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특파원 리포트] “미국, 보고있나! 나도 중재자” 틈새 노리는 中 전략

입력 2023.03.16 (07:00) 수정 2023.03.16 (07:08)

읽어주기 기능은 크롬기반의
브라우저에서만 사용하실 수 있습니다.

(출처:바이두)(출처:바이두)

'어디서든 누군가에 무슨 일이 생기면 나타나는' 홍 반장(2021년 화제가 된 모 드라마 속 주인공) 또는 우주소년 짱가(78년 국내서 방송된 만화영화)처럼 미국은 전 세계 '큰형' 노릇을 자처합니다.

현지시각 2월 20일 우크라이나 키이우를 깜짝 방문한 바이든 대통령이 젤렌스키 대통령과 포옹하고 있다. (출처 : 연합뉴스)현지시각 2월 20일 우크라이나 키이우를 깜짝 방문한 바이든 대통령이 젤렌스키 대통령과 포옹하고 있다. (출처 : 연합뉴스)

러시아의 침공으로 시작된 우크라이나 전쟁이 1년 가까이 이어지던 시점(현지시각 2월 20일)에, 조 바이든 대통령은 우크라이나에 예고 없이 등장했습니다. 미국 군대가 주둔하고 있지도 않은 전쟁 지역에 말입니다.

"전쟁이 일어난지 1년이 지났지만 우크라이나는 건재합니다. 민주주의는 건재합니다. 미국은 지금 당신과 함께 하고 있고, 세계도 당신과 함께 하고 있습니다." -조 바이든 미국 대통령이 젤린스키 우크라이나 대통령을 만나 한 말

러시아의 침공에 맞서 싸우고 있는 젤렌스키 우크라이나 대통령과 현지에서 전격 회담한 것, 그 자체가 메시지였습니다. '미국은 민주주의와 우크라이나를 끝까지 지지하겠다'는 강한 의지는 두 정상이 끌어안고 있는 사진 1장을 통해 극명히 전달됐습니다. 그 순간 전 세계는 다시 한번 '큰형'이자 '민주주의 수호자'로서의 미국을 떠올렸습니다.

■미국이 '큰형'이라면 중국은?

반면 중국 하면 떠오르는 이미지는 무엇일까요?

서방 세계 언론들은 중국을 종종 ‘괴롭히는 사람(bully)’이라고 표현한다. 이 그림에서 중국은 다른 나라를 괴롭히는 덩치 큰 아이로 묘사됐다. (출처:  큐오라)서방 세계 언론들은 중국을 종종 ‘괴롭히는 사람(bully)’이라고 표현한다. 이 그림에서 중국은 다른 나라를 괴롭히는 덩치 큰 아이로 묘사됐다. (출처: 큐오라)

뉴욕타임스, 이코노미스트 등 알만한 서방 세계 매체들은 중국을 두고 일찌감치 '불리(bully)'라는 표현을 쓰고 있습니다. '왕따'를 시키거나 약자를 괴롭히는 사람이라는 뜻입니다.

타이완을 상대로 시시 때때로 벌이는 무력시위, 남중국해를 둘러싼 공세적인 행동 등이 중국을 '괴롭히는 자'로 칭하는 대표적인 근거로 거론되는데요. '괴롭히는 자, 불리'라는 이름은 중국이 경제 규모로는 미국과 어깨를 나란히 하는 G2인지는 몰라도 그동안 보여준 국격으로는 미국과 아직 견줄 수 없다는 점을 강하게 시사합니다.

■중국에서 체결된 '사우디-이란' 국교 정상화 합의

시진핑 중국 공산당 총서기가 국가주석으로 3연임된 지난 10일, 수도 베이징에서는 이 소식보다 더 관심을 끄는 '사건'이 벌어졌습니다.

사우디아라비아와 이란 대표가 관계 정상화 합의 직후 중국 왕이 외교담당 정치국원과 손을 맞잡은 모습. (출처: 바이두)사우디아라비아와 이란 대표가 관계 정상화 합의 직후 중국 왕이 외교담당 정치국원과 손을 맞잡은 모습. (출처: 바이두)

물과 기름처럼 겉돌던 사우디아라비아와 이란이 7년 만에 관계 정상화를 발표한 겁니다. 합의를 한 장소는 바로 중국 베이징입니다.

두 나라의 이해가 맞아떨어졌기 때문에 외교를 정상화하기로 했겠지만, 이란과 사우디아라비아 두 나라 대화의 장을 중국이 만들었다는 점에 세계는 깜짝 놀랐습니다. 중동 지역에서 미국의 영향력이 약해지자 중국이 그 틈새를 이용해 중재자로 나선 모양새였기 때문입니다.

중국 역할을 강조하듯, 사우디아라비아와 이란은 이번 합의에서 영어를 쓰지 않기로 사전에 조율한 것으로 알렸습니다. 당사국들의 관계 정상화를 명시한 문서는 아랍어와 페르시아어, 중국어로만 작성됐습니다.

중국이 그동안 공을 들였던 중동 지역 정세에 정치 외교적으로 직접 개입한 첫 사례입니다.

■중국, 이미지 변신 가능할까?

당장 현지 매체들, 특히 중국 관영 매체들은 시진핑 주석의 '중재자' 모습을 강조하고 있습니다.

15일 관영지 글로벌타임스가 쓴 기사가 대표적입니다. 제목은 '테헤란과 리야드 관계를 재개하는 데 있어 중국의 경험은 세계의 다른 분쟁 중재에 도움이 된다'입니다.

15일 중국 관영매체 글로벌타임스는 중국이 중동의 두 나라 관계 정상화에 중재자 역할을 했다는 점을 강조하는 기사를 냈다. (출처: 글로벌타임스)15일 중국 관영매체 글로벌타임스는 중국이 중동의 두 나라 관계 정상화에 중재자 역할을 했다는 점을 강조하는 기사를 냈다. (출처: 글로벌타임스)

기사에서 주목할 부분은 '세계의 다른 분쟁 중재'입니다. 신문은 중국의 이번 경험이 우크라이나 사태를 포함한 세계 갈등을 중재하는데 도움이 될 것이라고 주장했는데요.

중국 외교부는 아직까지 언급을 피하고 있지만, 시진핑 주석이 이르면 다음 주 러시아를 방문해 러시아와 우크라이나 사이 중재에 나설 것이라는 소식에 힘을 실어주는 내용입니다.

이 신문은 심지어 " 러시아·우크라이나 분쟁을 중재하는 것은 사우디아라비아와 이란의 외교 관계 재개 설득보다 쉬울 것"이라는 추이헝 화둥사범대 러시아연구센터 연구원의 말까지 인용했습니다. 사우디와 이란은 종교와 지정학적 갈등이 얽혀 있지만, 러시아와 우크라이나 사이에는 종파적 갈등이 없다는 것이 이유입니다.

한편으로는 전문가를 인용해 미국을 깎아내렸습니다.

중국 외교대학 국제관계연구소의 리하이둥 교수는 이 매체에 "미국이 이른바 보편적 가치나 집단 안보를 내세우며 지역 문제에 참여하거나 개입하는 것이 사실은 혼란을 일으키고 기존의 긴장을 악화시키며 평화로 가는 과정을 방해한다는 사실을 깨닫는 국가들이 늘고 있다"고 설명했습니다.

또 신문은 "많은 전문가가 중국은 단순히 한쪽이 다른 쪽을 압박하는 것을 돕기보다는 중립적이고 공정한 태도를 유지할 것이라고 말했다"고 덧붙였습니다.

지난 10일 국가주석 3연임을 확정한 시진핑 주석이 선서하고 있다. (촬영: 이창준 KBS 베이징 촬영 특파원)지난 10일 국가주석 3연임을 확정한 시진핑 주석이 선서하고 있다. (촬영: 이창준 KBS 베이징 촬영 특파원)

국가주석 3연임에 오른 시진핑 주석은 양회를 마치며 한 첫 연설에서 "글로벌 거버넌스 시스템 개혁과 건설에 적극적으로 참여하고……글로벌 안보 주도권의 이행을 촉진해야 한다"고 말했습니다. 한마디로 국제사회에서 '존재감'을 키우겠다는 선언입니다.

이른 시일 내 러시아를 방문할 것으로 보이는 시 주석은 푸틴 러시아 대통령을 만난 뒤 곧 이어 젤렌스키 우크라이나 대통령과 화상회담을 할 것이라는 소식이 들리고 있습니다. 중동 지역에서 틈새를 공략해 성공한 중국이, 이번에는 우크라이나·러시아의 중재자가 될 수 있을까요? 중국이 '이미지 변신'에 나선 것만은 분명해 보입니다.

■ 제보하기
▷ 카카오톡 : 'KBS제보' 검색, 채널 추가
▷ 전화 : 02-781-1234, 4444
▷ 이메일 : kbs1234@kbs.co.kr
▷ 유튜브, 네이버, 카카오에서도 KBS뉴스를 구독해주세요!


  • [특파원 리포트] “미국, 보고있나! 나도 중재자” 틈새 노리는 中 전략
    • 입력 2023-03-16 07:00:23
    • 수정2023-03-16 07:08:43
    특파원 리포트
(출처:바이두)
'어디서든 누군가에 무슨 일이 생기면 나타나는' 홍 반장(2021년 화제가 된 모 드라마 속 주인공) 또는 우주소년 짱가(78년 국내서 방송된 만화영화)처럼 미국은 전 세계 '큰형' 노릇을 자처합니다.

현지시각 2월 20일 우크라이나 키이우를 깜짝 방문한 바이든 대통령이 젤렌스키 대통령과 포옹하고 있다. (출처 : 연합뉴스)
러시아의 침공으로 시작된 우크라이나 전쟁이 1년 가까이 이어지던 시점(현지시각 2월 20일)에, 조 바이든 대통령은 우크라이나에 예고 없이 등장했습니다. 미국 군대가 주둔하고 있지도 않은 전쟁 지역에 말입니다.

"전쟁이 일어난지 1년이 지났지만 우크라이나는 건재합니다. 민주주의는 건재합니다. 미국은 지금 당신과 함께 하고 있고, 세계도 당신과 함께 하고 있습니다." -조 바이든 미국 대통령이 젤린스키 우크라이나 대통령을 만나 한 말

러시아의 침공에 맞서 싸우고 있는 젤렌스키 우크라이나 대통령과 현지에서 전격 회담한 것, 그 자체가 메시지였습니다. '미국은 민주주의와 우크라이나를 끝까지 지지하겠다'는 강한 의지는 두 정상이 끌어안고 있는 사진 1장을 통해 극명히 전달됐습니다. 그 순간 전 세계는 다시 한번 '큰형'이자 '민주주의 수호자'로서의 미국을 떠올렸습니다.

■미국이 '큰형'이라면 중국은?

반면 중국 하면 떠오르는 이미지는 무엇일까요?

서방 세계 언론들은 중국을 종종 ‘괴롭히는 사람(bully)’이라고 표현한다. 이 그림에서 중국은 다른 나라를 괴롭히는 덩치 큰 아이로 묘사됐다. (출처:  큐오라)
뉴욕타임스, 이코노미스트 등 알만한 서방 세계 매체들은 중국을 두고 일찌감치 '불리(bully)'라는 표현을 쓰고 있습니다. '왕따'를 시키거나 약자를 괴롭히는 사람이라는 뜻입니다.

타이완을 상대로 시시 때때로 벌이는 무력시위, 남중국해를 둘러싼 공세적인 행동 등이 중국을 '괴롭히는 자'로 칭하는 대표적인 근거로 거론되는데요. '괴롭히는 자, 불리'라는 이름은 중국이 경제 규모로는 미국과 어깨를 나란히 하는 G2인지는 몰라도 그동안 보여준 국격으로는 미국과 아직 견줄 수 없다는 점을 강하게 시사합니다.

■중국에서 체결된 '사우디-이란' 국교 정상화 합의

시진핑 중국 공산당 총서기가 국가주석으로 3연임된 지난 10일, 수도 베이징에서는 이 소식보다 더 관심을 끄는 '사건'이 벌어졌습니다.

사우디아라비아와 이란 대표가 관계 정상화 합의 직후 중국 왕이 외교담당 정치국원과 손을 맞잡은 모습. (출처: 바이두)
물과 기름처럼 겉돌던 사우디아라비아와 이란이 7년 만에 관계 정상화를 발표한 겁니다. 합의를 한 장소는 바로 중국 베이징입니다.

두 나라의 이해가 맞아떨어졌기 때문에 외교를 정상화하기로 했겠지만, 이란과 사우디아라비아 두 나라 대화의 장을 중국이 만들었다는 점에 세계는 깜짝 놀랐습니다. 중동 지역에서 미국의 영향력이 약해지자 중국이 그 틈새를 이용해 중재자로 나선 모양새였기 때문입니다.

중국 역할을 강조하듯, 사우디아라비아와 이란은 이번 합의에서 영어를 쓰지 않기로 사전에 조율한 것으로 알렸습니다. 당사국들의 관계 정상화를 명시한 문서는 아랍어와 페르시아어, 중국어로만 작성됐습니다.

중국이 그동안 공을 들였던 중동 지역 정세에 정치 외교적으로 직접 개입한 첫 사례입니다.

■중국, 이미지 변신 가능할까?

당장 현지 매체들, 특히 중국 관영 매체들은 시진핑 주석의 '중재자' 모습을 강조하고 있습니다.

15일 관영지 글로벌타임스가 쓴 기사가 대표적입니다. 제목은 '테헤란과 리야드 관계를 재개하는 데 있어 중국의 경험은 세계의 다른 분쟁 중재에 도움이 된다'입니다.

15일 중국 관영매체 글로벌타임스는 중국이 중동의 두 나라 관계 정상화에 중재자 역할을 했다는 점을 강조하는 기사를 냈다. (출처: 글로벌타임스)
기사에서 주목할 부분은 '세계의 다른 분쟁 중재'입니다. 신문은 중국의 이번 경험이 우크라이나 사태를 포함한 세계 갈등을 중재하는데 도움이 될 것이라고 주장했는데요.

중국 외교부는 아직까지 언급을 피하고 있지만, 시진핑 주석이 이르면 다음 주 러시아를 방문해 러시아와 우크라이나 사이 중재에 나설 것이라는 소식에 힘을 실어주는 내용입니다.

이 신문은 심지어 " 러시아·우크라이나 분쟁을 중재하는 것은 사우디아라비아와 이란의 외교 관계 재개 설득보다 쉬울 것"이라는 추이헝 화둥사범대 러시아연구센터 연구원의 말까지 인용했습니다. 사우디와 이란은 종교와 지정학적 갈등이 얽혀 있지만, 러시아와 우크라이나 사이에는 종파적 갈등이 없다는 것이 이유입니다.

한편으로는 전문가를 인용해 미국을 깎아내렸습니다.

중국 외교대학 국제관계연구소의 리하이둥 교수는 이 매체에 "미국이 이른바 보편적 가치나 집단 안보를 내세우며 지역 문제에 참여하거나 개입하는 것이 사실은 혼란을 일으키고 기존의 긴장을 악화시키며 평화로 가는 과정을 방해한다는 사실을 깨닫는 국가들이 늘고 있다"고 설명했습니다.

또 신문은 "많은 전문가가 중국은 단순히 한쪽이 다른 쪽을 압박하는 것을 돕기보다는 중립적이고 공정한 태도를 유지할 것이라고 말했다"고 덧붙였습니다.

지난 10일 국가주석 3연임을 확정한 시진핑 주석이 선서하고 있다. (촬영: 이창준 KBS 베이징 촬영 특파원)
국가주석 3연임에 오른 시진핑 주석은 양회를 마치며 한 첫 연설에서 "글로벌 거버넌스 시스템 개혁과 건설에 적극적으로 참여하고……글로벌 안보 주도권의 이행을 촉진해야 한다"고 말했습니다. 한마디로 국제사회에서 '존재감'을 키우겠다는 선언입니다.

이른 시일 내 러시아를 방문할 것으로 보이는 시 주석은 푸틴 러시아 대통령을 만난 뒤 곧 이어 젤렌스키 우크라이나 대통령과 화상회담을 할 것이라는 소식이 들리고 있습니다. 중동 지역에서 틈새를 공략해 성공한 중국이, 이번에는 우크라이나·러시아의 중재자가 될 수 있을까요? 중국이 '이미지 변신'에 나선 것만은 분명해 보입니다.

이 기사가 좋으셨다면

오늘의 핫 클릭

실시간 뜨거운 관심을 받고 있는 뉴스

이 기사에 대한 의견을 남겨주세요.

수신료 수신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