다시 꺼내본 대통령의 ‘초심’…통합·협치·소통

입력 2023.03.10 (07:0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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초심(初心) [명사] 1. 처음에 먹은 마음

어떤 일을 시작할 때면 '앞으로 이렇게 하겠다'는 굳은 결심을 하게 마련입니다. 그 결심을 '초심'이라 부릅니다. 하지만 실제 일을 해나가다 보면 초심을 지키기란 쉽지 않습니다. 때로는 외부 상황이 여의치 않고, 때로는 마음이 흔들리기도 합니다.

그렇더라도 초심을 잊어서는 안 됩니다. 처음 목표했던 대로 나아가고 있는지 확인하려면 그때의 결심을 다시 꺼내봐야 합니다.

1년 전, 2022년 3월 10일, 당선 직후 윤석열 당시 대통령 당선인의 '초심'이 담겨있을 기자회견문을 꺼내봤습니다.

자유민주주의와 시장·민간 중심 경제, 과학기술 선도국가, 한미동맹 재건, 경제안보 강화, 법치와 헌법정신 등, 지난 1년 동안의 국정 운영에서 여러 차례 강조했던 말들이 기자회견문에도 들어있었습니다.

지난 1년, 상대적으로 잘 들리지 않았던 말도 여기에는 있었습니다. 이를테면 '통합'이나 '협치'와 같은 말들입니다.

■ "진보와 보수도 영호남도 따로 없을 것"

"정치적 유불리가 아닌 국민의 이익과 국익이 국정의 기준이 되면, 우리 앞에 진보와 보수의 대한민국도, 영호남도 따로 없을 것입니다."
-윤석열 대통령 당선 기자회견 中(2022년 3월 10일)

윤석열 대통령은 자신의 당선은 "이 나라의 공정과 상식을 바로 세우라는 개혁의 목소리이고, 국민을 편 가르지 말고 통합의 정치를 하라는 국민의 간절한 호소"라면서 위와 같이 말했습니다.

윤 대통령은 취임 직후인 지난해 5월 18일, 국민의힘 의원 100여 명과 함께 광주를 찾았습니다. 보수정당 출신 대통령이, 소속 의원 대부분과 함께 5.18 기념식에 참석한 건 전례가 없는 일이었습니다.

'진보와 보수도, 영호남도 따로 없을 것'이라는 '통합'의 초심을 실천했다는 평가가 나왔습니다. 그로부터 1년이 지났습니다.


조사 주체도, 방식도, 문항도 달라 직접 비교하기는 어렵지만, 지난 1년의 흐름은 엿볼 수 있습니다. 이 수치들만 보면 '진보와 보수도, 영남과 호남도 따로 없을 것'이라는 말은, 적어도 지금까지는 실현되지 못했습니다.

지난해 5.18 기념식 참석 이후, 윤 대통령의 광주·전남 지역 행보는 찾아보기 어려웠습니다. 노동·여성·환경·복지 등의 문제에서 진보 진영 주장을 수용하거나 가치 충돌을 설득하려는 노력도 눈에 띄지 않았습니다.

대통령 직속 '국민통합위원회'가 만들어졌는데, 지난해 12월 '국민통합 추진전략 및 성과 보고회'에서 윤 대통령은 이렇게 말했습니다.

"우리나라에서는 지금 헌법의 자유민주주의에서 또 자유를 지워서 삭제해야 된다고 주장하는, 이런 대규모의 의견을 가진 세력들도 존재하고, 그래서 과연 안정적인 통합이 참 어려운 국가입니다."

윤 대통령의 공식 발언에서 '통합'의 말보다는, 노조 등 일부 단체·세력을 '적폐'로 규정하고 '빠르고 강력하게' 변화를 실천해야 한다는 말이 강조됐습니다.

이런 방식은 '추진력 있다'는 호응을 끌어내기도 했지만, 동시에 '일방적인 국정운영'이라는 반발도 불렀습니다. 지지층과 반대층이 각자 서로 뭉치는 건, '통합'의 반대 방향입니다.


■ "야당과 협치…국민들과 진솔하게 소통"

"의회와 소통하고 야당과 협치하겠습니다. 국정 현안을 놓고 국민들과 진솔하게 소통하겠습니다."
"참모 뒤에 숨지 않고, 정부의 잘못은 솔직히 고백하겠습니다. 현실적인 어려움은 솔직하게 털어놓고 국민 여러분께 이해를 구하겠습니다."
-윤석열 대통령 당선 기자회견 中(2022년 3월 10일)

윤석열 대통령은 '통합'과 함께, 위와 같은 말로 '협치'와 '소통'도 약속했습니다.

윤 대통령은 취임 일주일도 지나지 않은 지난해 5월 16일 국회를 찾아 여야 지도부와 인사를 나누고 시정연설을 하면서, 이 같은 '협치'의 초심을 행동으로 옮기는 첫 발을 내딛었습니다.

'소통'의 약속은 이른바 '용산 시대'의 상징과도 같은 출근길 문답을 통해 이뤄졌습니다. 첫 출근길부터 기자들과 만나 질문을 받고 즉석에서 답을 했습니다. 대통령이 직접 질문을 받는 일은 1년에 손에 꼽을 정도였던 과거 정부와 비교하면 '파격'이었습니다.


1년이 지난 시점, 여론조사로 확인한 성적표는 이렇습니다. 협치와 소통 모두 아직 '미흡하다'는 평가에 가깝습니다.

지난 1년, 윤 대통령은 야당 지도부와는 한 차례도 따로 만나지 않았습니다.

대통령실 참모들은, 과거에는 야당이 비상대책위원회 체제로 운영되는 등 혼란 상황이어서 지도부를 만나기 어렵다고 했었고, 최근에는 야당 대표가 검찰 수사를 받고 있는 만큼 만나는 게 적절하지 않다고 말합니다.

물론 미흡한 '협치'에는 '손바닥을 마주치지 않은' 거대 야당의 책임도 있습니다. 하지만, 동시에 손바닥을 마주치자고 제대로 내밀었는지도 돌아봐야 합니다.

대통령 출근길 문답은 지난해 11월 이후 넉 달째 중단 상태입니다. 현재로서는 뚜렷한 재개 움직임도 보이지 않습니다. 꼭 출근길 문답이 아니더라도, 윤 대통령이 공개적으로 언론의 질문을 받는 자리는 그 뒤로 한 차례도 없었습니다.

'정부의 잘못을 솔직히 고백'하는 일도 지난 1년, 찾아보기 어려웠습니다.

'이태원 참사' 이후 윤 대통령은 추모 위령법회에 참석해 "국민의 생명과 안전을 책임져야 하는 대통령으로서 너무나 비통하고 죄송한 마음"이라고 사과했습니다. 하지만, 구체적인 정부의 잘못은 언급하지 않았습니다.

'현실적인 어려움은 솔직하게 털어놓고 국민 여러분께 이해를 구하는 일' 또한 떠올리기 쉽지 않습니다.

일제 강제동원 피해 정부 해법 발표 뒤 윤 대통령은 한일관계 개선의 필요성을 거듭 강조하고 있습니다. '안보와 경제에서 현실적으로 한일관계 개선이 필요해, 정부가 협상 끝에 내놓은 현 시점 최선의 결론'이라는 뜻으로 읽힙니다. 이런 어려움을 털어놓고 국민들의 이해를 구하는 설명은 충분하지 않아 보입니다.

이제 1년이 지났을 뿐입니다. 윤석열 대통령과 이번 정부에게는 지나온 시간보다 앞으로 나아가야하는 시간이 훨씬 많이 남아있습니다. 처음 목표대로 가고 있는지, '초심'을 다시 꺼내 살펴본 이유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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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다시 꺼내본 대통령의 ‘초심’…통합·협치·소통
    • 입력 2023-03-10 07:04:11
    취재K

초심(初心) [명사] 1. 처음에 먹은 마음

어떤 일을 시작할 때면 '앞으로 이렇게 하겠다'는 굳은 결심을 하게 마련입니다. 그 결심을 '초심'이라 부릅니다. 하지만 실제 일을 해나가다 보면 초심을 지키기란 쉽지 않습니다. 때로는 외부 상황이 여의치 않고, 때로는 마음이 흔들리기도 합니다.

그렇더라도 초심을 잊어서는 안 됩니다. 처음 목표했던 대로 나아가고 있는지 확인하려면 그때의 결심을 다시 꺼내봐야 합니다.

1년 전, 2022년 3월 10일, 당선 직후 윤석열 당시 대통령 당선인의 '초심'이 담겨있을 기자회견문을 꺼내봤습니다.

자유민주주의와 시장·민간 중심 경제, 과학기술 선도국가, 한미동맹 재건, 경제안보 강화, 법치와 헌법정신 등, 지난 1년 동안의 국정 운영에서 여러 차례 강조했던 말들이 기자회견문에도 들어있었습니다.

지난 1년, 상대적으로 잘 들리지 않았던 말도 여기에는 있었습니다. 이를테면 '통합'이나 '협치'와 같은 말들입니다.

■ "진보와 보수도 영호남도 따로 없을 것"

"정치적 유불리가 아닌 국민의 이익과 국익이 국정의 기준이 되면, 우리 앞에 진보와 보수의 대한민국도, 영호남도 따로 없을 것입니다."
-윤석열 대통령 당선 기자회견 中(2022년 3월 10일)

윤석열 대통령은 자신의 당선은 "이 나라의 공정과 상식을 바로 세우라는 개혁의 목소리이고, 국민을 편 가르지 말고 통합의 정치를 하라는 국민의 간절한 호소"라면서 위와 같이 말했습니다.

윤 대통령은 취임 직후인 지난해 5월 18일, 국민의힘 의원 100여 명과 함께 광주를 찾았습니다. 보수정당 출신 대통령이, 소속 의원 대부분과 함께 5.18 기념식에 참석한 건 전례가 없는 일이었습니다.

'진보와 보수도, 영호남도 따로 없을 것'이라는 '통합'의 초심을 실천했다는 평가가 나왔습니다. 그로부터 1년이 지났습니다.


조사 주체도, 방식도, 문항도 달라 직접 비교하기는 어렵지만, 지난 1년의 흐름은 엿볼 수 있습니다. 이 수치들만 보면 '진보와 보수도, 영남과 호남도 따로 없을 것'이라는 말은, 적어도 지금까지는 실현되지 못했습니다.

지난해 5.18 기념식 참석 이후, 윤 대통령의 광주·전남 지역 행보는 찾아보기 어려웠습니다. 노동·여성·환경·복지 등의 문제에서 진보 진영 주장을 수용하거나 가치 충돌을 설득하려는 노력도 눈에 띄지 않았습니다.

대통령 직속 '국민통합위원회'가 만들어졌는데, 지난해 12월 '국민통합 추진전략 및 성과 보고회'에서 윤 대통령은 이렇게 말했습니다.

"우리나라에서는 지금 헌법의 자유민주주의에서 또 자유를 지워서 삭제해야 된다고 주장하는, 이런 대규모의 의견을 가진 세력들도 존재하고, 그래서 과연 안정적인 통합이 참 어려운 국가입니다."

윤 대통령의 공식 발언에서 '통합'의 말보다는, 노조 등 일부 단체·세력을 '적폐'로 규정하고 '빠르고 강력하게' 변화를 실천해야 한다는 말이 강조됐습니다.

이런 방식은 '추진력 있다'는 호응을 끌어내기도 했지만, 동시에 '일방적인 국정운영'이라는 반발도 불렀습니다. 지지층과 반대층이 각자 서로 뭉치는 건, '통합'의 반대 방향입니다.


■ "야당과 협치…국민들과 진솔하게 소통"

"의회와 소통하고 야당과 협치하겠습니다. 국정 현안을 놓고 국민들과 진솔하게 소통하겠습니다."
"참모 뒤에 숨지 않고, 정부의 잘못은 솔직히 고백하겠습니다. 현실적인 어려움은 솔직하게 털어놓고 국민 여러분께 이해를 구하겠습니다."
-윤석열 대통령 당선 기자회견 中(2022년 3월 10일)

윤석열 대통령은 '통합'과 함께, 위와 같은 말로 '협치'와 '소통'도 약속했습니다.

윤 대통령은 취임 일주일도 지나지 않은 지난해 5월 16일 국회를 찾아 여야 지도부와 인사를 나누고 시정연설을 하면서, 이 같은 '협치'의 초심을 행동으로 옮기는 첫 발을 내딛었습니다.

'소통'의 약속은 이른바 '용산 시대'의 상징과도 같은 출근길 문답을 통해 이뤄졌습니다. 첫 출근길부터 기자들과 만나 질문을 받고 즉석에서 답을 했습니다. 대통령이 직접 질문을 받는 일은 1년에 손에 꼽을 정도였던 과거 정부와 비교하면 '파격'이었습니다.


1년이 지난 시점, 여론조사로 확인한 성적표는 이렇습니다. 협치와 소통 모두 아직 '미흡하다'는 평가에 가깝습니다.

지난 1년, 윤 대통령은 야당 지도부와는 한 차례도 따로 만나지 않았습니다.

대통령실 참모들은, 과거에는 야당이 비상대책위원회 체제로 운영되는 등 혼란 상황이어서 지도부를 만나기 어렵다고 했었고, 최근에는 야당 대표가 검찰 수사를 받고 있는 만큼 만나는 게 적절하지 않다고 말합니다.

물론 미흡한 '협치'에는 '손바닥을 마주치지 않은' 거대 야당의 책임도 있습니다. 하지만, 동시에 손바닥을 마주치자고 제대로 내밀었는지도 돌아봐야 합니다.

대통령 출근길 문답은 지난해 11월 이후 넉 달째 중단 상태입니다. 현재로서는 뚜렷한 재개 움직임도 보이지 않습니다. 꼭 출근길 문답이 아니더라도, 윤 대통령이 공개적으로 언론의 질문을 받는 자리는 그 뒤로 한 차례도 없었습니다.

'정부의 잘못을 솔직히 고백'하는 일도 지난 1년, 찾아보기 어려웠습니다.

'이태원 참사' 이후 윤 대통령은 추모 위령법회에 참석해 "국민의 생명과 안전을 책임져야 하는 대통령으로서 너무나 비통하고 죄송한 마음"이라고 사과했습니다. 하지만, 구체적인 정부의 잘못은 언급하지 않았습니다.

'현실적인 어려움은 솔직하게 털어놓고 국민 여러분께 이해를 구하는 일' 또한 떠올리기 쉽지 않습니다.

일제 강제동원 피해 정부 해법 발표 뒤 윤 대통령은 한일관계 개선의 필요성을 거듭 강조하고 있습니다. '안보와 경제에서 현실적으로 한일관계 개선이 필요해, 정부가 협상 끝에 내놓은 현 시점 최선의 결론'이라는 뜻으로 읽힙니다. 이런 어려움을 털어놓고 국민들의 이해를 구하는 설명은 충분하지 않아 보입니다.

이제 1년이 지났을 뿐입니다. 윤석열 대통령과 이번 정부에게는 지나온 시간보다 앞으로 나아가야하는 시간이 훨씬 많이 남아있습니다. 처음 목표대로 가고 있는지, '초심'을 다시 꺼내 살펴본 이유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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