정부가 근로시간 개편안을 어제(6일) 발표했다. 정부는 '글로벌 스탠더드'에 맞춘 거라고 설명하지만, 노동계 반발도 거세다. 우려되는 지점을 짚어봤다.
■ 쟁점1. 과로 조장?
가장 논란이 되는 부분은 주 최대 근로시간을 69시간까지 허용한 점이다.
개편안은 연장근로를 몰아 쓸 수 있게 했다. 현행 주 52시간 상한제는 연장근로를 주당 12시간으로 제한한다. 개편안은 '1주 12시간'이란 칸막이를 없앴다. 대신 한 달 52시간, 6개월 250시간, 1년 440시간 안에서 연장근로를 특정 주에 몰아 쓸 수 있게 했다.
이 경우 주당 최대근로시간은 69시간으로 늘어난다고 정부는 본다. 4시간당 30분씩 법정 휴게시간이 있고, 근로일과 근로일 사이 11시간 연속 휴식을 보장하면, 산술적으로 주 최대 69시간이 나온다는 것이다. 다만 4주 동안 1주 평균 64시간은 넘지 못하게 했다.
문제는 정부가 정한 과로 인정 기준이 '4주간 평균 64시간' '12주간 평균 60시간'이란 점이다. 고용노동부 '뇌혈관·심장질병 업무상 질병 조사 및 판정 지침'은 " 발병 전 12주 동안 업무시간이 1주 평균 60시간, 발병 전 4주 동안 1주 평균 64시간을 초과한 경우, 업무와 질병과의 관련성이 강하다고 평가한다"고 돼 있다. 이를 근거로 노동계에선 "죽기 직전까지 일 시키는 것"이란 비판이 나온다.
정부는 주 최대 69시간 노동은 극단적인 사례일 뿐이라는 입장이다. 지난해 기준 상용직 근로시간은 주당 평균 38시간이라는 것이다. 상용직은 1년 이상 고용된 자를 의미한다. 소정 근로시간이 짧은 임시직 등 비정규직도 포함된다.
하지만 이 평균치에 숨어있는 과로의 현실이 있다. 과로 산재로 인정받은 노동자는 2017년 205명에서 재작년 289명으로 늘었다. '몰아서 일하고 몰아서 쉬라'는 게 개정안인데, 영세사업장에선 과로한 만큼 충분히 쉬기 어려운 게 현실이다. 박태현 민주노총 금속노조 반월·시화공단 일반분회 분회장은 "인원이 딱 짜여있고 거기서 1명만 빠져도 힘들기 때문에 연차를 쓴다고 했을 때 쉰다고 했을 때 회사에선 생산 물량이 줄어든다고 싫어한다"고 말한다.
■ 쟁점2. 글로벌 스탠더드?
정부는 연장근로를 주 단위로 묶는 건 "글로벌 스탠더드에 맞지 않다"고 강조한다. 독일과 프랑스, 영국 등의 사례를 들었다. 독일은 6개월, 영국은 17주를 단위로 연장근로 총량을 관리한다. 주 단위로 관리하는 나라는 거의 없다는 게 정부 설명이다.
그러나 유럽은 우리와 여건이 달라 단순 비교해선 안 된다는 반론도 있다. 유럽은 2003년부터 의회 입법 지침으로 '24시간당 11시간 연속 휴식'을 의무화했다. 이번 개편안에 포함된 '근로일 간 11시간 연속 휴식'보다 더 엄격한 건강권 보호 조치다.
실근로시간 차이도 크다. 우리나라는 OECD 국가들보다 3백여 시간을 더 일한다. 날짜로 따지면 39일을 더 일하는 셈이다. 박성우 노무사(시민단체 '직장갑질119' 운영위원)는 "독일은 연간 노동시간이 약 1400시간, 우리보다 500시간이 짧은 OECD 최단시간 노동 국가이고, 프랑스는 법정 근로시간이 35시간"이라고 지적했다.
■ 쟁점3. 근로시간 단축은?
근로시간을 단축하려는 노력이 병행돼야 한다는 지적에 정부는 '근로시간 저축계좌제'를 통해 휴가를 활성하겠다고 했다. 근로시간 저축계좌제는 연장근로 시간을 적립해뒀다가 필요할 때 시간 단위로 쪼개서, 혹은 장기 휴가로 뭉쳐서 사용하는 제도다.
현행 근로기준법은 연장·야간·휴일근로에 대해 가산수당 지급을 원칙으로 하고 있는데, 앞으로는 휴가로 보상받을 수 있게 하자는 것이다. 일과 생활의 균형이 가능할 거라고 강조했다.
그러나 기존 연차 휴가도 다 못 쓰는 상황에서 실효성이 있겠냐는 회의적인 반응도 나온다. 문화체육관광부가 실시한 '근로자 휴가조사'를 보면, 2020년 연차소진율은 71%다. 5일 이상 장기휴가 사용 경험이 있는 상용직은 9.4%였다.
또 연차를 자유롭게 쓸 수 있는 환경을 조성하는 대책이 빠졌다는 지적도 있다. 노동자들이 눈치 보지 않고 휴가를 갈 수 있게 휴가 활성화 대국민 캠페인을 벌이겠다고 한 게 대책의 전부였다.
정부는 이날부터 다음 달 17일까지 40일간 입법 예고 기간을 거쳐 6∼7월 근로기준법 등 관련 법 개정안을 국회에 제출할 계획이다. 민주당과 정의당 등 야당과 노동계가 반대하고 있어 향후 국회 논의 과정에서 진통이 예상된다. 또 개편안 마련 과정에 노동계와 대화가 없었던 만큼 현장 안착이 쉽지 않을 거란 지적도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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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글로벌 스탠더드”…“과로 조장” 쟁점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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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입력 2023-03-07 18:01:11
정부가 근로시간 개편안을 어제(6일) 발표했다. 정부는 '글로벌 스탠더드'에 맞춘 거라고 설명하지만, 노동계 반발도 거세다. 우려되는 지점을 짚어봤다.
■ 쟁점1. 과로 조장?
가장 논란이 되는 부분은 주 최대 근로시간을 69시간까지 허용한 점이다.
개편안은 연장근로를 몰아 쓸 수 있게 했다. 현행 주 52시간 상한제는 연장근로를 주당 12시간으로 제한한다. 개편안은 '1주 12시간'이란 칸막이를 없앴다. 대신 한 달 52시간, 6개월 250시간, 1년 440시간 안에서 연장근로를 특정 주에 몰아 쓸 수 있게 했다.
이 경우 주당 최대근로시간은 69시간으로 늘어난다고 정부는 본다. 4시간당 30분씩 법정 휴게시간이 있고, 근로일과 근로일 사이 11시간 연속 휴식을 보장하면, 산술적으로 주 최대 69시간이 나온다는 것이다. 다만 4주 동안 1주 평균 64시간은 넘지 못하게 했다.
문제는 정부가 정한 과로 인정 기준이 '4주간 평균 64시간' '12주간 평균 60시간'이란 점이다. 고용노동부 '뇌혈관·심장질병 업무상 질병 조사 및 판정 지침'은 " 발병 전 12주 동안 업무시간이 1주 평균 60시간, 발병 전 4주 동안 1주 평균 64시간을 초과한 경우, 업무와 질병과의 관련성이 강하다고 평가한다"고 돼 있다. 이를 근거로 노동계에선 "죽기 직전까지 일 시키는 것"이란 비판이 나온다.
정부는 주 최대 69시간 노동은 극단적인 사례일 뿐이라는 입장이다. 지난해 기준 상용직 근로시간은 주당 평균 38시간이라는 것이다. 상용직은 1년 이상 고용된 자를 의미한다. 소정 근로시간이 짧은 임시직 등 비정규직도 포함된다.
하지만 이 평균치에 숨어있는 과로의 현실이 있다. 과로 산재로 인정받은 노동자는 2017년 205명에서 재작년 289명으로 늘었다. '몰아서 일하고 몰아서 쉬라'는 게 개정안인데, 영세사업장에선 과로한 만큼 충분히 쉬기 어려운 게 현실이다. 박태현 민주노총 금속노조 반월·시화공단 일반분회 분회장은 "인원이 딱 짜여있고 거기서 1명만 빠져도 힘들기 때문에 연차를 쓴다고 했을 때 쉰다고 했을 때 회사에선 생산 물량이 줄어든다고 싫어한다"고 말한다.
■ 쟁점2. 글로벌 스탠더드?
정부는 연장근로를 주 단위로 묶는 건 "글로벌 스탠더드에 맞지 않다"고 강조한다. 독일과 프랑스, 영국 등의 사례를 들었다. 독일은 6개월, 영국은 17주를 단위로 연장근로 총량을 관리한다. 주 단위로 관리하는 나라는 거의 없다는 게 정부 설명이다.
그러나 유럽은 우리와 여건이 달라 단순 비교해선 안 된다는 반론도 있다. 유럽은 2003년부터 의회 입법 지침으로 '24시간당 11시간 연속 휴식'을 의무화했다. 이번 개편안에 포함된 '근로일 간 11시간 연속 휴식'보다 더 엄격한 건강권 보호 조치다.
실근로시간 차이도 크다. 우리나라는 OECD 국가들보다 3백여 시간을 더 일한다. 날짜로 따지면 39일을 더 일하는 셈이다. 박성우 노무사(시민단체 '직장갑질119' 운영위원)는 "독일은 연간 노동시간이 약 1400시간, 우리보다 500시간이 짧은 OECD 최단시간 노동 국가이고, 프랑스는 법정 근로시간이 35시간"이라고 지적했다.
■ 쟁점3. 근로시간 단축은?
근로시간을 단축하려는 노력이 병행돼야 한다는 지적에 정부는 '근로시간 저축계좌제'를 통해 휴가를 활성하겠다고 했다. 근로시간 저축계좌제는 연장근로 시간을 적립해뒀다가 필요할 때 시간 단위로 쪼개서, 혹은 장기 휴가로 뭉쳐서 사용하는 제도다.
현행 근로기준법은 연장·야간·휴일근로에 대해 가산수당 지급을 원칙으로 하고 있는데, 앞으로는 휴가로 보상받을 수 있게 하자는 것이다. 일과 생활의 균형이 가능할 거라고 강조했다.
그러나 기존 연차 휴가도 다 못 쓰는 상황에서 실효성이 있겠냐는 회의적인 반응도 나온다. 문화체육관광부가 실시한 '근로자 휴가조사'를 보면, 2020년 연차소진율은 71%다. 5일 이상 장기휴가 사용 경험이 있는 상용직은 9.4%였다.
또 연차를 자유롭게 쓸 수 있는 환경을 조성하는 대책이 빠졌다는 지적도 있다. 노동자들이 눈치 보지 않고 휴가를 갈 수 있게 휴가 활성화 대국민 캠페인을 벌이겠다고 한 게 대책의 전부였다.
정부는 이날부터 다음 달 17일까지 40일간 입법 예고 기간을 거쳐 6∼7월 근로기준법 등 관련 법 개정안을 국회에 제출할 계획이다. 민주당과 정의당 등 야당과 노동계가 반대하고 있어 향후 국회 논의 과정에서 진통이 예상된다. 또 개편안 마련 과정에 노동계와 대화가 없었던 만큼 현장 안착이 쉽지 않을 거란 지적도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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홍성희 기자 bombom@kbs.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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