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검정고시 출신이네…학폭 피해자인가요?”

입력 2023.03.14 (07:00) 수정 2023.03.14 (11:4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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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검정고시 출신이라고요? 학폭 피해자인가? … 하하, 농담입니다."

어제(13일) 오전, 서울 용산구에 있는 하나은행 한 지점. 안내 업무를 맡을 파견 직원을 뽑는 면접 자리였습니다. 면접관으로 참석한 A 지점장의 발언입니다.

■ "아버지는 무슨 일 하시죠?"

상황은 이랬습니다.

한 지원자가 검정고시 출신이었습니다. A 지점장이 이유를 물었습니다. 특별한 이유가 있었다고 지원자는 답했습니다.

넷플릭스 드라마 '더 글로리'도 있고, 정순신 변호사 사건도 있고, 최근 학교폭력(학폭)이 이슈의 중심이죠. 여기에 과몰입했던 걸까요.

A 지점장은 지원자에게 "학폭 피해자였던거냐"고 되묻습니다.

어색해진 분위기… 바로 '농담'이라고 눙쳤지만, 직무와 아무 관련 없는 질문에 지원자는 몹시 당혹스러웠다고 전했습니다.

A 지점장의 문제 발언, 이뿐만 아닙니다.

지원자의 신원을 확실히 확인해야 한다며 아버지의 직업을 물었습니다.

아버지가 어떤 직업을 가지고 있어야 구직자의 신원이 확실해지는 걸까요. 은행 안내와 구직자의 신원은 어떤 업무 연관성이 있을까요.

한 면접자는 "예쁘게 생긴 것 같다"는 등 외모 평가 발언도 있었다며, 면접 내내 직무와 무관한 질문들이 이어졌다고 증언했습니다.

■ '직무 무관 개인정보' 금지

채용절차법은 채용 과정에서 직무와 관련 없는 개인정보 요구를 금지하고 있습니다. △용모·키·체중 등 신체적 조건 △ 출신 지역·혼인 여부·재산 △부모·형제·자매의 학력·직업·재산 등이 해당합니다.

채용절차법 취지에 정면으로 반하는 내용을 시중은행의 간부가 면접장에서 물은 겁니다.

직장갑질119 박점규 운영위원은 "20~30년 전 '느그 아부지 뭐 하시노' 시절 때나 나오던 질문"이라며 "지금은 매우 중요해진 개인 정보를 캐물었다는 것 자체가 충격적"이라고 지적했습니다.

특히, "공공재적 성격이 강한 은행에서 이런 차별적·모욕적 면접이 있었다는 것은 이해하기 어렵다"며, "지원자뿐 아니라, 학폭 피해자들에 대해서도 사회적 낙오자처럼 취급하는 모욕적인 언사"라고 비판했습니다.

■ 유명인 많은 지점이라서?

A 지점장은 KBS와의 통화에서 "해당 지원자의 학력·경력 사항이 거의 기재돼 있지 않아서 지원자의 정보를 파악하기 위해서 물어본 것"이라며 "앞으로 면접 과정에서 주의하겠다"고 해명했습니다.

하나은행 측은 "해당 지점이 규모가 크고 유명인이 많이 오는 곳이다 보니 고객 정보가 유출되는 데 대해 민감하다"며, "지원자에 대한 정보 없이 덜컥 채용했다 개인정보나 금융정보, 거래 사실 유무가 유출되면 문제가 있어서 그런 질문을 '가볍게' 던진 것 같다"고 해명했습니다.

또, "이러한 일이 발생한 점에 대해서 매우 안타깝게 생각한다"며 "이번 사안에 대해 경각심을 갖고 향후 재발 방지를 위해 노력하겠다"고 밝혔습니다.

면접자의 지위에서 던지는 수많은 '농담' 그리고 '실수'들은 지원자에게 잊기 힘든 비수로 남기도 합니다.

드라마 '더 글로리'에서 "애들은 다 실수하면서 크는 거"라는 학폭 가해자의 말에 대해, 피해자는 이렇게 답합니다. "이런 걸 잘못이라고 하는 거야. 다 알면서 하는 거, 다치라고 하는 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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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검정고시 출신이네…학폭 피해자인가요?”
    • 입력 2023-03-14 07:00:46
    • 수정2023-03-14 11:45:09
    취재K

"검정고시 출신이라고요? 학폭 피해자인가? … 하하, 농담입니다."

어제(13일) 오전, 서울 용산구에 있는 하나은행 한 지점. 안내 업무를 맡을 파견 직원을 뽑는 면접 자리였습니다. 면접관으로 참석한 A 지점장의 발언입니다.

■ "아버지는 무슨 일 하시죠?"

상황은 이랬습니다.

한 지원자가 검정고시 출신이었습니다. A 지점장이 이유를 물었습니다. 특별한 이유가 있었다고 지원자는 답했습니다.

넷플릭스 드라마 '더 글로리'도 있고, 정순신 변호사 사건도 있고, 최근 학교폭력(학폭)이 이슈의 중심이죠. 여기에 과몰입했던 걸까요.

A 지점장은 지원자에게 "학폭 피해자였던거냐"고 되묻습니다.

어색해진 분위기… 바로 '농담'이라고 눙쳤지만, 직무와 아무 관련 없는 질문에 지원자는 몹시 당혹스러웠다고 전했습니다.

A 지점장의 문제 발언, 이뿐만 아닙니다.

지원자의 신원을 확실히 확인해야 한다며 아버지의 직업을 물었습니다.

아버지가 어떤 직업을 가지고 있어야 구직자의 신원이 확실해지는 걸까요. 은행 안내와 구직자의 신원은 어떤 업무 연관성이 있을까요.

한 면접자는 "예쁘게 생긴 것 같다"는 등 외모 평가 발언도 있었다며, 면접 내내 직무와 무관한 질문들이 이어졌다고 증언했습니다.

■ '직무 무관 개인정보' 금지

채용절차법은 채용 과정에서 직무와 관련 없는 개인정보 요구를 금지하고 있습니다. △용모·키·체중 등 신체적 조건 △ 출신 지역·혼인 여부·재산 △부모·형제·자매의 학력·직업·재산 등이 해당합니다.

채용절차법 취지에 정면으로 반하는 내용을 시중은행의 간부가 면접장에서 물은 겁니다.

직장갑질119 박점규 운영위원은 "20~30년 전 '느그 아부지 뭐 하시노' 시절 때나 나오던 질문"이라며 "지금은 매우 중요해진 개인 정보를 캐물었다는 것 자체가 충격적"이라고 지적했습니다.

특히, "공공재적 성격이 강한 은행에서 이런 차별적·모욕적 면접이 있었다는 것은 이해하기 어렵다"며, "지원자뿐 아니라, 학폭 피해자들에 대해서도 사회적 낙오자처럼 취급하는 모욕적인 언사"라고 비판했습니다.

■ 유명인 많은 지점이라서?

A 지점장은 KBS와의 통화에서 "해당 지원자의 학력·경력 사항이 거의 기재돼 있지 않아서 지원자의 정보를 파악하기 위해서 물어본 것"이라며 "앞으로 면접 과정에서 주의하겠다"고 해명했습니다.

하나은행 측은 "해당 지점이 규모가 크고 유명인이 많이 오는 곳이다 보니 고객 정보가 유출되는 데 대해 민감하다"며, "지원자에 대한 정보 없이 덜컥 채용했다 개인정보나 금융정보, 거래 사실 유무가 유출되면 문제가 있어서 그런 질문을 '가볍게' 던진 것 같다"고 해명했습니다.

또, "이러한 일이 발생한 점에 대해서 매우 안타깝게 생각한다"며 "이번 사안에 대해 경각심을 갖고 향후 재발 방지를 위해 노력하겠다"고 밝혔습니다.

면접자의 지위에서 던지는 수많은 '농담' 그리고 '실수'들은 지원자에게 잊기 힘든 비수로 남기도 합니다.

드라마 '더 글로리'에서 "애들은 다 실수하면서 크는 거"라는 학폭 가해자의 말에 대해, 피해자는 이렇게 답합니다. "이런 걸 잘못이라고 하는 거야. 다 알면서 하는 거, 다치라고 하는 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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