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또 안 속을 자신 없어”…피싱 시나리오 공개합니다

입력 2023.03.24 (07:0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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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숙박시설로 가서 입실하고 방 번호, 영수증, 전신 사진까지 보고하세요."
"제3자에게 알리는 순간 구속영장 나오는 겁니다."
"수사 제대로 안 받아서 잘못되면, 빨간 줄 그이는 거예요."

보기만 해도 숨 막히는 듯 합니다. 한 보이스피싱 조직이 쓴 범행 시나리오의 일부입니다.

KBS는 이달 초 피싱 조직의 시나리오를 입수했습니다. 그제(22일)부터 연속 보도하고 있습니다.

요즘 피싱 조직은 시나리오도 준비합니다. 상황별로 종류도 다양합니다. 내용도 매우 촘촘합니다.

취재진은 6건을 입수했습니다. 꼼꼼히 분석해보니, 일정한 패턴이 발견됐습니다.

공포의 함정을 파고, 피해자들을 몰아넣은 뒤, '가스라이팅' 하듯 피해자를 완벽히 지배합니다. 그 상태에서 피해자 스스로 돈을 넘기게 합니다.

'그놈 목소리'는 철저히 전화기 뒤에 숨어 오직 말로만 범행 전 과정을 진행했습니다. 그 말의 기초가 된 시나리오의 핵심은 이렇습니다.

■ 1단계 : "범죄에 연루됐습니다"

자녀가 납치됐다는 식의 협박은 이제 잘 안 통하죠. '그놈 목소리' 도 알고 있습니다.

최근엔 범죄에 연루됐다는 겁박으로 포문을 여는 게 대세입니다. 주로 '성매매'나 '온라인 사기' 사건이 자주 동원됩니다.

(성매매 유형)
"강남구 *** 오피스텔 알고 계신가요? 총 7곳에서 성매매 알선 및 불법자금 혐의로 주범 김상호를 검거했는데 혹시 본인과 관계가 어떻게 되실까요?"

(온라인 사기 유형)
"본인 통장이 경기도 광명시 철산동 지점에서 개설이 되었고 네이버 중고나라에서 피해 금액이 2,300만 원이라는 점 담당사무관한테 전달 못 받으셨어요?"
- 피싱 시나리오 中


'말'만으로 속이기는 쉽지 않으니, 공문서를 위조하기도 했습니다.

사건 소장, 은행 거래내역서, 조사명령서, 원상복구보증서 등 마치 검찰과 금융감독원이 작성한 듯한 서류를 전송했습니다.

해당 서류를 본 피해자들은 감쪽같이 속을 수밖에 없었다고 말합니다.

"검찰에서 내부적으로 회의한 자료를 보내기도 하고, 금감원에서 불법대출 채무를 변제해준다는 서류도 보내고... 도장까지 찍혀 있으니까 구분하기 쉽지 않더라고요."
-원 00 / 보이스피싱 피해자

■ 2단계 : "구속될 수 있습니다"

피싱 조직은 피해자에게 뜯어낼 수 있는 돈이 얼마인지 파악하기 위해 '자산 내역'을 공개하라고 합니다.

이때, 피해자가 자신의 자산 내역 중 하나라도 빠뜨리면, 피해자를 거칠게 몰아 부칩니다.

"제가 아까 말씀드렸죠? 말 안 했어요? 누락 건이 많으면 원칙대로 구속 수사로 전환된다고 했었죠! 왜 누락했습니까! 진술이 장난 같았어요?"
-피싱 조직 시나리오 中

"수사에 협조하지 않으면 죄가 추가될 수 있다" "주위에 이 사실을 알리면 구속되는 거다" 등, 공포감을 조성하는 말도 수시로 등장합니다.


■ 3단계 : "아무도 믿지 말라"

피해자를 어느 정도 속이는 데 성공했다고 생각하면, 그 다음 목표는 고립입니다. 혹시라도 피해자가 상황을 주변에 알려, 사기라는 게 들통나는 걸 차단하려는 겁니다.

피해자가 스스로를 셀프 감금하게 하는 방법? 심각한 범죄에 연루됐으니 회사에 휴가를 내고 당분간 숙박업소에 머물라고 지시하는 게 대표적이었습니다. 휴가를 내는 사유까지 직접 정해줬습니다.

"집에 일이 급하게 생겨서 조퇴한다고 말씀하시는 것이 제일 좋겠죠? 그렇게 조퇴하면 되시고, 피해자 입증 완료가 되면 금일 저희 검찰 조사에 협조함으로써 조퇴하셨다는 서류를 회사에 보내드릴 겁니다."
-피싱 조직 시나리오 中

보이스피싱 조직은 이처럼 빠져나갈 구멍 없이 촘촘하게 피해자들을 옭아맸습니다.

취재진은 똑같은 혹은 유사한 시나리오에 당한 피해자들을 다수 만났습니다. 그들은 하나같이 젊었습니다. 그리고 자신했다고 합니다. "보이스피싱, 난 절대 안 당한다"라고.

그들에게 시나리오를 보여줬습니다. '아, 내가 이것에 당했구나!'라고 말했습니다. 피싱 예방법 정도는 숙지하고 있던 젊은 피해자들도 시나리오에 속수무책 당했던 겁니다.

피해자들은 "다시 그 전화를 받았을 때 또 안 당할 거란 자신은 없다"고 입을 모았습니다.

아무리 그래도, 저런 전화에 왜 속지? 여전히 이해가 안 되실 수도 있습니다.

그들이 만든 시나리오를 직접 확인해보시기 바랍니다. KBS가 입수한 6종의 시나리오를 원문 그대로 공개합니다.

보이스피싱 시나리오_KBS 배포 [PDF]
https://news.kbs.co.kr/datafile/2023/03/23/299891679553617688.pdf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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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또 안 속을 자신 없어”…피싱 시나리오 공개합니다
    • 입력 2023-03-24 07:00:32
    취재K

"숙박시설로 가서 입실하고 방 번호, 영수증, 전신 사진까지 보고하세요."
"제3자에게 알리는 순간 구속영장 나오는 겁니다."
"수사 제대로 안 받아서 잘못되면, 빨간 줄 그이는 거예요."

보기만 해도 숨 막히는 듯 합니다. 한 보이스피싱 조직이 쓴 범행 시나리오의 일부입니다.

KBS는 이달 초 피싱 조직의 시나리오를 입수했습니다. 그제(22일)부터 연속 보도하고 있습니다.

요즘 피싱 조직은 시나리오도 준비합니다. 상황별로 종류도 다양합니다. 내용도 매우 촘촘합니다.

취재진은 6건을 입수했습니다. 꼼꼼히 분석해보니, 일정한 패턴이 발견됐습니다.

공포의 함정을 파고, 피해자들을 몰아넣은 뒤, '가스라이팅' 하듯 피해자를 완벽히 지배합니다. 그 상태에서 피해자 스스로 돈을 넘기게 합니다.

'그놈 목소리'는 철저히 전화기 뒤에 숨어 오직 말로만 범행 전 과정을 진행했습니다. 그 말의 기초가 된 시나리오의 핵심은 이렇습니다.

■ 1단계 : "범죄에 연루됐습니다"

자녀가 납치됐다는 식의 협박은 이제 잘 안 통하죠. '그놈 목소리' 도 알고 있습니다.

최근엔 범죄에 연루됐다는 겁박으로 포문을 여는 게 대세입니다. 주로 '성매매'나 '온라인 사기' 사건이 자주 동원됩니다.

(성매매 유형)
"강남구 *** 오피스텔 알고 계신가요? 총 7곳에서 성매매 알선 및 불법자금 혐의로 주범 김상호를 검거했는데 혹시 본인과 관계가 어떻게 되실까요?"

(온라인 사기 유형)
"본인 통장이 경기도 광명시 철산동 지점에서 개설이 되었고 네이버 중고나라에서 피해 금액이 2,300만 원이라는 점 담당사무관한테 전달 못 받으셨어요?"
- 피싱 시나리오 中


'말'만으로 속이기는 쉽지 않으니, 공문서를 위조하기도 했습니다.

사건 소장, 은행 거래내역서, 조사명령서, 원상복구보증서 등 마치 검찰과 금융감독원이 작성한 듯한 서류를 전송했습니다.

해당 서류를 본 피해자들은 감쪽같이 속을 수밖에 없었다고 말합니다.

"검찰에서 내부적으로 회의한 자료를 보내기도 하고, 금감원에서 불법대출 채무를 변제해준다는 서류도 보내고... 도장까지 찍혀 있으니까 구분하기 쉽지 않더라고요."
-원 00 / 보이스피싱 피해자

■ 2단계 : "구속될 수 있습니다"

피싱 조직은 피해자에게 뜯어낼 수 있는 돈이 얼마인지 파악하기 위해 '자산 내역'을 공개하라고 합니다.

이때, 피해자가 자신의 자산 내역 중 하나라도 빠뜨리면, 피해자를 거칠게 몰아 부칩니다.

"제가 아까 말씀드렸죠? 말 안 했어요? 누락 건이 많으면 원칙대로 구속 수사로 전환된다고 했었죠! 왜 누락했습니까! 진술이 장난 같았어요?"
-피싱 조직 시나리오 中

"수사에 협조하지 않으면 죄가 추가될 수 있다" "주위에 이 사실을 알리면 구속되는 거다" 등, 공포감을 조성하는 말도 수시로 등장합니다.


■ 3단계 : "아무도 믿지 말라"

피해자를 어느 정도 속이는 데 성공했다고 생각하면, 그 다음 목표는 고립입니다. 혹시라도 피해자가 상황을 주변에 알려, 사기라는 게 들통나는 걸 차단하려는 겁니다.

피해자가 스스로를 셀프 감금하게 하는 방법? 심각한 범죄에 연루됐으니 회사에 휴가를 내고 당분간 숙박업소에 머물라고 지시하는 게 대표적이었습니다. 휴가를 내는 사유까지 직접 정해줬습니다.

"집에 일이 급하게 생겨서 조퇴한다고 말씀하시는 것이 제일 좋겠죠? 그렇게 조퇴하면 되시고, 피해자 입증 완료가 되면 금일 저희 검찰 조사에 협조함으로써 조퇴하셨다는 서류를 회사에 보내드릴 겁니다."
-피싱 조직 시나리오 中

보이스피싱 조직은 이처럼 빠져나갈 구멍 없이 촘촘하게 피해자들을 옭아맸습니다.

취재진은 똑같은 혹은 유사한 시나리오에 당한 피해자들을 다수 만났습니다. 그들은 하나같이 젊었습니다. 그리고 자신했다고 합니다. "보이스피싱, 난 절대 안 당한다"라고.

그들에게 시나리오를 보여줬습니다. '아, 내가 이것에 당했구나!'라고 말했습니다. 피싱 예방법 정도는 숙지하고 있던 젊은 피해자들도 시나리오에 속수무책 당했던 겁니다.

피해자들은 "다시 그 전화를 받았을 때 또 안 당할 거란 자신은 없다"고 입을 모았습니다.

아무리 그래도, 저런 전화에 왜 속지? 여전히 이해가 안 되실 수도 있습니다.

그들이 만든 시나리오를 직접 확인해보시기 바랍니다. KBS가 입수한 6종의 시나리오를 원문 그대로 공개합니다.

보이스피싱 시나리오_KBS 배포 [PDF]
https://news.kbs.co.kr/datafile/2023/03/23/299891679553617688.pdf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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