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특파원 리포트] ‘강제동원’ 대통령이 확실하게 사과한 독일…내용 살펴보니

입력 2023.03.08 (07:04) 수정 2023.03.08 (10:0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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빌리 브란트 서독 총리의  바르샤바 ‘유대인 추념비’ 앞 사과 (1970년 12월 7일)빌리 브란트 서독 총리의 바르샤바 ‘유대인 추념비’ 앞 사과 (1970년 12월 7일)

■ 사과와 반성 한마디 없던 일본 총리…"역사인식 계승"?

지난 6일 기시다 후미오 일본 총리는 "역사 인식에 관해서는 역대 내각의 입장을 전체적으로 계승해왔고, 앞으로도 이어갈 것"이라고 말했다. 일제강점기 강제동원 피해자 배상 문제를 한국이 '제3자 변제' 방식으로 먼저 풀겠다고 나선 것에 대한 반응이었다. 사과와 반성은 한 마디도 없었고, 대신 '역사인식 계승'이란 두루뭉술한 표현만 있었다.

한국 국민에게 '통절한 반성과 마음으로부터의 사죄'를 담은 1998년 '김대중-오부치 공동선언'을 계승하겠다는 의지를 밝힌 것을 보이지만, 공동 선언에 언급된 표현을 입에 담지 않았다. 피해자가 해결책을 제시하고 가해자가 이를 수용하는 상황에서 일본은 제대로 된 사과조차 하지 않았다.

기시다 후미오 일본 총리기시다 후미오 일본 총리

■ 독일 강제동원 피해자도 한국과 '닮은 꼴'

제2차 세계대전 당시 나치 독일의 강제 노역자는 모두 약 2천600만 명이었고, 그 중 절반 가까이가 외국인 노동자들이었다. 전쟁 수행을 위해 독일 군수 기업에 인력이 필요하자, 나치 독일은 자신들이 점령했던 폴란드, 체코 등에 사람들을 강제로 동원했다. 당시 독일의 강제노역자들은 한국 강제동원 피해자들과 마찬가지로 비인간적인 근로 여건 속에 강제노역에 시달렸고 사망자도 속출했다.

1990년대부터 피해자들이 미국 등지에서 집단 손해배상 소송에 나서면서 독일의 강제동원 문제가 본격적으로 공론화가 됐다. 이 역시 한국과 유사하다. 하지만 강제동원 피해자들의 요구에 대해 독일과 일본의 대응은 확연히 달랐다.


■ "독일 국민을 대신해 용서를 구합니다"…독일 대통령의 '명확한 책임 인정'· '분명한 사과'

1999년 12월 요하네스 라우 당시 독일 대통령은 강제징용 피해자에 대해 사과 성명을 발표했다. 독일 정부와 독일 기업들이 재단을 만들어 피해자 배상을 하기로 한 뒤 요하네스 라우 독일 대통령이 직접 사과의 뜻을 전한 것이다.

그는 독일 기업들이 강제노역으로 경제적 이득을 축적한 사실을 강조하며, 이들에게 강제징용 피해자 지원을 위한 재단에 참여하라고 적극적으로 독려했다. 그는 사과에 앞서 '책임'을 강조했다.

전쟁이 끝난 후 54년 동안 나치 전쟁 운영에 의해 학대받은 사람들은 보상을 기다려야 했습니다. 이 문제에 대한 협상이 가능해진 것은 유럽의 분단이 극복된 이후였습니다.

2차 대전 당시 많은 독일 기업들이 강제노동으로 부를 축적했습니다. 그들 중 일부는 이미 공개적으로 책임을 인정하고 물질적 보상을 약속했습니다. 그러나 독일 정부와 기업이 만든 재단은 이러한 약속을 보다 폭넓게 적용할 것입니다. 이제 가능한 한 많은 기업이 가능한 한 빨리 참여해야 합니다. 그래야 독일 경제가 책임을 다한다는 사실이 분명해집니다.

요하네스 라우 독일 대통령 성명(1999년 12월 22일)

요하네스 라우 당시 독일 대통령 성명에서 특히 인상적인건 바로 명확한 '사과'였다. 그는 강제징용 피해자에게 필요한 건 돈이 아니라는 걸 잘 알았다. 그는 자신들이 어떤 잘못에 대해 왜 사과하는지 솔직한 표현으로 용서를 구했다.

우리 모두는 돈이 범죄 피해자에게 실제로 보상할 수 없다는 것을 알고 있습니다. 우리 모두는 수백만 명의 여성과 남성에게 가해진 고통을 되돌릴 수 없다는 것을 알고 있습니다.

(중략) 많은 사람들에게 돈은 결정적인 요소가 아닙니다. 그들은 그들의 고통이 고통으로 인식되기를 원하고, 그들에게 행해진 잘못이 잘못되었다고 불리기를 원합니다. 오늘 나는 독일 지배하에서 노예 노동과 강제 노동을 해야만 했던 모든 이들을 추모하며 독일 국민을 대신해 용서를 구합니다. 우리는 그들의 고통을 잊지 않을 것입니다

요하네스 라우 독일 대통령 성명(1999년 12월 22일)

한국 강제 징용 피해자들도 필요한 건 돈이 아니다. 그들 역시 그들의 고통이 고통으로 인식되기를 원하고, 그들에게 행해진 잘못이 잘못되었다고 불리기를 원한다. 사과 없이 돈만 남은 한국 정부 해법에 비판이 나오는 이유다.

요하네스 라우 전 독일 대통령요하네스 라우 전 독일 대통령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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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입력 2023-03-08 07:04:00
    • 수정2023-03-08 10:09:2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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빌리 브란트 서독 총리의  바르샤바 ‘유대인 추념비’ 앞 사과 (1970년 12월 7일)
■ 사과와 반성 한마디 없던 일본 총리…"역사인식 계승"?

지난 6일 기시다 후미오 일본 총리는 "역사 인식에 관해서는 역대 내각의 입장을 전체적으로 계승해왔고, 앞으로도 이어갈 것"이라고 말했다. 일제강점기 강제동원 피해자 배상 문제를 한국이 '제3자 변제' 방식으로 먼저 풀겠다고 나선 것에 대한 반응이었다. 사과와 반성은 한 마디도 없었고, 대신 '역사인식 계승'이란 두루뭉술한 표현만 있었다.

한국 국민에게 '통절한 반성과 마음으로부터의 사죄'를 담은 1998년 '김대중-오부치 공동선언'을 계승하겠다는 의지를 밝힌 것을 보이지만, 공동 선언에 언급된 표현을 입에 담지 않았다. 피해자가 해결책을 제시하고 가해자가 이를 수용하는 상황에서 일본은 제대로 된 사과조차 하지 않았다.

기시다 후미오 일본 총리
■ 독일 강제동원 피해자도 한국과 '닮은 꼴'

제2차 세계대전 당시 나치 독일의 강제 노역자는 모두 약 2천600만 명이었고, 그 중 절반 가까이가 외국인 노동자들이었다. 전쟁 수행을 위해 독일 군수 기업에 인력이 필요하자, 나치 독일은 자신들이 점령했던 폴란드, 체코 등에 사람들을 강제로 동원했다. 당시 독일의 강제노역자들은 한국 강제동원 피해자들과 마찬가지로 비인간적인 근로 여건 속에 강제노역에 시달렸고 사망자도 속출했다.

1990년대부터 피해자들이 미국 등지에서 집단 손해배상 소송에 나서면서 독일의 강제동원 문제가 본격적으로 공론화가 됐다. 이 역시 한국과 유사하다. 하지만 강제동원 피해자들의 요구에 대해 독일과 일본의 대응은 확연히 달랐다.


■ "독일 국민을 대신해 용서를 구합니다"…독일 대통령의 '명확한 책임 인정'· '분명한 사과'

1999년 12월 요하네스 라우 당시 독일 대통령은 강제징용 피해자에 대해 사과 성명을 발표했다. 독일 정부와 독일 기업들이 재단을 만들어 피해자 배상을 하기로 한 뒤 요하네스 라우 독일 대통령이 직접 사과의 뜻을 전한 것이다.

그는 독일 기업들이 강제노역으로 경제적 이득을 축적한 사실을 강조하며, 이들에게 강제징용 피해자 지원을 위한 재단에 참여하라고 적극적으로 독려했다. 그는 사과에 앞서 '책임'을 강조했다.

전쟁이 끝난 후 54년 동안 나치 전쟁 운영에 의해 학대받은 사람들은 보상을 기다려야 했습니다. 이 문제에 대한 협상이 가능해진 것은 유럽의 분단이 극복된 이후였습니다.

2차 대전 당시 많은 독일 기업들이 강제노동으로 부를 축적했습니다. 그들 중 일부는 이미 공개적으로 책임을 인정하고 물질적 보상을 약속했습니다. 그러나 독일 정부와 기업이 만든 재단은 이러한 약속을 보다 폭넓게 적용할 것입니다. 이제 가능한 한 많은 기업이 가능한 한 빨리 참여해야 합니다. 그래야 독일 경제가 책임을 다한다는 사실이 분명해집니다.

요하네스 라우 독일 대통령 성명(1999년 12월 22일)

요하네스 라우 당시 독일 대통령 성명에서 특히 인상적인건 바로 명확한 '사과'였다. 그는 강제징용 피해자에게 필요한 건 돈이 아니라는 걸 잘 알았다. 그는 자신들이 어떤 잘못에 대해 왜 사과하는지 솔직한 표현으로 용서를 구했다.

우리 모두는 돈이 범죄 피해자에게 실제로 보상할 수 없다는 것을 알고 있습니다. 우리 모두는 수백만 명의 여성과 남성에게 가해진 고통을 되돌릴 수 없다는 것을 알고 있습니다.

(중략) 많은 사람들에게 돈은 결정적인 요소가 아닙니다. 그들은 그들의 고통이 고통으로 인식되기를 원하고, 그들에게 행해진 잘못이 잘못되었다고 불리기를 원합니다. 오늘 나는 독일 지배하에서 노예 노동과 강제 노동을 해야만 했던 모든 이들을 추모하며 독일 국민을 대신해 용서를 구합니다. 우리는 그들의 고통을 잊지 않을 것입니다

요하네스 라우 독일 대통령 성명(1999년 12월 22일)

한국 강제 징용 피해자들도 필요한 건 돈이 아니다. 그들 역시 그들의 고통이 고통으로 인식되기를 원하고, 그들에게 행해진 잘못이 잘못되었다고 불리기를 원한다. 사과 없이 돈만 남은 한국 정부 해법에 비판이 나오는 이유다.

요하네스 라우 전 독일 대통령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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