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제 삽만 뜨면 되는데…선감학원 발굴 ‘표류’ 이유는

입력 2023.03.10 (15:2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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경기도 안산 ‘선감학원’ 피해자 매장 터경기도 안산 ‘선감학원’ 피해자 매장 터

1940년대부터 1980년대까지 교화 명목으로 아동·청소년 수천 명을 감금·폭행하고 강제노역시킨 ‘선감학원’.

'선감학원' 터에는 노역 등의 과정에서 숨진 아동·청소년의 시신 여럿이 묻혀있다는 피해자들의 공통적인 증언이 나왔습니다.

학원이 폐쇄되고 40여 년이 흐른 지난해 9월 말이 돼서야, 그곳에서 유해를 찾기 위한 진실화해위원회의 시굴 (본 발굴에 앞선 시험 발굴)이 시작됐습니다.

시굴이 시작된 지 5일 만에 유해 5구가 발견됐습니다. 국내 수용시설 집단 희생 사건 가운데 국가 기관이 유해를 확인한 첫 사례였습니다.

무엇보다 "아이들이 강제로 일하다 죽어 나갔고, 시신은 장례 절차도 없이 땅에 묻혔다"는 '선감학원' 피해자들의 말을 증명할 수 있는 근거가 됐습니다.

1940년대~1980년대.  아동·청소년 수천 명을 감금·폭행하고 강제노역시킨 ‘선감학원’ 모습.1940년대~1980년대. 아동·청소년 수천 명을 감금·폭행하고 강제노역시킨 ‘선감학원’ 모습.

■ "네가 발굴" 핑퐁 게임

하지만 정확한 피해 규모를 확인할 수 있는 '정식 유해 발굴' 작업은, 5달 넘게 소식이 없습니다.

어느 기관 주도로 유해를 발굴할지 정하지 못한 탓입니다.

지난해 10월 진실화해위원회는, 선감학원 사건이 국가 폭력 사건임을 인정하며, 유해발굴 주체로 '중앙정부'와 '경기도' 모두를 지목해 권고했습니다.

"국가경기도는 유해매장 추정지에 대한 유해발굴을 신속히 추진하고 적절한 추모공간을 마련해야 한다"
- 진실화해위원회 선감학원 진실 규명 결정 中 (지난해 10월 20일)

가뜩이나 진실화해위 권고는 강제성이 없는데, 유해발굴 권고를 받은 주체까지 모호한 탓에, '유해를 찾는 일'을 누가 할지를 놓고 힘겨루기가 시작됐습니다.

KBS 취재결과, 경기도는 중앙 정부에서 유해 발굴을 주도적으로 하고, 지자체는 행정 지원만 돕겠다는 입장을, 최근 진실화해위에 전했습니다.

그런데 행정안전부 등 정부 부처는, 유해발굴의 주체가 될 수 있는지 가부조차 공식적으로 밝히지 않는 상황.

전향적인 입장을 보인다고 하더라도, 이미 올해 예산 편성이 끝나, 유해 발굴은 내년에야 시작하게 됩니다.


■ 기약 없어 더 답답

'국가로부터 폭력을 당하다 숨졌으니, 그 피해 규모를 정확히 확인하라'

40년 만에야 국가기관이 내린 결정이지만, 이마저도 '행정 절차'에 가로막혀 또 늦어지고 있는 겁니다.

"부모 얼굴 한번 못 보고 다 간 형제, 친형제보다 더 가까운 사람들 아닙니까? 그러니깐 나는 마음이 참 너무 뭐라고 말할 수가 없어요. 상처가 조금이라도 치유됐으면 좋겠어요"
- 선감학원 피해자 (지난해 9월 28일 첫 유해발굴 당시)

땅에 묻힌 아이들의 유해가 처음 확인됐을 당시 한 피해자가 KBS에 전한 바람은, 발굴 작업을 통해 정확한 사망 규모가 밝혀져, 숨진 동료들의 恨이 조금이라도 씻기는 것이었습니다.

하지만 이 바람, 반년 가량 지난 지금까지 미뤄지고 있고, 언제 이뤄질지 기약도 없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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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이제 삽만 뜨면 되는데…선감학원 발굴 ‘표류’ 이유는
    • 입력 2023-03-10 15:23:19
    취재K
경기도 안산 ‘선감학원’ 피해자 매장 터
1940년대부터 1980년대까지 교화 명목으로 아동·청소년 수천 명을 감금·폭행하고 강제노역시킨 ‘선감학원’.

'선감학원' 터에는 노역 등의 과정에서 숨진 아동·청소년의 시신 여럿이 묻혀있다는 피해자들의 공통적인 증언이 나왔습니다.

학원이 폐쇄되고 40여 년이 흐른 지난해 9월 말이 돼서야, 그곳에서 유해를 찾기 위한 진실화해위원회의 시굴 (본 발굴에 앞선 시험 발굴)이 시작됐습니다.

시굴이 시작된 지 5일 만에 유해 5구가 발견됐습니다. 국내 수용시설 집단 희생 사건 가운데 국가 기관이 유해를 확인한 첫 사례였습니다.

무엇보다 "아이들이 강제로 일하다 죽어 나갔고, 시신은 장례 절차도 없이 땅에 묻혔다"는 '선감학원' 피해자들의 말을 증명할 수 있는 근거가 됐습니다.

1940년대~1980년대.  아동·청소년 수천 명을 감금·폭행하고 강제노역시킨 ‘선감학원’ 모습.
■ "네가 발굴" 핑퐁 게임

하지만 정확한 피해 규모를 확인할 수 있는 '정식 유해 발굴' 작업은, 5달 넘게 소식이 없습니다.

어느 기관 주도로 유해를 발굴할지 정하지 못한 탓입니다.

지난해 10월 진실화해위원회는, 선감학원 사건이 국가 폭력 사건임을 인정하며, 유해발굴 주체로 '중앙정부'와 '경기도' 모두를 지목해 권고했습니다.

"국가경기도는 유해매장 추정지에 대한 유해발굴을 신속히 추진하고 적절한 추모공간을 마련해야 한다"
- 진실화해위원회 선감학원 진실 규명 결정 中 (지난해 10월 20일)

가뜩이나 진실화해위 권고는 강제성이 없는데, 유해발굴 권고를 받은 주체까지 모호한 탓에, '유해를 찾는 일'을 누가 할지를 놓고 힘겨루기가 시작됐습니다.

KBS 취재결과, 경기도는 중앙 정부에서 유해 발굴을 주도적으로 하고, 지자체는 행정 지원만 돕겠다는 입장을, 최근 진실화해위에 전했습니다.

그런데 행정안전부 등 정부 부처는, 유해발굴의 주체가 될 수 있는지 가부조차 공식적으로 밝히지 않는 상황.

전향적인 입장을 보인다고 하더라도, 이미 올해 예산 편성이 끝나, 유해 발굴은 내년에야 시작하게 됩니다.


■ 기약 없어 더 답답

'국가로부터 폭력을 당하다 숨졌으니, 그 피해 규모를 정확히 확인하라'

40년 만에야 국가기관이 내린 결정이지만, 이마저도 '행정 절차'에 가로막혀 또 늦어지고 있는 겁니다.

"부모 얼굴 한번 못 보고 다 간 형제, 친형제보다 더 가까운 사람들 아닙니까? 그러니깐 나는 마음이 참 너무 뭐라고 말할 수가 없어요. 상처가 조금이라도 치유됐으면 좋겠어요"
- 선감학원 피해자 (지난해 9월 28일 첫 유해발굴 당시)

땅에 묻힌 아이들의 유해가 처음 확인됐을 당시 한 피해자가 KBS에 전한 바람은, 발굴 작업을 통해 정확한 사망 규모가 밝혀져, 숨진 동료들의 恨이 조금이라도 씻기는 것이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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