탈세 제보자 신원 노출 시키고선 “뭐가 무섭냐”는 세무서

입력 2023.03.15 (11:0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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국세청에 탈세를 신고한 제보자가 신원이 노출돼 두려움에 시달리고 있다.

신원을 노출시킨 사람은 다름아닌, 세무서 직원이다.

세무서는 탈세 제보자 신원을 보호할 의무가 있지만 이를 지키지 않았다.

어떻게 이런 일이 발생했을까?

■ 탈세 의심 제보를 했더니.

대구에서 식당을 운영하는 A 씨는 지난해 말 오토바이 한 대를 구매했다. 음식 배달 겸 출퇴근을 위해서였다. 오토바이 가격은 517만 원이었다.

그런데 운전 하루 만에 오토바이에 문제가 생겼다. 냉각수가 가득 차 있는데도, 냉각 장치가 작동하지 않은 것이다. 운전 중 시동이 꺼지기까지 했다.

구매 직후 결함이 발생한 오토바이.구매 직후 결함이 발생한 오토바이.

A 씨는 오토바이 환불을 결심하고 영수증을 찾았다.

그런데 이상한 점을 발견했다. 오토바이를 실제 구매한 장소와 사업장 위치가 달랐던 것이다.

A 씨의 영수증. 오토바이는 달서구에서 구매했지만, 남구에서 판매된 것으로 기재됐다.A 씨의 영수증. 오토바이는 달서구에서 구매했지만, 남구에서 판매된 것으로 기재됐다.

탈세가 의심되는 상황. A 씨는 국세청에 해당 영수증을 보여주며 탈세 제보를 했다.

국세청은 신원 보호를 해주겠다며 안심시켰다.

그 뒤 A 씨는 오토바이 판매업자를 사기 혐의로 경찰에 신고했다. 오토바이 업자는 혐의를 인정했다.
(그러나 환불 요구 과정에서 실랑이가 발생했다.)

진짜 문제는 이제부터 발생한다.

■ 제보자 신원 노출 시킨 세무서

얼마 뒤, 남대구세무서로부터 전화가 왔다. 신고 내용을 통보하기 위해서다.

세무서 직원은 해당 업소가 탈세는 아니지만, '신용카드 위장가맹 업소'로 적발됐다는 결과를 안내했다.

그런데 A 씨는 곧 황당한 이야기를 전해 듣게 된다.

세무서 직원이 제보 내용을 확인하기 위해 판매업자에게 A 씨의 영수증을 보여줬다는 것이다. 구매 일시와 금액이 노출되면, 제보자 신원은 당장 드러날 수밖에 없다.

세무서 직원은 오토바이 업자에게 A 씨의 구매정보를 보여줬다.세무서 직원은 오토바이 업자에게 A 씨의 구매정보를 보여줬다.

A 씨는 보복이 두려웠다. 판매업자가 A 씨의 오토바이 배달을 위해 A 씨의 집 주소와 전화번호를 알고 있었기 때문이다.

게다가 카톡 프로필 사진에는 가족 사진까지 노출돼 있었다. 처음 며칠은 집 밖에 나가지도 못했다.

A 씨: 너무 놀랬죠. 어떻게 영수증을 그대로 보여줄 수 있는지. 국세청 직원 전화 끊자마자 아내한테 전화해서 아기랑 잘 단속하고 집에 있으라고 했어요.

A 씨는 세무서에 항의했다. 그런데 세무서 측의 대응이 황당했다. 신고 내용을 확인하기 위해 어쩔 수 없었다는 것이다. 정당한 공무 집행이라는 말 속에 제보자 신원을 보호한다는 의지는 전혀 없어 보였다.

A 씨는 오히려 핀잔까지 들었다.

A 씨: "제가 지금 너무 무서워서 밖에도 못 나가겠어요."

세무서 직원: "왜요? 뭐가 무서운데요? 그 사람들이 깡패입니까? 만약에 그렇다면 경찰서에 신변보호 요청을 하는 방법이 있어요."

공익 제보자가 신원이 노출돼 두려움을 호소하는데, 태연히 경찰에 신고하는 세무서 직원.

여러번 항의에도 세무서 직원은 똑같은 태도를 보였 다. 자영업자인 A 씨는 더이상 세무서를 상대하는 것이 부담스러워 대응을 포기했다.

■ 취재가 시작되자, 뒤바뀐 말

KBS 취재가 시작되어서야 세무서 측은 잘못을 인정했다.

신고 내용을 확인하는 과정에서 실수가 있었다는 것이다. A 씨에게 사과를 하겠다고도 했다.


이번 사례에서 구조적인 문제점도 발견됐다.

해당 오토바이 가게는 동네에서 작게 운영하는 가게였다. 그래서 영수증만으로도 제보자 신원 노출이 특히 쉬웠다.

만약 이번처럼 탈세 의심 피신고업체가 소규모일 경우 제보자 신원이 노출되는 상황이 반복될 수 있다는 이야기다.

이에 대해 국세청 역시 문제를 인지했다.

국세청은 앞으로 소규모 영업장에 대한 조사를 할 경우, 제보자에게 상황을 미리 안내해 신원 노출을 최소화하는 방안을 만들겠다고 했다. 더불어 직원 교육도 강화하겠다는 말을 덧붙였다.


국세청은 제보가 필수인 불법 탈세 행위에 대해 수십억 원의 신고 포상금까지 내걸었다. 그러나 공익 제보자를 보호할 기본적인 장치 마련부터가 우선이냐는 지적이 나온다.

이번 사건을 취재하면서 A 씨는 국세청 입장에서는 뼈 아플 말을 했다.

A 씨: 만약 주위에서 탈세 신고를 한다고 하면 뜯어 말릴 겁니다. 신원 보호도 안 해주면서 무슨 공익 신고입니까.

남대구세무서는 보도 이후, A 씨에게 사과 방안을 마련할 계획이라고 전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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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탈세 제보자 신원 노출 시키고선 “뭐가 무섭냐”는 세무서
    • 입력 2023-03-15 11:04:23
    취재K

국세청에 탈세를 신고한 제보자가 신원이 노출돼 두려움에 시달리고 있다.

신원을 노출시킨 사람은 다름아닌, 세무서 직원이다.

세무서는 탈세 제보자 신원을 보호할 의무가 있지만 이를 지키지 않았다.

어떻게 이런 일이 발생했을까?

■ 탈세 의심 제보를 했더니.

대구에서 식당을 운영하는 A 씨는 지난해 말 오토바이 한 대를 구매했다. 음식 배달 겸 출퇴근을 위해서였다. 오토바이 가격은 517만 원이었다.

그런데 운전 하루 만에 오토바이에 문제가 생겼다. 냉각수가 가득 차 있는데도, 냉각 장치가 작동하지 않은 것이다. 운전 중 시동이 꺼지기까지 했다.

구매 직후 결함이 발생한 오토바이.
A 씨는 오토바이 환불을 결심하고 영수증을 찾았다.

그런데 이상한 점을 발견했다. 오토바이를 실제 구매한 장소와 사업장 위치가 달랐던 것이다.

A 씨의 영수증. 오토바이는 달서구에서 구매했지만, 남구에서 판매된 것으로 기재됐다.
탈세가 의심되는 상황. A 씨는 국세청에 해당 영수증을 보여주며 탈세 제보를 했다.

국세청은 신원 보호를 해주겠다며 안심시켰다.

그 뒤 A 씨는 오토바이 판매업자를 사기 혐의로 경찰에 신고했다. 오토바이 업자는 혐의를 인정했다.
(그러나 환불 요구 과정에서 실랑이가 발생했다.)

진짜 문제는 이제부터 발생한다.

■ 제보자 신원 노출 시킨 세무서

얼마 뒤, 남대구세무서로부터 전화가 왔다. 신고 내용을 통보하기 위해서다.

세무서 직원은 해당 업소가 탈세는 아니지만, '신용카드 위장가맹 업소'로 적발됐다는 결과를 안내했다.

그런데 A 씨는 곧 황당한 이야기를 전해 듣게 된다.

세무서 직원이 제보 내용을 확인하기 위해 판매업자에게 A 씨의 영수증을 보여줬다는 것이다. 구매 일시와 금액이 노출되면, 제보자 신원은 당장 드러날 수밖에 없다.

세무서 직원은 오토바이 업자에게 A 씨의 구매정보를 보여줬다.
A 씨는 보복이 두려웠다. 판매업자가 A 씨의 오토바이 배달을 위해 A 씨의 집 주소와 전화번호를 알고 있었기 때문이다.

게다가 카톡 프로필 사진에는 가족 사진까지 노출돼 있었다. 처음 며칠은 집 밖에 나가지도 못했다.

A 씨: 너무 놀랬죠. 어떻게 영수증을 그대로 보여줄 수 있는지. 국세청 직원 전화 끊자마자 아내한테 전화해서 아기랑 잘 단속하고 집에 있으라고 했어요.

A 씨는 세무서에 항의했다. 그런데 세무서 측의 대응이 황당했다. 신고 내용을 확인하기 위해 어쩔 수 없었다는 것이다. 정당한 공무 집행이라는 말 속에 제보자 신원을 보호한다는 의지는 전혀 없어 보였다.

A 씨는 오히려 핀잔까지 들었다.

A 씨: "제가 지금 너무 무서워서 밖에도 못 나가겠어요."

세무서 직원: "왜요? 뭐가 무서운데요? 그 사람들이 깡패입니까? 만약에 그렇다면 경찰서에 신변보호 요청을 하는 방법이 있어요."

공익 제보자가 신원이 노출돼 두려움을 호소하는데, 태연히 경찰에 신고하는 세무서 직원.

여러번 항의에도 세무서 직원은 똑같은 태도를 보였 다. 자영업자인 A 씨는 더이상 세무서를 상대하는 것이 부담스러워 대응을 포기했다.

■ 취재가 시작되자, 뒤바뀐 말

KBS 취재가 시작되어서야 세무서 측은 잘못을 인정했다.

신고 내용을 확인하는 과정에서 실수가 있었다는 것이다. A 씨에게 사과를 하겠다고도 했다.


이번 사례에서 구조적인 문제점도 발견됐다.

해당 오토바이 가게는 동네에서 작게 운영하는 가게였다. 그래서 영수증만으로도 제보자 신원 노출이 특히 쉬웠다.

만약 이번처럼 탈세 의심 피신고업체가 소규모일 경우 제보자 신원이 노출되는 상황이 반복될 수 있다는 이야기다.

이에 대해 국세청 역시 문제를 인지했다.

국세청은 앞으로 소규모 영업장에 대한 조사를 할 경우, 제보자에게 상황을 미리 안내해 신원 노출을 최소화하는 방안을 만들겠다고 했다. 더불어 직원 교육도 강화하겠다는 말을 덧붙였다.


국세청은 제보가 필수인 불법 탈세 행위에 대해 수십억 원의 신고 포상금까지 내걸었다. 그러나 공익 제보자를 보호할 기본적인 장치 마련부터가 우선이냐는 지적이 나온다.

이번 사건을 취재하면서 A 씨는 국세청 입장에서는 뼈 아플 말을 했다.

A 씨: 만약 주위에서 탈세 신고를 한다고 하면 뜯어 말릴 겁니다. 신원 보호도 안 해주면서 무슨 공익 신고입니까.

남대구세무서는 보도 이후, A 씨에게 사과 방안을 마련할 계획이라고 전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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