다시 돌아온 ‘전세’의 시대…그런데 빌라왕은요?

입력 2023.03.19 (08:00) 수정 2023.04.18 (10:0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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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5천만 원짜리 승용차를 구입해, 3천만 원을 받고 누군가에게 빌려준 뒤, 2년 뒤 다시 3천만 원을 돌려주고 내 차를 돌려받아라"라고 한다면? 흔쾌히 응할 사람은 없을 거다.

그런데 한국에서 주택은 가능하다. 이러니 외국인에게 전세 제도를 설명하면 도통 이해를 못 한다. "정말 한국에서는 다운페이만 내고 월세를 안 낸다고?"


1. 따져보면 참 특이한 제도다.

일단 인생 최대 목돈을 건네는데 알고 보면 '사금융'이다. 세입자가 집주인에게 돈을 빌려주는 구조다. 자산이 더 넉넉한 사람에게 더 부족한 사람이 대출을 해준다. 그런데 (돈을 빌려 가는) 집주인에 대한 신용정보가 부족하다.

특히 다세대나 다가구의 경우 주택의 시세조차 객관적인 자료가 없다. 공인중개사가 "이게 집값이 한 3억 원은 돼요!" 그러면 믿어야 한다. 그렇게 실제로는 2억 원 짜리인 집에 2억 5천만 원의 보증금을 맡기고 입주한다. 빌라왕 사기는 이 깜깜이 구조에서 시작된다.

사금융은 신용정보가 거의 없다. 시장경제에서 정보 비대칭은 늘 사고를 부른다. 집값이 전셋값보다 낮아지면 전입신고니 확정일자니 모두 무용지물이다. 설령 중개업소의 설명처럼 진짜 3억 원짜리 주택이라고 해도 경매에 넘어가면? 낙찰가율이 70%라고 가정하면 집값은 2억 1천만 원이 된다. 이렇게 전세금을 떼인다. 부지기수다.

KBS 탐사보도부는 지속적으로 빌라왕 문제를 분석하고 잇달아 심층보도해, 다세대 연립에 거주하는 전세 세입자가 직면한 구조적 위험을 사회문제화했다. 집값 하락이 본격화되면서 올해는 이들이 전세보증금을 떼이는 사례가 더 급증할 것으로 보인다. 사진 KBS 뉴스 9.KBS 탐사보도부는 지속적으로 빌라왕 문제를 분석하고 잇달아 심층보도해, 다세대 연립에 거주하는 전세 세입자가 직면한 구조적 위험을 사회문제화했다. 집값 하락이 본격화되면서 올해는 이들이 전세보증금을 떼이는 사례가 더 급증할 것으로 보인다. 사진 KBS 뉴스 9.

2. 그래서 전세보증보험이 있긴 한데.

HUG(주택도시보증공사) 같은 공공기관이나 민간보험사(SGI서울보증보험)에 보험료를 내고, 만약 집주인에게 전세보증금을 못 돌려 받을 경우, 보증기관이 대신 갚아주는 제도다. (이것도 따져보면 이상하다. 왜 돈을 빌려주는 세입자가 보험료를 부담하는가? 당신이 은행에서 대출을 받을 때 돈을 빌려주는 은행이 각종 수수료를 부담하는가? 돈을 빌려 가는 당신이 부담하는 가? 그런데 전세는 돈을 빌려주는 세입자가 부담한다)

전셋값이 급락하자 전국적으로 집주인들이 전세보증금을 돌려주지 못해 쩔쩔매고 있다. HUG가 대신 갚아준 금액이 지난해 9,241억 원에 달한다. 올 1월에만 집주인 대신 세입자들에게 1,692억 원을 갚아줬다. 이대로 가면 올해 2조 원 가량 보험금이 지급될 전망이란다.

우리가 주택을 구입할 때 의무적으로 사야 하는 국민주택채권 등에서 수익을 내는 HUG는 적자가 나면 결국 자본금을 꺼내 써야 한다. 자본금은 누가 채워줄까? 우리 세금에서 채운다.

(세입자만 집주인에 대한 신용 정보가 없는 게 아니다. HUG도 집주인에 대한 별다른 신용정보 없이 전세가율이 집값의 100%만 넘지않으면 전세보증보험을 가입시켜 줬다. 그러다 집값이 급락하자 보험금 지급요청이 쇄도한다. 개인의 신용정보를 갖고 있는 은행이 전세제도에서 한발 물러나 굿이나 보고 떡이나 먹고 있기 때문에 생기는 문제들이다.)

3. 그런데 전셋값이 왜 집값보다 더 떨어질까?

전세 시장에는 (원래는) 가수요나 투기적 수요가 없다. 매매시장은 다들 집으로 수익을 내니, 나도 따라 돈을 벌고 싶어서 투기에 동참하지만, 돈을 벌려고 전세 시장에 뛰어드는 사람은 없다. 그런데 전셋값은 왜 이렇게 출렁거릴까?

주택시장은 애당초 집값이 오른다고 집을 빨리 공급하기도, 집값이 내린다고 있는 집을 허물 수도 없다(공급 탄력성이 매우 낮다) 그러니 대규모 단지에서 재건축 이주라도 하면 근처 아파트단지 전셋값이 춤을 춘다.

여기에 의도치 않은 '일시적 담합'이 가능하다. 나는 세입자에게 3억 원에 전세를 내줬는데, 앞 동의 같은 평형은 3억 5천만 원에 전세를 내줬다고 하면, 나도 이번 전세계약이 끝나면 당연히 3억 5천만 원에 전세를 내놓는다. 아이스크림이나 노트북 시장은 이게 쉽지 않다. 다른 편의점에 가거나 온라인에서 가격 비교를 하면 되는데, 전세라는 제품은 매물도 적고 품질이 제각각이라 비교도 쉽지 않다.

여기에 우리 언론 특유의 과장 보도가 이어진다. "계약갱신청구권 개정에 화난 대치동 A 아파트 주인은 다음달 만기 되는 전셋값을 또 1억 원 올리기로 했다." 그럼 실제 그 동네 전셋값이 따라 올라간다. '다들 올린다는데 나만 싸게 받을 이유가 있는가?'

게다가 서민들 위한다며 정부는 언젠가부터 전세대출을 마구 풀었다. 싼 이자에 전세대출이 마구 풀리자 너도 나도 더 비싼 전셋값을 감당하며 이사를 했고, 이 수요는 전세 가격을 끌어올리는 중요한 이유가 됐다. 세입자를 돕겠다는 정부의 선한 의지가 '전세 지옥' 건설에 일조했다.

그렇게 일시적으로 올라간 전셋값은 경기가 식고, 집값이 내려가면 결국 따라 급락한다. 흔히들 전세가격이 집값의 하방지지선을 형성한다는데 별 의미 없는 말이다. 추락할 때는 다 같이 추락한다. 당연히 이맘때는 전세 피해가 급증한다. 깡통 전세가 천지다.

그렇게 깡통전세가 되면 또 임차인이 피해를 본다. 이것도 이상하다. 예컨데 은행이 망하면 5천만 원을 초과하는 내 예금은 떼이기 십상이다. 반면 내가 망한다고 은행이 내 채무를 잘 탕감해주지는 않는다. 시장 경제에서는 돈 빌려준 사람이 늘 갑이다.

그런데 깡통전세가 되면 돈을 빌려준 세입자가 피해를 본다. 이 와중에도 170조 원(지난해 말 기준)
의 전셋돈을 대출해준 은행은 별 피해를 입지 않는다. 위험이 이미 모두 세입자와 보증보험에 분산됐기 때문이다.

4. 계약갱신청구권

선진국일수록 세입자를 많이 보호한다. 집주인의 권리를 심하게 침해한다. 세입자에게 '지속적인 주거권'을 인정해주는 나라도 많다. 계약 기간이 끝나도 쉽게 내보낼 수가 없다. 독일은 임대료를 인상하려면 집주인이 객관적인 자료를 제출해야 한다. 프랑스는 월세가 잔뜩 밀린 세입자도 겨울에는 쫓아낼 수도 없다 (저개발국가 국민들은 '내 돈 내산 내 집'인데 말이나 되는 소리인가 싶을 거다).

우리도 2020년 7월, '계약갱신청구권' 제도를 도입해 한번 전세계약을 하면 최소 4년은 그 집에서 살 수 있도록 보장했다. 그러자 상당수 언론과 전문가들이 결국 2년 뒤 세입자를 더 고통스럽게 할 것이라며 강력하게 반대했다. 하지만 2년이 지난 지난해 여름, 집값과 전셋값은 속절없이 추락했다(알고 보니 이 전망은 주택에 대한 수요가 빵빵할 때만 유효했다).

서울 목동과 강남에는 5억 원 이상 전셋값을 낮춘 계약갱신이 속출하고 있다. 집주인들이 아무리 바짓자락을 붙잡아도 계약갱신을 안 하고 떠나겠다는 세입자들이 많다. 제도에 대한 분석보다 제도에 대한 미움이 앞서다 보니 엉터리 전망이 난무한다. 참고로 전세 기간을 1년에서 2년으로 늘려준 것은 지난 1990년이다. 노태우 대통령 임기 때다.

5. 전세의 미래는.

다시 전세 비중이 월세 비중을 앞질렀다. 2000년대 후반에도 그랬다. 전셋값이 급등하고 월세 비중이 치솟자 언론은 너도 나도 '전세제도의 종말'을 고했지만, 2008년 이후 다시 부동산 시장이 수요자 중심으로 바뀌자 전세 비중은 다시 빠르게 높아졌다. (2008년 전세 비중 45% → 2010년 전세 비중 49.5%/자료 국토교통부).

전세제도는 우리 인생을 좌우하는 큰 돈을 사실상 은행이 아닌 사금융으로 거래한다는 치명적 단점이 있다. 그래서 자꾸 사고가 난다. 저금리를 틈타 '갭 투자'라는 괴물이 자란 것도 '전세제도' 때문이다. 그렇다고 빨리 사라질 것 같지도 않다. 월세가 늘었다고 하지만, 그건 대부분 1인 가구의 분화 때문이다. 3~4인 가구는 여전히 전세를 선호한다. 차곡 차곡 전셋돈을 모아 집을 마련하는 관행은 한국인에게 여전히 큰 미덕이다. 이걸 포기하기가 쉽지 않다.

그러니 섣부른 전세의 종말을 기대하기보다 당장 '빌라왕 ' 관행부터 잡아야겠다. 그래야 또 다른 피해를 막는다. 전세보증금은 대부분의 세입자들에게 생명만큼 소중한 돈이다. 전세 사기 한번 당하면 다시 일어서기가 쉽지 않다. 전세가 끝물이라는데. 여전히 우리 전체 2천만 가구 중 325만 가구, 줄잡아 800만 명이 전세에 산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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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다시 돌아온 ‘전세’의 시대…그런데 빌라왕은요?
    • 입력 2023-03-19 08:00:27
    • 수정2023-04-18 10:00:47
    취재K
"5천만 원짜리 승용차를 구입해, 3천만 원을 받고 누군가에게 빌려준 뒤, 2년 뒤 다시 3천만 원을 돌려주고 내 차를 돌려받아라"라고 한다면? 흔쾌히 응할 사람은 없을 거다.

그런데 한국에서 주택은 가능하다. 이러니 외국인에게 전세 제도를 설명하면 도통 이해를 못 한다. "정말 한국에서는 다운페이만 내고 월세를 안 낸다고?"


1. 따져보면 참 특이한 제도다.

일단 인생 최대 목돈을 건네는데 알고 보면 '사금융'이다. 세입자가 집주인에게 돈을 빌려주는 구조다. 자산이 더 넉넉한 사람에게 더 부족한 사람이 대출을 해준다. 그런데 (돈을 빌려 가는) 집주인에 대한 신용정보가 부족하다.

특히 다세대나 다가구의 경우 주택의 시세조차 객관적인 자료가 없다. 공인중개사가 "이게 집값이 한 3억 원은 돼요!" 그러면 믿어야 한다. 그렇게 실제로는 2억 원 짜리인 집에 2억 5천만 원의 보증금을 맡기고 입주한다. 빌라왕 사기는 이 깜깜이 구조에서 시작된다.

사금융은 신용정보가 거의 없다. 시장경제에서 정보 비대칭은 늘 사고를 부른다. 집값이 전셋값보다 낮아지면 전입신고니 확정일자니 모두 무용지물이다. 설령 중개업소의 설명처럼 진짜 3억 원짜리 주택이라고 해도 경매에 넘어가면? 낙찰가율이 70%라고 가정하면 집값은 2억 1천만 원이 된다. 이렇게 전세금을 떼인다. 부지기수다.

KBS 탐사보도부는 지속적으로 빌라왕 문제를 분석하고 잇달아 심층보도해, 다세대 연립에 거주하는 전세 세입자가 직면한 구조적 위험을 사회문제화했다. 집값 하락이 본격화되면서 올해는 이들이 전세보증금을 떼이는 사례가 더 급증할 것으로 보인다. 사진 KBS 뉴스 9.
2. 그래서 전세보증보험이 있긴 한데.

HUG(주택도시보증공사) 같은 공공기관이나 민간보험사(SGI서울보증보험)에 보험료를 내고, 만약 집주인에게 전세보증금을 못 돌려 받을 경우, 보증기관이 대신 갚아주는 제도다. (이것도 따져보면 이상하다. 왜 돈을 빌려주는 세입자가 보험료를 부담하는가? 당신이 은행에서 대출을 받을 때 돈을 빌려주는 은행이 각종 수수료를 부담하는가? 돈을 빌려 가는 당신이 부담하는 가? 그런데 전세는 돈을 빌려주는 세입자가 부담한다)

전셋값이 급락하자 전국적으로 집주인들이 전세보증금을 돌려주지 못해 쩔쩔매고 있다. HUG가 대신 갚아준 금액이 지난해 9,241억 원에 달한다. 올 1월에만 집주인 대신 세입자들에게 1,692억 원을 갚아줬다. 이대로 가면 올해 2조 원 가량 보험금이 지급될 전망이란다.

우리가 주택을 구입할 때 의무적으로 사야 하는 국민주택채권 등에서 수익을 내는 HUG는 적자가 나면 결국 자본금을 꺼내 써야 한다. 자본금은 누가 채워줄까? 우리 세금에서 채운다.

(세입자만 집주인에 대한 신용 정보가 없는 게 아니다. HUG도 집주인에 대한 별다른 신용정보 없이 전세가율이 집값의 100%만 넘지않으면 전세보증보험을 가입시켜 줬다. 그러다 집값이 급락하자 보험금 지급요청이 쇄도한다. 개인의 신용정보를 갖고 있는 은행이 전세제도에서 한발 물러나 굿이나 보고 떡이나 먹고 있기 때문에 생기는 문제들이다.)

3. 그런데 전셋값이 왜 집값보다 더 떨어질까?

전세 시장에는 (원래는) 가수요나 투기적 수요가 없다. 매매시장은 다들 집으로 수익을 내니, 나도 따라 돈을 벌고 싶어서 투기에 동참하지만, 돈을 벌려고 전세 시장에 뛰어드는 사람은 없다. 그런데 전셋값은 왜 이렇게 출렁거릴까?

주택시장은 애당초 집값이 오른다고 집을 빨리 공급하기도, 집값이 내린다고 있는 집을 허물 수도 없다(공급 탄력성이 매우 낮다) 그러니 대규모 단지에서 재건축 이주라도 하면 근처 아파트단지 전셋값이 춤을 춘다.

여기에 의도치 않은 '일시적 담합'이 가능하다. 나는 세입자에게 3억 원에 전세를 내줬는데, 앞 동의 같은 평형은 3억 5천만 원에 전세를 내줬다고 하면, 나도 이번 전세계약이 끝나면 당연히 3억 5천만 원에 전세를 내놓는다. 아이스크림이나 노트북 시장은 이게 쉽지 않다. 다른 편의점에 가거나 온라인에서 가격 비교를 하면 되는데, 전세라는 제품은 매물도 적고 품질이 제각각이라 비교도 쉽지 않다.

여기에 우리 언론 특유의 과장 보도가 이어진다. "계약갱신청구권 개정에 화난 대치동 A 아파트 주인은 다음달 만기 되는 전셋값을 또 1억 원 올리기로 했다." 그럼 실제 그 동네 전셋값이 따라 올라간다. '다들 올린다는데 나만 싸게 받을 이유가 있는가?'

게다가 서민들 위한다며 정부는 언젠가부터 전세대출을 마구 풀었다. 싼 이자에 전세대출이 마구 풀리자 너도 나도 더 비싼 전셋값을 감당하며 이사를 했고, 이 수요는 전세 가격을 끌어올리는 중요한 이유가 됐다. 세입자를 돕겠다는 정부의 선한 의지가 '전세 지옥' 건설에 일조했다.

그렇게 일시적으로 올라간 전셋값은 경기가 식고, 집값이 내려가면 결국 따라 급락한다. 흔히들 전세가격이 집값의 하방지지선을 형성한다는데 별 의미 없는 말이다. 추락할 때는 다 같이 추락한다. 당연히 이맘때는 전세 피해가 급증한다. 깡통 전세가 천지다.

그렇게 깡통전세가 되면 또 임차인이 피해를 본다. 이것도 이상하다. 예컨데 은행이 망하면 5천만 원을 초과하는 내 예금은 떼이기 십상이다. 반면 내가 망한다고 은행이 내 채무를 잘 탕감해주지는 않는다. 시장 경제에서는 돈 빌려준 사람이 늘 갑이다.

그런데 깡통전세가 되면 돈을 빌려준 세입자가 피해를 본다. 이 와중에도 170조 원(지난해 말 기준)
의 전셋돈을 대출해준 은행은 별 피해를 입지 않는다. 위험이 이미 모두 세입자와 보증보험에 분산됐기 때문이다.

4. 계약갱신청구권

선진국일수록 세입자를 많이 보호한다. 집주인의 권리를 심하게 침해한다. 세입자에게 '지속적인 주거권'을 인정해주는 나라도 많다. 계약 기간이 끝나도 쉽게 내보낼 수가 없다. 독일은 임대료를 인상하려면 집주인이 객관적인 자료를 제출해야 한다. 프랑스는 월세가 잔뜩 밀린 세입자도 겨울에는 쫓아낼 수도 없다 (저개발국가 국민들은 '내 돈 내산 내 집'인데 말이나 되는 소리인가 싶을 거다).

우리도 2020년 7월, '계약갱신청구권' 제도를 도입해 한번 전세계약을 하면 최소 4년은 그 집에서 살 수 있도록 보장했다. 그러자 상당수 언론과 전문가들이 결국 2년 뒤 세입자를 더 고통스럽게 할 것이라며 강력하게 반대했다. 하지만 2년이 지난 지난해 여름, 집값과 전셋값은 속절없이 추락했다(알고 보니 이 전망은 주택에 대한 수요가 빵빵할 때만 유효했다).

서울 목동과 강남에는 5억 원 이상 전셋값을 낮춘 계약갱신이 속출하고 있다. 집주인들이 아무리 바짓자락을 붙잡아도 계약갱신을 안 하고 떠나겠다는 세입자들이 많다. 제도에 대한 분석보다 제도에 대한 미움이 앞서다 보니 엉터리 전망이 난무한다. 참고로 전세 기간을 1년에서 2년으로 늘려준 것은 지난 1990년이다. 노태우 대통령 임기 때다.

5. 전세의 미래는.

다시 전세 비중이 월세 비중을 앞질렀다. 2000년대 후반에도 그랬다. 전셋값이 급등하고 월세 비중이 치솟자 언론은 너도 나도 '전세제도의 종말'을 고했지만, 2008년 이후 다시 부동산 시장이 수요자 중심으로 바뀌자 전세 비중은 다시 빠르게 높아졌다. (2008년 전세 비중 45% → 2010년 전세 비중 49.5%/자료 국토교통부).

전세제도는 우리 인생을 좌우하는 큰 돈을 사실상 은행이 아닌 사금융으로 거래한다는 치명적 단점이 있다. 그래서 자꾸 사고가 난다. 저금리를 틈타 '갭 투자'라는 괴물이 자란 것도 '전세제도' 때문이다. 그렇다고 빨리 사라질 것 같지도 않다. 월세가 늘었다고 하지만, 그건 대부분 1인 가구의 분화 때문이다. 3~4인 가구는 여전히 전세를 선호한다. 차곡 차곡 전셋돈을 모아 집을 마련하는 관행은 한국인에게 여전히 큰 미덕이다. 이걸 포기하기가 쉽지 않다.

그러니 섣부른 전세의 종말을 기대하기보다 당장 '빌라왕 ' 관행부터 잡아야겠다. 그래야 또 다른 피해를 막는다. 전세보증금은 대부분의 세입자들에게 생명만큼 소중한 돈이다. 전세 사기 한번 당하면 다시 일어서기가 쉽지 않다. 전세가 끝물이라는데. 여전히 우리 전체 2천만 가구 중 325만 가구, 줄잡아 800만 명이 전세에 산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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