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9층시사국] 대지진 현장 가보니…“거의 매일 여진”

입력 2023.03.09 (11:03) 수정 2023.03.09 (16:2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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평화가 무너져 내린 건 한 순간이었습니다.
튀르키예 남부도시를 뒤흔든 규모 7.8의 강진.
모든 것이 힘없이 주저앉은 아비규환의 현장을 찾았습니다.

아직 구조되지 못했어요.

한 명이라도 더 살리기 위한, 그리고 살아남기 위한 사투를 목격했습니다.
절망이 기적으로 바뀌던 순간들…

(다들 살아 계셔?) 모두 괜찮아.

하지만 이 비극은 아직 끝나지 않았습니다. 튀르키예·시리아 강진 사망자가 5만 명을 넘어섰습니다.
또다시 5.6 규모 여진이 발생했습니다.

■ 튀르키예 지진 여파는 현재진행형

취재진은 지진 사흘 만에 튀르키예 남부 재난지역에 도착했습니다.
눈앞에 나타난 처참한 현장.
골든타임을 놓치지 않기 위한 필사의 구조 작업이 계속됐습니다.

갑자기 옆 건물이 흔들려 재빨리 철수합니다.
그 와중에 생존자가 발견되고 서둘러 옮겨집니다.

이스마일/매몰자 가족
“휴가 기간을 맞아 아내와 딸이 할아버지 할머니를 만나러 이곳에 왔고 (사고를 당했습니다.)”

이튿날.
강진의 진앙지 가지안테프를 찾았습니다.
강진 이후 하루에도 몇 번씩 이어지는 여진에 주민들은 집 밖을 떠도는 상황

아흐마드/지진 이재민
“텐트가 꽉 찹니다. 공간이 없어 아이들은 대부분 밖에 지냅니다.”

그렇게 흘러간 2주.
겁에 질린 사람들이 거리로 뛰쳐나오고 하얀 먼지를 일으키며 건물이 속절없이 무너져 내립니다.

튀르키예 현지 취재진
“떨려요. 아직도 계속되고 있습니다. 우리는 간신히 일어설 수 있고요, 이렇게 서로를 붙잡고 있어야 합니다.”

대지진이 발생한 지 보름 만에 규모 6,3의 지진이 또다시 악몽을 재현시켰습니다.

아슬란 가라코글루 / 튀르키예 주민
“땅이 찢어지는 것처럼 느껴졌습니다. 땅이 흔들렸고, 너무 무서웠습니다. 우린 땅이 찢어질 거라고 생각했습니다.”

취재진이 찾은 이재민 캠프에는
잠시 집에 돌아갔던 이재민들이 급히 피신해 돌아와 있었습니다.

푸르칸 카흐라만 / 지진 이재민
“집에 가고 싶지만 집에 있다가 두 번째 지진을 겪고 나니 집에 갈 수 있는 상황이 아닌 것 같습니다.”

■ 이재민 2백만 명…"캠프 수용 범위 넘어"

남현종 / 9층시사국 MC
“튀르키예 대지진이 일어난 지 어느덧 한 달이 지났는데, 아직도 현지의 상황은 안정이 된 것 같지는 않아 q입니다. 문제는 계속 여진이 발생하고 있기 때문인데, 대지진 이후에 보름 만에 엄청난 규모의 여진이 일어났잖아요. 그때 튀르키예 현지에 있었을 텐데, 취재진도 여진의 느낌을 경험했습니까?”

김민정 / 9층시사국 취재기자
“그때 규모가 6.3이었는데요. 그 지진이 발생한 날이 저희 취재진이 현지에 도착한 둘째 날이었어요. 저희가 있던 곳이 진앙지에서 약 110Km 떨어진, 굉장히 멀리 떨어진 곳이었어요. 그런데도 진동이 상당히 강하게 느껴져서 저 같은 경우에는 갑자기 숙소 문이 심하게 흔들려서 깜짝 놀란 기억이 아직도 생생합니다.”

MC
“김민정 기자와 취재진이 현장의 상황을 영상으로 준비해왔는데 함께 보면서 상황을 살펴보겠습니다.”

MC
“여진의 여파 때문에 사람들이 밖에 나와 있는 거죠.”

김 기자
“저 같은 경우에는 순간적으로는 약간 상황 판단도 잘 안 됐었는데 이제 뒤늦게 깨닫고 안전한 곳으로 내려가 보니까 이제 현지인들은 다 저렇게 건물 밖으로 길거리로 나와서 피신을 해 있더라고요. 그래서 보시면 도로 중앙이나 아니면 건물에서 좀 떨어져서 도로 안쪽까지 많이들 나와 있었고 그러니까 지진 트라우마가 심해서 건물 안에 지붕 아래에 있고 싶어 하지 않는구나 이런 느낌을 많이 받았습니다.”

MC
“저런 여진이 사실 저렇게 한 차례만 발생해도 트라우마가 생길 것 같은데 문제는 이 여진이 계속해서 일어나고 있는 거죠.”

김 기자
“맞습니다. 저희가 현지에서 머무는 동안에 거의 매일 여진 소식을 들었었거든요. 지난달 6일 규모 7.8의 강진이 최초로 있었고 그 이후로 이달 초까지 쭉 따져봤을 때 크고 작은 여진을 다 합치면 1만 1천 회에 달합니다. 그래서 강진의 영향으로 약해진 건물들이 이 여진까지 오면서 다시 붕괴되는 그런 상황이 계속 이어지고 있습니다. 이 화면 같은 경우에는 현지 시각으로 지난달 27일에 규모 5.6 여진이 일어났을 때 모습인데요. 한 번 약해졌기 때문에 보시는 것처럼 그냥 순식간에 바로 먼지를 일으키면서 무너지는 모습을 확인을 하실 수가 있습니다.”

MC
“저 정도 상황이면 정말 이 여진 지진에 대한 트라우마가 많이 생길 것 같고 문제는 이 대지진이 일어났을 때 피해자들도 있겠지만 지금 여진 때문에 계속 사망자나 피해자 규모가 늘 것 같습니다.”

김 기자
“네 맞습니다. 최초 강진이 있었던 후에 2주 만에 규모 6.3의 지진이 있었는데요. 그날을 기점으로 해서 딱 하루 만에 사망자 집계가 1천 명이 확 뛰었어요. 그러니까 이런 상황을 봤을 때는 여진 그다음에 추가 지진의 영향으로 인해서 사망자가 크게 늘고 있다. 이렇게 판단을 할 수 있을 것 같습니다.”

MC
“이런 피해를 겪은 이재민들의 상태는 좀 어땠습니까”

김 기자
“튀르키예에서만 이재민이 200만 명이에요. 그래서 너무 숫자가 많다 보니까 사실 튀르키예의 정부에서 아무리 캠프를 크게 운영을 해도 이 200만 명을 다 수용할 수는 없거든요.”

김 기자
“그래서 일부 이재민들 같은 경우에는 그냥 손상된 집 옆에 그냥 텐트를 쳐놓고 개별적으로 생활하시는 분들이 있었는데 이분들 같은 경우에 상황이 가장 열악해서 저렇게 무너진 좀 손상된 집 옆에 텐트를 치고 생활하시다 보니까 저런 집들이 또 여진이 와서 무너지게 되면 또 크게 위험할 수가 있거든요. 저런 위험한 상황이 계속 노출이 되어 있는 상황이고요. 그리고 제가 이야기를 나눠봤더니 가장 큰 눈앞의 문제가 물 부족이더라고요 간간히 정부에서 물을 공급하기는 하는데 온 가족이 물을 조금 공급을 받아서 식수로도 쓰고 씻기도 하고 이렇게 쓰다 보니까 금방 물이 고갈이 되는 거죠. 그래서 물 부족을 토로하시는 분들이 굉장히 많았습니다.”

녹취) 이재민
“씻는 곳도 없고 물도 충분하지 않습니다. 텐트 안에서 씻고 있는데 다른 방법도 없어서 매우 불편합니다.”

MC
“이런 대형 재난이 닥쳤을 때 가장 걱정이 되는 건 어린 아이들입니다. 어린이들의 상태는 어땠나요.”

김 기자
“사실 제가 이재민 캠프로 가면서 제일 많이 들었던 생각이 뭐 어른들은 그냥 참는다고 치는데 그러면 애들은 어떡하지 이 생각이 사실 제일 많이 들었거든요. 그래서 캠프에 도착을 해서도 아이들이 있는 가정 위주로 많이 인터뷰를 하고 만나봤는데요.”

김 기자
“ 일단 이재민 캠프에 가면 룰이 하나 있습니다. 그게 뭐냐면 한 가정당 인원수 상관없이 텐트는 무조건 하나예요. 그러니까 가족이 많은 경우에는 거의 열 명에 가까운 사람들이 좁은 텐트 하나에서 살고 있는 상황이었는데 사실 이러면 너무 비좁다 보니까 아이들의 경우에는 굉장히 답답할 수 있잖아요.
그런데 아이들이 너무 밝고 너무 많이 웃고 있어서 오히려 조금 마음이 아팠던 그런 기억이 있고요. 또 그나마 위로가 되는 게 있다면 아이들에 대한 지원은 계속되고 있었다는 건데 영상을 보시면 영상 속에 아이들이 인형이나 장난감 이런 것들을 갖고 놀고 있는데 그런 것들은 집에서 챙겨온 게 아니고 다 지원을 받은 물품이더라고요.
그리고 이 밖에도 이재민촌에 인형 탈을 쓰고 와서 아이들과 놀아주는 그런 분들도 계셨고 또 지금 지진 피해 때문에 학교가 문을 닫으니까 이재민촌에 임시 도서관 같은 것들을 마련해 놓고 아이들이 계속 공부를 할 수 있게끔 이런 환경도 마련해 주고 있었습니다.”

MC
“포옹을 하는 모습인데 좀 위로를 해주고 오신 건가요?”

김 기자
“저때 사실 인터뷰를 마치고 이제 작별 인사를 하던 상황이었는데 제가 튀르키예 현지어를 못하니까 이제 영어로 굉장히 짧게 ‘저도 기도를 드리겠습니다’ 이렇게만 말씀을 드렸었는데 갑자기 작별 인사를 하면서 안아주시더라고요. 그러니까 뭔가 언어로 잘 통하지는 않았지만 언어는 안 통하더라도 사람들 사람으로서 마음이 조금 오고 가지 않았나 그런 생각이 듭니다.”

MC
“지금 저 모습이 튀르키예 현장의 모습이고 사실 그러나 이번 지진이 튀르키예와 시리아 국경 접경 부근에서 일어났잖아요.
시리아 난민들의 상태는 더 나쁘다고 하던데 어떤 상황입니까?”

김 기자
“사실 튀르키예 살고 계시는 시리아 난민들은 따져보면 내전을 피해서 고향을 떠나서 타국으로 오신 분들이잖아요. 그러니까 사실 이분들은 튀르키예서 살 때 그 상황조차 원래 그렇게 좋지 않았던 분들이에요.
생활환경도 좋지 않고 또 이렇게 지진 피해를 입었어도 티르키에 의지할 곳도 마땅치 않은 분들이 대부분이었습니다.”

김 기자
“그래서 지금 화면을 보시면 화면 속 저 건물에 지금 지진 피해 지역에서 살고 계시던 시리아 난민들이 다 몰려와서 지금 저 건물에 1500명이 같이 살고 있는 상황이었거든요. 그래서 저런 좁은 방 한 칸에 수십 명이 같이 지내다 보니까 조리하는 곳 그다음에 자는 곳 신발 벗어놓는 곳 이런 곳들이 다 구분이 안 돼요 이렇게 한데 엉켜 있어서 위생적으로도 좋지 않은 상황이었고 가장 큰 문제는 시리아 본토는 저것보다 훨씬 더 열악할 수 있다는 점이었는데요.
이번 지진 피해지가 시리아 서북부인데 이 서북부가 반군이 장악하고 있는 지역입니다. 지진이 발생한 직후에 이 지역으로 구호 물자를 국제사회에서 보내려고 했더니 시리아 정부가 여기로 직접 물자를 보내는 것은 시리아에 대한 주권 침해다 이렇게 반대를 했었어요.
사실상 정치적인 이유 때문에 이재민들에 대한 지원이 어려워졌던 건데 그 이후에 지원 통로 2곳이 추가로 개방이 되기는 했습니다만 지금 시리아에서만 이재민이 10만 명에 달하는 것으로 파악이 되고 있어서 이재민 수에 비하면 여전히 지원이 부족하다 이렇게 파악을 할 수 있겠습니다.”

MC
“저 현장 상황을 한 번이라도 가본 사람이라면 혹은 또 저 현장에서의 어린 아이들의 맑은 웃음과 저 눈동자를 보고 난 사람이라면 어떤 정치적 반군 이런 걸 떠나서 구호 물품을 전달을 하는 게 도의에 맞지 않나 그런 생각이 듭니다.”

김 기자
“일단은 그래도 저 아이들이 최소한 지진 트라우마는 잊고 살 수 있어야 하지 않나 이런 생각이 많이 들더라고요.”

■ 튀르키예 지진 희생자 추모… 아이들을 위한 마지막 선물 ‘빨간 풍선’

지진으로 완전히 무너져 내린 건물,
회색빛 잔해들 사이로 주인을 잃은 책가방이 보입니다.
분홍색 세발 킥보드는 완전히 부서졌습니다. 킥보드의 주인은 무사하지 못했습니다.

오군 세베르 오쿠르 / 어린이 구호단체
“구조팀들과 함께 하타이에 처음 도착했을 때, 여기서 첫 번째 구조작업을 했습니다. 그래서 여기를 골랐습니다. 여기에 아이들이 있었어요. 구조되지 못했죠.”

겨우 18개월, 4살, 그리고 6살 난 아이들이었습니다.

오쿠르 씨는 빨간 풍선을 불기 시작했습니다.
그리고 무너진 건물 잔해 곳곳에 빨간 풍선들을 매달아 놓기로 했습니다.
아이들에게 주는 마지막 선물입니다.

오군 세베르 오쿠르 / 어린이 구호단체
“사랑과 기쁨을 상징하기 때문에 빨간 풍선을 골랐습니다. 기쁨을 상징하는 다른 색 풍선들도 골랐습니다. 물론, 여기 있는 아이들이 기뻐하지는 않겠죠. 빨간 풍선이 사람들을 울리게 된 건 이번이 처음일 겁니다. 그래서 빨간 풍선을 매달기로 했어요.”

오쿠르 씨가 매달아 놓은 천 개의 풍선들은 이곳에 아이들이 살고 있었다고 우리에게 말하고 있습니다.

취재기자: 김민정
촬영: 김재현 김경민
영상편집: 손보라
자료조사: 정예빈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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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9층시사국] 대지진 현장 가보니…“거의 매일 여진”
    • 입력 2023-03-09 11:03:35
    • 수정2023-03-09 16:21:4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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평화가 무너져 내린 건 한 순간이었습니다.
튀르키예 남부도시를 뒤흔든 규모 7.8의 강진.
모든 것이 힘없이 주저앉은 아비규환의 현장을 찾았습니다.

아직 구조되지 못했어요.

한 명이라도 더 살리기 위한, 그리고 살아남기 위한 사투를 목격했습니다.
절망이 기적으로 바뀌던 순간들…

(다들 살아 계셔?) 모두 괜찮아.

하지만 이 비극은 아직 끝나지 않았습니다. 튀르키예·시리아 강진 사망자가 5만 명을 넘어섰습니다.
또다시 5.6 규모 여진이 발생했습니다.

■ 튀르키예 지진 여파는 현재진행형

취재진은 지진 사흘 만에 튀르키예 남부 재난지역에 도착했습니다.
눈앞에 나타난 처참한 현장.
골든타임을 놓치지 않기 위한 필사의 구조 작업이 계속됐습니다.

갑자기 옆 건물이 흔들려 재빨리 철수합니다.
그 와중에 생존자가 발견되고 서둘러 옮겨집니다.

이스마일/매몰자 가족
“휴가 기간을 맞아 아내와 딸이 할아버지 할머니를 만나러 이곳에 왔고 (사고를 당했습니다.)”

이튿날.
강진의 진앙지 가지안테프를 찾았습니다.
강진 이후 하루에도 몇 번씩 이어지는 여진에 주민들은 집 밖을 떠도는 상황

아흐마드/지진 이재민
“텐트가 꽉 찹니다. 공간이 없어 아이들은 대부분 밖에 지냅니다.”

그렇게 흘러간 2주.
겁에 질린 사람들이 거리로 뛰쳐나오고 하얀 먼지를 일으키며 건물이 속절없이 무너져 내립니다.

튀르키예 현지 취재진
“떨려요. 아직도 계속되고 있습니다. 우리는 간신히 일어설 수 있고요, 이렇게 서로를 붙잡고 있어야 합니다.”

대지진이 발생한 지 보름 만에 규모 6,3의 지진이 또다시 악몽을 재현시켰습니다.

아슬란 가라코글루 / 튀르키예 주민
“땅이 찢어지는 것처럼 느껴졌습니다. 땅이 흔들렸고, 너무 무서웠습니다. 우린 땅이 찢어질 거라고 생각했습니다.”

취재진이 찾은 이재민 캠프에는
잠시 집에 돌아갔던 이재민들이 급히 피신해 돌아와 있었습니다.

푸르칸 카흐라만 / 지진 이재민
“집에 가고 싶지만 집에 있다가 두 번째 지진을 겪고 나니 집에 갈 수 있는 상황이 아닌 것 같습니다.”

■ 이재민 2백만 명…"캠프 수용 범위 넘어"

남현종 / 9층시사국 MC
“튀르키예 대지진이 일어난 지 어느덧 한 달이 지났는데, 아직도 현지의 상황은 안정이 된 것 같지는 않아 q입니다. 문제는 계속 여진이 발생하고 있기 때문인데, 대지진 이후에 보름 만에 엄청난 규모의 여진이 일어났잖아요. 그때 튀르키예 현지에 있었을 텐데, 취재진도 여진의 느낌을 경험했습니까?”

김민정 / 9층시사국 취재기자
“그때 규모가 6.3이었는데요. 그 지진이 발생한 날이 저희 취재진이 현지에 도착한 둘째 날이었어요. 저희가 있던 곳이 진앙지에서 약 110Km 떨어진, 굉장히 멀리 떨어진 곳이었어요. 그런데도 진동이 상당히 강하게 느껴져서 저 같은 경우에는 갑자기 숙소 문이 심하게 흔들려서 깜짝 놀란 기억이 아직도 생생합니다.”

MC
“김민정 기자와 취재진이 현장의 상황을 영상으로 준비해왔는데 함께 보면서 상황을 살펴보겠습니다.”

MC
“여진의 여파 때문에 사람들이 밖에 나와 있는 거죠.”

김 기자
“저 같은 경우에는 순간적으로는 약간 상황 판단도 잘 안 됐었는데 이제 뒤늦게 깨닫고 안전한 곳으로 내려가 보니까 이제 현지인들은 다 저렇게 건물 밖으로 길거리로 나와서 피신을 해 있더라고요. 그래서 보시면 도로 중앙이나 아니면 건물에서 좀 떨어져서 도로 안쪽까지 많이들 나와 있었고 그러니까 지진 트라우마가 심해서 건물 안에 지붕 아래에 있고 싶어 하지 않는구나 이런 느낌을 많이 받았습니다.”

MC
“저런 여진이 사실 저렇게 한 차례만 발생해도 트라우마가 생길 것 같은데 문제는 이 여진이 계속해서 일어나고 있는 거죠.”

김 기자
“맞습니다. 저희가 현지에서 머무는 동안에 거의 매일 여진 소식을 들었었거든요. 지난달 6일 규모 7.8의 강진이 최초로 있었고 그 이후로 이달 초까지 쭉 따져봤을 때 크고 작은 여진을 다 합치면 1만 1천 회에 달합니다. 그래서 강진의 영향으로 약해진 건물들이 이 여진까지 오면서 다시 붕괴되는 그런 상황이 계속 이어지고 있습니다. 이 화면 같은 경우에는 현지 시각으로 지난달 27일에 규모 5.6 여진이 일어났을 때 모습인데요. 한 번 약해졌기 때문에 보시는 것처럼 그냥 순식간에 바로 먼지를 일으키면서 무너지는 모습을 확인을 하실 수가 있습니다.”

MC
“저 정도 상황이면 정말 이 여진 지진에 대한 트라우마가 많이 생길 것 같고 문제는 이 대지진이 일어났을 때 피해자들도 있겠지만 지금 여진 때문에 계속 사망자나 피해자 규모가 늘 것 같습니다.”

김 기자
“네 맞습니다. 최초 강진이 있었던 후에 2주 만에 규모 6.3의 지진이 있었는데요. 그날을 기점으로 해서 딱 하루 만에 사망자 집계가 1천 명이 확 뛰었어요. 그러니까 이런 상황을 봤을 때는 여진 그다음에 추가 지진의 영향으로 인해서 사망자가 크게 늘고 있다. 이렇게 판단을 할 수 있을 것 같습니다.”

MC
“이런 피해를 겪은 이재민들의 상태는 좀 어땠습니까”

김 기자
“튀르키예에서만 이재민이 200만 명이에요. 그래서 너무 숫자가 많다 보니까 사실 튀르키예의 정부에서 아무리 캠프를 크게 운영을 해도 이 200만 명을 다 수용할 수는 없거든요.”

김 기자
“그래서 일부 이재민들 같은 경우에는 그냥 손상된 집 옆에 그냥 텐트를 쳐놓고 개별적으로 생활하시는 분들이 있었는데 이분들 같은 경우에 상황이 가장 열악해서 저렇게 무너진 좀 손상된 집 옆에 텐트를 치고 생활하시다 보니까 저런 집들이 또 여진이 와서 무너지게 되면 또 크게 위험할 수가 있거든요. 저런 위험한 상황이 계속 노출이 되어 있는 상황이고요. 그리고 제가 이야기를 나눠봤더니 가장 큰 눈앞의 문제가 물 부족이더라고요 간간히 정부에서 물을 공급하기는 하는데 온 가족이 물을 조금 공급을 받아서 식수로도 쓰고 씻기도 하고 이렇게 쓰다 보니까 금방 물이 고갈이 되는 거죠. 그래서 물 부족을 토로하시는 분들이 굉장히 많았습니다.”

녹취) 이재민
“씻는 곳도 없고 물도 충분하지 않습니다. 텐트 안에서 씻고 있는데 다른 방법도 없어서 매우 불편합니다.”

MC
“이런 대형 재난이 닥쳤을 때 가장 걱정이 되는 건 어린 아이들입니다. 어린이들의 상태는 어땠나요.”

김 기자
“사실 제가 이재민 캠프로 가면서 제일 많이 들었던 생각이 뭐 어른들은 그냥 참는다고 치는데 그러면 애들은 어떡하지 이 생각이 사실 제일 많이 들었거든요. 그래서 캠프에 도착을 해서도 아이들이 있는 가정 위주로 많이 인터뷰를 하고 만나봤는데요.”

김 기자
“ 일단 이재민 캠프에 가면 룰이 하나 있습니다. 그게 뭐냐면 한 가정당 인원수 상관없이 텐트는 무조건 하나예요. 그러니까 가족이 많은 경우에는 거의 열 명에 가까운 사람들이 좁은 텐트 하나에서 살고 있는 상황이었는데 사실 이러면 너무 비좁다 보니까 아이들의 경우에는 굉장히 답답할 수 있잖아요.
그런데 아이들이 너무 밝고 너무 많이 웃고 있어서 오히려 조금 마음이 아팠던 그런 기억이 있고요. 또 그나마 위로가 되는 게 있다면 아이들에 대한 지원은 계속되고 있었다는 건데 영상을 보시면 영상 속에 아이들이 인형이나 장난감 이런 것들을 갖고 놀고 있는데 그런 것들은 집에서 챙겨온 게 아니고 다 지원을 받은 물품이더라고요.
그리고 이 밖에도 이재민촌에 인형 탈을 쓰고 와서 아이들과 놀아주는 그런 분들도 계셨고 또 지금 지진 피해 때문에 학교가 문을 닫으니까 이재민촌에 임시 도서관 같은 것들을 마련해 놓고 아이들이 계속 공부를 할 수 있게끔 이런 환경도 마련해 주고 있었습니다.”

MC
“포옹을 하는 모습인데 좀 위로를 해주고 오신 건가요?”

김 기자
“저때 사실 인터뷰를 마치고 이제 작별 인사를 하던 상황이었는데 제가 튀르키예 현지어를 못하니까 이제 영어로 굉장히 짧게 ‘저도 기도를 드리겠습니다’ 이렇게만 말씀을 드렸었는데 갑자기 작별 인사를 하면서 안아주시더라고요. 그러니까 뭔가 언어로 잘 통하지는 않았지만 언어는 안 통하더라도 사람들 사람으로서 마음이 조금 오고 가지 않았나 그런 생각이 듭니다.”

MC
“지금 저 모습이 튀르키예 현장의 모습이고 사실 그러나 이번 지진이 튀르키예와 시리아 국경 접경 부근에서 일어났잖아요.
시리아 난민들의 상태는 더 나쁘다고 하던데 어떤 상황입니까?”

김 기자
“사실 튀르키예 살고 계시는 시리아 난민들은 따져보면 내전을 피해서 고향을 떠나서 타국으로 오신 분들이잖아요. 그러니까 사실 이분들은 튀르키예서 살 때 그 상황조차 원래 그렇게 좋지 않았던 분들이에요.
생활환경도 좋지 않고 또 이렇게 지진 피해를 입었어도 티르키에 의지할 곳도 마땅치 않은 분들이 대부분이었습니다.”

김 기자
“그래서 지금 화면을 보시면 화면 속 저 건물에 지금 지진 피해 지역에서 살고 계시던 시리아 난민들이 다 몰려와서 지금 저 건물에 1500명이 같이 살고 있는 상황이었거든요. 그래서 저런 좁은 방 한 칸에 수십 명이 같이 지내다 보니까 조리하는 곳 그다음에 자는 곳 신발 벗어놓는 곳 이런 곳들이 다 구분이 안 돼요 이렇게 한데 엉켜 있어서 위생적으로도 좋지 않은 상황이었고 가장 큰 문제는 시리아 본토는 저것보다 훨씬 더 열악할 수 있다는 점이었는데요.
이번 지진 피해지가 시리아 서북부인데 이 서북부가 반군이 장악하고 있는 지역입니다. 지진이 발생한 직후에 이 지역으로 구호 물자를 국제사회에서 보내려고 했더니 시리아 정부가 여기로 직접 물자를 보내는 것은 시리아에 대한 주권 침해다 이렇게 반대를 했었어요.
사실상 정치적인 이유 때문에 이재민들에 대한 지원이 어려워졌던 건데 그 이후에 지원 통로 2곳이 추가로 개방이 되기는 했습니다만 지금 시리아에서만 이재민이 10만 명에 달하는 것으로 파악이 되고 있어서 이재민 수에 비하면 여전히 지원이 부족하다 이렇게 파악을 할 수 있겠습니다.”

MC
“저 현장 상황을 한 번이라도 가본 사람이라면 혹은 또 저 현장에서의 어린 아이들의 맑은 웃음과 저 눈동자를 보고 난 사람이라면 어떤 정치적 반군 이런 걸 떠나서 구호 물품을 전달을 하는 게 도의에 맞지 않나 그런 생각이 듭니다.”

김 기자
“일단은 그래도 저 아이들이 최소한 지진 트라우마는 잊고 살 수 있어야 하지 않나 이런 생각이 많이 들더라고요.”

■ 튀르키예 지진 희생자 추모… 아이들을 위한 마지막 선물 ‘빨간 풍선’

지진으로 완전히 무너져 내린 건물,
회색빛 잔해들 사이로 주인을 잃은 책가방이 보입니다.
분홍색 세발 킥보드는 완전히 부서졌습니다. 킥보드의 주인은 무사하지 못했습니다.

오군 세베르 오쿠르 / 어린이 구호단체
“구조팀들과 함께 하타이에 처음 도착했을 때, 여기서 첫 번째 구조작업을 했습니다. 그래서 여기를 골랐습니다. 여기에 아이들이 있었어요. 구조되지 못했죠.”

겨우 18개월, 4살, 그리고 6살 난 아이들이었습니다.

오쿠르 씨는 빨간 풍선을 불기 시작했습니다.
그리고 무너진 건물 잔해 곳곳에 빨간 풍선들을 매달아 놓기로 했습니다.
아이들에게 주는 마지막 선물입니다.

오군 세베르 오쿠르 / 어린이 구호단체
“사랑과 기쁨을 상징하기 때문에 빨간 풍선을 골랐습니다. 기쁨을 상징하는 다른 색 풍선들도 골랐습니다. 물론, 여기 있는 아이들이 기뻐하지는 않겠죠. 빨간 풍선이 사람들을 울리게 된 건 이번이 처음일 겁니다. 그래서 빨간 풍선을 매달기로 했어요.”

오쿠르 씨가 매달아 놓은 천 개의 풍선들은 이곳에 아이들이 살고 있었다고 우리에게 말하고 있습니다.

취재기자: 김민정
촬영: 김재현 김경민
영상편집: 손보라
자료조사: 정예빈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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