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임신으로 업무 불가”…육아휴직 쓰니 날아온 해고통지서

입력 2023.03.20 (21:37) 수정 2023.03.21 (07:5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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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앵커]

한국의 출생률은 세계에서 가장 낮은 수준이고, 그동안 나온 대책들도 효과가 뚜렷하지 않습니다.

정부는 육아휴직 기간을 더 늘리려고 하고 있는데 지금 보장된 것도 맘 편히 못 쓰는 일터가 여전히 많습니다.

신현욱 기자가 취재했습니다.

[리포트]

온라인 쇼핑몰에 다니다 올해 초 출산한 A씨, 지난해 여름 회사에 임신 사실을 알렸는데 예상치 못한 대답이 돌아왔습니다.

[A 씨/음성변조 : "임신은 축하하지만 그만두는 것을 한번 생각 해봐라. 배가 불러 있는 사람한테 일 시키기 불편하니까 배 부르기 전에 그만둬라."]

출산휴가와 육아휴직을 신청하니 곧바로 해고통지서가 날아왔습니다.

'임신으로 인해 회사 사정상 업무가 어렵다.' 회사가 제시한 해고 사유였습니다.

[A 씨/음성변조 : "되게 관계가 좋았거든요, 회사 다니면서. 임신했다는 말로 바로 이렇게 해고를 하니까 너무 배신감도 들었고."]

7살과 3살 두 자녀가 있는 B 씨는 낮 시간 상근직 간호사로 일해왔습니다.

둘째를 낳고 육아휴직에 들어갔는데, 복귀를 두 달 앞두고 상사로부터 연락이 왔습니다.

[B 씨/음성변조 : "배치할만한 부서가 없다고 말씀을 해주시면서 없는 자리를 만들어줄 수는 없다, 교대(근무)로밖에 자리가 안 날 것 같다."]

밤 10시 퇴근하는 교대근무를 하면서 육아를 병행할 수 없어 결국 일을 그만뒀습니다.

남녀고용평등법은 육아휴직으로 인한 해고나 불리한 처우를 금지하고, 복귀 시 휴직 전과 같은 업무나 같은 수준의 임금을 지급하도록 하고 있습니다.

하지만 현실은 다릅니다.

육아휴직 사용자의 약 70%가 배치와 승진에서, 약 71%가 보상과 평가에서 차별을 받았다고 답했습니다.

육아휴직 사용을 망설일 수밖에 없습니다.

한 시민단체 조사 결과 육아휴직을 자유롭게 못 쓴다는 답변이 43%가 넘었습니다.

[김문정/서울시 서남권 직장맘지원센터장 : "조직 문화를 보고 근로자들이 학습하게 되는 거죠. 법에서는 보장하고 있지만 쉽게 (육아휴직) 사용을 하겠다고 말하기가 어려운 상황인 게 현실이기도 합니다."]

정부는 현재 1년인 육아휴직을 1년 반으로 늘리는 방안을 추진 중입니다.

하지만 일터에선 육아휴직으로 인한 불이익으로부터 근로자를 보호하는 게 우선이라는 목소리가 나옵니다.

KBS 뉴스 신현욱입니다.

촬영기자:한규석 최경원/영상편집:이형주/그래픽:서수민

[앵커]

신 기자, 만약에 육아휴직으로 불이익을 당했다, 그렇다면 어떻게 구제받을 수 있습니까?

[기자]

직무가 바뀌거나 연봉이 깎이는 것처럼 노동 조건이 바뀌었다면 고용노동부에 진정을 넣을 수 있습니다.

근로감독관이 법 위반 여부를 판단해 사업주에게 시정 조치를 내리는데요.

이걸 따르지 않으면 형사처벌도 가능합니다.

육아휴직 때문에 해고를 당하면 근로기준법상 부당해고에 해당될 수 있고요.

각 지역 노동위원회에 구제신청을 하는 방법이 있습니다.

[앵커]

내가 '불리한 처우'를 당한 건지 노동자가 판단하기 힘들 수 있는데, 명확한 기준이 있나요?

[기자]

육아휴직 이전과 '같은 업무' 또는 '같은 수준의 임금을 받는 직무'로 복귀했는지를 보면 되는데요.

한 마트에서 육아휴직 후 복직한 사람을 직급이 두 단계 강등된 영업 담당으로 발령낸 일이 있었습니다.

그래도 임금 수준이 같으니까 불리한 처우가 아니라고 사측이 주장했는데, 대법원 판단은 달랐습니다.

임금 뿐 아니라 직위의 성격 등을 더 포괄적으로 따져서 동등한 업무인지 여부를 봐야 한다고 판시했습니다.

[앵커]

육아휴직으로 불이익을 입는 노동자가 없도록 제도가 정비돼야 할 텐데요?

[기자]

본인이 입은 불이익이 육아휴직 때문이라는 걸 스스로 입증하는 게 현실적으로 가장 어렵습니다.

방대한 자료를 가진 회사보다 불리할 수밖에 없는데요.

유럽의 주요 국가들은 회사의 조치가 육아휴직 때문인지를 사업주가 입증하도록 법에 명시하고 있습니다.

현행법상 모호한 '불리한 처우'의 개념을 명확하게 보완하고, 처벌도 강화할 필요가 있습니다.

영상편집:최찬종/그래픽:김정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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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임신으로 업무 불가”…육아휴직 쓰니 날아온 해고통지서
    • 입력 2023-03-20 21:37:19
    • 수정2023-03-21 07:54:2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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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앵커]

한국의 출생률은 세계에서 가장 낮은 수준이고, 그동안 나온 대책들도 효과가 뚜렷하지 않습니다.

정부는 육아휴직 기간을 더 늘리려고 하고 있는데 지금 보장된 것도 맘 편히 못 쓰는 일터가 여전히 많습니다.

신현욱 기자가 취재했습니다.

[리포트]

온라인 쇼핑몰에 다니다 올해 초 출산한 A씨, 지난해 여름 회사에 임신 사실을 알렸는데 예상치 못한 대답이 돌아왔습니다.

[A 씨/음성변조 : "임신은 축하하지만 그만두는 것을 한번 생각 해봐라. 배가 불러 있는 사람한테 일 시키기 불편하니까 배 부르기 전에 그만둬라."]

출산휴가와 육아휴직을 신청하니 곧바로 해고통지서가 날아왔습니다.

'임신으로 인해 회사 사정상 업무가 어렵다.' 회사가 제시한 해고 사유였습니다.

[A 씨/음성변조 : "되게 관계가 좋았거든요, 회사 다니면서. 임신했다는 말로 바로 이렇게 해고를 하니까 너무 배신감도 들었고."]

7살과 3살 두 자녀가 있는 B 씨는 낮 시간 상근직 간호사로 일해왔습니다.

둘째를 낳고 육아휴직에 들어갔는데, 복귀를 두 달 앞두고 상사로부터 연락이 왔습니다.

[B 씨/음성변조 : "배치할만한 부서가 없다고 말씀을 해주시면서 없는 자리를 만들어줄 수는 없다, 교대(근무)로밖에 자리가 안 날 것 같다."]

밤 10시 퇴근하는 교대근무를 하면서 육아를 병행할 수 없어 결국 일을 그만뒀습니다.

남녀고용평등법은 육아휴직으로 인한 해고나 불리한 처우를 금지하고, 복귀 시 휴직 전과 같은 업무나 같은 수준의 임금을 지급하도록 하고 있습니다.

하지만 현실은 다릅니다.

육아휴직 사용자의 약 70%가 배치와 승진에서, 약 71%가 보상과 평가에서 차별을 받았다고 답했습니다.

육아휴직 사용을 망설일 수밖에 없습니다.

한 시민단체 조사 결과 육아휴직을 자유롭게 못 쓴다는 답변이 43%가 넘었습니다.

[김문정/서울시 서남권 직장맘지원센터장 : "조직 문화를 보고 근로자들이 학습하게 되는 거죠. 법에서는 보장하고 있지만 쉽게 (육아휴직) 사용을 하겠다고 말하기가 어려운 상황인 게 현실이기도 합니다."]

정부는 현재 1년인 육아휴직을 1년 반으로 늘리는 방안을 추진 중입니다.

하지만 일터에선 육아휴직으로 인한 불이익으로부터 근로자를 보호하는 게 우선이라는 목소리가 나옵니다.

KBS 뉴스 신현욱입니다.

촬영기자:한규석 최경원/영상편집:이형주/그래픽:서수민

[앵커]

신 기자, 만약에 육아휴직으로 불이익을 당했다, 그렇다면 어떻게 구제받을 수 있습니까?

[기자]

직무가 바뀌거나 연봉이 깎이는 것처럼 노동 조건이 바뀌었다면 고용노동부에 진정을 넣을 수 있습니다.

근로감독관이 법 위반 여부를 판단해 사업주에게 시정 조치를 내리는데요.

이걸 따르지 않으면 형사처벌도 가능합니다.

육아휴직 때문에 해고를 당하면 근로기준법상 부당해고에 해당될 수 있고요.

각 지역 노동위원회에 구제신청을 하는 방법이 있습니다.

[앵커]

내가 '불리한 처우'를 당한 건지 노동자가 판단하기 힘들 수 있는데, 명확한 기준이 있나요?

[기자]

육아휴직 이전과 '같은 업무' 또는 '같은 수준의 임금을 받는 직무'로 복귀했는지를 보면 되는데요.

한 마트에서 육아휴직 후 복직한 사람을 직급이 두 단계 강등된 영업 담당으로 발령낸 일이 있었습니다.

그래도 임금 수준이 같으니까 불리한 처우가 아니라고 사측이 주장했는데, 대법원 판단은 달랐습니다.

임금 뿐 아니라 직위의 성격 등을 더 포괄적으로 따져서 동등한 업무인지 여부를 봐야 한다고 판시했습니다.

[앵커]

육아휴직으로 불이익을 입는 노동자가 없도록 제도가 정비돼야 할 텐데요?

[기자]

본인이 입은 불이익이 육아휴직 때문이라는 걸 스스로 입증하는 게 현실적으로 가장 어렵습니다.

방대한 자료를 가진 회사보다 불리할 수밖에 없는데요.

유럽의 주요 국가들은 회사의 조치가 육아휴직 때문인지를 사업주가 입증하도록 법에 명시하고 있습니다.

현행법상 모호한 '불리한 처우'의 개념을 명확하게 보완하고, 처벌도 강화할 필요가 있습니다.

영상편집:최찬종/그래픽:김정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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