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글로벌 스탠더드”…“과로 조장” 쟁점은?

입력 2023.03.07 (18:0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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정부가 근로시간 개편안을 어제(6일) 발표했다. 정부는 '글로벌 스탠더드'에 맞춘 거라고 설명하지만, 노동계 반발도 거세다. 우려되는 지점을 짚어봤다.

■ 쟁점1. 과로 조장?

가장 논란이 되는 부분은 주 최대 근로시간을 69시간까지 허용한 점이다.

개편안은 연장근로를 몰아 쓸 수 있게 했다. 현행 주 52시간 상한제는 연장근로를 주당 12시간으로 제한한다. 개편안은 '1주 12시간'이란 칸막이를 없앴다. 대신 한 달 52시간, 6개월 250시간, 1년 440시간 안에서 연장근로를 특정 주에 몰아 쓸 수 있게 했다.

이 경우 주당 최대근로시간은 69시간으로 늘어난다고 정부는 본다. 4시간당 30분씩 법정 휴게시간이 있고, 근로일과 근로일 사이 11시간 연속 휴식을 보장하면, 산술적으로 주 최대 69시간이 나온다는 것이다. 다만 4주 동안 1주 평균 64시간은 넘지 못하게 했다.

문제는 정부가 정한 과로 인정 기준이 '4주간 평균 64시간' '12주간 평균 60시간'이란 점이다. 고용노동부 '뇌혈관·심장질병 업무상 질병 조사 및 판정 지침'은 " 발병 전 12주 동안 업무시간이 1주 평균 60시간, 발병 전 4주 동안 1주 평균 64시간을 초과한 경우, 업무와 질병과의 관련성이 강하다고 평가한다"고 돼 있다. 이를 근거로 노동계에선 "죽기 직전까지 일 시키는 것"이란 비판이 나온다.

정부는 주 최대 69시간 노동은 극단적인 사례일 뿐이라는 입장이다. 지난해 기준 상용직 근로시간은 주당 평균 38시간이라는 것이다. 상용직은 1년 이상 고용된 자를 의미한다. 소정 근로시간이 짧은 임시직 등 비정규직도 포함된다.

하지만 이 평균치에 숨어있는 과로의 현실이 있다. 과로 산재로 인정받은 노동자는 2017년 205명에서 재작년 289명으로 늘었다. '몰아서 일하고 몰아서 쉬라'는 게 개정안인데, 영세사업장에선 과로한 만큼 충분히 쉬기 어려운 게 현실이다. 박태현 민주노총 금속노조 반월·시화공단 일반분회 분회장은 "인원이 딱 짜여있고 거기서 1명만 빠져도 힘들기 때문에 연차를 쓴다고 했을 때 쉰다고 했을 때 회사에선 생산 물량이 줄어든다고 싫어한다"고 말한다.

■ 쟁점2. 글로벌 스탠더드?

정부는 연장근로를 주 단위로 묶는 건 "글로벌 스탠더드에 맞지 않다"고 강조한다. 독일과 프랑스, 영국 등의 사례를 들었다. 독일은 6개월, 영국은 17주를 단위로 연장근로 총량을 관리한다. 주 단위로 관리하는 나라는 거의 없다는 게 정부 설명이다.

그러나 유럽은 우리와 여건이 달라 단순 비교해선 안 된다는 반론도 있다. 유럽은 2003년부터 의회 입법 지침으로 '24시간당 11시간 연속 휴식'을 의무화했다. 이번 개편안에 포함된 '근로일 간 11시간 연속 휴식'보다 더 엄격한 건강권 보호 조치다.

실근로시간 차이도 크다. 우리나라는 OECD 국가들보다 3백여 시간을 더 일한다. 날짜로 따지면 39일을 더 일하는 셈이다. 박성우 노무사(시민단체 '직장갑질119' 운영위원)는 "독일은 연간 노동시간이 약 1400시간, 우리보다 500시간이 짧은 OECD 최단시간 노동 국가이고, 프랑스는 법정 근로시간이 35시간"이라고 지적했다.

쟁점3. 근로시간 단축은?

근로시간을 단축하려는 노력이 병행돼야 한다는 지적에 정부는 '근로시간 저축계좌제'를 통해 휴가를 활성하겠다고 했다. 근로시간 저축계좌제는 연장근로 시간을 적립해뒀다가 필요할 때 시간 단위로 쪼개서, 혹은 장기 휴가로 뭉쳐서 사용하는 제도다.

현행 근로기준법은 연장·야간·휴일근로에 대해 가산수당 지급을 원칙으로 하고 있는데, 앞으로는 휴가로 보상받을 수 있게 하자는 것이다. 일과 생활의 균형이 가능할 거라고 강조했다.

그러나 기존 연차 휴가도 다 못 쓰는 상황에서 실효성이 있겠냐는 회의적인 반응도 나온다. 문화체육관광부가 실시한 '근로자 휴가조사'를 보면, 2020년 연차소진율은 71%다. 5일 이상 장기휴가 사용 경험이 있는 상용직은 9.4%였다.

또 연차를 자유롭게 쓸 수 있는 환경을 조성하는 대책이 빠졌다는 지적도 있다. 노동자들이 눈치 보지 않고 휴가를 갈 수 있게 휴가 활성화 대국민 캠페인을 벌이겠다고 한 게 대책의 전부였다.

정부는 이날부터 다음 달 17일까지 40일간 입법 예고 기간을 거쳐 6∼7월 근로기준법 등 관련 법 개정안을 국회에 제출할 계획이다. 민주당과 정의당 등 야당과 노동계가 반대하고 있어 향후 국회 논의 과정에서 진통이 예상된다. 또 개편안 마련 과정에 노동계와 대화가 없었던 만큼 현장 안착이 쉽지 않을 거란 지적도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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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글로벌 스탠더드”…“과로 조장” 쟁점은?
    • 입력 2023-03-07 18:01:11
    취재K

정부가 근로시간 개편안을 어제(6일) 발표했다. 정부는 '글로벌 스탠더드'에 맞춘 거라고 설명하지만, 노동계 반발도 거세다. 우려되는 지점을 짚어봤다.

■ 쟁점1. 과로 조장?

가장 논란이 되는 부분은 주 최대 근로시간을 69시간까지 허용한 점이다.

개편안은 연장근로를 몰아 쓸 수 있게 했다. 현행 주 52시간 상한제는 연장근로를 주당 12시간으로 제한한다. 개편안은 '1주 12시간'이란 칸막이를 없앴다. 대신 한 달 52시간, 6개월 250시간, 1년 440시간 안에서 연장근로를 특정 주에 몰아 쓸 수 있게 했다.

이 경우 주당 최대근로시간은 69시간으로 늘어난다고 정부는 본다. 4시간당 30분씩 법정 휴게시간이 있고, 근로일과 근로일 사이 11시간 연속 휴식을 보장하면, 산술적으로 주 최대 69시간이 나온다는 것이다. 다만 4주 동안 1주 평균 64시간은 넘지 못하게 했다.

문제는 정부가 정한 과로 인정 기준이 '4주간 평균 64시간' '12주간 평균 60시간'이란 점이다. 고용노동부 '뇌혈관·심장질병 업무상 질병 조사 및 판정 지침'은 " 발병 전 12주 동안 업무시간이 1주 평균 60시간, 발병 전 4주 동안 1주 평균 64시간을 초과한 경우, 업무와 질병과의 관련성이 강하다고 평가한다"고 돼 있다. 이를 근거로 노동계에선 "죽기 직전까지 일 시키는 것"이란 비판이 나온다.

정부는 주 최대 69시간 노동은 극단적인 사례일 뿐이라는 입장이다. 지난해 기준 상용직 근로시간은 주당 평균 38시간이라는 것이다. 상용직은 1년 이상 고용된 자를 의미한다. 소정 근로시간이 짧은 임시직 등 비정규직도 포함된다.

하지만 이 평균치에 숨어있는 과로의 현실이 있다. 과로 산재로 인정받은 노동자는 2017년 205명에서 재작년 289명으로 늘었다. '몰아서 일하고 몰아서 쉬라'는 게 개정안인데, 영세사업장에선 과로한 만큼 충분히 쉬기 어려운 게 현실이다. 박태현 민주노총 금속노조 반월·시화공단 일반분회 분회장은 "인원이 딱 짜여있고 거기서 1명만 빠져도 힘들기 때문에 연차를 쓴다고 했을 때 쉰다고 했을 때 회사에선 생산 물량이 줄어든다고 싫어한다"고 말한다.

■ 쟁점2. 글로벌 스탠더드?

정부는 연장근로를 주 단위로 묶는 건 "글로벌 스탠더드에 맞지 않다"고 강조한다. 독일과 프랑스, 영국 등의 사례를 들었다. 독일은 6개월, 영국은 17주를 단위로 연장근로 총량을 관리한다. 주 단위로 관리하는 나라는 거의 없다는 게 정부 설명이다.

그러나 유럽은 우리와 여건이 달라 단순 비교해선 안 된다는 반론도 있다. 유럽은 2003년부터 의회 입법 지침으로 '24시간당 11시간 연속 휴식'을 의무화했다. 이번 개편안에 포함된 '근로일 간 11시간 연속 휴식'보다 더 엄격한 건강권 보호 조치다.

실근로시간 차이도 크다. 우리나라는 OECD 국가들보다 3백여 시간을 더 일한다. 날짜로 따지면 39일을 더 일하는 셈이다. 박성우 노무사(시민단체 '직장갑질119' 운영위원)는 "독일은 연간 노동시간이 약 1400시간, 우리보다 500시간이 짧은 OECD 최단시간 노동 국가이고, 프랑스는 법정 근로시간이 35시간"이라고 지적했다.

쟁점3. 근로시간 단축은?

근로시간을 단축하려는 노력이 병행돼야 한다는 지적에 정부는 '근로시간 저축계좌제'를 통해 휴가를 활성하겠다고 했다. 근로시간 저축계좌제는 연장근로 시간을 적립해뒀다가 필요할 때 시간 단위로 쪼개서, 혹은 장기 휴가로 뭉쳐서 사용하는 제도다.

현행 근로기준법은 연장·야간·휴일근로에 대해 가산수당 지급을 원칙으로 하고 있는데, 앞으로는 휴가로 보상받을 수 있게 하자는 것이다. 일과 생활의 균형이 가능할 거라고 강조했다.

그러나 기존 연차 휴가도 다 못 쓰는 상황에서 실효성이 있겠냐는 회의적인 반응도 나온다. 문화체육관광부가 실시한 '근로자 휴가조사'를 보면, 2020년 연차소진율은 71%다. 5일 이상 장기휴가 사용 경험이 있는 상용직은 9.4%였다.

또 연차를 자유롭게 쓸 수 있는 환경을 조성하는 대책이 빠졌다는 지적도 있다. 노동자들이 눈치 보지 않고 휴가를 갈 수 있게 휴가 활성화 대국민 캠페인을 벌이겠다고 한 게 대책의 전부였다.

정부는 이날부터 다음 달 17일까지 40일간 입법 예고 기간을 거쳐 6∼7월 근로기준법 등 관련 법 개정안을 국회에 제출할 계획이다. 민주당과 정의당 등 야당과 노동계가 반대하고 있어 향후 국회 논의 과정에서 진통이 예상된다. 또 개편안 마련 과정에 노동계와 대화가 없었던 만큼 현장 안착이 쉽지 않을 거란 지적도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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