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현장K] 취약층 꾀어 ‘주유소 바지사장’…불법영업 덤터기 씌우고 ‘교체’

입력 2023.03.13 (21:11) 수정 2023.03.14 (14:2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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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앵커]

노숙인의 명의를 가져다 이른바 '바지 사장'으로 앉혀놓고, 거액을 탈세하는 범죄, 얼마 전 전해드렸습니다.

방송 뒤 새로운 제보들이 잇따랐는데 주유소들이 빼돌린 면세유를 팔아 수익을 챙긴 뒤에 불법 바지 사장에게 덤터기 씌우고 사라진다는 겁니다.

현장K, 황다예 기자가 취재했습니다.

[리포트]

광양항과 제철소가 인접한 산업도로, 화물차가 오가는 길목마다 주유소들이 들어서 있습니다.

그 중에서도 저렴한 가격으로 단골을 끌어모았던 이 주유소.

알고 보니, 몰래 빼돌린 선박용 면세유를 섞어 파는 곳이었습니다.

[주유소 부지 임대인 : "여기는 가짜(면세유)를 걸렸어요. 선박용 경유는 세금이 없기 때문에..."]

탈세 등이 적발되면서 지난해 초 '사업 정지' 조치도 내려졌습니다.

하지만 1년에 걸친 불법 영업에 대해 아무도 책임지는 사람이 없습니다.

업주를 수소문해 봤더니, 200km 떨어진 대전에 살고 있었습니다.

[A 씨/주유소 명의상 대표 : "주유소를 명의만 내가 한 거지. 나이가 73인데 이런 걸 하겠어요."]

재작년, 지인으로부터 소개받은 일당에게 인감 서류 등을 넘겼더니, 주유소 '바지 사장'이 돼 있었다는 겁니다.

[A 씨/주유소 명의상 대표 : "신용불량자냐고 그래서 아니라고 나 (기초)수급자라고 그랬더니, 목돈을 해줄 테니 명의를 좀 빌려달라 해서..."]

실제로 영업을 했던 일당은 수사와 동시에 잠적했고, 경찰의 소환 통보와 2천만 원 넘는 체납 세금, 4천만 원대 주유소 채무까지 모두 A 씨의 몫이 됐습니다.

이처럼 명의를 도용해 불법 영업을 하는 주유소가 이곳 한 곳만이 아니라는 제보가 들어와, 직접 현장을 찾아가 봤습니다.

석유사업법 위반으로 지난해부터 수사선상에 오른 이 주유소, 서류상의 '대표'란 사람은 인천의 고시원에 살고 있습니다.

이런 '명의 도용' 주유소가 취재진이 파악한 것만 3곳입니다.

[주유소 부지 임대인 : "경쟁이 심하니까 정상적으로 할 사람은 안 해. 차 많이 다니고 가격 경쟁이 심한 데가 지금 전부 다 하고 있어요."]

이들은, 불법적으로 빼돌린 이른바 '무자료 기름'을 싸게 팔아 손님을 끌고 큰 차익을 남깁니다.

석유관리원 단속에 걸리는 시간은 통상적으로 6개월.

처음부터 그 기간만 영업할 계획으로 가짜 사장을 물색한 뒤, 세무조사와 수사 등의 모든 책임을 덮어씌우고 본인들은 잠적하는 겁니다.

[주유업계 관계자/음성변조 : "면세유라든지 항공유라든지 선박용 기름이라든지 무자료로 빼돌려가지고 그렇게 하는 사례들이 많은 거거든요. 형사처벌도 굉장히 센 편이라 보통 바지사장 두고 하는..."]

탈세의 온상임에도 불구하고 '바지 사장'을 내세운 탓에 처벌과 환수조차 어렵습니다.

[주유소 부지 임대인 : "잡으려 하면 이미 사업자는 바뀌어서 잡을 수가 없어요. 딱 두 번 해 먹고 도망가 버리니까."]

[A 씨/주유소 명의상 대표 : "(저한테) 목돈 해준다 그래갖고 한 3개월 연락하다 딱 끊겨버린 거예요. 사건이 이렇게 될 줄 알았으면 나는 이것도 안 했죠."]

'면세유' 뿐 아니라 품질 미달의 '가짜 기름'를 파는 주유소도 매년 70곳 넘게 적발됩니다.

하지만 이런 곳도 상당수가 '바지 사장'을 앉혀놔서, '실제 업주'가 처벌받은 사례는 서너 곳에 불과합니다.

현장 K, 황다예입니다.

촬영기자:허수곤/영상편집:황보현평/그래픽:노경일

[앵커]

이 문제 취재한 황다예 기자 나와 있습니다.

그러니까 정리해보면, 주유소 '불법영업'과 '명의도용'은 사실상 한 세트처럼 이뤄지는군요?

[기자]

네, 아시다시피 기름은 가격의 절반 이상이 세금, 유류세죠.

하지만 농업용, 어업용, 군납용은 세금이 안 붙거나 적게 붙는 '면세유'입니다.

보통, 주유소의 영업이익률이 잘해야 3% 라고 하는데, 이런 면세 기름을 빼돌려서 팔면 이익률이 15% 정도, 즉 '5배' 정도는 버는 셈입니다.

다만, 전국 주유소의 기름 거래 현황은, 주 단위로 석유관리원에 보고되기 때문에, 결국은 언젠가(는) 단속에 걸리게 돼 있고, 그때를 대비해서 일종의 '총알받이' 역할로, 명의상 대표를 구하는 겁니다.

[앵커]

그러니까 처음부터 '걸릴 걸 감안하고' 바지사장을 앉힌다는 얘긴데, 정작 주범들은 법망에도 안 걸리는, 사실상 '법을 비웃는' 상황이군요?

[기자]

네, 적발되더라도 자기들 이름으로 걸린 게 아니기 때문에, 또다시 사업자 명의와 간판을 바꿔서 버티기 식으로 (불법)영업을 합니다.

이 과정에서 '바지 사장'은 정기적으로 바꾸게 되는데, 보통 6개월 단위로 돌려쓰는 것 같다고, 명의를 빌려준 당사자들이 전했습니다.

[앵커]

이런 실태, 당국에서는 파악을 하고 있을까요?

전국적으로 얼마나 되는지 말이죠.

[기자]

일단, 명확한 통계나 공식적인 현황조사는 없습니다.

제가 제보를 받고, 자료 조사와 현장 취재에 대략 닷새 정도 걸렸는데, 특정 지역에서만 3곳을 (바로) 찾았습니다.

2016년에 이른바 '천안팀'이라고 불리는 대규모 '바지사장' 제공 조직이 검거된 일이 있는데, 이 사건 판결문을 보면, 자신들이 관리하는 명의도용 주유소만 전국에 20곳이 넘는다는 진술이 있었습니다.

앞서 소개된 A 씨도 일명 '땅콩' 일당이라고 불리는 명의도용 전담 조직을 만났는데, 그 일당은 아직 검거가 안 된 상태입니다.

이 조직 말고도 더 있을 가능성이 높고요,

따라서 수사를 광역 단위로 확대해서 빨리 검거하지 않으면, 탈세와 가짜 석유 판매, 또 애꿎은 범죄자 양산까지, 여러 문제가 발생할 수 있겠습니다.

[앵커]

네 여기까지 듣겠습니다.

영상편집:전유진/그래픽:노경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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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입력 2023-03-13 21:11:35
    • 수정2023-03-14 14:28:0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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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앵커]

노숙인의 명의를 가져다 이른바 '바지 사장'으로 앉혀놓고, 거액을 탈세하는 범죄, 얼마 전 전해드렸습니다.

방송 뒤 새로운 제보들이 잇따랐는데 주유소들이 빼돌린 면세유를 팔아 수익을 챙긴 뒤에 불법 바지 사장에게 덤터기 씌우고 사라진다는 겁니다.

현장K, 황다예 기자가 취재했습니다.

[리포트]

광양항과 제철소가 인접한 산업도로, 화물차가 오가는 길목마다 주유소들이 들어서 있습니다.

그 중에서도 저렴한 가격으로 단골을 끌어모았던 이 주유소.

알고 보니, 몰래 빼돌린 선박용 면세유를 섞어 파는 곳이었습니다.

[주유소 부지 임대인 : "여기는 가짜(면세유)를 걸렸어요. 선박용 경유는 세금이 없기 때문에..."]

탈세 등이 적발되면서 지난해 초 '사업 정지' 조치도 내려졌습니다.

하지만 1년에 걸친 불법 영업에 대해 아무도 책임지는 사람이 없습니다.

업주를 수소문해 봤더니, 200km 떨어진 대전에 살고 있었습니다.

[A 씨/주유소 명의상 대표 : "주유소를 명의만 내가 한 거지. 나이가 73인데 이런 걸 하겠어요."]

재작년, 지인으로부터 소개받은 일당에게 인감 서류 등을 넘겼더니, 주유소 '바지 사장'이 돼 있었다는 겁니다.

[A 씨/주유소 명의상 대표 : "신용불량자냐고 그래서 아니라고 나 (기초)수급자라고 그랬더니, 목돈을 해줄 테니 명의를 좀 빌려달라 해서..."]

실제로 영업을 했던 일당은 수사와 동시에 잠적했고, 경찰의 소환 통보와 2천만 원 넘는 체납 세금, 4천만 원대 주유소 채무까지 모두 A 씨의 몫이 됐습니다.

이처럼 명의를 도용해 불법 영업을 하는 주유소가 이곳 한 곳만이 아니라는 제보가 들어와, 직접 현장을 찾아가 봤습니다.

석유사업법 위반으로 지난해부터 수사선상에 오른 이 주유소, 서류상의 '대표'란 사람은 인천의 고시원에 살고 있습니다.

이런 '명의 도용' 주유소가 취재진이 파악한 것만 3곳입니다.

[주유소 부지 임대인 : "경쟁이 심하니까 정상적으로 할 사람은 안 해. 차 많이 다니고 가격 경쟁이 심한 데가 지금 전부 다 하고 있어요."]

이들은, 불법적으로 빼돌린 이른바 '무자료 기름'을 싸게 팔아 손님을 끌고 큰 차익을 남깁니다.

석유관리원 단속에 걸리는 시간은 통상적으로 6개월.

처음부터 그 기간만 영업할 계획으로 가짜 사장을 물색한 뒤, 세무조사와 수사 등의 모든 책임을 덮어씌우고 본인들은 잠적하는 겁니다.

[주유업계 관계자/음성변조 : "면세유라든지 항공유라든지 선박용 기름이라든지 무자료로 빼돌려가지고 그렇게 하는 사례들이 많은 거거든요. 형사처벌도 굉장히 센 편이라 보통 바지사장 두고 하는..."]

탈세의 온상임에도 불구하고 '바지 사장'을 내세운 탓에 처벌과 환수조차 어렵습니다.

[주유소 부지 임대인 : "잡으려 하면 이미 사업자는 바뀌어서 잡을 수가 없어요. 딱 두 번 해 먹고 도망가 버리니까."]

[A 씨/주유소 명의상 대표 : "(저한테) 목돈 해준다 그래갖고 한 3개월 연락하다 딱 끊겨버린 거예요. 사건이 이렇게 될 줄 알았으면 나는 이것도 안 했죠."]

'면세유' 뿐 아니라 품질 미달의 '가짜 기름'를 파는 주유소도 매년 70곳 넘게 적발됩니다.

하지만 이런 곳도 상당수가 '바지 사장'을 앉혀놔서, '실제 업주'가 처벌받은 사례는 서너 곳에 불과합니다.

현장 K, 황다예입니다.

촬영기자:허수곤/영상편집:황보현평/그래픽:노경일

[앵커]

이 문제 취재한 황다예 기자 나와 있습니다.

그러니까 정리해보면, 주유소 '불법영업'과 '명의도용'은 사실상 한 세트처럼 이뤄지는군요?

[기자]

네, 아시다시피 기름은 가격의 절반 이상이 세금, 유류세죠.

하지만 농업용, 어업용, 군납용은 세금이 안 붙거나 적게 붙는 '면세유'입니다.

보통, 주유소의 영업이익률이 잘해야 3% 라고 하는데, 이런 면세 기름을 빼돌려서 팔면 이익률이 15% 정도, 즉 '5배' 정도는 버는 셈입니다.

다만, 전국 주유소의 기름 거래 현황은, 주 단위로 석유관리원에 보고되기 때문에, 결국은 언젠가(는) 단속에 걸리게 돼 있고, 그때를 대비해서 일종의 '총알받이' 역할로, 명의상 대표를 구하는 겁니다.

[앵커]

그러니까 처음부터 '걸릴 걸 감안하고' 바지사장을 앉힌다는 얘긴데, 정작 주범들은 법망에도 안 걸리는, 사실상 '법을 비웃는' 상황이군요?

[기자]

네, 적발되더라도 자기들 이름으로 걸린 게 아니기 때문에, 또다시 사업자 명의와 간판을 바꿔서 버티기 식으로 (불법)영업을 합니다.

이 과정에서 '바지 사장'은 정기적으로 바꾸게 되는데, 보통 6개월 단위로 돌려쓰는 것 같다고, 명의를 빌려준 당사자들이 전했습니다.

[앵커]

이런 실태, 당국에서는 파악을 하고 있을까요?

전국적으로 얼마나 되는지 말이죠.

[기자]

일단, 명확한 통계나 공식적인 현황조사는 없습니다.

제가 제보를 받고, 자료 조사와 현장 취재에 대략 닷새 정도 걸렸는데, 특정 지역에서만 3곳을 (바로) 찾았습니다.

2016년에 이른바 '천안팀'이라고 불리는 대규모 '바지사장' 제공 조직이 검거된 일이 있는데, 이 사건 판결문을 보면, 자신들이 관리하는 명의도용 주유소만 전국에 20곳이 넘는다는 진술이 있었습니다.

앞서 소개된 A 씨도 일명 '땅콩' 일당이라고 불리는 명의도용 전담 조직을 만났는데, 그 일당은 아직 검거가 안 된 상태입니다.

이 조직 말고도 더 있을 가능성이 높고요,

따라서 수사를 광역 단위로 확대해서 빨리 검거하지 않으면, 탈세와 가짜 석유 판매, 또 애꿎은 범죄자 양산까지, 여러 문제가 발생할 수 있겠습니다.

[앵커]

네 여기까지 듣겠습니다.

영상편집:전유진/그래픽:노경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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