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임종 직전까지 항생제’ 10명 중 8명…존엄한 죽음까지 위협

입력 2023.03.15 (07:0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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말기 암 등으로 임종을 앞둔 10명 중 8명은 항생제 주사를 맞다가 숨진다는 조사결과가 나왔습니다. 임종기 항생제 치료는 무의미한 경우가 많고 오히려 병원에서 항생제 내성균을 초래해 다른 사람의 생명을 위협할 뿐 아니라 존엄한 죽음조차 어렵게 만든다는 지적입니다.


병원서 임종 10명 중 8명, 항생제 주사 맞다가 숨져

경북대병원 등 공동연구팀이 전국 13개 병원에서 사망한 1,350명을 대상으로 항생제 처방 내용을 분석한 결과, 84%가 임종 직전까지 항생제 주사를 맞은 것으로 나타났습니다.

대상자의 특성을 살펴보면 절반 가까이 암 환자였고 70대 고령층이 많았는데, 임종기 환자의 항생제 사용에 대한 적절성 여부를 따져본 결과 10명 중 6명(64%)은 부적절한 치료였던 것으로 파악됐습니다.


말기 환자에게 항생제 치료가 실질적으로 도움이 되지 않고 무의미한데도 불구하고 임종 직전까지 세균을 죽이기 위한 항생제 치료가 지속된 셈입니다.

오히려 의료비 지출을 늘리고 약물 알레르기나 콩팥·간 독성, 장염 등 항생제 부작용까지 유발할 수 있는 잠재적 위험성을 높이게 됩니다.

■ 임종기, 2가지 항생제는 기본…가장 광범위한 항균력 가진 '카바페넴'도 절반 가까이 사용

구체적으로 임종을 앞둔 환자의 89%에서 평균 2가지 항생제가 투약됐고, 가장 광범위한 항균력을 가진 '카바페넴'도 44%에서 사용한 것으로 나타났습니다. 카바페넴은 인류가 남겨둬야 할 마지막 항생제라 불리는 약입니다.

결국, 항생제를 부적절하게 사용하면 내성이 문제가 됩니다. 임종기에 투여된 항생제를 견뎌낸 다제내성균, 이른바 슈퍼박테리아 발생을 증가시켜 다른 사람에게 쓸 항생제조차 소용없게 만들기 때문입니다.

김신우 경북대병원 감염내과 교수는 "카바페넴은 현재까지 개발된 가장 광범위한 항균력을 가지는 항생제인데 최근 카바페넴 내성 균주들이 많아지고 있다"며 "앞으로 항생제를 선택하기 매우 어려운 시점"이라고 밝혔습니다.

■ 병원서 임종 환자 82%, 다제내성균 배양…임종 앞둔 환자는 격리실로

실제로 이번 연구결과를 살펴보면 병원서 임종한 환자의 82%에서 다제내성균이 배양된 것으로 조사됐습니다. 이는 임종을 맞게 되는 환자의 존엄한 죽음에도 영향을 미칩니다.

박중철 인천성모병원 가정의학과 교수는 "다제내성균이 배양된 환자는 내성균이 다른 사람에게 전파되는 걸 막기 위해 격리실로 옮겨진다"면서 "가족과 함께 존엄한 죽음을 맞이해야 할 환자가 격리된 채 혼자 죽음을 맞게 된다"고 말했습니다.

■ 임종 앞두고 항생제 치료를 계속하는 이유는 무엇일까?

무엇보다 의사들이 환자의 죽음을 인정하기 어려워하고 임종을 늦추기 위해 최선을 다하는 심리가 있기 때문입니다.

또 환자와 가족들도 임종을 앞둔 상황인데도 끝까지 희망을 잃지 않으려는 마음이 있기 때문입니다.

이런 까닭들이 복합적으로 작용해 항생제를 끊지 못하고 계속 쓰게 만드는 겁니다.

미국도 상황은 비슷해 의사 3명 중 1명은 의학적으로 무의미한 치료라고 해도 항생제 치료를 계속한다는 조사 결과가 있습니다.

임종을 앞둔 환자에겐 최선의 치료가 오히려 존엄한 죽음을 방해할 수 있습니다.

이번 연구의 교신저자인 권기태 칠곡경북대병원 감염내과 교수는 "연명의료를 중단하는 절차가 법률로 규정돼 있지만, 항생제 사용에 대해선 명확한 규정이 없는 실정"이라며 "임종기 환자의 고통만 가중시키는 인공호흡기 같은 무의미한 치료에 항생제 투여를 구체적으로 포함시켜 중단할 수 있도록 논의가 촉발돼야 한다"고 강조했습니다.

이번 연구는 대한의학회 영문학술지 JKMS (Journal of Korean Medical Science) 최근호(3월 6일)에 실렸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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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임종 직전까지 항생제’ 10명 중 8명…존엄한 죽음까지 위협
    • 입력 2023-03-15 07:00:12
    취재K

말기 암 등으로 임종을 앞둔 10명 중 8명은 항생제 주사를 맞다가 숨진다는 조사결과가 나왔습니다. 임종기 항생제 치료는 무의미한 경우가 많고 오히려 병원에서 항생제 내성균을 초래해 다른 사람의 생명을 위협할 뿐 아니라 존엄한 죽음조차 어렵게 만든다는 지적입니다.


병원서 임종 10명 중 8명, 항생제 주사 맞다가 숨져

경북대병원 등 공동연구팀이 전국 13개 병원에서 사망한 1,350명을 대상으로 항생제 처방 내용을 분석한 결과, 84%가 임종 직전까지 항생제 주사를 맞은 것으로 나타났습니다.

대상자의 특성을 살펴보면 절반 가까이 암 환자였고 70대 고령층이 많았는데, 임종기 환자의 항생제 사용에 대한 적절성 여부를 따져본 결과 10명 중 6명(64%)은 부적절한 치료였던 것으로 파악됐습니다.


말기 환자에게 항생제 치료가 실질적으로 도움이 되지 않고 무의미한데도 불구하고 임종 직전까지 세균을 죽이기 위한 항생제 치료가 지속된 셈입니다.

오히려 의료비 지출을 늘리고 약물 알레르기나 콩팥·간 독성, 장염 등 항생제 부작용까지 유발할 수 있는 잠재적 위험성을 높이게 됩니다.

■ 임종기, 2가지 항생제는 기본…가장 광범위한 항균력 가진 '카바페넴'도 절반 가까이 사용

구체적으로 임종을 앞둔 환자의 89%에서 평균 2가지 항생제가 투약됐고, 가장 광범위한 항균력을 가진 '카바페넴'도 44%에서 사용한 것으로 나타났습니다. 카바페넴은 인류가 남겨둬야 할 마지막 항생제라 불리는 약입니다.

결국, 항생제를 부적절하게 사용하면 내성이 문제가 됩니다. 임종기에 투여된 항생제를 견뎌낸 다제내성균, 이른바 슈퍼박테리아 발생을 증가시켜 다른 사람에게 쓸 항생제조차 소용없게 만들기 때문입니다.

김신우 경북대병원 감염내과 교수는 "카바페넴은 현재까지 개발된 가장 광범위한 항균력을 가지는 항생제인데 최근 카바페넴 내성 균주들이 많아지고 있다"며 "앞으로 항생제를 선택하기 매우 어려운 시점"이라고 밝혔습니다.

■ 병원서 임종 환자 82%, 다제내성균 배양…임종 앞둔 환자는 격리실로

실제로 이번 연구결과를 살펴보면 병원서 임종한 환자의 82%에서 다제내성균이 배양된 것으로 조사됐습니다. 이는 임종을 맞게 되는 환자의 존엄한 죽음에도 영향을 미칩니다.

박중철 인천성모병원 가정의학과 교수는 "다제내성균이 배양된 환자는 내성균이 다른 사람에게 전파되는 걸 막기 위해 격리실로 옮겨진다"면서 "가족과 함께 존엄한 죽음을 맞이해야 할 환자가 격리된 채 혼자 죽음을 맞게 된다"고 말했습니다.

■ 임종 앞두고 항생제 치료를 계속하는 이유는 무엇일까?

무엇보다 의사들이 환자의 죽음을 인정하기 어려워하고 임종을 늦추기 위해 최선을 다하는 심리가 있기 때문입니다.

또 환자와 가족들도 임종을 앞둔 상황인데도 끝까지 희망을 잃지 않으려는 마음이 있기 때문입니다.

이런 까닭들이 복합적으로 작용해 항생제를 끊지 못하고 계속 쓰게 만드는 겁니다.

미국도 상황은 비슷해 의사 3명 중 1명은 의학적으로 무의미한 치료라고 해도 항생제 치료를 계속한다는 조사 결과가 있습니다.

임종을 앞둔 환자에겐 최선의 치료가 오히려 존엄한 죽음을 방해할 수 있습니다.

이번 연구의 교신저자인 권기태 칠곡경북대병원 감염내과 교수는 "연명의료를 중단하는 절차가 법률로 규정돼 있지만, 항생제 사용에 대해선 명확한 규정이 없는 실정"이라며 "임종기 환자의 고통만 가중시키는 인공호흡기 같은 무의미한 치료에 항생제 투여를 구체적으로 포함시켜 중단할 수 있도록 논의가 촉발돼야 한다"고 강조했습니다.

이번 연구는 대한의학회 영문학술지 JKMS (Journal of Korean Medical Science) 최근호(3월 6일)에 실렸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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