예방책 피하는 ‘깨알 매뉴얼’…윗선 검거는 극히 일부

입력 2023.03.23 (21:17) 수정 2023.03.23 (22:1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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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앵커]

'보이스피싱' 범죄 피해를 조금이라도 막을 수 있도록 오늘(23일)도 기획 보도 이어갑니다.

어제(22일) KBS는 보이스 피싱 조직이 상황에 맞춰 짜둔 치밀한 시나리오 여섯 가지를 전해드렸습니다.

핵심은 피해자를 속이고, 가까운 사람들로부터 고립시키는 겁니다.

여기 더해 피싱 조직은 정부의 예방대책을 소용없게 만드는 계획도 촘촘하게 짜놨는데 은행 직원이 현금 인출을 막으면 둘러댈 말을 알려주고, 공문서까지 위조하고 있습니다.

먼저 김성수 기자가 보도합니다.

[리포트]

'계좌를 수사해 대포통장과 불법자금을 추적한다.', '계좌의 투명성을 입증한다.'

당신의 계좌 정보를 들여다봐야겠다며, 그 이유를 설명하는 이 문서는, 담당 공무원의 실명과 금융위원장 직인까지 찍혀 있지만 모두 가짜입니다.

[박정은/금융감독원 금융사기전담대응단 부국장 : "공문을 휴대폰 문자나 앱으로 받으셨다면 백 퍼센트 금융사기라고 생각하셔도 됩니다. 왜냐하면, 금융감독원은 개인에게 휴대폰 문자나 앱으로 공문을 보내지 않습니다."]

이 그럴 듯한 문서를 받고 협조해야겠단 마음이 든다면, 피싱 조직이 파놓은 함정에 첫 발을 딛게 되는 겁니다.

수사를 받는다는 '공포심'으로 '의심'을 누르게 만드는, 일종의 심리 전술입니다.

[원OO/보이스피싱 피해자/음성변조 : "의심은 계속 했는데 심리적으로 압박되는 상태여서 그런 걸 제대로 파악 못 한 것 같아요. 지금 보면 당연히 이거 위조문서라고 바로 생각을 하거든요."]

'당사자'의 의심을 해결했다면, 다음 순서는 '금융 기관'입니다.

피해자가 현금을 인출하려고 은행을 찾아갔을 때, 창구 직원이 용처를 캐물을 것에 대비해, 그럴싸한 답변을 피해자에게 미리 주입시켜놓습니다.

[보이스 피싱 시나리오/대독 : "푸드트럭 장사를 위한 계약금을 내기 위해, 현금이 필요하다고 말하면 됩니다."]

영업을 위해 현금을 찾는 소상공인의 경우 제지가 덜하다는 점을 노린 겁니다.

그래도 은행 측이 의심한다면, 그때는 '위험한 상황이 아니'라고 무조건 잡아뗄 것을 지시합니다.

[과거 보이스피싱 수거책/음성변조 : "은행원들이 의심을 많이 했었거든요. 불이익이 있으니까 절대 본인 말고는 (상황을) 아무한테도 말하지 말라고…."]

끝내 현금 인출이 여의치 않으면 대안으로 '신용카드'를 받아냅니다.

증거물 제출 등의 명목으로 택배나 퀵서비스로 보내게 하는데, 이 때도 배송 기사의 의심에 대비한 매뉴얼이 또 준비돼 있습니다.

[보이스피싱 시나리오/대독 : "포장 박스 규격은 최하 라면 박스 반 정도 이상의 크기가 좋을 것으로 생각되며, 무게도 기본적으로 2~3kg은 나가야 하며 가로 세로 대각선 2~3번 앞면 뒷면 꼼꼼하게 포장해야 기사들이 열어 보는 거 방지할 수 있습니다."]

온라인 송금이 아닌 현금이나 카드를 노리는 것 자체가 새로운 '대안'으로 강구된 수법입니다.

기존의 '대포통장' 입금 방식은, 일시 지급정지 제도가 생긴 뒤 자취를 감추다시피 했고, 이제는 '직접적인' 갈취를 위해 교묘한 시나리오들을 구축한 겁니다.

[이기동/한국금융범죄예방연구센터 소장 : "뱅킹하는 그 과정만 이렇게 좀 강하게 보안을 하는데, 이제 시나리오를 바꿔버리는 것이고. 현혹을 하기 때문에 지금은 더 지능화되고 쉽게 당할 수밖에 없는 구조죠."]

흔적을 남기지 않고 '현금'으로 넘어간 돈은 나중에 되찾기도 어렵습니다.

피싱 조직의 '성공'은 곧 피해자들의 '일상 파괴'입니다.

[원OO/보이스 피싱 피해자/음성변조 : "호텔 앞에서 직접 주기도 했었고 하다 보니까, 돈을 (돌려) 받는 경우는 희박하다고. 전세금 대출을 받고 있는 상황이어서, 보증금을 상환하려고 했던 돈을 이미 다 잃은 상태고…."]

KBS 뉴스 김성수입니다.

[앵커]

이렇게 보이스피싱 시나리오는 갈수록 교묘해지고, 피해자가 뺐기는 돈의 규모도 점점 커지고 있습니다.

하지만 이 치밀한 사기의 전체 판을 짜는 이른바 '윗선'은 거의 잡히지 않고 있습니다.

이어서 최혜림 기자입니다.

[리포트]

지난 17일 인천공항 입국장.

피싱 조직의 2인자가 수배 10년 만에 필리핀에서 검거돼, 송환됐습니다.

이 조직이 뜯어낸 돈만 2백억 원대로 추산됩니다.

총책은 오리무중입니다.

매년 검거되는 피싱 조직원만 3만 8천여 명.

대부분, 몸통이 아닌 꼬리에 가깝습니다.

대포통장이나 대포폰을 만들어 명의를 빌려준 경우가 64%, 수거책이 34%로, 피라미드식 구조의 말단이 대부분입니다.

범행 수법을 개발하고 지시하는 '윗선'의 비중은 2%에 불과합니다.

[과거 보이스피싱 수거책/음성변조 : "책임이 그 쪽(수거책)에만 무게가 가 있으면 풀리지가 않거든요. 상선(윗선)을 잡겠다는 노력은 중요하지만 실질적으로 아플 수밖에 없는 사람들을 위한 노력이 과연 얼마나 있는가..."]

중국이나 베트남 등 해외에 근거지를 두는 데다, 점조직처럼 움직여, 총책을 특정하는 것 자체가 어렵습니다.

[유지훈/경찰청 경제범죄수사과 금융범죄수사계장 : "조직원들끼리도 가명을 사용합니다. 그리고 조직이 여러 개로 분화가 되어 있어서 한 개 조직을 무너뜨려도 새로운 조직이 계속 대체되기 때문에 완전한 근절이 어렵습니다."]

가로챈 돈은 결국 '윗선'들이 관리합니다.

그들을 잡아야, 범죄수익 환수와 피해 회복도 가능하다는 얘깁니다.

[전직 보이스피싱 콜센터 직원/음성변조 : "총책은 하루에 정산 같은 거라든가, 팀장이라는 사람이 장부를 관리했고 그리고 실제로 돈 입금 받는 걸 하고. 나머지 조직원들은 그냥 전화 통화해서 대본대로만 하고."]

이러다 보니 어렵게 조직원을 검거해 봤자, 수사는 뿌리에 닿질 못합니다.

3년을 도망 다닌 조직원이 지난주 베트남에서 붙잡혔지만, 그를 통해 입증된 피해액은 1억여 원에 불과합니다.

[이OO/피싱 피해자/음성변조 : "(수사 시작하는 데) 한 달이 걸렸어요. 저는 지금 피해액을 구제받는 것은 마음을 완전히 놓았고..."]

[A 씨/피싱 피해자/음성변조 : "사건에 대해서 (주변에) 말을 못하고 있는 상황이에요. 금액 자체도 워낙 크고 결국 범죄자들을 잡아야지 해결이 되는 문제인데..."]

2006년 이후, 15년간 발생한 피싱 범죄 피해액은 총 3조 8천억 원.

그 중 되돌려받은 돈이 있는지, 있다면 액수가 얼마나 되는지, 정확한 '피해 회복' 규모는 집계조차 안 되고 있습니다.

KBS 뉴스 최혜림입니다.

촬영기자:홍성백 허수곤/영상편집:차정남 신남규/그래픽:김정현 박미주

2023 보이스피싱 시나리오 [PDF]
https://news.kbs.co.kr/datafile/2023/03/20230323_sGX06k.pdf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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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예방책 피하는 ‘깨알 매뉴얼’…윗선 검거는 극히 일부
    • 입력 2023-03-23 21:17:42
    • 수정2023-03-23 22:10:5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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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앵커]

'보이스피싱' 범죄 피해를 조금이라도 막을 수 있도록 오늘(23일)도 기획 보도 이어갑니다.

어제(22일) KBS는 보이스 피싱 조직이 상황에 맞춰 짜둔 치밀한 시나리오 여섯 가지를 전해드렸습니다.

핵심은 피해자를 속이고, 가까운 사람들로부터 고립시키는 겁니다.

여기 더해 피싱 조직은 정부의 예방대책을 소용없게 만드는 계획도 촘촘하게 짜놨는데 은행 직원이 현금 인출을 막으면 둘러댈 말을 알려주고, 공문서까지 위조하고 있습니다.

먼저 김성수 기자가 보도합니다.

[리포트]

'계좌를 수사해 대포통장과 불법자금을 추적한다.', '계좌의 투명성을 입증한다.'

당신의 계좌 정보를 들여다봐야겠다며, 그 이유를 설명하는 이 문서는, 담당 공무원의 실명과 금융위원장 직인까지 찍혀 있지만 모두 가짜입니다.

[박정은/금융감독원 금융사기전담대응단 부국장 : "공문을 휴대폰 문자나 앱으로 받으셨다면 백 퍼센트 금융사기라고 생각하셔도 됩니다. 왜냐하면, 금융감독원은 개인에게 휴대폰 문자나 앱으로 공문을 보내지 않습니다."]

이 그럴 듯한 문서를 받고 협조해야겠단 마음이 든다면, 피싱 조직이 파놓은 함정에 첫 발을 딛게 되는 겁니다.

수사를 받는다는 '공포심'으로 '의심'을 누르게 만드는, 일종의 심리 전술입니다.

[원OO/보이스피싱 피해자/음성변조 : "의심은 계속 했는데 심리적으로 압박되는 상태여서 그런 걸 제대로 파악 못 한 것 같아요. 지금 보면 당연히 이거 위조문서라고 바로 생각을 하거든요."]

'당사자'의 의심을 해결했다면, 다음 순서는 '금융 기관'입니다.

피해자가 현금을 인출하려고 은행을 찾아갔을 때, 창구 직원이 용처를 캐물을 것에 대비해, 그럴싸한 답변을 피해자에게 미리 주입시켜놓습니다.

[보이스 피싱 시나리오/대독 : "푸드트럭 장사를 위한 계약금을 내기 위해, 현금이 필요하다고 말하면 됩니다."]

영업을 위해 현금을 찾는 소상공인의 경우 제지가 덜하다는 점을 노린 겁니다.

그래도 은행 측이 의심한다면, 그때는 '위험한 상황이 아니'라고 무조건 잡아뗄 것을 지시합니다.

[과거 보이스피싱 수거책/음성변조 : "은행원들이 의심을 많이 했었거든요. 불이익이 있으니까 절대 본인 말고는 (상황을) 아무한테도 말하지 말라고…."]

끝내 현금 인출이 여의치 않으면 대안으로 '신용카드'를 받아냅니다.

증거물 제출 등의 명목으로 택배나 퀵서비스로 보내게 하는데, 이 때도 배송 기사의 의심에 대비한 매뉴얼이 또 준비돼 있습니다.

[보이스피싱 시나리오/대독 : "포장 박스 규격은 최하 라면 박스 반 정도 이상의 크기가 좋을 것으로 생각되며, 무게도 기본적으로 2~3kg은 나가야 하며 가로 세로 대각선 2~3번 앞면 뒷면 꼼꼼하게 포장해야 기사들이 열어 보는 거 방지할 수 있습니다."]

온라인 송금이 아닌 현금이나 카드를 노리는 것 자체가 새로운 '대안'으로 강구된 수법입니다.

기존의 '대포통장' 입금 방식은, 일시 지급정지 제도가 생긴 뒤 자취를 감추다시피 했고, 이제는 '직접적인' 갈취를 위해 교묘한 시나리오들을 구축한 겁니다.

[이기동/한국금융범죄예방연구센터 소장 : "뱅킹하는 그 과정만 이렇게 좀 강하게 보안을 하는데, 이제 시나리오를 바꿔버리는 것이고. 현혹을 하기 때문에 지금은 더 지능화되고 쉽게 당할 수밖에 없는 구조죠."]

흔적을 남기지 않고 '현금'으로 넘어간 돈은 나중에 되찾기도 어렵습니다.

피싱 조직의 '성공'은 곧 피해자들의 '일상 파괴'입니다.

[원OO/보이스 피싱 피해자/음성변조 : "호텔 앞에서 직접 주기도 했었고 하다 보니까, 돈을 (돌려) 받는 경우는 희박하다고. 전세금 대출을 받고 있는 상황이어서, 보증금을 상환하려고 했던 돈을 이미 다 잃은 상태고…."]

KBS 뉴스 김성수입니다.

[앵커]

이렇게 보이스피싱 시나리오는 갈수록 교묘해지고, 피해자가 뺐기는 돈의 규모도 점점 커지고 있습니다.

하지만 이 치밀한 사기의 전체 판을 짜는 이른바 '윗선'은 거의 잡히지 않고 있습니다.

이어서 최혜림 기자입니다.

[리포트]

지난 17일 인천공항 입국장.

피싱 조직의 2인자가 수배 10년 만에 필리핀에서 검거돼, 송환됐습니다.

이 조직이 뜯어낸 돈만 2백억 원대로 추산됩니다.

총책은 오리무중입니다.

매년 검거되는 피싱 조직원만 3만 8천여 명.

대부분, 몸통이 아닌 꼬리에 가깝습니다.

대포통장이나 대포폰을 만들어 명의를 빌려준 경우가 64%, 수거책이 34%로, 피라미드식 구조의 말단이 대부분입니다.

범행 수법을 개발하고 지시하는 '윗선'의 비중은 2%에 불과합니다.

[과거 보이스피싱 수거책/음성변조 : "책임이 그 쪽(수거책)에만 무게가 가 있으면 풀리지가 않거든요. 상선(윗선)을 잡겠다는 노력은 중요하지만 실질적으로 아플 수밖에 없는 사람들을 위한 노력이 과연 얼마나 있는가..."]

중국이나 베트남 등 해외에 근거지를 두는 데다, 점조직처럼 움직여, 총책을 특정하는 것 자체가 어렵습니다.

[유지훈/경찰청 경제범죄수사과 금융범죄수사계장 : "조직원들끼리도 가명을 사용합니다. 그리고 조직이 여러 개로 분화가 되어 있어서 한 개 조직을 무너뜨려도 새로운 조직이 계속 대체되기 때문에 완전한 근절이 어렵습니다."]

가로챈 돈은 결국 '윗선'들이 관리합니다.

그들을 잡아야, 범죄수익 환수와 피해 회복도 가능하다는 얘깁니다.

[전직 보이스피싱 콜센터 직원/음성변조 : "총책은 하루에 정산 같은 거라든가, 팀장이라는 사람이 장부를 관리했고 그리고 실제로 돈 입금 받는 걸 하고. 나머지 조직원들은 그냥 전화 통화해서 대본대로만 하고."]

이러다 보니 어렵게 조직원을 검거해 봤자, 수사는 뿌리에 닿질 못합니다.

3년을 도망 다닌 조직원이 지난주 베트남에서 붙잡혔지만, 그를 통해 입증된 피해액은 1억여 원에 불과합니다.

[이OO/피싱 피해자/음성변조 : "(수사 시작하는 데) 한 달이 걸렸어요. 저는 지금 피해액을 구제받는 것은 마음을 완전히 놓았고..."]

[A 씨/피싱 피해자/음성변조 : "사건에 대해서 (주변에) 말을 못하고 있는 상황이에요. 금액 자체도 워낙 크고 결국 범죄자들을 잡아야지 해결이 되는 문제인데..."]

2006년 이후, 15년간 발생한 피싱 범죄 피해액은 총 3조 8천억 원.

그 중 되돌려받은 돈이 있는지, 있다면 액수가 얼마나 되는지, 정확한 '피해 회복' 규모는 집계조차 안 되고 있습니다.

KBS 뉴스 최혜림입니다.

촬영기자:홍성백 허수곤/영상편집:차정남 신남규/그래픽:김정현 박미주

2023 보이스피싱 시나리오 [PDF]
https://news.kbs.co.kr/datafile/2023/03/20230323_sGX06k.pdf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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