일본기업 배상금, ‘재단’이 갚아도 되나요?

입력 2023.03.06 (16:5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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정부가 오늘(6일) 대법원 확정판결을 받은 일제 강제동원 피해자 15명에 대한 배상 해법을 발표했습니다.

한국 기업이 배상에 필요한 기금을 마련하고, 행정안전부 산하 '일제 강제동원 피해자 지원재단'을 통해 피해자들에게 판결금과 지연 이자를 지급하겠다는 겁니다.

대법원 판결에 따라 일제 전범 기업들이 배상해야 할 돈을 재단이 '대신' 내주겠다는 건데요, 채권자에게 채무자가 줘야 할 돈을 누군가 다른 사람이 대신 갚는 것(변제)을 법률용어로는 '제3자 변제'라고 부릅니다.

그런데 이런 제3자 변제, 법적으로 가능할까요?

■ 당사자가 원하지 않을 때 대신 돈 갚을 수 있나?

제3자 변제를 아무 때나 할 수 있는 건 아닙니다.

민법 제469조(제삼자의 변제)
① 채무의 변제는 제삼자도 할 수 있다. 그러나 채무의 성질 또는 당사자의 의사표시로 제삼자의 변제를 허용하지 아니하는 때에는 그러하지 아니하다.
이해관계 없는 제삼자는 채무자의 의사에 반하여 변제하지 못한다.

제3자 변제와 관련된 조항은 현행 민법 제469조입니다.

제1항은 '채무는 제3자가 변제할 수 있다'고 규정하고 있어, 일본 전범기업이 아니라 '재단'이 피해자들에게 변제하는 게 원칙적으로 불가능하진 않습니다. 그런데 걸림돌은 뒤쪽 문구입니다.

'당사자가 제3자의 변제를 허용한다는 의사 표시를 하지 않으면 (제3자 변제가) 불가능하다'는 대목이죠.

그런데 지금까지 강제동원 피해자들은 채무자인 일본 기업들 대신 누군가가 대신 변제하는 방안에 대해서는 반대 의사를 명확히 밝혀왔습니다.

더 문제가 되는 건 제469조 제2항 부분입니다. 이 조항에선 '이해관계 없는 제3자는 채무자의 의사에 반해 변제하지 못한다'고 규정하고 있는데요, 판례는 '이해관계가 있는 자'의 의미를 이렇게 해석하고 있습니다.

"변제를 하지 않으면 채권자로부터 집행을 받게 되거나 또는 채무자에 대한 자기의 권리를 잃게 되는 지위에 있기 때문에 변제함으로써 당연히 대위의 보호를 받아야 할 법률상 이익을 가지는 자"

따라서 재단이 일본 전범기업 대신 변제를 하지 않을 경우 어떠한 권리를 잃게 되거나 강제집행 당하게 되는 지위에 있는지 판단하면 됩니다. 하지만 얼핏 보기에도 그렇지 않죠.

이 때문에 재단을 변제를 통해 보호받고자 하는 법률상 이익을 갖는 자, 즉 이해관계 있는 자로 해석할 여지가 없다는 게 상당수 법률가들의 해석이었습니다.

특히 채무자인 일본 기업들은 한국 대법원의 판결 자체를 인정하지 못하겠다는 입장이어서, '채무자의 의사'를 따지기도 어려운 상황입니다.

■ 과연 '우회로'는 있을까?

하지만 정부는 '가능하다'고 했습니다. 외교부 관계자는 오늘 발표에서 "유수의 전문가들과 법률검토가 끝났다"며 "현 방안이 법률적으로 유효하다"고 밝혔습니다.

다만 기자회견에서도 이것이 왜 가능한지에 대한 명확한 법적 근거는 내놓지 않았습니다.

그런데 최근 열린 '강제동원 피해자 배상' 관련 토론회에서 한 정부 측 인사는 이 돈이 '법정 채권'이라는 주장을 펼쳤다고 합니다. 이미 판결이 확정된 채권은 '법정 채권'으로 '사인(私人)간 채권'과는 달리 봐야 하고, 때문에 민법 조항에 구애받지 않고 '제3자 변제'가 가능하다는 뜻으로 풀이됩니다.

그런데 피해자들이 재단의 돈을 받는 것을 끝내 거부한다면. 결국 이 논리가 정당한지도 재판에서 결론이 날 것으로 보입니다.

우리 사법부는 현재 미쓰비시중공업 등 일본 기업의 국내 자산을 매각할지 여부를 따지고 있는데,
재단이 판결금을 법원에 공탁할 수도 있습니다. 법원에 공탁하면 변제를 한 것과 같은 효과가 나기 때문입니다.

이 경우 피해자들은 "재단의 공탁은 무효"라고 주장할 것이고. 또다시 긴긴 법정 공방이 이어질 수 있다는 관측도 나옵니다.

백인성 법조전문기자·변호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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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일본기업 배상금, ‘재단’이 갚아도 되나요?
    • 입력 2023-03-06 16:50:33
    취재K

정부가 오늘(6일) 대법원 확정판결을 받은 일제 강제동원 피해자 15명에 대한 배상 해법을 발표했습니다.

한국 기업이 배상에 필요한 기금을 마련하고, 행정안전부 산하 '일제 강제동원 피해자 지원재단'을 통해 피해자들에게 판결금과 지연 이자를 지급하겠다는 겁니다.

대법원 판결에 따라 일제 전범 기업들이 배상해야 할 돈을 재단이 '대신' 내주겠다는 건데요, 채권자에게 채무자가 줘야 할 돈을 누군가 다른 사람이 대신 갚는 것(변제)을 법률용어로는 '제3자 변제'라고 부릅니다.

그런데 이런 제3자 변제, 법적으로 가능할까요?

■ 당사자가 원하지 않을 때 대신 돈 갚을 수 있나?

제3자 변제를 아무 때나 할 수 있는 건 아닙니다.

민법 제469조(제삼자의 변제)
① 채무의 변제는 제삼자도 할 수 있다. 그러나 채무의 성질 또는 당사자의 의사표시로 제삼자의 변제를 허용하지 아니하는 때에는 그러하지 아니하다.
이해관계 없는 제삼자는 채무자의 의사에 반하여 변제하지 못한다.

제3자 변제와 관련된 조항은 현행 민법 제469조입니다.

제1항은 '채무는 제3자가 변제할 수 있다'고 규정하고 있어, 일본 전범기업이 아니라 '재단'이 피해자들에게 변제하는 게 원칙적으로 불가능하진 않습니다. 그런데 걸림돌은 뒤쪽 문구입니다.

'당사자가 제3자의 변제를 허용한다는 의사 표시를 하지 않으면 (제3자 변제가) 불가능하다'는 대목이죠.

그런데 지금까지 강제동원 피해자들은 채무자인 일본 기업들 대신 누군가가 대신 변제하는 방안에 대해서는 반대 의사를 명확히 밝혀왔습니다.

더 문제가 되는 건 제469조 제2항 부분입니다. 이 조항에선 '이해관계 없는 제3자는 채무자의 의사에 반해 변제하지 못한다'고 규정하고 있는데요, 판례는 '이해관계가 있는 자'의 의미를 이렇게 해석하고 있습니다.

"변제를 하지 않으면 채권자로부터 집행을 받게 되거나 또는 채무자에 대한 자기의 권리를 잃게 되는 지위에 있기 때문에 변제함으로써 당연히 대위의 보호를 받아야 할 법률상 이익을 가지는 자"

따라서 재단이 일본 전범기업 대신 변제를 하지 않을 경우 어떠한 권리를 잃게 되거나 강제집행 당하게 되는 지위에 있는지 판단하면 됩니다. 하지만 얼핏 보기에도 그렇지 않죠.

이 때문에 재단을 변제를 통해 보호받고자 하는 법률상 이익을 갖는 자, 즉 이해관계 있는 자로 해석할 여지가 없다는 게 상당수 법률가들의 해석이었습니다.

특히 채무자인 일본 기업들은 한국 대법원의 판결 자체를 인정하지 못하겠다는 입장이어서, '채무자의 의사'를 따지기도 어려운 상황입니다.

■ 과연 '우회로'는 있을까?

하지만 정부는 '가능하다'고 했습니다. 외교부 관계자는 오늘 발표에서 "유수의 전문가들과 법률검토가 끝났다"며 "현 방안이 법률적으로 유효하다"고 밝혔습니다.

다만 기자회견에서도 이것이 왜 가능한지에 대한 명확한 법적 근거는 내놓지 않았습니다.

그런데 최근 열린 '강제동원 피해자 배상' 관련 토론회에서 한 정부 측 인사는 이 돈이 '법정 채권'이라는 주장을 펼쳤다고 합니다. 이미 판결이 확정된 채권은 '법정 채권'으로 '사인(私人)간 채권'과는 달리 봐야 하고, 때문에 민법 조항에 구애받지 않고 '제3자 변제'가 가능하다는 뜻으로 풀이됩니다.

그런데 피해자들이 재단의 돈을 받는 것을 끝내 거부한다면. 결국 이 논리가 정당한지도 재판에서 결론이 날 것으로 보입니다.

우리 사법부는 현재 미쓰비시중공업 등 일본 기업의 국내 자산을 매각할지 여부를 따지고 있는데,
재단이 판결금을 법원에 공탁할 수도 있습니다. 법원에 공탁하면 변제를 한 것과 같은 효과가 나기 때문입니다.

이 경우 피해자들은 "재단의 공탁은 무효"라고 주장할 것이고. 또다시 긴긴 법정 공방이 이어질 수 있다는 관측도 나옵니다.

백인성 법조전문기자·변호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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