몰래 전입·전출 잇따르는데…“확인 철저”만 반복하는 정부

입력 2023.03.09 (17:4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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누군가 몰래 내 주소지를 다른 곳으로 옮기는 게 가능할까? 반대로 내 주소지에 누군가 몰래 전입하는 일은 가능할까?

답은 '가능하다' 입니다.

말이 안 된다고 생각하겠지만, 종종 곳곳에서 일어나고 있습니다.

1. 몰래 전출…곧바로 담보대출

지난해 6월, 구로구에 전셋집 계약한 김 모 씨.

지난 2월 21일, 김 씨는 성북구 ○○동 주민센터로부터 이상한 전화 한 통을 받았습니다.


"(성북구로) 전입신고하셨는데 여기 사시는 거 맞냐고 묻더라고요. 그래서 무슨 소리하시냐고 저는 아예 움직일 생각 자체도 안 한다고 했어요. 근데 확인해보니까 진짜 전입신고가 된 거에요."
- 김 모 씨

일면식 없는 누군가가 김 씨 이름으로 몰래 전입신고를 했던 겁니다.

난 한 적이 없는데, 대체 누가 전입신고를 한 거지? 신고서를 확인하니, 김 씨 이름의 도장까지 찍혀 있었습니다.

그렇게 김 씨는 순식간에 서류상 성북구 주민이 돼 버렸습니다.

진짜 문제는 그 다음부터였습니다.

김 씨가 전출된 바로 다음 날, 집주인이 전셋집을 담보로 대출을 받아간 겁니다. 서류상으론 김 씨가 이사를 나가 전세가 없는 빈집이었으니, 대출에는 순조롭게 진행됐을 겁니다.

대출금은 1억 6천5백만 원. 김 씨의 주소지는 다시 구로구로 복원됐지만, 집은 언제 경매에 넘어갈지 모르는 상황이 됐습니다.

"진짜 3일간은 거의 밥도 못 먹었어요. 준비를 다 했는데도 이렇게 돼버리면 '어떻게 전세나 월세를 살라는 거지' 라는 생각밖에 안 들더라고요."
- 김 모 씨

2. 몰래 전입…대출 갱신에 '불똥'

이번엔 반대입니다.

30대 A 씨는 2년 전 서울 도봉구의 한 빌라에 전셋집을 마련했습니다. 2년 전세 만기에 맞춰 전세대출 갱신을 준비했습니다.

'전입세대 열람원' 이라는 서류가 필요하다길래 발급받았는데…전혀 모르는 사람이 같은 전셋집의 또다른 세대주로 실려 있었습니다. 지난해 5월 몰래 전입한 걸 뒤늦게 알게 된 겁니다.


한 집에 세대주가 두 명인 상황. A 씨는 전세사기를 걱정해 자주 등기부 등본을 떼보는 편이었지만, 세대주 추가는 등기부에 나오지 않는 내용이었습니다.

모르는 사람이 전입신고를 해오는 경우는 상상도 못 했다고 합니다.

결국, 서류상으로 1주택 2가구가 되면서, A 씨는 대출 연장을 못 받을 처지에 놓였습니다.

"임차인으로서는 엄청 황당하고 그 피해는 고스란히 임차인의 몫이잖아요. 전입신고가 되면 반드시 동사무소에서 기존의 살고 있는 임차인에게 알려야 되는 의무가 있다고 생각합니다."
- A 씨

3. "신고주의라 어쩔 수 없다"

두 피해 사례는 '수법'은 다르지만 모두 허술한 전입신고 제도가 문제였습니다.

현행법상 전입신고는 '신고주의'라 지자체는 30일 이상 거주할 목적을 가진 사람의 신고를 받아줄 수밖에 없다는 게 행정안전부의 설명입니다.


물론 신고를 받아준 뒤 통장이 해당 거주지에 직접 방문하는 등 '사후 조사' 절차를 진행합니다.

하지만 임대차 계약서를 제출한 경우라면 이 '사후 조사'가 면제됩니다. A 씨 집에 몰래 전입한 사람도 임대차 계약서를 제출했기 때문에 사후확인이 면제된 것으로 보입니다.

몰래 전입·전출은 지난해부터 눈에 띄게 늘고 있습니다. 전세사기 일당이 곳곳에서 기승을 부리며, 갖은 수법을 동원한 결과로 보입니다.

여기에 대해 행안부가 내놓은 대책은 '확인 철저'입니다. 전입신고 업무를 처리할 때, 신고자의 신분증을 잘 확인하라는 겁니다.

지난해 10월 권고를 전국 지자체에 내렸지만, 현장 실무자들은 확인 조치만으론 한계가 있다고 말합니다.

"(위조 신분증을 낸다고 해도) 선거할 때처럼 하면 좋은데 (위조 여부를 확인할 수 있는) 그런 시스템이 아니에요."
-성북구 ○○동 관계자

그럼에도 행정안전부가 더 내놓은 대책은 없습니다. 검토 중인 것이라도 없느냐는 취재진의 질문에 '아직은 없다'고만 답했습니다.

4. 최소한 '통보서비스'라도

몰래 전입·전출을 당한 세입자의 피해는 매우 클 수 있습니다. 전세 보증금은 사실상 전 재산이나 마찬가지인 경우가 태반입니다.

근본적 해법은 안되지만, 최소한의 임시방편이 있기는 합니다.

첫째, 전입신고·세대주 변경 통보서비스를 이용할 수 있습니다. 살고 있는 집에 전입신고가 들어왔을 때, 그 내용을 문자로 전달받을 수 있습니다. 정부24에서 무료로 신청 가능합니다.


둘째, 전입세대 열람원을 확인할 수 있습니다. 누군가 내가 살고 있는 집에 전입신고를 했는지 확인할 수 있는 서류입니다. 다만, 온라인 열람은 안 됩니다. 신분증과 임대차계약서를 들고 가까운 주민센터를 방문해야 합니다. 수수료는 300원입니다.

셋째, 몰래 전입·전출 자체는 막을 순 없지만, 전세보증보험으로 보증금은 지킬 수 있습니다. HUG(주택도시보증공사) 등에서 보증보험에 가입할 수 있습니다.

그러나 이는 어디까지나 임시방편입니다. 가장 확실한 방편은 몰래 전입·전출을 정부와 지자체가 원천 차단하는 대책을 세우는 것일 겁니다.

피해는 계속 일어나고 있는데, "신고주의라 어쩔 수 없다" "확인 잘 하면 된다" 란 설명만 반복한다면 국민은 얼마나 공감할 수 있을까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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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몰래 전입·전출 잇따르는데…“확인 철저”만 반복하는 정부
    • 입력 2023-03-09 17:49:53
    취재K

누군가 몰래 내 주소지를 다른 곳으로 옮기는 게 가능할까? 반대로 내 주소지에 누군가 몰래 전입하는 일은 가능할까?

답은 '가능하다' 입니다.

말이 안 된다고 생각하겠지만, 종종 곳곳에서 일어나고 있습니다.

1. 몰래 전출…곧바로 담보대출

지난해 6월, 구로구에 전셋집 계약한 김 모 씨.

지난 2월 21일, 김 씨는 성북구 ○○동 주민센터로부터 이상한 전화 한 통을 받았습니다.


"(성북구로) 전입신고하셨는데 여기 사시는 거 맞냐고 묻더라고요. 그래서 무슨 소리하시냐고 저는 아예 움직일 생각 자체도 안 한다고 했어요. 근데 확인해보니까 진짜 전입신고가 된 거에요."
- 김 모 씨

일면식 없는 누군가가 김 씨 이름으로 몰래 전입신고를 했던 겁니다.

난 한 적이 없는데, 대체 누가 전입신고를 한 거지? 신고서를 확인하니, 김 씨 이름의 도장까지 찍혀 있었습니다.

그렇게 김 씨는 순식간에 서류상 성북구 주민이 돼 버렸습니다.

진짜 문제는 그 다음부터였습니다.

김 씨가 전출된 바로 다음 날, 집주인이 전셋집을 담보로 대출을 받아간 겁니다. 서류상으론 김 씨가 이사를 나가 전세가 없는 빈집이었으니, 대출에는 순조롭게 진행됐을 겁니다.

대출금은 1억 6천5백만 원. 김 씨의 주소지는 다시 구로구로 복원됐지만, 집은 언제 경매에 넘어갈지 모르는 상황이 됐습니다.

"진짜 3일간은 거의 밥도 못 먹었어요. 준비를 다 했는데도 이렇게 돼버리면 '어떻게 전세나 월세를 살라는 거지' 라는 생각밖에 안 들더라고요."
- 김 모 씨

2. 몰래 전입…대출 갱신에 '불똥'

이번엔 반대입니다.

30대 A 씨는 2년 전 서울 도봉구의 한 빌라에 전셋집을 마련했습니다. 2년 전세 만기에 맞춰 전세대출 갱신을 준비했습니다.

'전입세대 열람원' 이라는 서류가 필요하다길래 발급받았는데…전혀 모르는 사람이 같은 전셋집의 또다른 세대주로 실려 있었습니다. 지난해 5월 몰래 전입한 걸 뒤늦게 알게 된 겁니다.


한 집에 세대주가 두 명인 상황. A 씨는 전세사기를 걱정해 자주 등기부 등본을 떼보는 편이었지만, 세대주 추가는 등기부에 나오지 않는 내용이었습니다.

모르는 사람이 전입신고를 해오는 경우는 상상도 못 했다고 합니다.

결국, 서류상으로 1주택 2가구가 되면서, A 씨는 대출 연장을 못 받을 처지에 놓였습니다.

"임차인으로서는 엄청 황당하고 그 피해는 고스란히 임차인의 몫이잖아요. 전입신고가 되면 반드시 동사무소에서 기존의 살고 있는 임차인에게 알려야 되는 의무가 있다고 생각합니다."
- A 씨

3. "신고주의라 어쩔 수 없다"

두 피해 사례는 '수법'은 다르지만 모두 허술한 전입신고 제도가 문제였습니다.

현행법상 전입신고는 '신고주의'라 지자체는 30일 이상 거주할 목적을 가진 사람의 신고를 받아줄 수밖에 없다는 게 행정안전부의 설명입니다.


물론 신고를 받아준 뒤 통장이 해당 거주지에 직접 방문하는 등 '사후 조사' 절차를 진행합니다.

하지만 임대차 계약서를 제출한 경우라면 이 '사후 조사'가 면제됩니다. A 씨 집에 몰래 전입한 사람도 임대차 계약서를 제출했기 때문에 사후확인이 면제된 것으로 보입니다.

몰래 전입·전출은 지난해부터 눈에 띄게 늘고 있습니다. 전세사기 일당이 곳곳에서 기승을 부리며, 갖은 수법을 동원한 결과로 보입니다.

여기에 대해 행안부가 내놓은 대책은 '확인 철저'입니다. 전입신고 업무를 처리할 때, 신고자의 신분증을 잘 확인하라는 겁니다.

지난해 10월 권고를 전국 지자체에 내렸지만, 현장 실무자들은 확인 조치만으론 한계가 있다고 말합니다.

"(위조 신분증을 낸다고 해도) 선거할 때처럼 하면 좋은데 (위조 여부를 확인할 수 있는) 그런 시스템이 아니에요."
-성북구 ○○동 관계자

그럼에도 행정안전부가 더 내놓은 대책은 없습니다. 검토 중인 것이라도 없느냐는 취재진의 질문에 '아직은 없다'고만 답했습니다.

4. 최소한 '통보서비스'라도

몰래 전입·전출을 당한 세입자의 피해는 매우 클 수 있습니다. 전세 보증금은 사실상 전 재산이나 마찬가지인 경우가 태반입니다.

근본적 해법은 안되지만, 최소한의 임시방편이 있기는 합니다.

첫째, 전입신고·세대주 변경 통보서비스를 이용할 수 있습니다. 살고 있는 집에 전입신고가 들어왔을 때, 그 내용을 문자로 전달받을 수 있습니다. 정부24에서 무료로 신청 가능합니다.


둘째, 전입세대 열람원을 확인할 수 있습니다. 누군가 내가 살고 있는 집에 전입신고를 했는지 확인할 수 있는 서류입니다. 다만, 온라인 열람은 안 됩니다. 신분증과 임대차계약서를 들고 가까운 주민센터를 방문해야 합니다. 수수료는 300원입니다.

셋째, 몰래 전입·전출 자체는 막을 순 없지만, 전세보증보험으로 보증금은 지킬 수 있습니다. HUG(주택도시보증공사) 등에서 보증보험에 가입할 수 있습니다.

그러나 이는 어디까지나 임시방편입니다. 가장 확실한 방편은 몰래 전입·전출을 정부와 지자체가 원천 차단하는 대책을 세우는 것일 겁니다.

피해는 계속 일어나고 있는데, "신고주의라 어쩔 수 없다" "확인 잘 하면 된다" 란 설명만 반복한다면 국민은 얼마나 공감할 수 있을까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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