아아 광주여, 무등산이여
죽음과 죽음 사이에
피눈물 흘리는
우리들의 영원한 청춘의 도시여

우리들의 아버지는 어디로 갔나
우리들의 어머니는 어디서 쓰러졌나
우리들의 아들은
어디에서 죽어서 어디에 파묻혔나
우리들의 귀여운 딸은
또 어디에서 입을 벌린 채 누워 있나
우리들의 혼백은 또 어디에서
찢어져 산산이 조각나버렸나

하느님도 새떼들도
떠나가버린 광주여
그러나 사람다운 사람들만이
아침 저녁으로 살아남아
쓰러지고, 엎어지고 다시 일어서는
우리들의 피투성이 도시여
죽음으로써 죽음을 물리치고
죽음으로써 삶을 찾으려 했던
아아, 통곡뿐인 남도의
불사조여, 불사조여, 不死鳥여

해와 달이 곤두박질치고
이 시대의 모든 산맥들이
엉터리로 우뚝 솟아있을 때
그러나 그 누구도 찢을 수 없고
빼앗을 수 없는
아아, 자유의 깃발이여
인간의 깃발이여
살과 뼈로 응어리진 깃발이여

아아, 우리들의 도시
우리들의 노래와 꿈과 사랑이
때로는 파도처럼 밀리고
때로는 무덤만 뒤집어쓸지언정
아아, 광주여 광주여
이 나라의 십자가를 짊어지고
무등산을 넘어
골고다 언덕을 넘어가는
아 아, 온몸에 상처뿐인
죽음뿐인 하느님의 아들이여

정말 우리는 죽어버렸나
더 이상 나라를 사랑할 수 없이
더 이상 우리들의 아이들을 사랑할 수 없이
죽어버렸나
정말 우리들은 아주 죽어버렸나

충장로에서 금남로에서
화정동에서 산수동에서 용봉동에서
지원동에서 양동에서 계림동에서
그리고 그리고 그리고 ......
아아, 우리들의 피와 살덩이를
삼키고 불어오는 바람이여
속절없는 세월의 흐름이여

아아, 살아남은 사람들은
모두가 죄인처럼 고개를 숙이고 있구나
살아남은 사람들은 모두가
넋을 잃고, 밥그릇조차 대하기
어렵구나 무섭구나
무서워서 어쩌지도 못하는구나

(여보, 당신을 기다리다가
문밖에 나아가 당신을 기다리다가
나는 죽었어요 ......그들은
왜 나의 목숨을 빼앗아 갔을까요
아니 당신의 전부를 빼앗아 갔을까요
셋방살이 신세였지만
얼마나 우리는 행복했어요
난 당신에게 잘 해 주고 싶었어요
아아, 여보!
그런데 나는 당신의 아이를 밴 몸으로
이렇게 죽는 거예요, 여보!
미안해요, 여보!
나에게서 나의 목숨을 빼앗아 가고
나는 또 당신의 전부를
당신의 젊음 당신의 사랑
당신의 아들 당신의
아아, 여보! 내가 결국
당신을 죽인 것인가요?)

아아, 광주여 무등산이여
죽음과 죽음을 뚫고 나아가
백의의 옷자락을 펄럭이는
우리들의 영원한 청춘의 도시여
불사조여, 불사조여, 불사조여
이 나라의 십자가를 짊어지고
골고다 언덕을 다시 넘어오는
이 나라의 하느님의 아들이여

예수는 한 번 죽고
한 번 부활하여
오늘까지 아니 언제까지 산다던가
그러나 우리들은 몇 백 번을 죽고도
몇 백 번을 부활할 우리 몸의 참사랑이여
우리들의 빛이여, 영광이여, 아픔이여

지금 우리들은 더욱 살아나는구나
지금 우리들은 더욱 튼튼하구나
지금 우리들은 더욱
아아, 지금 우리들은
어깨와 어깨 뼈와 뼈만 맞대고
이 나라의 무등산을 오르는구나
아아, 미치도록 푸르른 하늘을 올라
해와 달을 입맞추는구나

광주여, 무등산이여
아아, 우리들의 영원한 깃발이여
꿈이여 십자가여
세월이 흐르면 흐를수록
더욱 젊어져 갈 청춘의 도시여
지금 우리들은 확실히
굳게 뭉쳐 있다 확실히
굳게 손잡고 일어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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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영상채록 5·18] ‘아아 광주여, 우리나라의 십자가여!’ 5·18 시인 김준태
    • 입력 2023-03-03 07:01:03
    • 수정2023-03-17 15:55:49
    취재K
1980년 6월 2일 전남매일 1면에 실린 김준태 시인의 시 ‘아아 광주여, 우리나라의 십자가여!’
5·18민주화운동이 신군부의 진압으로 막을 내리고 불과 일주일이 채 안 된 1980년 6월 2일, 일간지 1면에 실린 시 한 편이 보안당국을 발칵 뒤집어 놓았습니다. 보도 통제 속에서 '광주 폭동'으로 불렸던 5·18의 진상을 알린 최초의 시라 할 수 있는 김준태의 '아아, 광주여! 우리나라의 십자가여!'가 일간지 1면에 버젓이 실려 10만 부가 전국으로 퍼져나갔던 겁니다. 서슬 퍼런 검열이 존재하던 시절 어떻게 가능했던 걸까요? 1980년 당시 전남고 교사였던 김준태 시인을 KBS 광주 <영상채록5·18> 취재진이 만났습니다.

■광주의 부활을 알린 시 한 편
자신의 시가 실린 신문 전시물 앞에서 인터뷰 중인 김준태 시인
죽음과 죽음 사이에 피눈물 흘리는 우리들의 영원한 청춘의 도시여
우리들의 아버지는 어디로 갔나 우리들의 어머니는 어디서 쓰러졌나
우리들의 아들은 어디에서 죽어서 어디에 파묻혔나
우리들의 귀여운 딸은 또 어디에서 입을 벌린 채 누워 있나
우리들의 혼백은 또 어디에서 찢어져 산산이 조각나버렸나
…중략…
아아, 살아남은 사람들은
모두가 죄인처럼 고개를 숙이고 있구나
살아남은 사람들은 모두가
넋을 잃고, 밥그릇조차 대하기
어렵구나 무섭구나
무서워서 어쩌지도 못하는구나
…후략…

김준태 시 '아아 광주여, 우리나라의 십자가여!' 가운데

"아아 광주여, 우리나라의 십자가여! 이건 제가 쓴 시가 아닙니다. 저는 단지 손으로 썼고요. 오월 영령과 광주 시민들의 염원이 썼던 시라고 저는 생각합니다."

김준태 시인이 쓴 시는 1980년 당시 전남매일 1면에 말 그대로 대문짝만하게 실렸습니다. 시민들의 민주화 시위와 저항의 정당성을 알리고 계엄군의 잔인한 진압을 적나라하게 꼬집는 장문의 시가 검열 전 원본 그대로 국민들에게 전달된 겁니다. 당시 10만 부가 뿌려진 것으로 알려졌습니다.

'김준태 선생, 오늘 19일 만에 우리 신문이 나오게 됐네. 이제 우리가 무참하게 진압된 상태에서 신문을 내려고 하는데 광주의 진실을 밝힐 수가 없네. 쓸 수가 없네. 자네 시로 1면을 채워줘야겠네.'
-1980년 당시 전남매일(광주일보 전신) 문순태 편집부국장이 김준태 시인에게 요청한 내용

김준태 시인은 소설가 문순태(당시 전남매일 편집부국장)씨로부터 5·18을 시로 써달라는 부탁을 받고 130줄 넘는 걸 한 시간도 안 돼 썼다고 말합니다. 문순태 부국장의 요청도 한 시간 내로 시를 써오라는 것이었다고 하는데요. 다 쓴 시를 직접 들고 자전거를 타고 신문사에 가서 전달했다고 합니다.

당시 신군부의 지휘를 받는 검열관들은 김준태 시인이 쓴 시로 편집한 1면을 빨간펜으로 난도질했습니다. 내용이 거의 없는 죽은 문장으로 점철된 시만 남은 겁니다. 하지만 당시 신문사에서는 검열 전 원본으로 인쇄해 전국에 배포했습니다.

"10만 부를 찍었대요. 평상시에는 만 부 정도 찍었는데. 그래서 전국으로 뿌린 거예요. 두루마리 해가지고 보자기로 싸서 서울, 부산, 대구, 인천 전국으로 다 보낸 거예요. 그 때 서울에 와 있었던 하버드대 영문과 교수 데이비드 맥캔이 번역해서 AP, UPI, 로이터 심지어 중국 신화통신, 소련의 타스통신까지 다 보내버렸어요. "

'김준태 선생 여기 있으면 큰일 나겠습니다. 빨리 도망가세요.'

"이런 말을 하더래요. '요놈 죽여야겠다'고. 연고지가 아닌 곳으로 도망 다녔죠. 25일을 도망치다가 너무 애들이 보고 싶어서 이제 전남고등학교를 먼저 갔어요. 학생들이 난리예요. 어디 계셨었냐고. 애들한테 이별하고 신안동 집에 갔더니 5분도 안 돼서 잡혔죠. 화정동에 있는 505보안대로 끌려갔죠."

이 일로 김준태 시인은 보안대에 끌려가 고초를 겪었고 독일어 등을 가르쳤던 교단에서도 떠나야 했습니다. 시 원고를 요청하고 신문 1면에 실었던 문순태 소설가도 신문사에서 쫓겨났습니다.

■ 잊지 못할 '항쟁의 기억'
김준태 시인은 만 21살인 1969년 '참깨를 털면서'로 신춘문예에 등단해 일찍이 문학성을 인정받았습니다. 이후 문학 활동을 하면서 중고등학교에서 영어와 독일어 등을 가르치는 교사 생활을 하다 전남고 재직 시절 5·18을 마주하게 됐습니다.

'선생님 죄송합니다. 저희들은 시험을 응할 수가 없습니다. 이 상황이 끝나고 나서 중간고사에 임하겠습니다. 모두가 다치고 죽어가는 이 세상에 우리는 시험을 보기 위해서 여기에 앉아 있을 수 없습니다.'
-김준태 시인이 재직하던 전남고 학생이 시험지에 쓴 내용

"5월 19일이 중간고사 기간이었거든요. 제가 시험지를 나눠주니까 시험지에다가요. 지금도 기억납니다. 애들이 '선생님 죄송합니다. 저희는 주저앉아 있을 수는 없습니다.'라면서 잠가놓은 교문을 뚫고 담을 넘어서 금남로로 가버렸어요. 선생님들이 난리가 났죠. 결국, 아이들을 보호하는 차원에서라도 도청 앞으로 가자고 해서 교사들도 금남로로 갔습니다."

김준태 시인은 5월 21일 도청 앞 집단 발포를 직접 목격하고는 충격에 빠졌습니다. 눈 앞에서 총에 맞고 쓰러지는 청년을 지켜봐야 했습니다.

"5월 21일 날 가톨릭센터 바로 이 앞에 제가 서 있었습니다. 약 20만 명이 꽉 차서 노래를 부르는 거예요. 1시를 기해서 난데없이 엄청나게 애국가가 울려 퍼지더라고요. 동시에 계엄군이 진입한 도청 쪽에서 총소리가 울려 퍼지기 시작했어요. 완전 전쟁터였습니다. 나보다 몸이 엄청 좋은 젊은이가 가슴에 정통으로 총알이 박힌 걸 봤어요. 지혈하고 싶으니까 보듬고 가까운 산부인과로 갔었습니다. 얼마나 급하면 그 젊은이를 끌고 산부인과로 떠밀고 들어갔겠어요. 살려낼 수가 없었습니다."

■'이렇게 죽는 거예요, 여보!'

5·18 때 숨진 전남고 교사 부인의 묘비(김준태 시인의 시에서 인용한 묘비문)
5월 21일 그날, 김 시인의 전남고 동료 교사의 부인도 계엄군의 총탄을 맞고 숨졌습니다. 계엄군이 주둔했던 전남대 인근에 살았던 김모 교사의 부인이 길가에 나와 남편을 기다리다 총을 맞고 사망한 겁니다.

"그때는 조문도 가기 힘들었습니다. 너무나 무섭고 공포스러웠으니까. 총소리가 전남대 앞에 난무하고 있었으니까. 조문을 갔는데 동료 교사의 첫째 놈 세 살짜리가 이제 놀고 있더라고요. 엄마가 죽었는지도 모르죠. 근데 뱃속 아기는 임신 8개월째에 죽은 거예요. 그런데 장모 이야기를 들었는데, 바로 대문 앞에서 남편을 기다리다 죽었다고."

동료 교사 부인의 죽음은 '아아 광주여, 우리나라의 십자가여!' 시의 중요한 모티브가 되기도 했습니다. 묘비에도 시 내용이 인용됐습니다.

여보, 당신을 기다리다가
문밖에 나아가 당신을 기다리다가
나는 죽었어요 ......
왜 나의 목숨을 빼앗아 갔을까요
아니 당신의 전부를 빼앗아 갔을까요
셋방살이 신세였지만
얼마나 우리는 행복했어요
난 당신에게 잘 해 주고 싶었어요
아 아, 여보!
그런데 나는 당신의 아이를 밴 몸으로
이렇게 죽는 거예요, 여보!
미안해요, 여보!
- 김준태 시 '아아 광주여, 우리나라의 십자가여!' 가운데

■ '광주·무등산 우리들의 영원한 깃발'

국립5·18민주묘지 내 시비 「아아 광주여, 우리나라의 십자가여!」
광주여, 무등산이여
아아, 우리들의 영원한 깃발이여
꿈이여 십자가여
세월이 흐르면 흐를수록
더욱 젊어져 가는 청춘의 도시여
지금 우리들은 확실히
굳게 뭉쳐 있다 확실히
굳게 손잡고 일어선다
- 김준태 시 '아아 광주여, 우리나라의 십자가여!' 가운데

"5·18은 생명의 존중, 평화의 존중, 그 다음에 모두가 하나 되는 공동체였다. 오월 정신은 같이 살아야 나도 산다, 남들이 죽으면 나도 죽는다는 것을 가르쳐주고 싶은 게 오월이었거든요. 그 정신으로 지금까지 쓰다 보니까 시집을 스물 세 번 냈는데. 천여 편의 광주의 노래가 들어 있더라고요. 결국, 광주에 바치는 시. 그것이 바로 광주의 정신이라고 생각했습니다."

"5·18은 과거가 아닙니다. 5·18은 현재이면서 미래예요. 5·18은 죽음이 아니에요. 5·18은 생명입니다. 이 생명을 우리는 절대로 더럽혀서는 안 됩니다. 왜곡해서는 안 됩니다. 폄하시켜서는 안 됩니다."

김준태 시인은 5·18이 계엄군에게 참담하게 짓밟힌 이후 문학 활동 중단까지 생각했지만 '아아 광주여, 우리나라의 십자가여!'를 쓰고 나서 '오월의 시인'이 됐습니다. 지금까지 '오월'과 '광주'에 대한 천 편 넘는 시를 썼습니다. 영어와 일어, 독일어 등 수많은 외국어로도 시집을 펴내며 여전히 '오월 정신'을 세계에 알리고 있습니다.

43년 전 5·18의 진상을 알린 김준태 시인의 '아아 광주여, 우리나라의 십자가여' 전문을 소개합니다. 김준태 시인의 감수를 거쳐 최대한 당시 원문 그대로 싣습니다.

아아 광주여, 우리나라의 십자가여!
- 김 준 태 -

아아 광주여, 무등산이여
죽음과 죽음 사이에
피눈물 흘리는
우리들의 영원한 청춘의 도시여

우리들의 아버지는 어디로 갔나
우리들의 어머니는 어디서 쓰러졌나
우리들의 아들은
어디에서 죽어서 어디에 파묻혔나
우리들의 귀여운 딸은
또 어디에서 입을 벌린 채 누워 있나
우리들의 혼백은 또 어디에서
찢어져 산산이 조각나버렸나

하느님도 새떼들도
떠나가버린 광주여
그러나 사람다운 사람들만이
아침 저녁으로 살아남아
쓰러지고, 엎어지고 다시 일어서는
우리들의 피투성이 도시여
죽음으로써 죽음을 물리치고
죽음으로써 삶을 찾으려 했던
아아, 통곡뿐인 남도의
불사조여, 불사조여, 不死鳥여

해와 달이 곤두박질치고
이 시대의 모든 산맥들이
엉터리로 우뚝 솟아있을 때
그러나 그 누구도 찢을 수 없고
빼앗을 수 없는
아아, 자유의 깃발이여
인간의 깃발이여
살과 뼈로 응어리진 깃발이여

아아, 우리들의 도시
우리들의 노래와 꿈과 사랑이
때로는 파도처럼 밀리고
때로는 무덤만 뒤집어쓸지언정
아아, 광주여 광주여
이 나라의 십자가를 짊어지고
무등산을 넘어
골고다 언덕을 넘어가는
아 아, 온몸에 상처뿐인
죽음뿐인 하느님의 아들이여

정말 우리는 죽어버렸나
더 이상 나라를 사랑할 수 없이
더 이상 우리들의 아이들을 사랑할 수 없이
죽어버렸나
정말 우리들은 아주 죽어버렸나

충장로에서 금남로에서
화정동에서 산수동에서 용봉동에서
지원동에서 양동에서 계림동에서
그리고 그리고 그리고 ......
아아, 우리들의 피와 살덩이를
삼키고 불어오는 바람이여
속절없는 세월의 흐름이여

아아, 살아남은 사람들은
모두가 죄인처럼 고개를 숙이고 있구나
살아남은 사람들은 모두가
넋을 잃고, 밥그릇조차 대하기
어렵구나 무섭구나
무서워서 어쩌지도 못하는구나

(여보, 당신을 기다리다가
문밖에 나아가 당신을 기다리다가
나는 죽었어요 ......그들은
왜 나의 목숨을 빼앗아 갔을까요
아니 당신의 전부를 빼앗아 갔을까요
셋방살이 신세였지만
얼마나 우리는 행복했어요
난 당신에게 잘 해 주고 싶었어요
아아, 여보!
그런데 나는 당신의 아이를 밴 몸으로
이렇게 죽는 거예요, 여보!
미안해요, 여보!
나에게서 나의 목숨을 빼앗아 가고
나는 또 당신의 전부를
당신의 젊음 당신의 사랑
당신의 아들 당신의
아아, 여보! 내가 결국
당신을 죽인 것인가요?)

아아, 광주여 무등산이여
죽음과 죽음을 뚫고 나아가
백의의 옷자락을 펄럭이는
우리들의 영원한 청춘의 도시여
불사조여, 불사조여, 불사조여
이 나라의 십자가를 짊어지고
골고다 언덕을 다시 넘어오는
이 나라의 하느님의 아들이여

예수는 한 번 죽고
한 번 부활하여
오늘까지 아니 언제까지 산다던가
그러나 우리들은 몇 백 번을 죽고도
몇 백 번을 부활할 우리 몸의 참사랑이여
우리들의 빛이여, 영광이여, 아픔이여

지금 우리들은 더욱 살아나는구나
지금 우리들은 더욱 튼튼하구나
지금 우리들은 더욱
아아, 지금 우리들은
어깨와 어깨 뼈와 뼈만 맞대고
이 나라의 무등산을 오르는구나
아아, 미치도록 푸르른 하늘을 올라
해와 달을 입맞추는구나

광주여, 무등산이여
아아, 우리들의 영원한 깃발이여
꿈이여 십자가여
세월이 흐르면 흐를수록
더욱 젊어져 갈 청춘의 도시여
지금 우리들은 확실히
굳게 뭉쳐 있다 확실히
굳게 손잡고 일어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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